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Man : His Nature and Place in the World
아르놀트 겔렌 (Arnold Gehlen) / Columbia University Press / 1988
야생 동물들과는 달리 자신을 보호할 만한 어떤 장치도 갖추지 못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연적으로는 한없이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존재인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알아본다.
○ 저자소개 : 아르놀트 겔렌 (Arnold Gehlen, 1904∼1976)
아르놀트 겔렌 (Arnold Gehlen, 1904∼1976)은 1904년 독일 동부의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유기적 철학을 주장한 드리슈 (H. Driesch)의 지도 아래 1927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30년에는 ‘실제적인 정신과 비실제적인 정신’ (Wirklicher und Unwirklicher Geist)이라는 논문으로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1933년에 프랑크푸르트대학교 정교수가 되었고, 이듬해에 라이프치히대학교로 돌아와 드리슈가 정년퇴임한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대한 참여와 동조로 전후에 재판을 받았고, 아헨공과대학에서 정년퇴임했다. 겔렌의 주요 관심 분야는 철학적 인간학이고, 이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인간 생물학’이다.
주요 저서로는 ‘국가와 철학’ (Der Staat und die Philosophie, 1935), ‘인간, 그 본성과 세계에서의 위치’ (Der Mensch, seine Natur und seine Stellung in der Welt, 1940), ‘원형적 인간과 후기 문화’ (Urmensch und Spätkultur, 1956), ‘인간학적 탐구’ (Anthropologische Forschung, 196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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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트 겔렌 ‘인간’ : Arnold Gehlen, MAN
Rezensentin: Karl-Siebert Rehberg Jahrhundertbücher herausgegeben Walter Erhart and Herbert Jaumann
C. H. Beck oHG, München, 2002
‘테오리아 : Theoria’, 김홍진 옮김, 서울, 개마고원, 2006
‘인간’, 1940년에 발행된 이 책은 여전히 살아 있다.
누구도 이 책을 비켜간 사람이 없고, 이 주제를 가지고 더 나은 책을 쓴 사람도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 겔렌
○ 겔렌과 철학적 인류학
학맥, 학파의 갈등
1940년에 처음 출간된 겔렌 (Arnold Gehlen)의 주저 『인간 : Der Mensch』은 ‘철학적 인류학’을 다룬 첫 저작은 아니지만, 셀러 (Max Scheler)와 플레스너 (Helmuth Plessner)의 대표작과 나란히 이 분야의 핵심서가 되었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방향은 이미 1920년대에 그 토대가 마련되어 독일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시대철학에 속하게 되었고, 교육학ㆍ의학ㆍ심리학ㆍ사회학 등 제반 학문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후일 이 모든 분야에서 여러 형태의 독자적인 인류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1920~30년대 독일에서는 헤겔-마르크스의 역사철학뿐만 아니라, 각 부류의 칸트학파와 실존철학—실존철학의 저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인간 학문의 바탕인 인류학과 자신들을 구분했다—끝으로 특정한 형태의 현상학에 대항하는, 이른바 철학적 사유의 ‘인류학적 전환’이 도래했다. 이와 같은 철학적 인류학은 다윈 이래의 자연과학적 인식을 배경 삼아 인간을 풀이하려고 했다. 이는 명시적으로 자연과학에 바탕을 둔 학문, 다시 말해 ‘생물학 일변도의’ 논지를 펴는 학문은 아니지만, 생물학에 조예가 있는 학문이어야 했다. 이 논제는 서양적 사유와는 친숙한 것이었고, 고대로부터 인간을 정의하는 데 많은 부분이 수용되었다. 그러나 셸러, 플레스너, 겔렌은 인간을 영혼이나 정신의 측면에서 또는 신을 닮은 피조물로 해석하려 하지 않고, 육체 및 정신을 지닌 존재로서 체질 측면에서 인간을 해석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예컨대 쾰러 (Wolfgang Köhler)의 큰 원숭이 실험과 같은 최근 연구결과에 자극을 받아, 인간을 방법적으로 엄밀하게 동물과 구별하여 인간의 두드러짐을 부각시키는 노력이 나타났다.
이들 저자들에게 동물에서 인간으로의 변천, 즉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의 진화는 분명 출발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단지 성취능력이 보다 뛰어난 동물일 뿐이라는 등급론자들의 견해에 미혹 당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특별히 인간의 생활환경과 관계가 있다. 동물의 구조는 주변 환경과 관련지어 연구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열거할 만한 어떤 특정 외부조건에 유기적ㆍ본능적으로 적응하는 형태로 살지 않고, 오히려 ‘도처에’ 살면서 자연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 인간의 속성이 빚어낸 “인간-생물학적” 개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플레스너의 표현처럼 “타고난 인공성 (人工性)”이라는 “인류학적 기본 법칙”이 존재하거나, 겔렌의 표현처럼 인간은 “천성적으로 하나의 문화적 존재”인 것이다.
이런 특징적 사유를 보여준 이들 ‘학파Schule’는 이처럼 인간의 개념 연구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명확히 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인간의 개념 연구는—대부분 발설되지 않고 있는—많은 사회이론의 인류학적 토대와 명제에 대해서뿐만 아니라—역사심리학, 문명화이론, 정신사 등을 포함해서—모든 인간학과 문화과학이 지니고 있는 인류학적 차원에 대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플레스너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하나의 새로운 사회상태가 (…) 밀려오고 있었다. 기독교와 고대 그리스의 지배를 받던 세계가 해체되는 가운데 인간은 이제 완전히 신에게 버림받고, 짐승으로 몰락할 위험에 맞서, 새로이 인간으로서의 본질과 목표에 대한 물음을 자신에게 제기하고 있다”면서 인간은 바로 자신이 위기를 맞고 있는 시대의 중심점에 서야 한다는 것을 철학적 인류학의 과제로 삼았다. 대중사회도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했고,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사람들은 대량 살상의 잠재력도 위협적이라고 부연하기를 잊지 않았다. 이와 같은 기본 성철은 유행처럼 번진 주체 억압의 시대에도—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체제이론의 시대조류 속에서도—현실성을 상실하지 않은 것 같다.
