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5월 23일, 프랑스의 수학자 오귀스탱 루이 코시 (Augustin Louis Cauchy, 1789 ~ 1857) 별세

1857년 5월 23일, 프랑스의 수학자 오귀스탱 루이 코시 (Augustin Louis […]

1857년 5월 23일, 프랑스의 수학자 오귀스탱 루이 코시 (Augustin Louis Cauchy, 1789 ~ 1857) 별세

오귀스탱 루이 코시 (프: Augustin Louis Cauchy, 1789년 8월 21일 ~ 1857년 5월 23일)는 프랑스의 수학자이다.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P. S. Laplace) 등으로 대표되는 18세기의 수학을 19세기적 단계에 올려놓은 프랑스의 대수학자로도 평가된다.

프랑스 혁명의 해에 파리에서 태어나 에콜 폴리테크니크 (高等理工科學校)에서 공부하고 후에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당시의 프랑스는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하는 정치적인 격동기로, 엄격한 가톨릭 신자이고 왕당파였던 코시는 정치적으로 지조를 지키고자 하여 많은 고난을 겪었다.

  • 오귀스탱 루이 코시 (Augustin Louis Cauchy)
    .출생: 1789년 8월 21일, 프랑스 파리
    .사망: 1857년 5월 23일 (67세), 프랑스 오드센주 소 (프: Sceaux)
    .국적: 프랑스
    .분야: 수학
    .소속: École Centrale du Panthéon, 에콜 데 퐁 (프: École Nationale des Ponts et Chaussées),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 대학: 에콜 데 퐁
    .지도 학생: Francesco Faà di Bruno, Viktor Bunyakovsky
    .주요 업적: 코시 적분 정리, 코시-슈바르츠 부등식, 코시 정리 (군론), 코시 수열, 코시-리만 방정식, 엡실론-델타 논법, 코시 주요값, 코시-아다마르 정리, 코시-오일러 방정식, 코시 평균값 정리, 코시 응집판정법
    .자녀: 마리 프랑수아즈 알리시아, 마리 마틸드
    .부모: 루이 프랑수아 코시, Marie-Madeleine Desestre
    .형제자매: 유진 프랑수아 코시, 알렉상드르 로랑 코시

프랑스의 근대 수학자로 현대 미분적분학의 기초를 마련한 업적으로 유명하다.

○ 생애 및 활동

16세 때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던 그는 그 후에 토목기사로 일하면서 수학을 연구하였다.

그러다가 1815년에 드디어 수학자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모교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교수가 되었고, 이듬해에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으로 인해 7월 왕정의 루이필리프 1세가 왕위에 즉위했을 때 개인적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 국왕 샤를 10세에게 충성을 다하는 보수적인 왕당파였던 그는 새 국왕 루이필리프 1세에게 충성서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절 공직 취임이 금지되면서 이탈리아 토리노로 피신했다.

이후 나폴레옹 3세가 즉위하면서 다시 복귀하여 소르본 대학의 교수로 취임해 사망할 때까지 소르본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생몰년에서 보듯 그는 프랑스 혁명기에 유년기를 보낸 후 프랑스 제1제국과 부르봉 왕정복고, 7월 혁명 및 7월 왕정, 2월 혁명과 프랑스 제2공화국의 출범, 다시 프랑스 제2제국의 수립 등 험난하고 혼란스러웠던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한복판을 살았던지라 그 역시 이런 풍파에서 자유로울수 없었던 것이다.

코시의 대부분의 수학적 업적은 이탈리아 망명기에 나온 것들이라고 한다.

당시 학회에 발표하는 논문이 많자 학회에서는 코시에 대한 논문 분량 제한도 있었을 정도였다.

사실 이는 어릴 때부터 마찬가지였다. 코시는 어릴 때부터 수학에만 극도의 흥미를 보였고, 심지어 그의 아버지가 이대로 크다가는 모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될까봐 수학 공부를 금지시키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 업적

코시의 수학상 업적은 극히 많은데, 가장 큰 공로는 해석학을 엄밀한 기초 위에 올려 놓은 것이다.

무한소라는 애매한 개념상에 있던 미적분을 극한 (極限), 연속, 급수의 합 등의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합리화시킨 공적이 크다.

또, 실변수의 함수에 정적분의 문제에서 복수변수의 함수의 연구에 손을 대어 복소함수론의 기초정리를 확립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계산으로 푸는 것만이 시도 (試圖)되던 미분방정식에 대해 해 (解)의 존재를 증명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코시는 해석학을 계산에서 논리의 단계로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 다음과 같은 업적을 남겼다.

.오일러-코시 방정식
.코시-리만 방정식
.코시 적분 정리
.코시-슈바르츠 부등식

○ 평가

근대수학에서 코시의 영향력은, 오일러 이후로 더 이상 수학의 발전은 없을 거라 생각하던 수학계에 가우스가 튀어나왔고, 오일러와 가우스 이래로 수학의 발전은 없을 거라 생각하던 시기에 코시가 튀어나와 상황을 반전시킨 수준의 영향력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오일러-가우스의 주 역할이 기존 수학에 산재하던 문제를 풀어내던 것이었다면, 코시의 가장 큰 업적은 기존에 산재하던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아닌, 엄밀성이라는 반대의 영역으로 수학계의 관심을 돌려버린 패러다임 전환에 있다.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P. S. Laplace) 등으로 대표되는 18세기의 수학을 19세기적 단계에 올려놓은 프랑스의 대수학자로도 평가된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