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평화
성탄의 신비는 ‘낮아짐’에 있습니다.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시기 위해 선택하신 장소는 화려한 궁전이 아닌, 짐승의 먹이통인 ‘천한 말구유’였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Incarnation)’의 사건은, 절망 가운데 있는 인류에게 먼저 손을 내미신 극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명확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의 담을 허물어 화평케 하시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견고하게 세워진 미움의 벽을 무너뜨려 진정한 평화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서 2:14). 그분은 스스로 화목 제물이 되심으로써, 끊어졌던 하늘과 땅의 관계를 다시 잇는 가교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목적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특히 인류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의 비극은 깊어만 갑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의 오랜 분쟁은 현재 진행형이며, 그 틈바구니에서 가자지구의 수많은 난민은 이 추운 겨울, 생존의 벼랑 끝에서 떨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소식은 최근 이스라엘 정부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19개의 새로운 정착촌 건설을 승인했다는 사실입니다. 국제법상 점령지로 간주되는 이 지역에 정착촌을 확대하는 것은 팔레스타인과의 ‘두 국가 해법’을 가로막는 거대한 걸림돌이 됩니다. 이는 단순히 영토의 문제를 넘어, 분쟁의 불씨를 더욱 키우고 평화의 가능성을 멀어지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서안 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으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권력의 이름으로 타인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삶의 터전을 빼앗는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구약의 미가 선지자는 권력자들이 가난한 자의 밭을 탐하여 빼앗고 압제하는 것을 향해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미가 2:1-2). 성경은 권력이 정의를 상실하고 약자를 억압할 때 그것을 결코 묵과하지 않습니다.
2천 년 전 베들레헴 들판에 울려 퍼졌던 천사들의 노래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 2:14).
2025년 성탄절을 맞이하며 우리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는 총칼의 소리가 멈추고, 서로를 향한 해묵은 미움이 눈 녹듯 사라지기를 소망합니다. 나와 다른 상대방을 ‘적’이 아닌 ‘불쌍히 여겨야 할 이웃’으로 바라보는 긍휼의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힘에 의한 굴복이 아니라, 말구유의 예수님이 보여주신 겸손과 희생에서 시작됩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중동의 메마른 땅에도, 우리 마음의 거친 광야에도 아기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의 무드가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함께 살아가는 평화의 세상,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가장 큰 바램일 것입니다. 주여 이 땅에 새로운 평화를 주소서!
수고한 당신 자신에게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우리는 습관처럼 주변을 돌아봅니다. 함께 고생한 동료의 어깨를 두드리고, 이웃들에게 “올 한 해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며 덕담을 건넵니다. 그 인사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녹이는 훈훈한 온기가 되어 서로에게 전달됩니다. 필자도 지난 한주간 이런 인사를 전화를 통해서 참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정작 우리 자신에게는 얼마나 인색했는지 되묻게 됩니다. 지난 1년을 치열하게 살아낸 ‘나’ 자신에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너 병근이도 “참으로 수고 많았다”라고 말입니다.
가장 먼저 고마움을 전해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의 육체입니다. 올 한 해 우리의 몸은 참으로 정직하게, 그리고 고단하게 움직였습니다. 이른 아침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시작된 하루는 밤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혹은 맡겨진 사명을 위해 우리의 발은 쉴 새 없이 땅을 디디며 걸었고 때로는 숨 가쁘게 뛰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타자의 요구에 응답하며, 때로는 질병과 통증을 견뎌내면서도 우리의 육체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조금은 지쳐 보이는 얼굴과 거칠어진 손마디는 그저 노화의 흔적이 아니라, 한 해를 성실하게 살아낸 영광스러운 훈장입니다. 이 육신의 수고가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움직임 너머에는 마음의 수고도 가득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공동체인 가족을 돌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면서도 가장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가족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피로를 뒤로 미루고, 자녀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희망으로 바꾸어 부었습니다.
일터에서의 시간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관계의 갈등 속에서도 책임감을 놓지 않았던 그 인내의 시간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를 돌보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겼던 그 마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일구는 소중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나 한 사람의 수고가 누군가에게는 안식처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수고를 뒤돌아보며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결론은 결코 ‘자아도취’나 ‘자기만족’이 아닙니다. 내가 걸었던 그 수많은 걸음, 내가 견뎠던 그 무거운 책임감, 내가 쏟았던 그 눈물겨운 사랑의 기저에는 우리가 미처 다 깨닫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습니다.
한 걸음을 뗄 힘이 없을 때 우리를 붙드셨던 분, 막막한 현실 앞에서 지혜를 주셨던 분, 무너진 마음을 위로하며 다시 일으켜 세우셨던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내가 수고했다고 말하는 그 순간조차,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고할 수 있는 건강과 마음과 환경을 허락하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수고 많았다”는 나를 향한 위로는, 결국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라는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나의 열심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컸고, 나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자비가 깊었음을 깨닫는 순간, 지난 1년은 단순한 고생의 연속이 아니라 ‘은혜의 여정’으로 재해석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 우리 함께 다시 한번 인사합시다.
나 자신에게는 “정말 애썼다, 고맙다”라고,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따뜻한 고백 위에 다가올 새해의 소망이 이미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모두 행복한 주일하루 되세요!

김병근 목사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엠마오상담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