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니콜라 푸생 (Nicolas Poussin, 1594 ~ 1665)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Et in Arcadia ego)
니콜라 푸생 (Nicolas Poussin) / 캔버스에 유채 / 85x 121 cm / 1637-38 /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Et in Arcadia ego)는 라틴어 경구로, 니콜라 푸생 (프: Nicolas Poussin, 1594년 6월 15일 ~ 1665년 11월 19일)이 그린 두 그림의 제목으로 유명하다. 두 작품은 고대의 이상화된 목동들이 옛 무덤 주위로 모여든 모습을 묘사한 전원 그림이다. 가장 유명한 두 번째 그림 (121 x 185cm)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으며, “아르카디아 목동” (Les bergers d’Arcadie)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아르카디아에도 나 (죽음)는 있다”라는 경구는 보통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는 의미로 해석되며, 인격화된 죽음이 말하는 것처럼 되어있다.
아르카디아는 서구인들이 동경하는 지상의 낙원 중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다. 동양의 무릉도원인 셈이다. 그 곳은 번잡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풍광이 온화하고 한가로운 삶이 지속되는 곳이다. 가장 목가적인 풍광의 자연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곳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드리운다.
–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Et in Arcadia ego)
.작가: 니콜라 푸생 (Nicolas Poussin)
.연도: 1628년
.매체: 캔버스에 유채
.사조: 고전주의
.크기: 121 x 85 cm
.위치: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아카디아의 양치기들>로도 불리는 이 작품에는 전체적으로 약간 짙은 색의 바탕에 전원을 배경으로 3명의 양치기들이 묘비를 둘러싸고 있다. 이들은 석판에 새겨진 글자들을 발견하고 옆의 여인에게 묻는듯한 인상인데 빛난 옷을 입은 여인은 기볍게 미소를 지으며 석판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배경설명이 없다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그림이다. 제목에 나오는 ‘아카디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장소이다. 도시나 바다에서 멀리 떠나 시골에 자리하여 목자들이 양떼를 끌고 다니는 한가하고 목가적인 낙원이며 ‘나’는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으로 덮여있는 탁한 분위기의 주변과 함께 화사한 색갈의 옷을 입고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는 여인은 목자들과는 다른 여신이라고 생각하면 그림이 전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며 그 의미가 환하게 밝혀진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즐겁고 행복한 이상향인 낙원에서도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 로마로 가서 그곳에서 공부하고 대부분의 작품활동을 한 푸생은 이태리의 미술과 철학에 심취하여 자연을 배경으로 신화나 종교역사 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그려 고전적인 프랑스의 바로크 화풍을 리드한 화가로 꼽히고 있다.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이태리에 널리 퍼진 그리스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푸생은 특히 당시 베니스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에 관심이 많았던듯 이 작품을 만들기 10년 전인 1627년에 이미 같은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10년 후에 다시 같은 묘비명이 새겨져 있는 다른 무덤 앞에서의 목자들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어쩌면 10여년의 숙성기간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기에 기법상의 발전을 볼 수 있는데 눈여겨 볼 부분이 목자들의 그림자이다. 묘비에 새겨진 글자를 오른손으로 짚고 있는 목자의 머리와 팔 부분 그림자가 비석 위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고 그 앞으로도 그림자가 꺼멓게 보이는데 당시는 인물화에 그림자를 넣지 않을 때여서 루상의 특별한 선구적인 시도로 보고 있으며 죽음의 세력을 극대화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