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gers, 1933 ~ 2021)의 공모작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Centre Pompidou)
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gers, Baron Rogers, 1933년 7월 23일 ~ 2021년 12월 18일)는 1962년 노먼 포스터 (1935 ~ )와 함께 서로의 아내인 수 로저스, 웬디 치즈먼과 함께 Team4를 결성했다.
이들은 하이테크 산업 디자인을 앞세워 짧은 기간 명성을 쌓았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Centre Pompidou)는 1972년 30대인 리처드 로저스와 렌조 피아노 (Renzo Piano, 1937 ~ )가 공동으로 국제 공모에 당선돼 1977년 2월에 문을 열었다.
퐁피두센터는 이름 그대로 1969년에서 1974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조르주 퐁피두 (Georges Pompidou, 1911 ~ 1974)가 주도해서 추진한 미술관이다.
퐁피두센터는 배수관과 통풍구의 파이프를 외장으로 드러낸 파격적인 건축으로 유명하다.
퐁피두센터는 건물 밖에 튜브로 덮인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건물 안에 계단이나 설비 샤프트를 두지 않고 내부 공간을 비워두고 확장할 목적이다.
퐁피두는 외양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극단적인 기능주의를 채택한 셈이었고, 그의 정치 이념이기도 했다. 퐁피두센터는 프랑스에서 건축예술과 정치 이념이 조화를 이룬 본보기가 됐다.
퐁피두센터는 철골 트러스 (truss) 구조를 직접적으로 노출시켜 철강의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기도 하다.
트러스는 여러 개의 직선 부재를 한 개 또는 그 이상의 삼각형 형태로 배열하고 각 부재를 접점에서 연결해 구성한 뼈대 구조를 뜻한다.
효과적으로 힘을 분산할 수 있는 구조이기에 보통 교량이나 지붕 등을 지탱하는 데 사용된다.
복합 예술 공간으로 구성된 퐁피두는 1977년 1월 31일 완공됐고, 1997년에서 1999년까지 2년간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누적 관람객이 1억 6000만명이 넘는다.
미술관의 핵심 역량은 컬렉션이다. 퐁피두센터는 1914년 1차대전 이후 나타나는 미술 현상을 담아낸다.
현대미술을 혁명한 마르셀 뒤샹을 비롯해 피카소의 큐비즘, 키네틱 아트 (kinetic art)의 선구자 장 팅겔리 (Jean Tinguely, 1925 ~ 1991), 백남준의 친구인 독일 거장 요셉 보이스 등 동시대 미술의 담론을 이끌어낸다.
1970년대 중반 세계적인 보험회사인 로이드는 사업 확장에 따라 신사옥이 필요하게 됐고 레던홀 지역의 재개발을 계획한다.
리처드 로저스는 퐁피두센터에 적용했던 기본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를 로이드 빌딩 (Lloyd’s of London)에 확대 적용한다.
실내 전용면적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기 위해 6개의 서비스 타워를 건물 외곽으로 노출시켰으며 퐁피두센터와 마찬가지로 이들 외관 타워에는 도관, 급수관, 유리 엘리베이터 등이 들어갔다.
중앙에 위치한 아트리움에는 건물 13~14층 높이의 거대한 반원통형의 둥근 유리지붕을 설치해 자연채광을 극대화했다.
이 아트리움은 수정궁 (Crystal palace)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수정궁은 1851년 만국박람회 때 런던 교외에 철근과 유리로 만든 팩스턴 (J. Paxton)이 설계한 세계 최초의 철골 건축물이다.
리처드 로저스는 강렬한 하이테크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외부 6개 타워의 외관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입힌 (cladding) 복합 패널을 사용한다.
로이드 빌딩은 1978년 설계를 시작해 1981년 착공, 1986년 완공 됐다.
런던의 전통적인 금융 중심지에 세워진 로이드 빌딩은 21세기에도 하이테크 이미지를 상징하는 런던의 랜드마크다.
건축가 김광현은 리처드 로저스가 퐁피두에 적용한 에스켈레이터를 로이드 빌딩의 핵심적인 건축 언어로 본다. “오피스 공간이 높고 넓은 아트리움을 둘러싸고 있다. 그중 지하 2층에서 지상 6층까지의 낮은 층은 에스컬레이터가 오피스 공간을 연결하고 있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노란색의 구동하는 부분을 투명하게 노출하며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건물 전체를 연결하는 공간의 주역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