이미 1922년에는 철학적 인류학의 선구서라 할 만한 알스베르크 (Paul Alsberg)의 『인류의 수수께끼 : Das Menschheitsratsel』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인간의 특수지위란—동물처럼—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연의 조건을 “육체의 배제”를 통해 초월하는 존재가 누리는 지위를 의미한다고 묘사되어 있다. 철학적 인류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특성이 여기에서 단적으로 설명되었는데, 그것은 곧 신체적 체질에서 인간의 본질을 분석하는 것, 그렇지만 진화론적 관점과는 대조적으로 “육체 안에서 육체에 대한 거리”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후일 겔렌은 이 명제를 문화와 제도의 기능이론의 핵심으로 삼았다. 또한 ‘부담 경감 : Entlastung’의 명제의 근본적 특성도 알스베르크가 이미 설명한 것이었다.
원래 철학적 인류학의 기초가 된 책들이—우선권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1928년부터 이미 나와 있었다. 무엇보다도 셸러의 『우주 속에서 인간의 위치 : Die Stellung des Menschen im Kosmos』와 플레스너의 『유기체의 단계와 인간 : Die Stufen des Organischen und der Mensch』 등이 여기에 꼽힌다. 셸러는 그보다 1년 전에 카이절링 (Hermann Keyserling) 백작의 ‘지혜의 학교 : Schule der Weisheit’에 자신의 인류학 구상을 요약해서 제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28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가 계획한 광범위한 인류학적 기초 작업이 완성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얇은 소책자가 사실상 철학적 인류학의 기본서가 되고 말았다.
이 같은 철학적 인류학의 발상이 나타난 지 12년이 지난 후 겔렌은 그의 인류학 대표작 『인간』을 통해 이 발상의 가장 발전된 편파적이고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긴 하지만—‘경험적’ 완성품을 탄생시킴으로써 이 분야의 독일 철학 전통에서 중요한 저자들 가운데 마지막—그리고 본인 생각으로는 경험적으로 가장 성과가 큰—저자가 되었다. 그 전에 겔렌은 철학적 입장을 여러 번 바꾸었다. 그가 취한 여러 철학적 입장들은 형식상으로 실존적-현상학적, 객관적-관념론적, 경험론적-인류학적이라고 칭할 수 있다. 1935년부터는 철학적 행위론의 구상과 함께 인류학적 성찰에 접근했으나, 논란이 없지 않았고, 항상 새롭게 거리를 두려는 시도가 뒤따랐다. 1935년 겔렌은 셸러의 철학적 인류학에 나타난 핵심개념을 우선 책략적 계산에서 주로 그와 거리를 두면서 받아들였다.
그러나 1년 뒤 겔렌은 이미 자신의 인류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담 경감’ 모델을 주제로 한 책을 처음으로 출판했다. 그 자신이 한때 “콩트의 법칙의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말한 “경험”이 그의 새로운 방법론의 기본개념이 되었다. 하르트만 (Nicolai Hartmann)이 1941년 겔렌의 작품을 예찬하는 서평을 보면, 그때에도 여전히 경계를 긋고 거리를 두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던 겔렌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이 서평에서 하르트만은 다음과 같이 감탄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독일 철학계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철학적 인류학의 기초를 세우는 것만큼 간절히 기다려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1945년 이후에 와서야 비로소 겔렌은 이 ‘학파’의 명칭과 거리낌 없이 친숙해졌고, 심지어는 “이제 드디어 인류학이 관철된 것을” 기뻐하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기까지는 30년 이상이 걸렸고, 셸러로부터 따지면 43년이 걸렸다. 이제 ‘실존주의’는 파악되고 극복되었음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수명이 오늘날에 와서 사실상 길어지기도 했다.”
경험으로서 철학적 인류학
겔렌이 보기에 철학적 인류학은 마땅히 경험과 추체험 (追體驗)의 영역에 속하는 사유로 꼽혀야 한다. 1940년은 때가 적절치 않았고, 적어도 철학을 총체적으로 정치화하려는 시도와는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겔렌의 결단은 도피 성격을 지닌 이념적 적응은 아니었고 개별 학문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가 상호 침투하는 하나의 길을 지시했다. 그의 반(反)형이상학적 출발점은 많은 철학자들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받거나, 적어도 성찰의 상실로 간주되었다. 리브룩스 (Bruno Liebrucks)는 “겔렌의 형이상학적 절제”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해본 적도 없는 ‘경험철학’과 마찬가지로 별반 의미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겔렌은 그와 같은 비판에 구애받지 않고 사물을 설명하는 자신의 범주 연구를 확대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의지의 자유에 대한 글을 쓴 후에 강령처럼 종종 반복해온 이른바 인간은 ‘실현 가능성’의 지평 위에 놓인 것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원칙을 따랐다. 그래서 실용주의의 기본 특징들을 선택했다. 그는 실용주의의 발상이 이미 칸트에게서 시작되었으나, 완성이 되기는 미국의 실용주의, 예를 들어 바움가르텐 (Eduard Baumgarten)의 사상을 이어받은 듀이 (John Dewey)와 미드 (George H. Mead)의 작품을 통해서였다고 보았다. 겔렌은 자신의 ‘현실학문적’ 프로그램 출현과 결부시켜, 철학적 인류학이 하나의 ‘기초학문’, 다시 말해 철학자ㆍ행동연구가ㆍ 생물학자ㆍ심리학자ㆍ사회학자 등이 참여해 여러 학문분야를 총망라하는 기획으로 확대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비록 이 프로그램이 학제간 담론의 제도화를 이루어내지는 못했지만, 그 원대한 목표설정은 개별 학문의 지식을 성공적으로 요약해 표본화시키는 데 이바지했음은 물론, 여러 상이한 학문분야에서 인류학의 기본논거를 수용하는 데에도 기여를 했다.
겔렌은 헤르더 (Johann Gottfried Herder)에게서 무엇보다도 사변적인 인과율을 인간 조직의 ‘상황적’이고 구조적인 분석으로 대치시키는 것을 배웠다. 그 결과 그는 셸러와 플레스너처럼 세상에서 인간의 ‘지위’나 ‘위치’에 관한 이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최종 ‘원인’에 대한 물음이 중단될 수 있다. 즉 “(인간에게) 지능이 있어서 언어가 있는 것이 아니며,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에 지능이 있는 것도 아니며, 거꾸로 지능이 있기 때문에 직립보행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본질은 ‘일종의’ 자연의 기획이요, 이 특성들은 바로 인간의 생존 가능성에 속하는 것이다.”
