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5월 3일, 마거릿 미첼 (Margaret Munnerlyn Mitchell, 1900 ~ 1949)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퓰리처상 수상
마거릿 머널린 미첼 (Margaret Munnerlyn Mitchell, 1900년 11월 8일 ~ 1949년 8월 16일)은 1936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이며, 이 작품으로 1937년 5월 3일,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마거릿 머널린 미첼 (Margaret Munnerlyn Mitchell)
.출생: 1900년 11월 8일, 미국 조지아 애틀랜타
.사망: 1949년 8월 16일, 미국 조지아 애틀랜타 그래디 헬스 시스템
.부모: 유진 뮤즈 미첼, 메이벨 스티븐스 미첼
.형제자매: 알렉산더 스티븐스 미첼, 러셀 스티븐스 미첼
.배우자: 존 마쉬 (1925 ~ 1949년), 베리엔 K. 업쇼 (1922 ~ 1924년)
.영화 및 방송: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세상을 구하는 사나이 빌 나이 등
마거릿 미첼 (Margaret Mitchell)은 미국 문학사상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마거릿 미첼은 1900년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문학뿐 아니라 남북 전쟁 당시 인물의 전기 등 방대한 양의 책을 읽었다. 애틀랜타의 워싱턴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의사가 되려고 스미스 대학에 입학했다. 이듬해 창궐한 인플루엔자로 어머니를 잃은 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오빠를 보살피며 집안일을 맡아 했다. 스물한 살에 사교계에 데뷔하고, 다음 해 베리엔 업쇼와 결혼했으나 2년 만에 이혼했다. 1922년부터 페기 미첼 (Peggy Mitchell)이라는 필명으로 『애틀랜타 저널』에 글을 쓰기 시작해 인터뷰 기사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발목 상처로 3년여의 기자생활을 접고는 꼬박 1년간 조사 연구를 마친 뒤 그로부터 3년에 걸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써서 완성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책이 출판될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의 도움으로 1936년에 출판된 이 책은 하루에 10만 부씩, 3주 만에 17만 부, 4개월 만에 70만 부, 6개월 만에 1백만 부가 넘게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1937년 미국 도서 판매 협회상에 이어 퓰리처상을 받았고, 그해에만 3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이 인기에 힘입어 1939년에는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언 리의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쓸었다. 미첼은 1949년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쳤다.
그녀의 이름을 영문학사에 아로새긴 대표작이자 유일한 작품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완전한 남부의 귀부인>이라는 이상을 막연히 추구하면서도 전통에 반발하는 스칼렛 오하라가 남북 전쟁, 그리고 남자들의 이 전쟁이 남긴 폐허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며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집요한 기둥 줄거리를 따라가며 수많은 주인공과 사건을 섭렵하는 길고도 웅대한 작품이다. 철저히 남부인의 시각으로 쓰였고, 지나친 중용과 감상주의 통속성이 배합되었다고 평가받기도 하나, 이 작품에는 단순히 즐거움만 제공하는 이상의 어떤 가치가 있다.
미첼은 작품에 제시한 시대와 인물들 그리고 북부 조지아의 붉은 언덕이 굽이치는 대지를 잘 알고, 옷에서부터 예의범절이라든가 온갖 자질구레한 면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지식을 동원했다. 또 다채로우면서도 활력 있게 통일된 주제를 제시하며, 서술 방법은 줄기차고, 힘차고, 소박하다. 한마디로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만큼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작품이다.
○ 생애 및 활동
그녀는 미국의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을 애틀랜타에서 보내며 남부의 역사와 남북 전쟁 시기의 일화를 들으며 성장하였다.
독서광이었던 그녀는 애틀랜타 워싱턴 신학대학교 (Atlanta’s Washington Seminary)를 졸업한 후, 여성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의 뜻에 따라 북부에 있는 명문 여자 대학인 스미스 대학교 (Smith College)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한다.
그곳에서 ‘헨리’라는 육군 장교와 연애를 하기도 하지만 헨리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하고, 이후 스페인 독감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1918년에 학교를 중퇴하고 다시 고향 애틀랜타로 돌아왔다 (이 과정은 이후 그녀의 소설에 큰 영향을 준다).
그 후 애틀랜타의 언론사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결혼하여 평범하게 살던 중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남북 전쟁을 바탕으로 한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듣던 전쟁 시기의 일화와 치밀하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10년 간 집필하여 1936년 출판된 이 장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몰며 빠른 시간내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듬해 1937년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3년 뒤인 1939년 비비언 리 주연의 영화로 출시되게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미첼은 소설가로서 이 한 작품만을 남겼을 뿐이며, 1949년 8월 11일 저녁, 남편 존 마쉬 (John Marsh)와 함께 영화 캔터베리 이야기를 보러가는 도중에 애틀란타 13번가의 피치트리 거리 (Peachtree Street)를 건너다가 과속으로 달리던 자동차에 치었다. 완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5일 후 그래디 병원 (Grady Hospital)에서 48세로 사망했다. 애틀랜타의 오클랜드 묘지에 묻혔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25년 발목 부상으로 직장을 그만두면서 3년간의 긴 집필 기간을 통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집필하지만 원고가 출판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6년간이나 원고를 벽장 속에 묵혀둔다. 그런데 1936년 이 작품은 우연한 기회에 맥밀란 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어 그녀 자신도 놀랄만큼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후 그녀는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명성을 뒤로하고 절필을 선언했으며 두 번 다시 창작하는 일 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1949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작품
사라진 섬 레이즌 (첫 작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지막 작품)
부록 :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는 마거릿 미첼이 1936년에 쓴 소설이다. 이듬해인 1937년 5월 3일에 퓰리처 상을 받았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1939년에 개봉했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저자: 마거릿 미첼
.국가: 미국 / 언어: 영어
.장르: 역사소설 / 출판사: 맥밀런 출판사
.발행일: 1936년 5월 / 장수: 103페이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무명 작가가 쓴 방대한 양의 소설을 쉽게 출판할 출판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거릿 미첼은 어느 출판사의 직원에게 원고를 떠넘기다시피 맡겼다. 직원은 원고에 매료되었고 곧 출판이 결정되었다. 결국 미첼이 원고를 억지로 떠넘긴 덕분에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탄생했다.
