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2025년도 이제 후반전으로 달리기 시작을 했습니다. 7월도 중반이 넘어 섰습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어릴 적에는 더디게 만 가던 하루가, 청년기에는 쏜살같이 지나고, 어느새 중년이 되고 나면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세월이 달려가는 것을 느낍니다. 60대는 60K, 70대는 70k, 80대는 80k로 달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을 보며 한숨 짓지만, 과연 우리는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기만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충분히 이 빠른 흐름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 더 풍요롭게 누릴 수 있습니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무계획적인 삶 때문입니다. 목표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은 기억에 남지 않고, 어느새 사라져 버립니다. 반대로,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는 삶은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줍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할 일을 계획하고, 그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하는 과정은 시간을 더욱 밀도 있게 만듭니다. 작은 성공들이 모여 더 큰 성취감을 주고, 이는 다시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나가는 동력이 됩니다. 계획은 단지 ‘할 일 목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의지를 담은 선언이며, 실천은 그 의지를 현실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시간이 빨리 흐르지 않도록 붙잡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밥값을 하고 사는 자세” 입니다. 여기서 ‘밥값’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노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사회, 나아가 인류에 기여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능동적인 태도를 뜻합니다. 이웃을 돕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삶은 시간에 깊이를 더합니다. 의미 없는 소비와 쾌락으로 채워진 시간은 금방 증발해 버리지만, 가치 있는 생산과 나눔으로 채워진 시간은 기억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우리의 시간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생산하고 기여하는 데 사용할 때, 시간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돌려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의 개념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비록 물리학적인 현상이지만, 이를 우리의 삶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극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에게 시간은 더 느리게 간다는 이론처럼, 우리 삶에서 몰입하고 집중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즐거운 일을 할 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에 깊이 몰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지루하거나 고통스러운 시간은 느리게 갑니다. 즉,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상대적인 길이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시간을 주체적으로 활용하고, 의미 있는 경험으로 채울수록, 그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보다 더욱 길고 풍성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끊임없는 호기심과 배움의 자세는 시간을 확장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할 때 우리의 뇌는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새로운 연결망을 형성합니다. 이는 마치 ‘시간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과 같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단조롭고 빠르게 느껴지겠지만, 매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도전에 부딪히는 사람에게 시간은 훨씬 더 다채롭고 길게 느껴질 것입니다. 독서, 새로운 언어 배우기, 취미 활동 등은 우리의 시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심히 흘려보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주체적으로 붙잡고 의미 있는 경험들로 채워나갈 것인가? 그 선택은 온전히 우리의 몫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이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오늘 다시 한번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6)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because the days are evil.
과거의 상처 : 리모델링하기
저는 크리스천 상담가로서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며 한결같이 마주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깊은 상처와 아픈 기억들이 현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이런 탄식을 내뱉곤 합니다. “우리 인간의 뇌에 컴퓨터처럼 ‘삭제 (delete)’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뇌는 외부적인 침해나 심각한 질병에 의한 손상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뇌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그 경험을 기억 속에 저장하며,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반응하는 놀라운 기관입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경험의 일부가 되며, 때로는 삶의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삭제’는 불가능할 뿐더러,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의 상처 입은 기억들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아가야 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의 뇌가 상처받은 기억들을 ‘없애는’ 대신, ‘다시 재구성 (reconstruction)’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는 마치 낡고 허름한 건물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는 대신, “리모델링 (remodeling)”하여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의 사건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사건이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반응과 해석은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기억의 ‘리모델링’, 어떻게 가능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상처 입은 기억들을 ‘리모델링’하여 새롭게 지어갈 수 있을까요? 크리스천 상담의 관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1.관점의 변화 (Reframing the Narrative): 감사와 긍정을 끌어내기
상처를 입힌 사건 자체는 바꿀 수 없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겪은 고통을 하나님의 더 큰 그림, 즉 그분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다시 보는 연습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절망적인 질문에서 벗어나, “이 아픔 속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가르치고 계실까?”,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배우는 것, 성장하는 것, 그리고 작은 은혜의 조각들을 찾아낼 때 기억의 부정적인 색채는 점차 옅어지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됩니다. 결국 감사와 긍정으로 해석하는 엘입니다.
2.새로운 경험으로 채우기 (New Experiences & Memory Creation): 사랑과 지지로 덧입히기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 새로운 벽돌을 쌓고 새로운 가구를 배치하듯이, 우리의 기억도 긍정적이고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질 때 재구성됩니다. 특히 공동체(교회) 안에서 경험하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 안전한 관계 속에서 쌓이는 긍정적인 기억들은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 위에 새로운 층을 형성합니다. 상담사와의 관계 또한 이러한 새로운 경험의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사랑과 용납을 경험하며,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새로운 자아상이 형성될 때, 과거의 상처가 주는 영향력은 점차 약해집니다.
3.회개와 용서 (Repentance & Forgiveness): 묶인 것을 풀어주는 열쇠
자신을 용서하기: 과거의 잘못이나 실수, 또는 상처를 허용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비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분의 은혜로 자신을 용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가 나를 용서한다”는 고백은 치유의 중요한 시작입니다.
타인을 용서하기: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용서는 쉽지 않지만, 그들을 용서하는 것은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상처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통로입니다. 이는 한 번에 이루어지는 감정적 결정이라기보다는, 분노와 원한을 내려놓기 위한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용서를 통해 상처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는 ‘활성화된’ 기억이 아닌, ‘지나간’ 기억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4.영적 훈련과 실천 (Spiritual Disciplines): 매일의 양식으로 강건해지기
기도: 고통과 상처를 주님께 솔직하게 아뢰고 위로와 치유를 구하는 시간을 꾸준히 갖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연결을 통해 내면의 힘을 길러줍니다.
말씀 묵상: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에 새로운 진리를 심고, 과거의 왜곡된 생각과 인식을 교정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정체성을 말씀을 통해 확립해 나갑니다.
감사: 고통 속에서도 감사할 것을 찾아보는 연습은 우리의 관점을 전환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감사는 마음의 밭을 기름지게 하여 새로운 씨앗이 자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합니다.
때로는 전문가의 찾아가 상담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뇌는 ‘삭제’ 버튼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재구성’하고 ‘리모델링’할 수 있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과 노력, 그리고 공동체의 사랑을 통해 가능한 일입니다. 과거의 상처가 더 이상 현재를 지배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의 발판이 되어 새로운 삶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지어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김병근 목사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엠마오상담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