겔렌의 인류학 도식
겔렌은 자신의 인류학을 “기초적”이라고 부른다. 이유는 “이 기초적인 것이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다방면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자연주의”나 생물학 일변도의 단서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측면에서 인간에게 구비되어 있는 유일한 “자연의 전체 설계도”가 이해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한 인간의 “내면”에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생존의 조건”에서 출발하는 인류-생물학적 고찰방법을 통해서만 이 모든 관점들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자연이 인간에게 특별 지위를 부여했는데”, 이는 곧 자연이 인간 속에 “다른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고, 아직까지는 시험해본 적도 없는 방향으로 발전을 꾀했고, 자연은 새로운 조직원리를 잘 만들어 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미 셸러가 그랬던 것처럼, 방법론적 기초인 인간과 동물의 비교를 바탕으로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자기 자신과 일정한 관계를 가져야 하고, 자신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인간의 특수성이라고 기술되고 있다.
겔렌의 인류학 구상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만 하는” 인간의 구조적 필연성에서 출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하나의 해석 공식인 ‘표상 (symbol)’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의 인류학에서 핵심적 관용구가 된, 인간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동물“이라고 한 니체의 말이 담고 있는 일면이기도 하다. 다른 한 면은 인간의 구조적 위험상황과 감행정신에 관한 것이다. 즉 이 말은 한편으로 이 존재는 적응영역에 정착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는 뜻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해 궁극적인 것은 결코 확정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원칙적으로 자기해석을 생산하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이중적 불확정성인데, 하나는 일종의 기이한 불안정성이며, 다른 하나는 개방성과 변화가능성, 다시 말해 ‘유연성’이다.
겔렌은 이와 같은 유연성에서 아주 간명하게 압축된 “인류학의 도식”을 고안해 냈는데 우선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맨 먼저 “결함 있는 존재”인 인간의 특징을 꼽으면 부적당함, 비전문성, 부실한 육체기관 (예를 들어 모피가 아닌 피부), 공격기관과 전문화된 도주능력의 결여, “위기에서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순수 본능의 부재”, “비교할 수 없이 아주 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유아기와 유년기” 등이 있다. 인간은 “개방적”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행동하는 존재”로—육체적—부담경감에 의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또한 언어 능력과 상징화 능력을 가지며, 자신의 민감한 세계 창조력과 “자기 창조력”에 의존한다. 이 “개방적” 존재는 자신의 “불완전성” 때문에 안정장치의 의무화가 필요한데, 즉 “자기연마, 교육, 컨디션 발휘와 컨디션 유지를 위한 훈련” 등은 인간의 생존 조건이라고 겔렌은 보고 있다. 끝으로 이 “‘감행하는’ 존재에게는 필연적으로 불행을 당할 구조적 기회가 예정되어 있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여야 하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 속에서 “먼 곳에 있는 것과 현존하지 않는 것에 의존하며, 동물과는 달리 현재 속에 살지 않고 미래를 위해 산다.” 인간은 홉스가 훌륭하게 표현한 것처럼 “미래의 배고픔을 미리 배고파하는” 존재인 것이다.
○ 결합과 위협: 인류-생물학적 모델의 문제점
결함있는 존재
겔렌의 인류학은 최소한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결함있는 존재”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가정은 이미 잘 알려지고 논란의 여지도 많다. 이는 고대에 부각된 고전 철학의 상상모델이다. 이미 중년이 된 플리니우스에게 자연은 “음흉한 의붓어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자연이 생명의 탄생 시 유독 인간만을 발가벗긴 채 맨땅에 내어놓고, 구박을 해서 울고 칭얼거리게 하기 때문이다. 동물치고 울면서 삶을 시작해야 하는 짐승은 없다.
겔렌의 ‘결함있는 존재’는 어떤 ‘실체 개념’이 아니었다. 오히려 프라이어 (Hans Freyer)가 이의를 제기한 것처럼 “인간을 허구적으로 동물처럼 취급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최고로 불완전한 심지어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 개념은 “엄격한 학문적 지칭이 아니고 단지 복잡하게 연관된 것들에 대한 보조사유일 뿐”이라는 것이다. 좀 더 명확히 명칭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결함있는 존재’를 ‘신체기관들이 전문화되지 않은 존재’라는 좀 더 구체적인 표현으로 대치할 수도 있다. 그랬다면 공격은 덜 받았겠지만, 감명은 덜 주었을 것이다. 여하튼 중요한 점은 겔렌 자신이 그같이 분명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개념정책상’ 중요한 변화를 결심한 것일 테고, 자신의 질서 이론의 암시적 출발점을 포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신체기관들이 전문화되지 못한 인간들이 상처받기 쉽고, 위협당하면서, “천부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감행하는” 존재, 즉 질서를 통한 보상에 의존하는 존재로서 파악될 때, 이 종 (種)의 자위수단들—습관, 성격, 특히 확정된 세계해석과 ‘제도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로 이해되며 이들에 대한 비판적 이의 제기는 모두 인간의 기능을 위협하는 것으로 마땅히 삼가야 할 것이 된다. 그러므로 ‘결함있는 존재’의 개념 선택 속에 들어 있는 생존 위협의 표현은 극적으로 위협 제거 수단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헤르더는 인간의 신체적 결함을 형태학적 구조에서 파생된 것으로 본 바 있다. 이 신체의 구조적 결함 대신 얻고 있는 이점이 인간의 ‘직립’인데, 이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답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바닥에 묶여 있지 않은 존재는 틀림없이 세상을 조감할 수 있고 항상 그 구조를 새롭게 한다. 그가 그렇게 하는 데 필요로 하는 것은 핵심적인 조정기관, 즉 대뇌와 거기에 연결된 신경생리학적으로 고도의 복잡성을 띤 망이다. 그밖에 이 직립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대단히 많은 외부세계의 데이터가 인간 존재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그에 의해 지각될 수 있다. 또한 이 존재는 개방적인데다가 자극에 노출되어 있고, 겔렌이 의도적으로 과장해서 표현한 것처럼 자극의 ‘홍수’ 속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헤르더는 인간이 무방비 상태로 창조되었지만, 그의 생체적 구조는 자신을 아무런 방책 가능성 없이 방치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인간은 물론 직립자세를 지니고, 문명화되어—또는 헤르더가 루소 내지는 프랑스어 표현을 이용해 언급한 것처럼 “시민사회의 질서에 익숙해져”— 도구나 무기와 같은 인공적 수단의 발달과 관계없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겔렌은 이 유명해진 표현을 부각시킬 때, 자신이 헤르더의 모델에 의존하고 있음을 명백히 고백했다. “철학적 인류학은 헤르더 이후 하등 진전이 없었고, 그 틀에 있어서는 내가 현대학문의 방법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견해와 동일하다. 또한 철학적 인류학이 한 걸음도 전진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이것이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본능의 퇴화