– 줄거리
소설은 남북전쟁 (1861 ~ 1865)이 벌어지기 전, 평화롭고 아름다운 땅이었던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타라 농장주 제럴드 오하라의 큰딸 스칼렛 오하라는 당차고 자기 주장이 강한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녀는 애슐리를 사랑하고 있고, 애슐리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애슐리는 착하디 착한 멜라니와 결혼을 하고 만다. 홧김에 스칼렛은 멜라니의 오빠인 찰스 해밀턴의 고백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남부군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찰스는 입대하자 마자 전사하고 만다. 아직 애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스칼렛은, 애슐리의 부인인 멜라니의 출산이 가까워지자 북부군이 애틀란타까지 들어왔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멜라니와 함께 남아있게 된다. 마침내 멜라니가 아이를 낳자, 스칼렛은 결혼 전 우연히 만났던 거만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가진 레트 버틀러라는 남자의 도움으로 북부군을 피해 멜라니와 함께 고향 타라로 돌아온다. 하지만 고향에서 그녀를 맞은 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실성, 그리고 지독한 가난이었다. 그러나 스칼렛은 좌절하지 않고, 역경을 헤쳐나갈 것임을 하나님께 맹세한다.
북군으로 인해 남부의 점령지는 수난을 겪고, 참전했던 남부의 청년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찰스의 형 카네기도 돌아와 스칼렛에게 구애를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여전히 애슐리 뿐이다. 스칼렛은 세금 300달러를 내지 못해 고난을 겪고, 설상가상으로 정신이 나갔던 아버지가 말을 타다 떨어져 죽는다. 이때, 전쟁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는 레트의 소식을 듣게 된 스칼렛은 처음 만났던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레트를 만나러 군형무소로 간다. 변변한 외출복이 없이 고급 커튼으로 직접 만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레트 앞에 서지만, 레트는 스칼렛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스칼렛은 더욱 레트를 증오하게 된다. 또 다시 세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동생 수엘렌 (Suellen O’Hara)의 애인 장사꾼 프랭크 케네디를 만나 결혼한 스칼렛은 남편의 자금으로 억척스럽게 제제소를 운영한다. 이 일을 계기로 동생은 언니를 저주하지만, 스칼렛은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나다니던 스칼렛은 흑인 슬럼가에서 성추행을 당한다. 천만다행으로 과거 타라 농장에서 일했던 빅 샘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온다. KKK단과 관련을 맺고 있던 프랭크는 애슐리와 함께 스칼렛이 성추행당한 것을 보복하러 갔다가 살해당한다. 애슐리는 다행히 레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스칼렛은 평소 미워하는 감정에도 불구하고 돈 많은 레트의 청혼을 받아들여, 레트와 재혼하게 된다.
스칼렛의 끝없는 애슐리에 대한 집착으로 레트와 스칼렛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있었다. 그들의 딸 보니 (Bonnie Blue Butler)가 말에서 떨어져 죽자 그들의 사이는 더 멀어져 간다. 멜라니의 죽음과, 애슐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 멜라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칼렛은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레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미 애슐리에 대한 스칼렛의 집착에 마음이 멀어져간 레트는 스칼렛을 떠나고 만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레트였다는 사실을 안 스칼렛은 뒤늦게 레트를 되찾아야겠다는 다짐으로, 고향 타라로 되돌아간다.
– 중요 등장인물
스칼렛 오하라
레트 버틀러
애슐리 윌크스
멜러니 해밀턴
벨 웨이틀링
빅 샘
수엘렌 오하라
윌 벤틴
유진 빅토리아 보니 버틀러
제럴드 오하라
찰스 해밀턴
프랭크 케네디
– 비판
흑인들의 생존권 투쟁을 진압한 백인들의 잘못을 정당화했다는 비평과 혹평이 있다.
– 기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첫 시사회는 미첼의 고향이자 이야기의 주무대인 애틀랜타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스칼렛의 유모역을 맡아 열연했던 흑인 여배우 해티 맥대니얼은 참석할 수 없었다. 당시에도 짐 크로 법으로 대표되는 흑백분리주의가 남부를 지배하였기 때문. 같이 연기했던 클라크 게이블이 만약 그녀를 오지 못하게 한다면 자신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일까지 있었지만, 맥대니얼의 시사회 출연은 결국 무산되었다.
1940년 2월 LA의 엠버서더 호텔에서 해티 맥대니얼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최초의 흑인 오스카 수상자였다. 엠버서더 호텔은 흑인 출입 금지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해티 맥대니얼은 특별히 허가된 흑인 손님으로 입장하였다.
맥대니얼은 수상 연설에서 자신의 수상은 자신의 인종과 아울러 영화산업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맥대니얼의 소망과는 반대로, 80년대에 접어들 때까지 흑인 아카데미 수상자는 단 하나가 더 나왔을 뿐이었다.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