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인간의 힘 : 육체와 영혼의 두 차원
인간은 누구나 힘을 갈망한다.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근육을 단련하는 사람도 있고, 기도와 묵상 속에서 내적 평안을 찾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힘’은 단순히 근육의 크기나 체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힘은 두 가지 차원에서 발현된다. 하나는 육체적 힘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 힘이다.
육체적 힘은 근육과 신경계, 호르몬, 그리고 에너지 대사 과정에서 비롯된다. 근육 섬유가 발달할수록 더 큰 힘을 낼 수 있고, 신경계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근육을 동원하느냐에 따라 힘의 질이 달라진다. 또한 테스토스테론이나 성장호르몬 같은 호르몬은 근육 성장과 회복을 돕는다. 결국 육체적 힘은 생물학적 구조와 훈련, 영양, 휴식의 균형 속에서 강화된다. 그러나 이 힘은 나이, 질병, 피로라는 한계에 부딪히며, 환경적 제약을 벗어나기 어렵다.
반면 영적 힘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발생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가 새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이사야 40:31). 영적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 성령의 임재, 그리고 믿음과 소망에서 비롯된다. 기도와 말씀 묵상, 예배와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내적 평안과 담대함을 경험한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라고 고백하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를 분명히 했다.
육체적 힘은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난다. 무거운 것을 들고, 오래 달리며, 강한 체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영적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세계에서 발현된다. 억울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태도,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붙들어 일으키는 사랑이 바로 영적 힘의 증거다.
결국 인간은 두 가지 힘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육체적 힘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기초이고, 영적 힘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근원이다. 몸과 영혼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진정한 전인적 존재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육체적 힘이 쇠할 때에도 영적 힘은 우리를 붙들어 주며, 영적 힘이 약할 때에도 육체적 힘은 삶을 유지하게 한다. 이 두 힘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지만, 결국 인간을 온전히 세우는 하나의 축으로 만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체력 단련에 몰두하지만, 영적 힘을 소홀히 한다. 그러나 진정한 강인함은 근육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에서 나온다. 육체적 힘과 영적 힘을 함께 추구하는 삶, 그것이 바로 인간을 온전히 세우는 길이다.
다가올 시대를 예비하라
우리는 인간의 모든 지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즉 범용 인공지능 시대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AGI는 특정 작업에 국한된 ‘좁은 인공지능’을 넘어,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며, 금융, 의료,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인류의 생산성을 미지의 영역으로 끌어올릴 새로운 ‘지능 종’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AGI의 도래로 인해 노동 시장은 대규모 변화를 겪게 될 것이며, 앞으로 10~20년 내에 현재 직업의 30%에서 40%가 자동화되거나 소멸할 것이라는 경고가 지배적입니다. 이는 데이터 입력, 단순 사무, 운송 등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직무를 AGI 시스템이 압도적으로 대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은 공감 능력, 비판적 사고, AGI 관리 및 활용 능력 등 인간 고유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해야 합니다. 다가올 시대를 ‘예비’하는 것은 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재정의하는 것입니다.
대규모 노동력 대체로 인한 실업과 사회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대중에게 기초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필연적인 미래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원전 로마 제국이 대규모 실업자 계층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했던 ‘빵과 서커스 (Panem et Circenses)’ 전략을 놀랍도록 재현하는 것입니다. AGI가 생산성을 극대화하면, 국가는 잉여 생산물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기초 수당 (빵)’을 제공할 것입니다. 또한, 늘어난 여가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극도로 몰입적인 가상현실, 게임 등의 엔터테인먼트가 현대판 ‘검투사 제도 (서커스)’로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노동이 아닌 소비와 유희가 삶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로마의 평화’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
AGI 시대의 물질적 풍요와 유희는 인간의 가장 깊은 영혼의 갈증—존재의 의미와 궁극적 평안—을 결코 채울 수 없습니다. 과학은 효율성을, 인공지능은 지식을 줄 뿐, 영혼을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교회의 사명이 명확해집니다. 교회는 과학이 넘볼 수 없는 영혼의 영역에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심화될 공허함에 성령을 통한 기쁨과 만족을 제공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초대 교회의 순수한 복음과 능력이 회복되는 ‘오순절의 재현’을 준비하며, 담대하고 열렬하게 성령의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과학이 제공할 수 없는 영원한 가치를 붙들고 소망의 빛을 비추는 일에 전념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모두 모두 행복한 주일하루 되세요
생명체는 성장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자 존재의 증명은 바로 ‘성장’입니다. 성장을 멈추는 것은 결국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미세한 세포 하나부터 광활한 숲을 이루는 거대한 나무까지, 살아있는 것은 매 순간 자라나고 변화합니다.
