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盧武鉉, 1946 ~ 2009) 서거

2009년 5월 23일,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盧武鉉, 1946 ~ 2009) 서거 […]

2009년 5월 23일,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盧武鉉, 1946 ~ 2009) 서거

노무현 (盧武鉉,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그는 이후 정계에 입문해 제13·15대 국회의원직을 역임했다.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국민의 정부에서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역임했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경상남도 김해 출생이다.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에 뛰어들었다가 독학으로 1975년 3월 30세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1년을 재직하다가 그만두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여 여러 인권 사건을 변호하였다.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의 공천을 받아 제13대 총선에 출마하여 부산 동구에서 당선되며 5공비리특별위원으로 활동했다.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면서 김영삼과 결별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고 국민경선제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제16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2003년 말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2004년 초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개혁 세력들이 주축이 되어 창당한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2004년 무렵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정한 중립의무 및 헌법 위반을 시유로 야당에 국회로부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직 재임 중 탄핵 소추를 당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하지만 이후 탄핵을 주도했던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은 여론의 역풍에 휩싸여 제17대 총선에서 참패하였고 얼마 후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을 기각하며 노무현은 다시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였다.

주요 업적으로는 권력층에 만연해 있던 권위주의와 정경유착을 타파하고 기존 정권이 하지 못했던 각종 재벌 개혁을 시행한 것이 꼽힌다. 상속증여세의 포괄주의를 도입해 대기업 총수의 탈세 여지를 좁힌 것,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를 시행한 것, 대기업 간 불공정 담합에 대한 적발과 처벌을 강화한 것 등이 높게 평가받는다.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간 첫 대통령으로 꼽혔으며, 봉하 마을에 대한 관심이 누리꾼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노무현의 귀향으로 김해시 봉하 마을에 지지자 및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언론에 비친 모습을 통해 특정 누리꾼들에게 친근한 대통령으로 다가왔다. 또한 특정 네티즌들은 ‘노간지’라는 애칭을 붙여 줬다. 노무현이 봉하 마을 귀향 이후 관심을 갖고 추진한 사업으로 오리쌀 농법과 화포천 정화, 생태숲 조성 등 친환경·친농촌 생태사업이 있다.

2008년 9월 18일, 그는 건전한 토론 문화 조성을 취지로 인터넷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을 개설했다. 노무현 측은 사용자 참여 중심의 인터넷 환경인 ‘웹 2.0’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체계적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명박정부 검찰의 기록물이관 및 가족 뇌물수수 등의 전방위 조사가 오자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져 타계했다.

아래의 유언을 남겼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 장례

노무현 직전 대통령의 서거일 이틀 후인 2009년 5월 25일에 위원회가 결성된 뒤, 5월 29일까지 거행되었다. 당초 유족들은 가족장을 추진하였으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전 국민적인 추모열기로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노무현의 영결식은 국민장으로 치러져 전국적으로 500만 (봉하 마을 장례 위원회 추산)이 넘는 인파가 각지에 시민들이 마련한 분향소에 조문을 했다. 봉하 마을을 찾은 조문객의 수는 100만으로 사망 직후부터 전국에 분향소가 설치되기 시작하여 총 301곳[228] 이 설치되었다. 일주일간의 추도 기간 동안 인터넷 포털, 언론사, 기업의 로고는 검은색으로 바뀐 추도배너가 내걸렸고, 대다수의 방송사 오락 프로그램의 방송이 결방 하였으며, 지지 세력들이 이웃처럼 느껴지던 서민 출신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자결에 충격과 슬픔과 정부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에 따른 분노가 함께 표출되었고, 여론 조사에서도 60%가 넘는 사람들이 이명박과 검찰의 책임이라고 응답하였다.

덕수궁 앞 대한문 앞에 마련된 장례 기간 동안 시민 분향소에서는 2킬로미터가 넘는 장례 행렬이 밤새 이어졌다.