‘본능 퇴화’의 명제로 로렌츠 (Konrad Lorenz)의 생태연구와 연결되어 있다. 한편 인간적인 ‘유연성’은 겔렌이 항상 강조한 방향감각의 부재와 감당키 어려운 결단의 압박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위험과 관련이 있다. 겔렌은 말년에—추측컨대 그가 깊이 우려했던 1968년의 학생혁명을 계기로—로렌츠와 함께 인간이 지닌 공격성의 본능적 바탕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어서, 그의 이전 저서 속에서는 인간의 본능 퇴화가 과장되었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인간의 행동은 표현할 수 없이 다각적이고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매개되기 때문에 상황과 행동주체의 종합적 연관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변함없이 고수했다. 본능적 행동의 안전한 진행과 관련시켜볼 때 공격성은 사실 그에게 있어 ‘본능 퇴화’에서 비롯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본능 안전성의 상실은 자극의 ‘탈분화 (Entdifferenzierung)’로 이어진다. 즉 각양각색의 자극 유발자와 여러 형태의 상황적 가치들이 행동을 자극할 수 있고, 다시금 스스로 쉽게 평가할 수 없는 가능성의 여지 내에서 그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이는 곧 행동방식이 조건에 따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보증하는 예로서 인간의 성적 욕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탈분화가 어느 정도까지는 심지어 호르몬의 조종을 받는 자극 체계, 즉 성적 체계까지 장악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도의 정신적 활동에 이르기까지도 탈분화의 역동적인 지배에서 벗어날 만한 활동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적 체계는 항상 여전히 ‘다른’ 결정요소 즉 사회적ㆍ미학적ㆍ의식적 결정요소에 좌우된다.”
자극 부족과 자극 과잉
겔렌은 인간 체질의 과중부담을 역시 자극의 ‘과잉’으로 보고 있다. 이로서 그는—물론 자이델 (Alfred Seidel)과 셸러를 경유해서—프로이트 (Sigmund Freud)의 발상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승화에 대한 강박관념 및 기회, 즉 “지속적 관심 속에서” 자극의 변형과 고양된 동기가 생겨나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일종의 “관심의 건축술”과 “자기연마”의 불가피성은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관심, 욕구, 기호, 습관을 합해 놓은 이 자극들의 구조물을 ‘성격’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자극들은 구체적으로 습득되고, 인도되고, 서로 의견을 제시하면서 엄선되었으며, 수준 높게 또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들이다.”
자극과 욕구는 “자체목적”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극의 방향을 생산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적 자극이 잠정적 (provisorisch) 정리의 성격을 띠고 있지 않은 데에서 오는 결과이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밀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로 인해 하나의 빈 공간, 즉 욕구와 성취 사이에 틈이 생기고, 이 빈 공간 속에는 행동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안에 합당한” 사유가 있어, 거기에 기초해 ‘문화’가 수립되는 것이다. 겔렌은 이와 같은 자극 과잉의 다른 한 쪽에 그에 못지않은 기질상의 자극 부족이 있음을 보았다. 따라서 자아관련성 자극 부족과 욕구과잉에 한결같이 내맡겨져 있는 기본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의 욕구 성향이다. 거기에서 빚어진 결과는 개인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잠재력을 실현할 수 없음에 대한 하나의 근본적인 불안이다. 세계는 개인의 형성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고, 반대로 개인의 자기규정은 세상사를 경유하는 우회로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규정하는 ‘간접성’의 양면이다.
유전과 인종
겔렌의 인류학같이 자기활동, 유연성, 능동적인 자아 형성에 중점을 두는 인류학에서는 저자가 유전학적인 바탕의 문제, 그러니까 ‘유전적’으로 보는 인간의 성격과 능력에 대해 어떻게 묻는가는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경험적으로 누대 (累代)에 걸친 종단면적 (縱斷面積) 관찰뿐이기 때문에 겔렌은 항상 회의적이었다. 특히 인간의 ‘성격’을 유전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관심의 구체적 정향, 지속적 자극, 성향 등 하나의 태도구조로 귀결되는 것들은 한 사회적 기관이 각각 요구하고 조용하거나 저지하는 것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 점은 부르디외 (Pierre Bourdieu)가 완성해 놓은 것처럼 정신적 ‘아비튀스 : Habitus’와 같은 사회학적 발상과 잘 연결될 수 있다.
겔렌은 물론 어떤 “기초 기능”은—팔러 (Gerhard Pfahler)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처럼—특정한 “본질적 특징”이나 구조, 능력이나 재능과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열정”이나 “의타심, 천박함, 무감각, 태연, 소심함, 수줍음, 까다로움, 변덕스러움 등등” 일련의 부차적 성격을 결과로 빚어내는 주요 정성의 기본적 성질은 유전적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무엇이냐 이고, 여기에 대한 원인지식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서 겔렌은 유전 문제를 다룸에 있어 종족 문제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그가 ‘기초’ 인류학을 인종 인류학적으로 구체화시키기를 포기한 것은 시대를 풍미했던 인종주의와의 긴장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의 반유태주의적 어휘구사도 알려진 바 없다. 겔렌은—적어도 시험 삼아—인종을 문화과학적으로 주제화하는 것, 즉 ‘인종신화’에 관한 하나의 학설에 기대를 걸었다. 겔렌은 인종 프로그램을 불안정한데다가 모더니즘 속에서 추가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인간을 안정시킬 수 있는 이점을 지닌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를 하나의 발양 (Begeisterung) 신화로 본 듯하고, 이 신화에 대해 그는 비록 ‘원칙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보수시민적으로 기다려보자는 회의적인 자세로 임했다.