우리 집 담장에 심은 나무를 보십시오. 때때로 울타리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가위로 적당하게 잘라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멈추지 않고 다시 또 자라나게 됩니다. 나무가 그렇게 끊임없이 가지를 뻗고 위로 향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적인 외침입니다. 만약 나무가 성장을 거부하고 멈춰 선다면, 외부 환경과 노화에 저항할 힘을 잃고 자신이 도리어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성장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다시 반대로 말하면, 죽어가는 것들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여름철, 전원 코드를 뽑아 놓은 선풍기를 보십시오. 당장 날개가 멈추지 않고 관성에 의해 계속 돌아가기 때문에 여전히 작동한다고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선풍기 속도는 줄어들다가, 마침내 완전히 멈추게 될 것입니다.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겉모습만 남아있을 뿐, 생명의 에너지는 이미 단절되었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 ‘성령의 코드’를 점검하라
우리의 영적 생활도 이 자연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우리 개인의 신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면, 그 생명은 반드시 ‘새로운 성장’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엡 4:13) 자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개인의 신앙 성숙이 멈추거나 쇠퇴할 경우, 마치 코드가 뽑힌 선풍기처럼 과거의 관성으로 움직이는 듯 보일 뿐, 진정한 영적 활력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영적 정체는 곧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성장이 멈추거나 쇠퇴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심각하게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 안에 생명을 공급하던 성령의 코드가 뽑혀 있지는 않은가?
- 거룩성과 기도로 말씀을 받으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34절에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장의 가장 완벽한 모본을 보여주셨는데, 그 성장의 원동력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영적인 리더는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예민한 영적 귀를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코드가 단단히 꽂혀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리더는 다음과 같은 헌신이 필수적입니다.
거룩성 유지: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거룩한 삶을 유지할 때 성령과의 통로가 깨끗하게 유지됩니다.
코드를 연결하는 행위가 기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전력 공급을 확인하고, 그분의 뜻을 받는 수신 감도를 높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곧 영적 양식이 되며, 이는 성장을 위한 가장 확실한 동력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멈춰 있다면, 우리는 선풍기가 멈추는 속도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 정체는 쇠퇴의 시작입니다. 개인의 신앙 성숙이 멈추거나 교회가 쇠퇴하는 상황을 목도할 때, 우리는 단순히 환경을 탓할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성령의 코드가 혹시 뽑혀 있지 않은지를 겸손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은 역동적인 성장을 통해 증명됩니다. 다시 일어나 말씀과 기도로 코드를 확실하게 점검하고 연결하십시오. 오직 성장하는 생명체만이 생명의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감정의 쓰레기 치우기
매주 정해진 요일, 집 문 앞에 놓이는 쓰레기봉투는 도시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질서입니다. 만약 구청의 청소차가 단 일주일만, 혹 몇 주일만 쓰레기 수거를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요? 도시는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와 오물로 뒤덮여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공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물리적인 쓰레기가 환경을 파괴하듯, 우리의 마음속에도 매일 치워야 할 ‘감정의 쓰레기’가 쌓입니다.
