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 5월 20일, 리바이 스트라우스 (Levi Strauss, 1829 ~ 1902)가 청바지의 미국 특허 획득
오늘날의 청바지는 독일인 이민자 리바이 스트라우스 (Levi Strauss, 1829년 2월 26일 ~ 1902년 9월 28일)가 발명한 것이다.
독일 청년 뢰프 슈트라우스는 미국에 건너가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무역상이었던 스트라우스는 창고에 쌓인 엄청난 양의 청색 데님 처리 방안을 궁리하다가,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몰려들던 광부들이 질기고 튼튼한 작업복을 찾고 있음을 생각해 냈다.
그는 데님으로 바지를 만든 후 리바이스라는 이름으로 시작에 내놓았고, 이후 10년 만에 대부분의 광부, 농부, 카우보이가 매일 이 바지를 입게 되었다.
처음 리바이스 청바지 솔기에는 금속 단추인 리벳이 박혀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러시아인 이민자였던 제봉사 제이콥 데이비스가 처음으로 광부용 청바지에 리벳을 박았다.
단순하게 바느질된 데님 천으로는 무거운 광부들의 연장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873년에 스트라우스는 당시 미국 특허 출원 비용이었던 69달러에 이 디자인을 사들였고 이후 100년이 넘도록 거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었다.
1920년부터는 지퍼 대신 단추를 사용한 복고풍의 버튼 플라이가 등장했다.
1937년에는 학생들의 청바지 리벳이 책상에 흠집을 낸다는 교육 위원회의 불평에 따라 청바지 뒤에 붙이던 리벳이 주머니 안으로 옮겨졌다.
그 외에도 안장히 긁힐까봐 걱정하는 카우보이, 가구에 흉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부모, 자동차의 흙받기가 긁혀 불만인 운전자도 이러한 변화에 일조해 1960년대에는 뒷주머니 리벳이 완전히 사라졌다.
1950년대에는 청바지가 10대 사이에 유행했고 1957년에는 세계적으로 1억 5,000만 벌이 생산되었다.
10년 후에는 미국에서 2억 벌이 판매되었고 1977년에는 5억 벌로 뛰어올랐다.
처음에 패션 전문가들은 청바지의 폭발적 인기가 저렴한 가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가격에 두 배로 뛰어오른 후에도 여전히 공급이 달릴 지경이었다.
제조 업자들은 수요를 맞추기 위해 결함이 있는 등외품까지 내다 팔아야 했다.
1970년대 후반, 수요가 좀 줄어들었지만 전문 디자이너의 브랜드 청바지가 시장에 소개되면서 다시 판매세가 급격히 신장하였다.
전 세계 유명 디자이너가 앞다퉈 고유의 청바지 스타일을 내놓았고 곧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제조 업자는 이렇게 높아진 청바지 수요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판매 추세를 조심스럽게 분석했고 아기부터 노년층까지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잘 맞는 데님을 개발해 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