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회학‘의 창시자, 로버트 K. 머턴 / 머튼 (Robert K. Merton, 1910 ~ 2003)
‘과학사회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K. 머턴 / 머튼 (Robert K. Merton, 1910년 7월 4일 ~ 2003년 2월 23일)은 1910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1년 템플 대학 학부를 졸업한 그는 하버드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 과정에 진학하였다. 하버드에서 폭넓은 공부 덕분에 머튼은 과학과 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생애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낸 그는 ‘사회과학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현대 사회학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57년에 쓴 ‘사회이론과 사회구조’에서 “미국의 중요한 미덕인 야망이 미국의 중요한 악덕인 일탈행위를 조장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범죄학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 로버트 K. 머턴 / 머튼 (Robert K. Merton)

.출생: 1910년 7월 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사망: 2003년 2월 23일, 미국 뉴욕 뉴욕
.배우자: 해리엇 주커만 (1993 ~ 2003), 수잔 카하트 (1934 ~ 1968)
.자녀: 로버트 C. 머튼 (노벨상 수상), 스테파니 머튼 톰브렐로, 바네사 머튼
.학력: 하버드 대학교 (1936년), 템플 대학, 사우스 필라델피아 하이스쿨
.주요개념들: 의도치 않은 결과 (unintended consequences), 준거집단 (reference group), 역할긴장 (role strain), 역할모델 (role model), 자기충족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 등과 같은 주목할 만한 개념들 개발
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 (Robert K. Merton, 1910년 7월 4일 ~ 2003년 2월 23일)은 미국의 사회학자로 기능주의 입장에서 현재적 (顯在的) 기능 이외에 잠재적 기능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또한 관료제의 역기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최초로 하였다.
머튼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출생, 템플대학을 거쳐 하버드대학을 졸업하였다. 1939~1941년 털레인대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1941년 컬럼비아대학 사회학 주임교수가 되었다. M. 베버, P. A. 소로킨, V. 파레토 등의 영향을 받아 이론사회학을 추구하면서도 경험적 조사에 관심을 보여, 중(中)범위 이론을 제창하고 이론과 조사와의 통합을 역설하였다. 또, 기능주의 입장에서, 현재적 (顯在的) 기능 이외에 잠재적 기능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또한 관료제의 역기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최초로 하였다.
주요저서로 ‘대중설득’ (Mass Persuasion, 1946), ‘사회이론과 사회구조’ (Social Theory and Social Structure, 1949), ‘사회이론과 기능주의적 분석’ (Social Theory and Functional Analysis, 1969), ‘사회적 이중가치에 관하여’ (Social Ambivalence and Other Essays, 1976) 등이 있다.
○ 생애
최고의 일탈의 이론뿐만 아니라 ‘아노미 이론’으로 로버트 K. 머튼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회 과학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로버트 K. 머튼은 1910년 7월 4일 태어났으며, 2003년 2월 23일 죽었다.
로버트 K. 머튼은 노동 계급 동유럽 유대인 이민 가족으로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14살때 출생명 메이어 로버트 쉬콜닉 (Meyer Robert Schkolnick)에서 로버트 K. 머튼 (Robert King Merton)으로 개명한다. 로버트 머튼은 탬플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하버드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해 1936년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이곳에서 머튼은 피티림 소로킨 · 탤컷 파슨스로부터 사회학을 사사받았을 뿐 아니라, 조지 사튼 ·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 윌리엄 휠러 등으로부터 과학사와 과학철학 · 비교동물학 등을 배웠다. 그는 지도교수 소로킨이 집필한 책 ‘사회적 및 문화적 동학’ (Social and Cultural Dynamics)에 연구조교로 참여하기도 하였는데, 이처럼 폭넓은 공부 덕분에 머튼은 과학과 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머튼은 1938년까지 하버드대학에서 강의했다.
1941년 로버트 머튼은 툴레인대학 사회학과 학장이 되어 1942부터 1971년까지 가르쳤다.
그는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대학에서 가장 학문적인 교수로 지명되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에 합류, 1984년 은퇴했다.