○ 인간의 능력의 구축
행동
겔렌이 출발하는 사실적이고 방법적인 문제 제기는 모두 그가 그의 전집 속에서 항상 새로운 용어로 다양화시킨 바로 그 중심 범주, 즉 ‘행동’에 귀착한다. 이로써 두 가지 측면이 언급되었다. 하나는 이 개념의 선택이 방법적으로 적절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개념의 도움으로 모든 육체-영혼 또는 육체-정신의 이원론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이 종합적 개념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 개념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여러 가지 다양한 행동의 관점에 이르는 현상학적 통로가 열린다. 왜냐하면 행동은 항상 상황해석, 실행, 감정의 반추, 상황 평가, 행동이행 중인 자신과의 적극적인 관련 및 연결 가능성, 결단, 자동성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고, 이 모든 것이 매 행동 속에서 합쳐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행동은 ‘정신’을 제외시킨 적이 없고, 동시에 육체적 숙련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또한 그 속에는 습관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각 행동의 이행에는 계획, 가상적인 진행 시나리오, 관찰, 자체느낌, 수정, 역동성 등의 복잡하면서도 ‘통일’을 꾀하는 상호작용이 있다.
그러나 겔렌의 행동관은 다른 측면도 가지고 있다. 이는 ‘강령적’이라고 일컬을 수 있고, 그 다음으로는 겔렌의 전 인생관과 세계관을 규정해주는 ‘행동주의’, 그러니깐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철저하게 정치적 함의를 지녔던 니체의 모티브와 관련이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일종의 양가성 (兩價性)같은 것이 감지된다. 하나는 파시즘적인 행동주의가 수많은 지성인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사실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소위 계몽주의적 요소가 함께 작용했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인간의 자발적인 실현은 겔렌에게 무제한 통용되는 인간적 삶의 전제로 나타나고—서양사상의 전통 안에서, 특히 계몽사상의 무소불위의 계명과 그 물을 마신 사상적 근대의 전통 안에서—이 반(反)계몽주의자에 의해 세계극복, 자연의 개조, 능동적인 인격형성 등의 표상들로 채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겔렌의 행동개념의 도구적 측면은 마르크스의 노동개념과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플러Leo Kofler가 이를 지적한 바 있고, 그로 인해 루카치가 후기 겔렌을 수용하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행동은 필연적으로 ‘상징적’일 수밖에 없고, 그 자체가 다시 바뀌고 결합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동작 프로그램과 관련을 맺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담을 경감해주는 의사소통과정인데, 이는 스스로 강화되고, 계속 발전을 위한 자극을 자신에게서 끌어낸다. 그리고 의사소통과정은 “운동 및 사교의 환상을 ‘궁전’ ” 안에 보관되어 있는 동시에 대상을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객관적 타당성을 부여한다. 겔렌이 보기에 행동을 규정하는 법칙성은 자신과 관련된 행동구조, 그러니까 성공과 실패의 연결과 피드백의 “순환과정” 속에 들어 있다. 이 모델은 인공지능 모델과 닮은 점을 지니고 있는데, 실제로 겔렌은 이 모델을 위너 (Norbert Wiener)가 자신의 첫 학문적 성찰을 인공지능 기계이론에 적용시킨 것과 같은 때에 발전시켰다. 그러니깐 이 시기는 1940년대 초가 되는 셈이다. 물론 겔렌에게는 이 기계이론이 모범이었다기보다 오히려 생물학, 의학, 심리학에 있는 역동적 모델이었다. 피드백을 통한 행위 진행의 수정은 행동 과정을 축소하고 조정함으로써 성공의 극대화를 가져오게 한다. 그것이 벌써 부담 경감의 성과로 이어지고, 이로 말미암아 높은 반응 잠재력이 개발될 수 있다.
성찰은 인간이 자기와 맺는 관계의 한 관점이다. 여하튼 겔렌의 경우—이미 1931년의 빛나는 현상학적 교수자격 논문 이래로—성찰은 하나의 ‘본능 성향’ 및 ‘비현실적으로’ 남아 있는 자기중심주의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이 확신은 현대 산업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인간 내부에 깊숙이 닻을 내리고 있는 ‘심리화’를 통해 현실화되었다. 이 심리화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감각화를 야기하지만, 또한 나르시스적인 성찰의 쾌락주의 같은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시대 비판적 분석과 겔렌이 1949년 이후 산업화 시대의 사회심리학과 사회학 연구를 통해 완성한 대단히 안식 (眼識)이 높은 명제들은 1980년대 후반 세넷Richard Sennett과 같은 시대 비평가들을 통해 확인되고, 또한 벨라 (Robert Bellah)와 같은 ‘공동체주의자들 (Kommunitarist)’이 내세우는 주장을 선취하고 있다. 이 저자들도 원자론적 주관주의 (atomistisch Subjektivismus), 공적 활동에 무능하고 사람 접촉을 꺼리는 개인주의는—치료요법 문화에서 예를 찾아 볼 수 있듯이—감수성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이 자기중심적인 입장은 그들이 혜택을 입고 있는 자유의 기초를 파괴할 위험을 자체 내에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겔렌은 성찰이, 인간이 주어진 사물을 상대로 버텨낼 수 있는 간접적 수준으로 이어질 때, 그리고 인간이 소여적 (所與的) 세계를 숙고하면서 차단시키지 않고 자신의 행동반경에 끌어들일 때에만 생산적인임을 인정한다. 행동과 성찰의 관계는 이미 겔렌의 초기 글에서 지나치게 이원론적으로 파악되었다. 그것에 비해 바로 그의 인류학에서는 부수적인 자기관찰 없이는 어떠한 행동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 그가 사람은 “행동과 성찰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처럼 많은 이원론을 극복하는 데 기여한 그가—자기 자신의 ‘사물’ 통찰과는 반대로—하나의 새롭고 갑작스러운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생(生)철학적이고 생기론적인 모티브들이 개입해, 시사숙고하면서 행동을 방해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비판에 대해 겔렌이 거부하는 자세를 취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의 ‘기초적’ 고찰의 구체화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독일연방공화국 내에서 일어난 학생혁명과 민주화 지연이라는 외적 조건 하에서 (좌파)지식인들과의 급격한 관계 단절로 이어졌다. 비판적 성찰에 대항해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판세의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었다.
