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지리
크레타 (Creta) 섬과 문명 개관 / 그레데 섬
성경에 그레데 섬으로 언급되는 오늘날 크레타 (그: Κρήτη, 영: Creta) 섬은 에게 해와 지중해를 구분하는 선상에 있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며 잠시 들를 곳이다. 디도의 유골이 크레타 섬의 디도교회에 일부가 있다 _ 편집자 주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는 5번째로 큰 섬 크레타. 고대 미노아 시대 크노소스와 파이스토스의 유적, 고르티스 유적 등 다양한 유적이 있어 관광지로 유명한 섬입니다.
크레타는 유럽 최초의 문명이자 그리스 문명의 원형인 미노아 문명(크레타 문명)의 발원지입니다.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2000~1500년께까지 가장 크게 번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중심에 크노소스 궁전(The Place of Knossos)이 있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은 이라클리온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미노아 문명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설 속 이야기에 불과했다. 트로이를 발굴하고 미케네, 티린스를 발굴한 독일의 술리만은 전설속의 미노스 궁전을 찾아 나섰으나 실패에 그치게 됩니다.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가 크노소스 궁지를 발굴하면서 실제 역사로 증명되기 시작했다. 미노아 문명의 최대 증거인 크노소스에 평생을 바친 그의 공로는 크지만, 발굴과 복원 과정에 대해서는 논쟁이 거세다. 정확한 고증 없이 서둘러 복원을 진행해 유적의 상당 부분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로 대체된 목조기둥과 개인적 상상력에 기반해 덧칠된 벽화가 그 예입니다.
충분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지만 아직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크노소스 궁전은 가로세로 길이가 160~170m에 이르는 거대한 궁전이다. 중앙정원을 중심으로 1000개가 넘는 방이 배치된 정방형 구조인데 설계가 워낙 복잡해 라비린토스(Labyrinth), 즉 미궁의 궁전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다.
방이 1천개가 넘는 궁전은 3~4층으로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고, 각 방은 층계를 통해 각 층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궁전 안에는 수도 설비가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하수도 시설까지 완벽하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각 방의 밝기는 광정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와 건물 내부를 밝혔고, 지붕에서 바닥까지 수직으로 관통하는 공간인데 이것이 건물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그들의 건축술이 고도로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과 복도 벽에는 화려한 프레스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고, 장난치며 물속을 헤엄치는 돌고래들, 젊은 청년과 머리를 길게 땋은 젊은 여인들의 행렬, 돌진하는 황소와 곡예사들 등이 벽화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궁전에는 거대한 꽃병들이 발견되었는데, 꽃병에는 문어가 한 마리씩 그려져 볼록한 꽃병의 윤곽을 채우고 있습니다.
지하에는 커다란 항아리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창고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옥좌가 발굴되었습니다. 신하들이 앉는 긴 의자 사이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자 몸에 독수리 머리와 날개의 괴물인 그리핀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답니다. 이 곳에서 발견된 벽화 단편이나 도기, 상아, 파이앙스의 소조각 등의 출토품은 아리크리온 고고미술관에 수장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도시를 이룰 만큼 거대한 궁전 곳곳에서는 크레타 전통 양식의 건축물, 피토스(Pithos) 항아리, 프레스코화, 원형극장, 선형문자 같은 청동기 시대 문명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수준 높은 유물들이 대거 발견됐다. 무엇보다 크노소스 궁전은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설계로도 유명한데,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 해서 ‘라비린스(Labyrinth)’, 즉 ‘미궁’이란 별칭이 붙었다.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영웅 테세우스가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의 배경도 바로 이 크노소스의 미궁이다.
