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송사리 떼를 보며
송사리 떼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은 나이가 꽤 들어서 이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이 자연환경 그 자체였다. 야산인데도 울창한 나무가 꽉 차있어 산짐승이라고 나올 것 같아 두려움을 갖게 하였었다. 꾀꼬리, 때까치, 딱따구리, 콩새, 물총새, 등 온간 종류의 새들의 천국이었던 같았는데 이젠 거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개울물에도 고기 종류가 많아서 송사리는 고기로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하던 이송사리 떼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아져 버린 송사리 떼가 호주 집 앞 계곡의 냇물 [stream]에 살고 있었다. 이 곳에는 개체수가 많지는 않지만 진한 검은 색의 작은 뱀장어도 보이고 한 뼘은 됨직한 가제도 보였다. 집 앞 냇물에 서식 하는 송사리는 겉모양만 비슷하지, 한국의 송사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이겠지만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이며 사람이 다가가면 우르르 숨어 버리는 것이 그렇게 비슷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송사리 떼가 하천 수해복구 공사로 시멘트 옹벽을 치며 물을 오염시킨 탓인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언제 다시 돌아오려는지…
민물고기 연구로 평생을 바친 최기철 박사[1910-2002]는 송사리 묘사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몸의 길이가 5cm이상이면 송사리는 아니다. 보통은 3-4cm, 최대형이 4.8cm다. 눈이 얼마나 큰지, 머리가 눈인지 눈이 머린지 모를 정도로 크면 송사리이다. 눈보, 눈쟁이, 눈치라는 별명이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꼬리지느러미 끝이 제비 꼬리처럼 갈라 져 있으면 송사리가 아니다. 끝이 갈라지지 않고 일자로 되어 있으면 송사리다. 등지느러미가 갈라 진 것은 수컷이고 갈라지지 않은 것은 암컷이다.”
필자의 고향에선 20여년 전부터 송사리 떼가 사라지기 시작 하였다. 농약 살포에도 원인이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경지 정리로 웅덩이가 없어지고 논 귀퉁이에 물 고일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송사리 떼를 보려면 경지정리가 불가능한 산골짜기에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실제로 수원 이목동 계곡 논도랑에서 송사리 떼를 보았다. 경지정리를 할 수 없는 곳이고 200m정도 높이의 산자락에서 가뭄 때도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는 곳이다. 송사리뿐만 아니라 1급수에나 살 수 있는 가제도 서식하고 있었다. 10여년이 훨씬 지난 일이라 현재도 송사리 떼가 근심이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선 송사리를 어항의 완상용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어항이라고 하지만 송사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어항 속에서 물고기가 살려면 기본적으로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 져야 한다. 어항 속을 작은 우주로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물이 크로르칼크 [Chlorkalk]가 섞인 수돗물은 안될 것이고 모래도 있고 자갈도 있어야 할 것이며 송사리가 좋아할 수초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어항에서 송사리가 자손을 퍼트리며 살아간다면 작은 우주가 어항 속에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항 속에는 생태계 [ecosystem]가 구축 된 것이다. 생태계에는 생산자 [producer]가 있어야 하는데 수초와 눈에 보이지 않는 식물성 플랑크톤이다. 이들은 햇빛을 받아 물과 물속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 [CO2]로 유기물을 합성 할 것이고 이렇게 만들어진 유기물을 소비해 주는 소비자[consumer]가 송사리와 동물성 플랑크톤이다. 그리고 배설물 시체 등 쓰레기가 쌓이게 되는데 이를 청소해줄 분해자 [decomposer]도 있어야 한다. 주로 박테리아나 곰팡이가 하게 되는데 이들이 부산물을 분해 해주어야 수초가 이를 흡수 해서 유기물을 만들어 생물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며 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자연 속에는 오묘 [奧妙]한 질서가 있는 것이지만 인간은 이 질서를 끊임 없이 파괴 있는 것이다. 송사리도 민물 속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의 4대강 사업으로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자갈밭이 사라지고, 늪이 없어지고, 샛강이 없어지면서 수 없는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집단 자살을 하였을 것이다[?]. 우주 만물 중에 인간이 가장 기고만장한 폭군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의 원주민인 애버리진, 미국의 인디언들은 초기의 정복자들 눈에는 하잘 것 없는 송사리 떼로 보였을는지 모른다.
바다나 강등 물 걱정이 없는 환경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물의 변화에 민감할 필요가 없겠으나 민물고기는 다르다. 그 중에도 송사리는 물 흐름에 가장 민감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수 억년의 장구한 세월 속에서 온갖 풍파를 견뎌 내고 생존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경외[敬畏]감이 들며 함부로 송사리 떼를 바라 볼 수 없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무슨 일을 굉장한 power를 자랑 하듯 그가 내세우는 일들을 밀어부치는 것을 보면, 서민 [庶民]들을 송사리 떼처럼 함부로 대하는 것 아닌가 생각 될 때가 있다. 송사리가 떼지어 노는 것을 보며 생명의 고귀함을 인식하는 지도자라면 개인의 인권도 무시하지 않고 자유와 평화의 사회를 구축 [構築] 할 수 있을 것이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