1. 매일 쌓이는 내면의 찌꺼기
날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찌꺼기들의 가장 흔하고 주된 성분은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직장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 가족 간의 해소되지 않은 서운함, 불공정한 상황에서 느낀 분노, 혹은 스스로에게 실망한 좌절감 등이 모두 이 스트레스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이 감정의 쓰레기들은 크기에 관계없이 우리의 마음이라는 방에 차곡차곡 쌓이게 됩니다. 어떤 날은 적게, 어떤 날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게 쌓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정 쓰레기들이 제때 처리되지 않고 마음의 구석에 쌓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물리적인 쓰레기보다 훨씬 더 독하고 치명적인 악취를 풍깁니다. 이 악취는 만성적인 우울감, 이유 없는 불안, 삶의 에너지를 앗아가는 무기력의 형태로 나타나 우리 자신의 건강한 삶을 잠식합니다. 마음은 쓰레기 더미에 깔려 제대로 된 사고나 평온한 휴식을 취하기 어려워지고, 생리학적인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켜 신체적인 질병으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2. 감정 쓰레기가 만들어내는 질병과 악취
처리되지 않은 감정의 쓰레기는 우리의 삶을 다방면으로 오염시킵니다. 내부적으로는 건강을 파괴하고, 외부적으로는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쓰레기 더미가 밖으로 악취를 풍기듯, 내면의 원망과 불만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기운을 전파합니다. 더 위험한 것은, 내부에서 곪아 터지기 직전의 쓰레기 더미가 사소한 자극에도 갑자기 터져 나오는 현상입니다. 쌓여 있던 분노와 좌절이 순간의 ‘고함치기’나 격렬한 비난의 형태로 폭발할 때, 이는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기며 감정적 악취를 퍼뜨립니다. 결국 감정 쓰레기의 폭발은 관계를 단절시키고, 우리 자신을 사회적 고립이라는 더 큰 쓰레기통에 가두는 결과를 낳습니다.
억압되거나 축적된 감정의 쓰레기는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와 내분비계에 직접적인 부하를 걸어 심각한 생리적 질병을 만들어냅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은 우리 몸을 끊임없이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상태에 두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과도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생리적 긴장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질병으로 현실화됩니다.
심혈관 질환: 지속적인 혈압 상승과 혈관 수축은 고혈압을 유발하며, 이는 심장마비나 뇌졸중(뇌혈관 질환)의 위험을 현저히 높입니다.
소화기계 문제: 스트레스는 위산 분비를 증가시키고 장 운동을 교란하여 과민성 대장 증후군(IBS), 역류성 식도염, 위궤양 등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면역 체계 약화: 코르티솔의 과다 분비는 면역 기능을 억제하여 감기, 독감 등 바이러스성 질환에 쉽게 노출되게 하며, 만성 염증 상태를 만들어 자가면역 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높입니다.
근골격계 통증: 긴장된 감정은 근육을 경직시켜 만성적인 두통(긴장성 두통), 어깨 결림, 허리 통증을 유발하며, 통증 악순환의 고리를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감정의 쓰레기를 처리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정신 건강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의 가장 핵심적인 시스템을 서서히 무너뜨려 생존까지 위협하는 중대한 건강 문제입니다.
3. 마음속의 ‘정기 수거일’을 지정하라
우리가 매주 정해진 시간에 쓰레기를 배출하듯이, 우리 개인에게도 반드시 ‘마음속의 ‘정기 수거일’이필요합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감정 해소가 아닌,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청소 습관입니다.
첫째, 쓰레기 인식입니다. 정기적인 자기 성찰 시간을 통해 어떤 감정의 찌꺼기가 쌓였는지 솔직하게 확인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둘째, 쓰레기 분류 및 배출입니다. 쌓인 감정은 용서(원망 배출), 기도(분노 중화), 또는 건강한 대화(서운함 소통)라는 수단을 통해 외부에 안전하게 내다 버려야 합니다. 셋째, 쓰레기 발생 최소화입니다. 충분한 휴식과 즐거운 취미 생활은 새로운 쓰레기가 쌓이는 것을 막아주는 환기구 역할을 하며,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길러줍니다.