크레타섬은 그리스 남쪽 에게해 남단부 중앙에 있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중간쯤이라고 보면 된다. 이 위치가 절묘하다. 이집트문명이 그리스로 넘어가는 중간 기착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집트문명은 붙박이로 농사짓는 농경문명이고, 그리스는 뱃사람들이 배 타고 다니며 무역과 전쟁· 해적질을 일삼은 해양문명이다. 크레타섬은 농경이 해양으로 건너가는 중간이다. 농경이 해양으로 넘어가다가 중간에 기착해 형성한 문명이 ‘크레타문명’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크레타섬의 위치가 이집트 그리스를 연결하는 가교역할,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이아 문명의 접견지, 해상무역을 통한 동방문화의 접촉으로 조금 더 유연하고 독특한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크레타 서부는 아름다운 청정자연과 도시의 매력을 골고루 즐길 수 있는 지역이다. 서부 크레타를 대표하는 하니아(Chania)는 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찬란했던 미노아 문명이 몰락한 이후 크레타는 그야말로 수난과 고난의 역사를 견뎌야 했다. 로마 제국을 시작으로 비잔틴 제국, 베네치아 공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에 이르는 주변 열강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지배는 크레타 곳곳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하니아 구시가지는 고대부터 중세, 근대까지 섬이 지나온 역사와 크레타 고유의 문화가 합쳐져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섬의 서쪽 끝자락으로 향하면 크레타 최고의 비경을 품은 ‘발로스 라군(Balos Lagoon)’이 나온다. 발로스 라군은 키사모스 만과 케이프 티가니(Cape Tigani)라는 작은 섬 사이에 형성된 석호다. 마치 푸른 물감에 우유를 풀어놓은 듯한 옥빛 해변이 천국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다. 페리를 이용해 발로스에 진입하면 해적의 섬으로 알려진 그람부사(Gramvousa)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이 섬은 오스만 제국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벌였던 크레타인들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섬 꼭대기에는 베네치아인들이 세운 성채가 남아 있는데, 이곳 정상에 오르면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보석 같은 절경이 펼쳐집니다.
크레타 중동부에 신들의 신 제우스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이다 산(Mount Ida)이 있다면, 서부에는 화이트 마운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레프카 오리(Lefka Ori)가 있다. 따뜻한 기후를 지닌 크레타에서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신비로운 산이다. 화이트 마운틴이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유럽에서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최장 협곡 중 하나로 꼽히는 ‘사마리아 협곡(Samaria Gorge)’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거벽 사이를 걸으며 크레타의 척추를 관통한다. 거칠고 투박한 자연의 문을 지나 협곡의 끝을 마주한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눈앞에 더 이상 푸를 수 없을 만큼 푸른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어 나타난다.
그리스는 산악으로 덥힌 육지와 6,000개를 넘는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는 에게해 (Aegean Sea)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처럼 잔잔하고, 찬란한 햇빛과 높고 파란 하늘에 맑은 공기가 가득하고, 물산이 풍부한 에게해와 그 바다의 섬들은 옛 그리스인에게 삶의 보금자리였고 문명의 출발점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문명은 크레타문명과 그 뒤를 이은 미케네문명에서 시작된다. 에게해의 섬들은 현실 세계를 꿈의 세계로 연결해주는 매개체다.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며 전 세계를 방랑하였던, 그리스의 대 문호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는 우리들의 버킷리스트에 인생의 축복인 ‘에게해 여행’을 담을 것을 그의 대표작 ‘그리스인 죠르바’를 통해 권유한다. 그는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썼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아틀라스가 다스렸다는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에 대하여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두 편의 대화록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을 남긴다.
‘격렬한 지진과 해일이 있었다. 끔찍한 낮과 밤이 왔고 … 아틀란티스는 바다 아래로 사라졌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로 크레타 일대를 아틀란티스로 보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기원전 1,500년경 크레타에서 북쪽으로 150킬로 떨어진 둥근 섬이 폭발하면서, 크레타는 화산재로 덮이고 뒤따른 쓰나미로 도시와 왕궁은 땅속에 묻히면서 크레타 문명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는 설이다.
미노아 문명의 영광이 저문 뒤 크레타의 역사는 수난의 길을 걷게 된다. 로마 제국을 시작으로 비잔틴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는 식민 지배와 끊임없는 외세침략을 견뎌야 했다. 다사다난한 역사는 도시 이름의 변천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침략자가 바뀔 때마다 한닥스(Chndax), 칸디아(Candia), 메갈로 카스트로(Megalo Castro), 칸디에(Candiye) 등으로 수없이 바꿔 불리다가 19세기가 돼서야 본래 이름인 이라클리온(또는 헤라클리온 Heraklion)을 되찾았다. 시내에 있는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은 크레타가 지나온 유구한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다.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그리스 로마시대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양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 규모와 가치는 그리스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크노소스를 비롯해 페이스토스(Phaistos), 고르틴(Gortyn) 등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고 싶거나, 미노아 문명에 대해 깊은 탐구를 원한다면 필수로 들려야 한다. 크레타 역사박물관에서는 비잔틴 제국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크레타섬이 지나온 슬픔과 저항의 역사 그리고 크레타인의 생활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전시관도 따로 마련돼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더 좋습니다.
김선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