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곡선의 의미
어제 아내와 며느리의 생일을 맞아 올림픽 파크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육지이지만 바다처럼 만들어 놓고 파도를 가르며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잔잔한 바다는 평온함을 주지만, 서퍼들에게는 도리어 ‘파도’가 일어야만 그들의 운동이 시작되고 즐거움이 완성됩니다. 우리 인생의 거친 파도와 굽어지는 곡선들 역시, 우리가 인생이라는 파도를 제대로 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늘 ‘직선’으로 곧게 뻗은 고속도로만을 기대하곤 합니다. 가장 빨리, 가장 효율적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성공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마주하는 인생의 지도는 예상치 못한 곡선과 우회로, 그리고 가파른 언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스 힐먼은 그의 저서 《하나님의 타이밍》에서 우리가 꿈꾸는 ‘직선’의 길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곡선’의 길이 충돌할 때, 우리는 종종 그것을 실패나 지체라고 오해한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목적지로 바로 보내시기보다, 그 길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먼저 만드시기 위해 곡선의 길을 허락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암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4).
파도가 서퍼를 숙련되게 만들 듯, 우리 삶의 시련이라는 곡선은 우리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가는 하나님의 정교한 손길입니다.
직선도로에서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오스 힐먼은 “가장 빠른 길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길을 돌아가야 하는 곡선의 시간에 속도가 줄어들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야망의 속도를 멈추고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법을 배웁니다. 그 늦춰진 속도 덕분에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성찰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곡선의 길은 힘들고 고단하지만, 그 길을 통과하며 얻은 경험은 우리 영혼의 근육이 됩니다. 요셉이 종살이와 감옥이라는 긴 곡선을 지나지 않았다면 한 나라를 품을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직선으로만 달린 사람은 작은 장애물에도 쉽게 넘어지지만, 굽이굽이 인생의 곡선을 통과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해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지혜와 내공을 갖게 됩니다.
혹 여러분 중에서, 지금 인생의 긴 곡선을 지나고 계신가요? 그것은 목적지를 잃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빚어가시는 ‘거룩한 준비의 시간’입니다. 곡선의 유연함 속에서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발견하는 복된 주일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모두 행복한 주일 되세요.
뛰어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좌’와 ‘우’라는 서슬 퍼런 이념의 잣대로 서로를 가르고, 화합보다는 배제와 혐오의 언어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담벼락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 안까지 침투해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같은 십자가 아래 모여 앉아 있으면서도,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형제가 아닌 ‘적’으로 간주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명령합니다. 우리는 그 모든 인간적인 장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1. 안디옥 교회, 다름을 넘어 ‘그리스도인’이 되다
초대 교회의 역사를 바꾼 안디옥 교회는 태생부터 ‘다양성’의 용광로였습니다. 정통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 그리고 이방인들이 섞여 살며 세례나 율법 해석 등 여러 면에서 갈등의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문화적, 혈통적 차이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차이를 복음 안에서 뛰어넘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비로소 ‘그리스도인 (Christianos)’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붙여주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정체성이 그 어떤 인간적 분류보다 우선되었기 때문입니다.
2. 베드로의 환상, 종교적 신념을 뛰어넘는 복음의 순종
사도행전 10장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상종하지 않는 것이 평생의 신념이었던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는 ‘속되다 하지 말고 잡아 먹으라’는 환상을 통해 그의 견고한 종교적 고정관념을 깨뜨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 말씀은 베드로가 가졌던 선민의식의 장벽을 뛰어넘게 했습니다. 결국 그는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고, 성령의 임재를 목격하며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어떤 특정한 집단에 갇혀 있지 않음을 증명했습니다.
3. 하나됨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와 성령의 매는 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둔 마지막 기도에서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11)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주님이 원하신 것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영적인 완전한 일치였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에베소서 4장을 통해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 됨’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교만과 편견을 ‘뛰어넘어’ 그 하나 됨 안으로 들어갈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이념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야 합니다. 좌와 우의 프레임을 뛰어넘어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를 반대하는 이를 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귀한 영혼으로 바라보며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장벽을 뛰어넘을 때, 세상은 다시금 우리를 향해 “과연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제 20차 시드니 & 국제 성시화 대회는 성령으로 하나되면, 시드니가 변화되는 역사적 장이 될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Make every effort to keep the unity of the Spirit through the bond of peace.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
세상에는 논리와 계산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거대한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그 내면의 태도가 세상을 압도하는 자들입니다. 필자는 이들을 두 가지 범주로 조명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무서운 사란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임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성취도 ‘대충’ 해서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죽기를 각오했다는 것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선언임과 동시에, 목표를 향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남김없이 쏟아붓겠다는 치열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인간의 모든 두려움은 ‘생존의 본능’에서 기인하는데, 그 본능마저 초월해버린 사람에게는 더 이상 위협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친 파도를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파도를 타고 넘으며 시련을 동력으로 삼아 항해를 완수하는 노련한 선장과 같습니다. 파도를 두려워하면 배는 전복되지만, 파도에 맞서 죽기를 각오하고 키를 잡는 자만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사람의 의지는 그 어떤 방해물도 뚫고 나가는 ‘돌진하는 힘’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예를 드렴 이순신 장군을 들수가 있습니다.
단 12척의 배로 333척의 왜군 대함대를 마주했던 이순신 장군은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외쳤습니다.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그에게 수적인 열세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파도와 같은 적진을 정면으로 돌파한 그의 기개는 전 부대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었고, 결국 인류 해전사에 유례없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두 번째로 무서운 사람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핍’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처절히 인정하기에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힘을 빌려 씁니다.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는 자신의 지혜가 아닌 전능자의 지혜로 일을 도모하기에, 세상이 그들의 다음 행보를 감히 예측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이 자신을 ‘양’으로, 하나님을 ‘목자’로 표현한 것은 영적 지혜의 정점입니다. 양은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없고 먹을 곳을 찾을 능력이 부족하지만, 목자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를 때 가장 안전하고 풍성한 길로 인도받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는, 곧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의 능력이 되는 놀라운 영적 원리를 체득한 사람들입니다. 역사적으로 예를 들면 하나님의 은혜로 고아원을 운영한 죠지 뮬러 입니다.
조지 뮬러는 평생 수천 명의 고아를 돌보면서도 사람에게 도움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임을 고백하며 무릎으로 하나님의 보물창고를 열었습니다. 5만 번 이상의 기도 응답을 받은 그의 삶은, 자신의 결핍을 하나님의 채우심으로 연결한 위대한 본보기입니다. 하나님이 실시간으로 공급하시는 그를 세상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9)

김병근 목사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엠마오상담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