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886년 10월 28일, 프랑스가 미국에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 뉴욕에서 제막
자유의 여신상 (自由의 女神像, Statue of Liberty, 프: Statue de la Liberté)은 미국 뉴욕 리버티섬에 있는 건축물로, 뉴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세계를 밝히는 자유’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 프: La liberté éclairant le monde)라는 이름으로, 프랑스가 19세기 말에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제작한 동상이다.
– 자유의 여신상 (Statue of Liberty)
.위치: 미국 뉴욕주 뉴욕 리버티 섬
.미국 제막: 1886년 10월 28일
.건축가·건축회사: 귀스타브 에펠
.재원: 높이 46.1m, 무게 225t
.원 제작지: 프랑스
.최초 착안자: 에두아르 르네 드 라부라이에 (Édouard René de Laboulaye, 1811.1.11.~1883.5.25)
.제작: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 (Frédéric Auguste Bartholdi, 1834.8.2 ~1904.10.4.)
.내부 설계: 에펠탑을 만든 귀스타브 에펠
.프랑스 완성: 1884년 파리
.수송: 214조각 분해해 프랑스 해군 수송선통해 미국으로 수송
미국과 프랑스 국민들 간의 친목을 기념하고,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 국민들의 모금 운동으로 증정되었으며, 1886년에 완공되어 10월 28일 제막식을 열었다.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19세기 이후 끊이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유입된 이민자에게 자유로운 세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98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 설계 및 건설
1865년 프랑스의 역사학자 에듀아르 라불라예가 남북전쟁 후에 자유의 여신상 건립을 제의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유니언)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던 라불레는 베르사유 근처의 집에서 열린 석찬 대화에서 “독립기념물로서 비가 미국에 세워져야 한다면, 나는 공동의 노력, 즉 우리 두 나라의 공동작으로 세워져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은 2000년 보고서에서 이 전설은 1885년 기금모금 팜플렛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 상은 1870년에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디자인은 1874년에 라불레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에게 의뢰를 하였다.
설계는 에펠탑으로 잘 알려진 귀스타브 에펠도 참여를 했다.
자유의 여신상 본체는 동판을 두들겨서 모양을 내고 외젠 에마뉘엘 비올레 르 뒤크와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이 고안한 4개의 대형 철제 구조 위에 조립하여 만들어졌다.
상의 디자인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바르톨디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것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바르톨디가 프리메이슨이었기 때문에, 프리메이슨이 숭배하는 마녀 메두사라고 하는 설도 존재한다.
– 구성
리베르타스 여신을 묘사한 작품이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기존의 리베르타스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자유의 여신상 이전의 리베르타스는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었음을 상징하는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장대를 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바르톨디가 제작한 자유의 여신상은 프리기아 모자 대신 7개의 뿔로 된 왕관을 쓰고, 장대 대신 횃불과 책을 들고 있다.
오른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구리로 제작되었다.
맨 처음은 구리의 붉은빛을 띠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구리가 공기 중에서 산화하는 특성으로 인해 지금의 푸른빛을 띠게 되었다.
왼손에 든 책에는 ‘JULY IV MDCCLXXVI’가 적혀 있는데 이는 로마 숫자로 1776년 7월 4일, 즉 미국 독립기념일이기 때문에 미국 헌법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른손에 든 횃불은 세계 만방에 이성의 빛을 밝히는 것을 상징한다.
이외에도 자유의 여신상은 끊어진 쇠사슬을 밟고 서 있는데,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을 묘사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이를 상징하는 프리기아 모자를 씌우지 않는 대신 바르톨디가 선택한 방법이다.
– 프랑스에서 제작 모금과 미국으로 수송
모금을 위한 기념상 건조 캠페인으로 복권과 1878년의 세계박람회인 파리박람회에 완성된 머리상을 전시하고 약 40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높이가 46.1m, 무게가 225t이나 되는 완성작은 1884년 프랑스 파리에서 임시 완성되어 214개로 조각으로 분해하여 프랑스 해군 군용 수송선 이제르 호를 통해 미국으로 수송되었다.
프랑스에도 크기는 작지만 같은 디자인의 여신상들이 있는데, 이들 중 하나는 사실상 오리지날 버전이다. 파리 센느강변에 위치한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이 프랑스에 기증한 것이다. 프랑스와 미국이 서로 자유의 여신상을 주고 받았다.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기 전에 만든 원본은 현재 파리 Arts et Métiers 박물관에 있다. 그리고 뤽상부르 공원에도 축소판이 하나 있었다가 2011년에 오르세 미술관으로 이전된 것도 있는데, 이는 원작자인 바르톨디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파리 시립미술관 인근에는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불꽃의 실제크기 모형이 있다.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 선물이지만 실제로 미국 땅에 전달된 것은 1885년 1월이다. 물론 이때도 여신상을 완성채로 수송한 것이 아니고, 여신상의 겉면을 구성하는 300개의 구리판을 프랑스에서 제작한 다음 배로 미국으로 운반해 4개월 동안 재조립했다. 이 때 운반해체비용이 없어 난감해 할 때 이 사연을 들은 퓰리처에 의해 신문 모금 캠페인이 벌어졌고 수송비용이 모금됐다.