모튼은 또한 록펠러 대학교 (Rockefeller Univ.)의 겸직교수였으며, 러셀 세이지 재단 (Russel Sage Foundation)에서 최초의 재단 특훈 학자 (Foundation Scholar)가 되었다.
모튼이 1984년 강단에서 물러나자 컬럼비아 대학교는 그의 학문과 대학에 대한 오랜 세월의 공적을 인정하면서, 1990년에 로버트 K. 머튼 사회과학분야 교수 공적상 (Robert K. Merton Professorship in the Social Sciences)을 제정하기도 했다.
머튼은 그의 연구에 대한 많은 상과 추천을 받았다. 그는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된 미국 최초의 사회학자다. 1994년 과학사회학(sociology of science)의 기초를 세운 공헌으로 국가과학훈장(National Medal of Science)을 받았다. 그는 그 상을 받은 최초의 사회학자였다. 그의 경력을 통해,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시카고 등 국내외 20여 대학에서 명예학위 등을 수여했다.
로버트 머튼은 과학의 사회학에 대해 매우 열정적이었고, 사회적, 문화적 구조와 과학 사이의 상호 작용과 중요성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과학 혁명의 원인의 일부를 설명했다. 머튼은 사회학 분야에서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 하였다. 그의 또 다른 기여는 관료, 일탈, 소통, 사회 심리학, 사회 계층, 사회 구조 등의 연구로 사회이해에 공헌했다. 그는 또한 사회 연구의 사용 및 의학 교육 등을 연구해 현대적인 정책 연구의 개척자 중 하나였다.

○ 지식사회학 비판
과학과 사회 간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갖게 된 머튼은 20세기 유럽 지식사회학자들의 사상을 공부하고 관련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대표적인 예로는 칼 만하임 · 막스 셸러의 저작에 관한 1935년의 서평과 막스 베버와 로버트 마키버의 사상을 확장한 1936년의 책 ‘문명과 문화’ (Civilization and Culture), 플로리안 즈나니에키의 사상을 검토한 1941년 논문 등이 꼽힌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머튼은 “지식은 사회체계의 일부이므로 다른 부분들과 항상 갈등한다”라는 지식사회학의 중요한 함의를 수용함과 동시에 학문이 갖고 있는 한계점을 간파하였다. 지식사회학은 1930년대부터 발전이 정체되었는데, 머튼에 의하면 지식사회학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었고 사변적인 탓이었다. 예를 들어 지식사회학은 지식의 실존적 기초, 즉 “지식이 무엇에서 기원하는가?”라는 물음에만 매달렸으며 학자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유물론 · 관념론의 입장을 변호하는데 그쳤다. 머튼의 비판은 1945년 논문 ‘지식사회학’ (The Sociology of Science)에서 절정에 달하는데, 그는 “지식사회학이 가설과 절대적 교조 (敎條)를 혼동하는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기존의 사변적 통찰은 철저한 검증을 받고 있다”라고 역설하였다.
○ 과학 사회학 (Sociology of Science, 科學社會學) 정립
과학 사회학 (Sociology of Science, 科學社會學)은 사회체계로서의 과학을 연구하는 사회학의 한 분야로, 로버트 K. 머튼이 20세기 중반에 정립하였다. 머튼은 본래 과학과 사회 사이의 상호작용을 분석하였지만, 과학의 내부구조를 사회학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연구를 진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과학사회학을 정립하였다. 과학사회학은 당시 학문적 주류였던 기능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과학을 ‘고유한 가치와 규범이 조화를 이루는 체계’로 해석한다. 과학의 가치와 목적은 객관적인 지식체계를 만드는 것이며, 연구자들은 보편주의 · 공유주의 · 이해중립성 · 회의주의로 이뤄진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가치를 실현한다.