부담 경감
행동으로부터 그 밖의 모든 범주들이 파생될 수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범주가 겔렌 인류학의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인 ‘부담 경감’의 범주이다. 이 사상도 프로이트의 승화 (Sublimierung) 모델 속에 있는 욕구 에너지의 개조를 주목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겔렌은 인간의 세계지배의 진전, 인간을 세계의 정신적 대표자로 이끄는 이른바—세계와의—대면 경험과 그 성과의 ‘격상’을 강조한다. 그로 인해 인간은 사물이나 타인과의 직접적인 대결에 부딪치지 않고—자기절제를 포함한—절제하는 거리감과 그를 통해 열리는 통찰의 형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 부담 경감의 형식으로만 일의 성공이 확정될 수 있고, ‘원칙적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행동을 통해 이루어진 것을 문화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인간의 부담 경감의 ‘유기적’ 토대는 대상과의 접촉을 통한 대면과 촉각을 통한 파악에서 얻은 경험을 시각적 지각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험동작에서 발전된 완성리듬이 있고, 그렇게 해서 “능숙한 동작”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배면 (背面)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딜타이 (Wilhelm Dilthey)와 셸러에게서 차용해온, 이른바 의식은 각기 사물의 저항을 통해 발전한다는 사상이다. 사물의 저항 속에 행동진행의 특정한 교차점이나 “선회점”이 일련의 단순한 진행의 자동장치와 연결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처음에 한번 세계를 “만짐으로써 이해한다.” 이 인식론적 독일어 표현의 어원 속에는 촉각적인 세계발견의 과정이 형상화되어 있다. 촉각으로서의 느낌은 일정한 시각적 인상 및 청각적 인상과 연결되어 있고, 그 밖의 감관을 매개로 한 지각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 시각적 인상은 가장 중요한 부담 경감, 다시 말해 탐지해낸 성질들을 ‘함께 보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를 들어 한 물건의 무게나 난로 판이 불에 달구어지면 뜨거울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천박함, 거칠음 그리고 그야말로 시각적 인상 속에 외형적 대표성격을 지니고 있는 크기의 단위에도 물론 동일하게 해당된다.
언어와 상상력
가동성 (可動性)과 감수성, 인간의 세상 학습과 자기 학습의 개방성과 생산성은 무엇보다도 ‘언어’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이미 하르트만이 본 바와 같이—겔렌의 “전 작품의 핵심부분”은 ‘언어이론’이고, 이 이론이 가지고 있는 자극의 재화는 이 전문분야에서 오늘날까지도 아직 충분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언어와 자극의 구조 동일성”, 즉 인간의 욕구 구조와 성과 구조가 ‘언어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나타난다. 이것은 자극이 구조적으로 언어와 비교될 수 있고, 발전 가능하고, 가변적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의 유연성, 상징체계와 연결된 지시 공간, 언어로 대표되는 내적 상태와 외적 상태의 문화적 특징, 이 모든 것이 언어를 핵심 매체로 만드는 동시에 ‘부담 경감된’ 삶을 영위하는 모델로 만들고 있다.
겔렌은 지각ㆍ운동ㆍ언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들이 곧 그의 문화이론의 기초가 되는 이론적 핵심인 것으로 밝혀진다. 알다시피 그는 인간이 지닌 기계적 전제와 운동의 자동 시스템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따라서 언어처럼 능률적이고 개발 가능한 체계가 그와 같이 아주 기초적인 운동의 전제 위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자기 활동은 각 육체의 동작, 특히 소리 내는 동작—그러므로 “말하고 듣는 체계”의 가동—을 통해 획득되며, 기계적으로 작동된 운동 형식의 “자의적 성격을 지닌 자유재량”으로 이어지게 된다. 언어가 지능화되기 이전의 생명력 넘치는 조건은 언어에 앞서 있던 ‘언어의 뿌리’ 분석에서 지능적 조건과 분리되지 않는다. 언어의 지능적 성과는 어떤 ‘드높은 것’ 혹은 예컨대 자신의 존재 영역에 귀속되지 않고, 밑으로 깊이 내려가 인간의 생명력 있는 뿌리에까지 미친다. 이미 미드가 본 것처럼 소리 내기는 인간의 자각적이고 재생될 수 있는 운동재화의 기본 모델이다. 음성화된 것과 들은 것이 서로 규정하고 확인하는 순환 속에서 소리는 자체 생산된 소리로 들리고 인식되며, 그 자체로서 또한 반복될 수 있다. 이것은 욕망을 강조한 자체생산의 강화, 예컨대 자아의 주체다움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겔렌이 보기에 언어의 이행과 행동의 이행도 역시 ‘상징적’인데, 이것이 곧 문화이론의 핵심점을 이룬다. 이처럼 인간은 필연적으로 해석의 연관관계 속에 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언어는 그가 이 문화적 존재의 삶의 형식을 기술하는 데 있어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분명 언어의 특색은 표상의 막강함에도 있다. 그 이유는 여기서 겔렌이 이룩한 결정적 업적은 바로 그가 인간의 ‘언어능력’의—단순히 말하는 것뿐만이 아닌—‘구조적’ 관점을 ‘인간의 유연적 자기조형 작업 모델’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겔렌의 이론은 여기에서—다른 역동적 순환과정의 기술에서와 마찬가지로—결코 경직되거나 하나의 규정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언어구사 능력을 매체로 하여 발전한 모든 가능성은 ‘상상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겔렌은 팔라지이 (Melchior Palagyi)에게서 원용한 개념인 ‘운동의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해—그러니까 상징의 ‘축적’이자, 보고 만지고 기억된, 그리하여 동화된 사물의 ‘가공’인—‘상상력’을 일컬어 우리의 운동생활과 감정생활의 통일을 이룩해내는 “본래적 의사소통의 힘”이라고 한다. 판타스마 (Fantasma; 환상)는 인간의 능력, 더 정확히 말해서 감각 능력과 정신 능력의 산물이자 연장 (延長)이며 상승 (上昇)인데,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운동 능력과 감정 능력의 확대, 끝으로 이 모든 일상적 경험을 처리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의 확대, 끝으로 이 모든 일상적 경험을 처리할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이다. 겔렌은 상상력의 작용을 들어 블로흐 (Ernst Bloch)가 그처럼 옹호했던 백일몽을 프로이트처럼 염원과 성취 가능성 사이에 놓인 ‘교량’으로 풀이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오히려 상상작용이—사물세계의 파악에 눈을 돌리게 해—‘사실순종’의 연습에 도움이 된다. 겔렌은 물론 상상력의 결과물 뒤에는 필요에 대한 욕구 발동, 충족 욕구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그야말로 인간이 지닌 ‘틈’이기 때문이다.
