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6년 5월 23일, 멕시코-미국 전쟁: 멕시코가 미국에 전쟁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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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5월 23일, 멕시코-미국 전쟁: 멕시코가 미국에 전쟁 선포

멕시코-미국 전쟁 (Mexican-American War, 스: Guerra de Estados Unidos-México)은 1846년 4월 25일 ~ 1848년 2월 2일 사이 멕시코와 미국 간에 발생한 군사 분쟁이다.

맥락에 따라서 멕시코 전쟁,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인 제임스 포크를 따서 포크의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전쟁은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텍사스 공화국이 성립했지만, 멕시코는 이 땅을 자국 영토로 여겨 1845년 텍사스 합병으로 텍사스가 미국의 주가 되자 일어났다.

텍사스 공화국은 연방에 가입해 미국의 한 주가 되고 미국과 멕시코의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등지의 문제로 인해 갈등이 생겼다. 텍사스를 합병한 미국은 리오그란데 강을 멕시코와의 국경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멕시코는 마찬가지로 리오그란데 강 북쪽을 흐르는 누에시스 강 (Nueses River)을 국경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양국의 주장을 좁히지 못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제임스 포크는 미국이 주장하는 텍사스 땅을 확보하도록 군에 지시했다. 이 지시를 받은 재커리 테일러 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누에세스 강을 남하하여 멕시코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브라운 요새 (Fort Brown)를 세웠다.

1846년 4월 24일 멕시코의 기병 부대가 리오그란데에서 미국의 분견대를 사로잡으며 교전을 벌였다. 〈팔로 알토〉(Palo Alto)와 〈레사카 드 라 팔마〉(Resaca De La Palma)에서 국경 충돌과 교전 이후 미합중국군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의회는 5월 13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남부 출신과 민주당이 이 조치를 지지했다. 한편 북부 출신과 휘그당은 일방적인 전쟁 선포를 반대했다. 멕시코는 5월 23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미합중국의 선전포고 후 미합중군은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캘리포니아의 여러 도시를 점령했다. 〈몬테레이 전투〉는 1846년 9월에 일어났다.

1847년 2월 22일, 〈부에나 비스타 전투〉에서 테일러 장군이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장군 휘하의 멕시코 군을 물리치고 알타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의 점령을 확고히 했다. 미합중국군은 멕시코군의 4배나 되는 대군으로 멕시코군을 격파하여 뉴멕시코의 수도 샌타페이를 점령했다.

1847년 3월에는 윈필드 스콧 장군이 이끄는 미합중군이 역사상 최초의 수륙양용 군사작전을 수행해 멕시코 베라크루스에 상륙했다. 멕시코 사령관은 항복하고 1847년 9월 14일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미군에게 함락되었다.

결국 1848년 1월 멕시코는 평화 협정을 요청해 1848년 2월 2일 멕시코 과달루페 이달고에서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을 맺어 전쟁은 종결되었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은 겨우 1,825만 달러를 지급하고 멕시코로부터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 주 등을 할양 받아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만 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넓혔다. 미국은 겨우 멕시코인들에게 진 빚 325만 달러를 떠맡도록 하였고 군사비 지출도 9,8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직전 일부 미국 여론들은 전쟁을 반대했는데 지식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전쟁세를 내는 대신 감옥에 가는 것으로 항의했고 랄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의 폭력을 부끄러워하며 멕시코가 미국에게 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남북전쟁의 전쟁 영웅 율리시스 그랜트 역시 이를 두고두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