과학은 연구자들의 노력과 업적에 대한 보상체계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뛰어난 성과를 이룬 사람은 법칙이나 단어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며, 작위나 단체 가입과 같은 명예나 금전적인 보상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체계는 학자들에게 현실적인 연구동기를 제공함으로써,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자들이 더욱 연구에 매진하도록 북돋우는 역할을 한다. 보상체계는 과학자 사회에 불평등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유명한 과학자가 많은 지원을 받음으로써 더 좋은 논문을 발표하고, 지위를 강화하는 ‘마태 효과’가 그것이다. 그 외에도 과학사회학은 새로운 학문이 형성되는 과정과 나이에 따른 과학자들의 행동양식 변화도 연구한다. *마태효과 (Matthew effect)란 신약성서 마태복음 13:12에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현상”, 즉 부익부 빈익빈 (富益富 貧益貧)을 일컬어 ‘마태 효과’라 머튼은 불렀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가 한곳으로 집중하는 현상을 말한다. 강자나 부자에게 불균형적으로 유리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으로,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현상이다. 로버트 머튼의 분석에 따르면 어떠한 개체나 집단 또는 지역이 일정한 방면에서 (금전, 명예, 지위 등) 성공하고 앞서면 강점이 쌓여 더욱 크게 성공하고 발전할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고 했다.
한편 ‘과학사회학’이 학자들의 행동과 학계의 사회적 특성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자, 일부 영국 학자들은 여기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고 ‘과학지식사회학’을 정립하였다. ‘과학지식사회학’은 ‘과학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과학지식의 사회적 특성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과학사회학’과 차이가 있다.
1930년대 로버트 K. 머턴의 주요한 관심사는 과학과 사회가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영국의 과학사를 연구하면서 머턴은 과학의 구조를 사회학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과학을 정의하고 기술하는 사회학적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한, 과학의 사회적 측면에 관한 심도있는 질문을 만들지 못하며 이에 관한 양적· 질적 자료를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사칙연산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미적분학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현실의 문제를 사칙연산에 관한 문제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 이후 머턴은 과학의 내부구조를 연구한 논문 ‘과학과 사회질서'(1937), ‘과학의 규범 구조’ (The Normative Structure of Science, 1942) 등을 내놓는다.
○ 아노미 (anomie) 이론
로버트 머튼은 크게 미국사회학의 중흥을 이끌었던 기능주의 이론의 맥락에 있는 학자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기능주의의 이론적 입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로버트 머튼은 구체적으로 구조 기능주의 이론가로서 거시적인 이론들을 생성했던 파슨스에 비해 중범위적 이론을 전개한다. 더불어 머튼은 비교적 칼 마르크스의 사회이론에도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존의 구조 기능주의자들이 사회구조나 제도가 다른 구조나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만 중점을 두었다면 머튼은 이와 달리 사회구조와 제도의 역기능에 초점을 두고 이론을 발전시켜나갔다. 머튼의 분석에 따르면 구조는 전체 체계에 역기능적이면서도 여전히 존재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머튼은 분석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앞서 설명한 구조들, 즉 역기능들도 제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회는 개선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를 통해 머튼은 기능주의 이론을 보완한다.
머튼의 아노미는 가치 있는 문화적 목표와 그 목표에 이르는 적법한 사회적 수단 사이에 괴리가 존재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머튼은 이런 사회구조에 대한 개인이나 집단의 방법들을 5개의 유형으로 분석했다. 첫 번째는 ‘순응’으로서 가장 일반적인 대처방식이다. 주어진 상황을 단순히 수용하고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상태에서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혁신’인데 혁신은 가장 일반화된 일탈적 대응이다. 기존의 성공이라는 목표에 집착하되 부당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목표를 이루는 것이 혁신의 방법이다.
세 번째로는 ‘모반’이다. 모반은 수단과 목표를 모두 거부하고 체제의 무력화나 전복 같은 새로운 목표와 수단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네 번째로는 ‘은둔’을 들 수 있다. 은둔은 도피적 방법으로서 사회적인 낙오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목표뿐 아니라 목표달성의 시도조차 포기하는 경향이다.
마지막 가서 번째로 ‘의례’를 들 수 있다. 의례는 투쟁을 포기하고 규범을 엄격하게 지킴으로써 획득한 것을 유지하는 경향이다.