○ 질서와 능력
규율, 성격, 인품
겔렌의 실존적 문제 제기의 최종 목표는 ‘인품’의 형성이다. 모든 조직 및 규율의 성능을 그는 성격이라는 개념 속에 요약하고 있다. 그것은 다양한 내용을 지니고 세상에 분포되어 있는 자극, 지속적 관심, 욕구, 후속욕구 등등의 체계를 의미한다. 그 결과 그 개념은 “행동과 행동의 소재를 하나로 합한 것이고, 끝에 가서는 물려받거나, 습득했거나, 물리친, 그러나 항상 사용된 자극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태도의 구조물이다. 이 자극들은 사람들이 행동을 통해 상대나 세상에 드러냈거나, 아니면 그것들이 우리 행동의 부수적 성과라는 것을 확인했거나 ‘밝힌’ 것들이다.” 늘 문제되는 것은 행동 가능성과 자기 이력상의 자신과의 상관관계, 그러니까 겔렌이 말한 것처럼 모든 윤리의 본래 문제, 구체적으로 말해 “성격은 어떻게 획득되는가”이다.
겔렌은 인간을 “훈육의 존재”로 표현하면서 그 점을 첨예화시켰다. 훈육 개념은 항상 칸트를 맨 먼저 연상시킨다. 하지만 겔렌은 1940년 당시 그보다는 오히려 로젠베르크나 나치의 인종개량 환상에 대해 생각했다거나, 때에 따라서는 그렇게 생각해야 마땅한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겔렌의 경우 ‘훈육’이란 무엇보다도 자기 연마, 즉 극기 (Selbstverleugnung)를 의미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인품의 개조, 동기의 방향전환, 일차적 찬성의 조건으로부터 “문화적 존재”의 달성을 의미했다. 겔렌은 이를 시대에 맞게 납득시키기 위해 훈육이 모든 “교육의 기본사항” 중 하나이고, “신체의 훈육과 단련은 성격, 즉 강한 의지의 형성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해설했다. 바로 이런 해설 속에서 자기 훈육의 이론은 곧잘 프러시아의 덕목으로 이해되는 저 유명한 귀족—군대—부르주아적 합성 윤리와 가깝다는 것이 나타난다.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자제심, 극기를 통한 퇴폐위협의 극복, ‘영원히 여성적인 것’으로부터 남성적 적극성의 구제, 이런 덕목들은 한결같이 아주 다양한 활동유형의 자기이해를 정당화시켰다.
최고 지도체계에서 제도로의 전환
기초적 인류학은 처음부터 행동하면서 항상 위협받는 인간 존재를 위한 사회질서의 보장을 설명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이미 성격, 그러니까 자기 이력 속에서 훈육될 수 있고, 완전히 형성된, 상승의 기회를 처음으로 여는 행동의 우발성 감소로 규정되는 성격의 구조는 이미 겔렌에 의해 사회적 규정이나—그가 즐겨 말하는 것처럼—‘훈련체계’와 관련을 맺고 있다. 이제 ‘정신문제’가 그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신’은 외부로부터 다가올 수 있는 —예컨대 신에게서 부여받은—인간의 특별 능력이 아니고, 그렇다고—셸러나 클라게스 (Ludwig Klages)의 언급처럼—삶의 형식의 단계적 구조에 반대되는 원칙도 아니다. 오히려 지성, 감성, 판타지, 몸의 통제, 행동을 통한 의지의 실현 등 총체적 상황의 합이다. 겔렌은 언젠가 한번 정신의 본질을 ‘생물학자처럼’ 소홀하게 다루고 있다는 비난을 반박하면서 농담조로, 정신이 분명 절대적인 것이 아닌 까닭은, 그렇지 않으면 “모든 질 나쁜 시나 서툰 솜씨로 만든 책, 심지어 일체의 일상적 상투어까지, 모두 정신적인 것이라는 이유로 절대성의 도장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겔렌이 ‘정신’을 언급하면, 그것은 항상 인간이 그의 능력으로 형성해낸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생산적 입장표명의 종합적 형식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 나타난 객관적 질서의 종합을 그는 처음에 이념에 고정시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집단적ㆍ사회적으로 규범화하는 해석체계로 다루었다. 이 해석체계가 종교와 많은 세계관—예컨대 파시스트의 세계관—이 스스로에게 기대한 것처럼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때, 그것은 나치 지배 기간 동안 ‘최고의 지도체계’로 칭송되었다.
1950년에 새로 구상된 이 책은 마지막 장은 인류학적 성찰의 결과로서, 겔렌의 사회학 이론 분야의 주요 업적인 ‘제도론’을 삽입했다. 이제 그는 처음 세 판본에서 개진한 추론을 수정해야 함을 인정했다. 그는 슈미트를 통해 프랑스의 법률이론가 오리우 (Maurice Hauriou)의 중요한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한 종교적 윤리나 ‘세계관’은 “사회적 제도와 관련시킬 때에만 학문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겔렌이 이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을 오로지 해석체계가 지닌 규범화의 힘과 불안을 극복하는 데에만 관련시키면, 우리들은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제도의 공동체적 세계는 제외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자연주의적 자기기만이 간파되었을 때, 비로소 좀 더 수준 높은 정신과학적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전수된 문제로서 분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종교, 예술, 법률, 기술 등은 학문적으로 보자면, ‘공동체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베버는 그의 종교사회학에서 이와 같은 관점들을 “고독한 정점이로 발전시켰다.” 그러므로 “객관적 정신의” 세계는 사회학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데, 그럴 경우 사람들이 몇 가지 철학적 교육을 통해서 “사회학 만능주의”의 결점을 피할 수 있기를 겔렌은 희망했다.
