선교논단(23)
기독교 선교적 관점에서 본 G2국가로서 중국에 관한 연구
세계 지도자 역할에 관하여
목 차 I. 서론 II. 중국의 역사적 배경 연구 III. G2국가로서 중국 IV. G2국가 중국민족의 세계관 V. 100년간 G1 국가의 역할을 수행한 미국의 청교도 정신 VI. 중국의 G2 역할과 수행 능력 VII. G2국가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 VIII. G2 중국의 기독교 선교와 역사적 교훈 1. 중국의 기독교 전래와 그 역사 2. 중국의 선교정책과 하나님의 섭리 3. 중국의 개혁개방과 중국 기독교의 역할 IX. 결론 |
VIII. G2 중국의 기독교 선교와 역사적 교훈
2. 중국의 선교 정책과 하나님 섭리
여기에서 영국 민족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민족들이다. 청교도 신앙의 뿌리가 영국 민족이다. 그리고 성공회의 시작도 영국 민족의 근원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성서와는 위배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수없이 자행했다. 식민지 정책으로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을 수탈하고 착취하여 부를 누리든 나라는 영국이 대표적인 나라이다. 17세기에도 기독교가 한 면으로는 기독교 선교로 미화하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힘없는 중국 민족에게 아편을 국가적 국력으로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분하에 국책 사업으로 아편수출 정책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말 하나님의 공의와 신앙의 인류보편적 인권의 정체성을 어떠한 기준에 두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반문하여 볼 수 있다. 중국의 국민들이 침략자 서양인들이 전하는 서양 종교를 배척하려는 자세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조정은 자국의 권리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편금지령을 선포한 정책을, 해제하라는 영국정부의 요구를 중국조정이 거절하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전쟁을 하기 위하여 자국의 군대를 파견했다. 장구한 역사에서 오직 공자의 사상인 유교의 법도에서 국가를 통치하고 공자의 가르침을 생명으로 여기며 오천 년을 살아온 중국민족에게 서양의 외래 종교를 한낱 오랑캐의 종교로 외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도 총칼을 앞세우고 찾아온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드리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방법에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AD 635년 경교 선교의 당나라 시대 선교부터, 야리가온의 천주교 선교의 원나라 시대와 마테오 리치의 예수회 선교의 명나라 시대까지는 하나님께서 기다렸으나, 이제 청나라 시대에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강권적으로 중국의 내륙지방까지 선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신 것은 중국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전략적 선교계획을 무력을 사용하신 것이 아닌지 알 수 없다.
수 천년을 이어온 중화민족의 자존심은 아편전쟁(제1차 1839-1842년, 제2차 1856-1860년)에서 패배하면서 쇄국정책을 고집하던 청왕조는 굴욕적이고 가장 불리한 조건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고 홍콩 반도의 영토가 증발 당하는 치욕적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동양의 종주국 행세를 하며 과거 영광을 누리던 거대한 대륙의 나라가 선진 개발된 현대적 무력에 눌려서 뼈아픈 상처의 역사를 남겨야 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 와서 고생하던 선교사들은 전쟁기간 중 본국 정부측에서 충성을 다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1842년 8월 29일 남경 항구에 정박중인 영국군함 차화려호(號) 상에서 맺은 남경조약 13개조의 초안을 중국의 선교사들이 작성했으며 영어와 중국어로 작성하는 일들을 선교사가 담당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독교 선교적인 논리에서 중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모진 고생을 겪으며 노력했던 선교의 결과가 중국인의 시각에서 평가한다면 선교사들의 정체성은 결과적으로 한낮 영국정부 침략군의 앞잡이로 밖에 보일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대영제국은 미국독립 전쟁에서 경험한 실전 경험과 세계적 해상권을 제패한 해군력으로 거대한 중국대륙을 상대하여 일방적으로 침략한 아편전쟁에서 승리하여 깃발을 앞세우고 청나라에서 온갖 이권을 모두 쟁취하였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체성을 모방한 대영제국의 제국주의를 지탱하는 국력의 철학이다. 거대한 식민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하여는 막대한 통치자금이 필요하다. 호화로운 생활의 황족과 영국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에서 통치자금을 증수할 수 없다. 국력의 상징은 국가의 재정능력이다. 국가의 재정이 빈약하면 국력은 쇠퇴하여 질 수밖에 없다. 대영제국은 오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아시아 대륙의 종주국이었든 청왕조로부터 받아들인 막대한 자금으로 국고에 채워 갔다.