로버트 머튼은 통합된 사회를 추구했다. 이것은 기능주의 이론의 연장선에 있는 머튼의 입장이라고 파악할 수 있는데, 머튼에게 통합된 사회란 사회구조 (승인된 사회적 수단)와 문화 (승인된 목표) 사이에 균형이 유지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아노미 이론은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적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하위계층의 범죄나 비행이 증가할 것을 주장한다.
로버트 머튼의 이론과 함께 메스너 (Steven Messner)와 로젠필드 (Richard Rosenfeld)도 아노미와 일탈에 대해 설명한다. 메스너와 로젠필드의 경우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아노미는 승인되지 않은 제도적 방법을 통해 물질적 성공을 규제하는 통제제도의 기능을 약화시킨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행위자로 하여금 일탈을 부추기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메스너와 로젠필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특징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강조되는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 구조적 장애에 직면하게 될 것을 전망했다. 이런 경험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은 종국에 제도적 합법성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에 처한다는 분석 또한 내놓았다.
○ 주요 개념들

로버트 머튼은 “의도치 않은 결과 (unintended consequences)”, “준거집단 (reference group)”, 그리고 “역할긴장 (role strain)”과 같은 주목할 만한 개념들을 개발했다. 그러나 가장 잘 알려진 용어들을 꼽는다면 “역할모델 (role model)”과 “자기충족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을 들 수 있다. 현대 사회학, 정치학, 그리고 경제학 이론의 중심 요소인, 자기충족적 예언이란 한 가지 유형의 과정인데, 그것은 어떤 상황의 결과 또는 개인이나 집단이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믿음이나 기대가 포함된 것이다. 머튼의 정의대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The self-fulfilling prophecy is, in the beginning, a false definition of the situation evoking a new behavior, which makes the originally false conception come true.”
자기충족적 예언이란, 애초에, 새로운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에 대한 잘못된 정의이며, 그것은 원래의 그 잘못된 개념이 이뤄지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충족적 예언 = 자기실현적 예언 = 자기성취적 예언)
머튼의 ‘역할 모델 (role model)’ 개념은 컬럼비아대학교 의과대 학생들의 사회화에 관한 연구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용어는 그의 준거집단 (reference group) 개념에서 자라난 것이다. 준거집단에서 개인들은 서로를 비교하지만 반드시 그것이 소속집단일 필요는 없다. 사회적 역할이란 머튼의 사회적 집단 이론의 중심이었다. 머튼은 개인보다는 역할과 지위를 강조했는데, 개인은 사회적 구조 안에서 정해진 하나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에, 그 지위에 따라서 모든 일련의 예상되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저서들
대중설득 (Mass Persuasion, 1946),
사회이론과 사회구조 (Social Theory and Social Structure, 1949)
사회이론과 기능주의적 분석 (Social Theory and Functional Analysis, 1969)
사회적 이중가치에 관하여 (Social Ambivalence and Other Essays, 1976)
– Publications

1938.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in Seventeenth Century England.” Osiris 4 (2) : 360–632. *This publication made Merton well known among historians of science. It was strongly influenced by Boris Hessen’s famous 1931 Marxist account, The Socio-economic Roots of Newton’s Principia, which he defended in a paper “Science and the Economy of Seventeenth Century England”. However, Merton also supplemented Hessen’s analysis of the technological determinants of the fields of inquiry of seventeenth-century science with a study of the influence of religion (especially Protestantism) on the social legitimacy of science as a profession: the so-called “Merton Thesis”. He also supported Hessen’s arguments by revealing how military problems influenced the research agendas of the Royal Society.
1938. “Social Structure and Anomie.”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3:672–82.
1942. “The Normative Structure of Science”
1949. Social Theory and Social Structure (revised and expanded in 1957 and 1968)
1973. The Sociology of Science
1976. Sociological Ambivalence
1985. “George Sarton: Episodic Recollections by an Unruly Apprentice.” Isis 76(4):470–86.
1985. On the Shoulders of Giants: A Shandean Postscript
1996. On Social Structure and Science, edited by Piotr Sztompka
2004. The Travels and Adventures of Serendipity : A Study in Sociological Semantics and the Sociology of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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