겔렌은 제도를 기능주의의 소산으로 보려 하지 않고, ‘기술적’ 의식 및 ‘역사적-심리학적’ 의식과 비교되는 ‘관념적’ 의식의 산물로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도덕성의 사회적 실현 형식에 대한 헤겔의 방안이 무언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제도 탄생의 ‘관념론적’ 해석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이 ‘사회적 순응’을 인간의 행동, 특히 공동행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뒤르켐 (Émile Durkheim)과 유사하게 겔렌은 일종의 ‘원 (原) 제도’인 토템 신앙을 가설로 해서 출발한다. 이와 같은 최초의 형식에서처럼 사회적 타당성은 공동적으로 이행된 의식에서 탄생하고, 이 의식을 통해 다시금 반복할 수도 있고 ‘지속화’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표준치와 사회적 타당성으로 포장된 하나의 모방되고 ‘연출된’ 또는 의식화된 행동이 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다시 연결할 수 있고 심지어는 연결해야 하는 행동이행의 초간명 (超簡明)한 형식이 생겨나게 된다. 사회제도는 인간이 타인이나 자기 자신과 구축해야 하는 ‘간접적인’ 관계를 공고히 한다. 겔렌은 안정을 역사화한 질서의 성능이 20세기에 와서 해체되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는 힘들게 이룩한 이 확률 없는 안정화를 제도 속에서 보았다. 겔렌은 의문과 성찰 없이 통용되어야 했던 사회제도에 대한 긍정적이고 투철한 분석은, 그가 혐오한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과 마찬가지로 그 제도의 상대화와 위험에 기여한다는 것을 예감했다. 그러나 그것은 겔렌의 보수적 불안을 두고 하는 말이고, 그가 자신의 인류학적 주저 제4판에서 처음으로 표현한 것처럼, 역동적 제도론의 이론적 수확은 그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가 ‘발견한’ 범주는 부차적 합목적성—예컨대 동식물을 보호 육성하고자 하는 의식이 성공을 거두고 끝에 가서는 그것들의 경제적 유용성이 드러나는 결과가 나타난 것처럼—에 대한 이해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아직도 최근의 제도론에 대한 논쟁에 활력을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제도적 긴장의 조화들이 겔렌의 개념들 속에서 탁월하게 인식될 수 있다.
-『인간』은 세기의 책인가?
겔렌의 인류학이 지니고 있는 창의적 관점은 ‘부담 경감’ 모델의 경험적 완성, 그러니까 행동, 지각, 운동과 언어를 사회형태로까지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통합시킨 데 있다. 여기서 본래의 업적은 역동성과 순환과정의 묘사에 있는데, 이와 같은 묘사는 사물관계와 사안의 상징적 표상의 승화된 형식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능성의 여지를 열고, 동시에 조정되고 억제되어야 하는 운동의 내면적 유연성이다.
겔렌의 인류학을 문화이론의 기초를 놓으려는 시도, 즉 인간 생활의 인공적 조건과 형식에 관한 학문으로 읽으면, ‘인간 생물학’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단서는 문화적인 것에 관한 자연이론의 역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본서의 후속이론은 먼저 1950년에 간행된 『인간』의 개정 제4판에, 그 다음으로는 1956년에 간행된 『원시인과 후기문화 : Urmensch und Spätkultur』에서 완성시킨 사회제도론에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기초인류학은 후에 발전시킨 문화비평과 시대비평, 예컨대 『기술 시대의 영혼 : Die Seele im technischen Zeitalter』이나 『도덕과 과잉도덕 : Moral und Hypermoral』, 제한적이기 하지만 심지어 그의 예술사회학 저서 『시대상 : Zeitbilder』에 남아 있는 논쟁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 끝맺음을 하면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겔렌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그의 분석에서 다시금 강화된 사상의 정치적 결과는 그의 시각에서 보면 인류학적 모델의 완성을 위한 전제 중 하나이긴 하지만, 반드시 그의 인류학적 모델의 결과는 아니라는 점이다. 겔렌의 인류학이 삶의 불안과 거기에 대항해 던져진 정치적 ‘행동주의’의 실존적 모티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질서이론’이 처음부터 그의 인류학적 논쟁의 목표이었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 인류학에 대한 기고를 통해 거둔 성과는 역설적으로 훈육과 지도의 고착화에 있지 않고, 인간의 ‘유연성’, ‘언어의 소유’, ‘상황의 초월’, ‘자발성’에 대한 다양한 분석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세계 개방성’에 대한 셸러의 범주를 구체화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겔렌의 문화이론적 인류학을 함축하는 핵심인 것이다.
○ 겔렌 전집 약어
레베르크가 비토리오 클로스터만 출판사에서 발행한 겔렌 전집의 각 권들은 다음과 같은 축약어로 인용됨.
GA 1 = Bd. 1: Philosophische Schriften Ⅰ (1925~1933). Lothar Smson 발행. Frankfurt/M . 1978.
GA 2 = Bd. 2: Philosophische Schriften Ⅱ (1933~1938). Lothar Smson 발행. Frankfurt/M. 1978.
GA 3 = Bd. 3: Der Mensch. Seine Natur und seine Stellung in der Welt. Textkritische Edition unter Einbeziehung des gesamten Textes der 1. Aufl. von 1940. 2 Teilbde. Karl-Siegbert 발행. Frankfurt/M. 1993.
GA 4 = Bd. 4: Philosophisch Anthropologie und Handlungslebre.
Karl-Siegbert 발행. Frankfurt/M. 1983.
GA 5 = Bd. 5: Urmensch und Spätkultur und andere Schriften zur Philosophie der Institutionen.
GA 6 = Bd. 6: Die Seele im technischen Zeitalter und andere soziopsychologische,
soziologische und kulturanalytische Schriften. Karl-Siegbert Rehberg 발행. Frankfurt/M. 2001.
GA 7 = Bd. 7: Einblicke. Karl-Siegbert Rehberg. 발행. Frankfurt/M. 1978.
GA 8 = Bd. 8: Moral und Hypomoral und andere Schriften zur Ethik.
GA 9 = Bd. 9: Zeit-Bilder und andere Schriften zur Philosophie und Soyiologie der Malerei.
GA 10 = Bd. 10: 기타 각종 논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