또한 몰락하여 가는 청왕조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홍콩반도를 분할하여 99년간 영국에게 증발 당하고 5개 항구를 개항하는 치욕적 협정을 맺으면서 폐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격동기의 청국 왕조는 무력하기만 하여갔다. 1851년 농민들이 일으킨 태평천국은 1864년 진압될 때까지 청나라의 국토의 절반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나날이 기울어져 가는 청황실은 1895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진행된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일본에게 점령당한 대만섬을 일본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1899년 11월 2일에 일어난 의화단의 난은 청나라를 어떻게든 지탱하려는 서태후와 만주족 수구파의 최후의 발악이나 다름없었다.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구호를 외치는 의화단은 청왕조 서태후의 비호 아래 외국인과 선교사들을 학살하고 약탈하며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이를 명분으로 8개국 열강 연합군이 개입하여 의화단을 진압하고 청왕조는 “베이징 의정서”을 체결하고 중국은 40년 동안 이자를 포함하여 9억8,200만냥의 배상금과 외국군이 중국에 상주할 수 있는 치외법권 지역을 인정해야 했다.
청나라는 왜 불평한 조약을 체결하면서까지 살아남으려고 노력했을까? 아니면 왜 이렇게 비참한 궁지에 몰리게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그 원인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웃의 조그마한 섬나라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대만섬을 포기해야 했으며, 남쪽의 아름다운 홍콩항구와 마카오 항구를 증발당해도 청왕조는 나라를 지켜보려 노력했지만 격동하는 19세기 세계사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허덕이다가 그렇게도 동양의 맹주로서 영광을 누리던 대국(大國)의 국력은 소멸되어 가야 했을까? 이에 대해 논하여 보고자 한다.
중국대륙은 지리적으로 모든 산업조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국과 통상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대륙의 국가였다. 그리고 아시아의 제국 청왕조는 격동하는 서구세력의 새로운 정치문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고립정책으로 18-19세기 근대세계의 변화의 흐름에 따라 대응책을 따르지 않고 외면해야 했다.
그러나 밀려드는 서구의 산업혁명과 과학문명을 받아들여 발전하지 못하고 고립정책으로 인하여 청왕조의 중국대륙은 심하게 낙후되어 갔다. 오랜 전통의 유교 철학은 과거의 것에만 집착하는 사상의 불합리적 사고방식으로 서구에서 일어나는 계몽사상과 문예부흥의 영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에 것에만 안주하려다 변화의 시대를 놓쳐야 했다. 유교 사상의 엘리트 지배계급은 우물 안에 개구리 개념으로 세계가 산업혁명과 기계문명의 발달로 격동하는 세계의 변화를 알아보지 못하고 서구에서 과학과 학문적 철학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서구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의식을 청나라의 지배층은 가지지 못했다.
영국의 명예혁명과 프랑스의 시민혁명, 독일의 종교개혁으로 서구의 민주주의 계몽운동과 미국의 독립으로 세계적 힘의 균형이 서구쪽에서 팽창하고 있을 때 황제를 천자(天子)로 섬기려는 통치개념에서 모든 권력이 그에게만 집중하여 올바른 판단으로 서구 세상의 변화와 발전에 편승하지 못하고 기득권이 집착하여 허세만 부리다가 국력은 약화되어 멸망의 길로 향하여 갔다. 중국대륙은 80%이상이 소작농민들로서 그들의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청 왕조는 계속해서 일어나는 농민 봉기를 진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다수 백성들이 문맹인이며 교육제도는 유교에 근거한 과거제도에 속박되어 현대 과학적 교육제도를 도입하지 못하여 미개한 후진국이라는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기존의 유교 종교는 은둔적(隱遁的) 종교철학에 치우쳐 지극히 비생산적이고 반 민주주의 의식으로 변혁의 체험을 제공하여 주지 못하고 사회 문화는 오천년 역사와 문화 속에 정체되어 있었다. 일찍이 전해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배척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가능성과 잠재적인 여건으로 완전히 달라진 중국의 모습으로 역사의 주인공의 중국 대륙이 되었을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강호생 선교사
Dr.강호생 Missionary Pastor
Iona Columba College 겸임교수
Mental Health CPE 과정수료
M.Div, M.Th, D.Ics
jhskang@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