이날 영결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세계 150여 해외 공관에 설치된 분향소에도 각국 주요 인사가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영결식은 장례는 국민장으로 엄수되었으며 시신은 봉하 마을에서 새벽 5시에 출발, 5월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가족, 정부, 종교단체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 빈소 및 분향소 설치

5월 23일 서거한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의 시신은 당일 오후 6시 30분 봉하마을 마을회관으로 옮겨져 빈소가 마련되었다. 임시 분향소에서 5월 23일 오후 10시부터 조문객을 맞았으며, 이튿날 마을회관 앞 광장에 공식 분향소가 세워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뒤 곳곳에서 추모객이 몰려 들었으며 5월 29일 국민장 기간이 끝날 때까지 100만명 이상의 추모객이 봉하마을 분향소를 방문하였다.

정부에서 세운 공식 분향소는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해 102개소에 마련되었으며 총 조문인원은 5월 29일 18시까지 98만 5331명에 달하였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분향소는 대한문 앞을 비롯해 알려진 것만 150여곳에 달하였다. 5월 29일 새벽까지 조문객은 500만여명에 달하였다.

– 장의위원회 구성

정부는 5월 23일 관계 국무위원 간담회를 개최해 국민장을 거행하기로 뜻을 모았고, 5월 24일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위원회의를 개최하여 국민장 거행을 의결하였다. 장의위원장은 관례에 따라 국무총리인 한승수가 선정되기로 하였으나 유가족 측이 공동위원장을 제의, 5월 25일 현직 국무총리 한승수와 전 국무총리 한명숙이 선정되었다. 장의위원은 전·현직 고위공무원, 사회지도층 인사, 유족이 추천한 친지 및 친분이 있는 인사 총 1,383명으로 구성되어 역대 최대 규모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5월 27일 국민장 영결식을 5월 29일 경복궁 흥례문 앞 뜰에서 거행하기로 공고하였다.

– 추도사

한명숙 전 총리의 추도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가 영결식 동안 진행되었다.

– 발인

2009년 5월 29일 오전, 많은 주민들과 지지자들의 애도 속에서 운구차량이 출발하였다. 주민들과 지지자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표하는 색깔인 노란 풍선과 종이 비행기를 운구차량에 날렸다. 주민들의 슬픔을 뒤로하고 고속도로를 5시간을 달려 경복궁 영결식장에 도착하였다.

– 화장

노무현의 시신은 당초 예정보다 약 2시간여 늦게 경기도 수원 연화장에 도착해 화장되었다. 화장 후 수습된 유골은 고향인 경남 김해 봉화산의 정토원에 49재가 끝나고 매장되기 전까지 안치되었다. 당초 작은 비석을 세워달라고 유언하였으며, 한때 국립묘지 안장 여론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바로 고인돌 형태의 묘소에 납골당 형태로 안장되었다.

○ 학력

1959년 진영대창국민학교 졸업

1963년 진영중학교 졸업

1966년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 비학위 수료

1998년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노동정책과정 수료

1999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수료

– 명예 박사 학위

2004년 모스크바 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2006년 알제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2007년 원광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 경력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19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

1978년 변호사 개업

1981년 부림 사건 변론 이후 인권변호사 활동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장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장, 6월민주항쟁 주도로 인해 구속, 변호사 업무 정지 처분

1988년 민변 창립회원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통일민주당, 부산 동구, 5공비리특별위원회 활동)

1990년 3당합당 반대, 민주당 창당 활동에 합류

1991년 민주당 창당 주도(통합협상 대표), 민주당 대변인

1992년 민주당 제14대 대통령선거 청년특위위원장 겸 물결유세단 단장으로서 대통령 후보 김대중 지원

1993년 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 지방자치실무연구소 개소

1995년 부산 시장 선거 출마, 통합민주당 창당 활동에 합류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제15대 대통령선거 찬조 연설과 파랑새유세단 단장으로서의 활동 등으로 대통령 후보 김대중 지원

1998년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 현대자동차 파업 중재

1999년 국회 동남아특위 위원장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2002년 새천년민주당 제16대 대통령 후보

2003년 ~ 2008년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 상훈

2004년 – 영국 최고 훈장 배스 대십자훈장(GCB)

2004년 – 폴란드 흰 독수리 훈장(Order Orła Białego)

2005년 – 미국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밴 플리트’ 수상

2007년 – 카타르 독립대훈장

2007년 – 스페인 시민 훈장

2007년 10월 8일 – 덴마크의 코끼리의 기사 수훈

2008년 – 무궁화대훈장

○ 저작물

– 저서

.생전에 출간된 저서

《사람 사는 세상》 (1989.09.19)