– 받침대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질 받침대 부분의 건설 자금은 ‘뉴욕 월드’ 지의 사주인 조지프 퓰리처가 기금 모금 캠페인을 실시하여, 미국 국민의 기부로 충당했다.
미국의 건축가 리처드 모리스 헌트가 고안하고 베들로 섬에 있는 우드 성벽 내부에 건립되었던 받침대는 나중에 완성되었다.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 선물이지만 실제로 미국 땅에 전달된 것은 1885년 1월이다.
물론 이때도 여신상을 통째로 들고 온 건 아니고, 여신상의 겉면을 구성하는 300개의 구리판을 프랑스에서 제작한 다음 배로 미국으로 운반해 4개월 동안 재조립했다.
그런데 배송을 완료했더니 정작 조립 과정을 충당할 예산이 없어서 상자에 담긴 채 항구 하역장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 사연을 들은 퓰리처에 의해 신문 모금 캠페인이 벌어졌고 금액이 금방 모였다.
– 제막식
받침대에 올려진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10월 28일 클리블런드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제막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1986년 7월에 개최된 10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미국과 프랑스 양국이 자유의 여신상을 수리 복구했다.
처음에는 조명장치가 되어 있는 횃불이 항해에서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등대국에서 관리했지만, 우드 성이 육군 작전기지였기 때문에 1901년부터는 여신상의 관리를 육군부에서 맡았다.
1924년 국립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37년 우드 성이 해체되면서 섬의 나머지 부분도 기념물에 포함되었다.
1956년 베들로 섬은 리버티 섬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65년에는 한때 미국의 주요 이민단 정착항이었던 인근의 엘리스 섬도 이에 포함되어 사적지 전체 면적이 약 0.24km2에 이르게 되었다.
– 특징
자유의 여신상은 조립식 구조물이며, 프랑스가 미국에 이 조각상을 선물하기 전에 완성품 상태로 조립을 했었다.
그러나, 배에 선적하기 위해 해체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으로 보내진 다음 미국에서 다시 조립하여 완성되었다.
프랑스에는 자유의 여신상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조각상이 있다.
오른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구리로 제작되었다.
맨 처음은 구리의 붉은빛을 띠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구리가 공기 중에서 산화하는 특성으로 인해 지금의 푸른빛을 띠게 되었다.
1985년 수리과정에서 횃불은 금으로 도금하였다.
미국과 뉴욕의 대표적 상징물로서 각종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 많이 언급되곤 한다.
– 에머 래저러스의 시 ‘새로운 거상’ (The New Colossus, 1883)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 입구 (받침대 부분에는 미국 이민박물관이 있다)에 있는 현판에는 받침대를 지을 기금을 모으기 위해 에머 래저러스 (Emma Lazarus, 1849.7.22 ~ 1887.11.9)가 지은 소네트 (정형시) ‘새로운 거상’ (The New Colossus, 1883)이라는 시 구절이 새겨져 있다.
Not like the brazen giant of Greek fame,
With conquering limbs astride from land to land;
Here at our sea-washed, sunset gates shall stand
A mighty woman with a torch, whose flame
Is the imprisoned lightning, and her name
MOTHER OF EXILES. From her beacon-hand
Glows world-wide welcome; her mild eyes command
The air-bridged harbor that twin cities frame.
“Keep, ancient lands, your storied pomp!” cries she
With silent lips. “Give me your tired, your poor,
Your huddled masses yearning to breathe free,
The wretched refuse of your teeming shore.
Send these, the homeless, tempest-tost to me,
I lift my lamp beside the golden door!”
땅에서 땅으로 사지 펼쳐 군림하는
저 그리스의 청동 거인과는 달리
여기, 우리의 파도 씻긴 일몰의 관문에는
횃불을 든 강대한 여인이 서리니,
그 불꽃은 번개를 가둔 것이요, 그 이름은 유랑민들의 어머니라.
횃불 든 손은 온 세계를 환영의 빛으로 밝히고
온화한 눈길은 쌍둥이 도시를 잇는
구름다리 걸친 항구를 향해 명한다.
“오랜 대지여, 너의 유서 깊은 장려함을 간직하라!”
또 고요한 입술로 소리친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
너의 풍요의 기슭에서 버림받은 가련한 이들을 내게 보내라.
세파에 시달려 갈 곳 없는 이들 내게 오거든
나 황금의 문 곁에서 높이 등불을 들리니!”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