《여보, 나좀 도와줘》 (새터, 1994.09.01)

《의원님들 요즘 장사 잘돼요?》 (공저 노무현 외 10인, 1997.09.25)

《마음 먹었을 때 시작해라》 (공저 노무현 외 54인, 우민OK논술교실, 2000.06.01)

《노무현이 만난 링컨》 (학고재, 2001.11.30)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 (공저 노무현 외 13인, 행복한책읽기, 2002.02.28)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2002.10.15)

《성공하고 싶다면 군대에 가라 2》 (공저 노무현 외 48인, 국방일보, 중앙M&B, 2003.12.12)

《로마의 논리와 감성》 (공저 노무현 외 81인, 우민OK논술교실, 2005.12.01)

.사후 출간된 저서

《성공과 좌절 (노무현 대통령 못 다 쓴 회고록)》 (노무현 저, 학고재, 2009.09.22)

《진보의 미래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 (노무현 저, 동녘, 2009.11.27)

《운명이다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저, 유시민 정리, 노무현재단 엮음, 돌베개, 2010.04.26)

《봉하일기 (그곳에 가면 노무현이 있다)》 (공저 노무현 외 11인, 부키, 2012.01.12)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 (2018.05.21)

《그리하여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2019.05.03)

○ 어록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88년 13대 국회 대정부질의)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나머지는 깽판쳐도 괜찮다. (2002년 5월 인천 부평 정당연설회)

인공기,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을 불사르고 이런 것은 좀 적절치 못했던 것 같다, 유감스럽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2003년 8월 19일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 (2007년 10월 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만수대의사당)

TV 토론 등에서 “맞습니다, 맞고요”라는 발언을 하여, 이 발언이 대통령 취임 초기 한동안 유행어로 회자되기도 했다. 당시 KBS의 예능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서 출연하고 있는 개그맨 김상태를 비롯한 여러 연예인들이 그를 흉내내기도 했다. 넷피아의 한글인터넷 도우미를 설치한 컴퓨터에서 “맞습니다맞고요”라는 한글 주소를 입력하면 청와대 홈페이지에 연결되었다. 그러나, 노무현이 퇴임한 현재는 그의 개인 사이트인 ‘사람사는 세상’으로 연결된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참석해 연설하던 도중 전직 국방부 장관 등의 군 인사들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 격하게 말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발언이 플래시, UCC 등으로 편집되어 누리꾼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 가족 관계

아버지 : 노판석 (盧判石, 1900년 ~ 1976년)

어머니(계모) : 조영희 (趙英希)

누나 : 노명자 (盧明子, 1928년 ~ 2013년 5월 19일)

어머니(친모) : 이순례 (李順禮, 1914년 ~ 1998년)

형 : 노영현 (盧英賢, 1932년 ~ 1972년)

조카 : 노지원 (1965년 ~ )

누나 : 노영옥 (盧英玉, 1938년 ~ )

조카사위 : 정재성 (1960년 ~ )

형 : 노건평 (盧建平, 1942년 1월 30일 ~ )

형수 : 민미영 (1945년 ~ )

조카 : 노은정 (1972년 ~ )

조카 : 노상욱 (1975년 ~ )

조카 : 노희정 (1981년 ~ )

배우자 : 권양숙 (權良淑, 1948년 2월 2일 ~ )

아들 : 노건호 (盧建昊, 1973년 ~ )

자부 : 배정민 (裵晶旻, 1976년 ~ )

손녀 : 노서은 (盧敍銀, 2004년 ~ )

손자 : 노하진 (盧荷蓁, 2008년 ~ )

딸 : 노정연 (盧靜姸, 1975년 ~ )

사위 : 곽상언 (郭相彦, 1971년 ~ )

장인 : 권오석 (權五錫, 1918년 12월 22일 ~ 1971년 8월 30일)

장모 : 박덕남 (朴德南, 1922년 4월 29일 ~ 2017년 2월 24일)

처형 : 권창좌 (權昌左, 1945년 ~ )

처제 : 권진애 (權珍愛, 1950년 ~ )

처남 : 권기문 (權奇文, 1952년 ~ )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