건강한 삶이란 집 앞을 깨끗이 치우는 습관에서 시작되듯, 우리 마음속의 감정 쓰레기를 매일 정리하고, 정기적으로 내다 버리는 ‘의식적인 청소 습관’이야말로 행복하고 평온한 삶, 그리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비결입니다.
마라톤, 누구나 달릴 수 있는 도전
우리는 흔히 마라톤을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한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42.195km라는 거대한 숫자는 선천적인 능력 없이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벽은 숫자가 가진 압박감만큼 두껍지 않을 수 있습니다. 훈련만 한다면 누구나 완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 근거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필자는 지난 20년간 약 30,000km을 달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10km을 달렸습니다. 누구나 건강을 위해서 아래 글을 보시면 도전할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성인 인간은 하루에 1,500에서 2,000kcal를 소비합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데 필요한 순수 에너지 소비량은 대략 3,000kcal 내외입니다. 이 수치만 보면 언뜻 엄청난 에너지 소비처럼 보이지만, 우리 몸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저장 에너지는 8,000kcal에서 최대 12,000kcal에 달합니다. 이는 탄수화물(글리코겐)과 지방 형태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에너지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누가나 이것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즉, 마라톤은 순수한 ‘에너지’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몸이 가진 연료통을 비우는 행위가 아닙니다. 3,000kcal는 우리 몸이 쉽게 감당하고 동원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누구나 완주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답은 단순한 칼로리가 아닌, 그 칼로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장시간의 부하를 견뎌낼 ‘시스템의 내구성’에 있습니다.
마라톤 완주의 진정한 조건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시스템을 훈련을 통해 강화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1) 심폐 지구력 (Cardiopulmonary Endurance)
칼로리가 충분해도, 심장과 폐가 장시간 운동에 필요한 산소를 근육에 공급하고 노폐물을 처리하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달리기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꾸준한 장거리 훈련은 심장 박출량을 늘리고 폐의 산소 교환 효율을 높여, 몸이 지치지 않고 달리기를 지속할 수 있는 엔진 자체를 강화합니다.
2) 근육 및 관절 내구성 (Musculoskeletal Durability)
마라톤은 칼로리 고갈보다 무릎, 발목, 허리 같은 관절과 근육에 가해지는 반복적인 충격과 부담이 훨씬 더 큰 도전입니다. 약 4만 2천 번의 충격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인대, 건, 근육이 버텨내야 합니다. 훈련은 근육을 강화하고, 달리기에 적합한 자세를 교정하며, 관절 주변의 지지력을 높여 이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방어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3) 훈련을 통한 적응 (Training Adaptation & Efficiency)
장거리 달리기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몸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더 잘 사용하도록(지방 대사 효율) 훈련해야 하며,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 조절, 그리고 레이스 중 수분과 전해질을 관리하는 기술이 필수적입니다. 이 모든 것은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숙련의 영역입니다.
4) 정신적 요인 (The Mental Wall)
마라톤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벽(The Wall)’은 보통 30km 지점 이후 찾아오는 극도의 피로와 고통입니다. 이때 신체적인 어려움과 함께 ‘포기하고 싶다’는 강력한 심리적 유혹에 직면합니다. 꾸준한 장거리 훈련, 특히 ‘롱 런(Long Run)’은 이 벽을 예상하고, 극복하는 정신적인 근육을 길러줍니다. 고통을 관리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정신력은 달리기 훈련의 가장 중요한 부산물 중 하나입니다. 101살의 마라톤 완주기록을 가진 팅이라는 인도인은, 이 30km 이후에 기도로서 극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라톤 완주는 타고난 유전자가 아니라, 훈련이라는 조건을 충족했을 때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목표입니다. 당신의 몸은 이미 마라톤에 필요한 칼로리를 가지고 있으며, 체계적인 훈련은 그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심폐 시스템과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관절 내구성을 선물합니다.
마라톤은 3,000kcal를 쓰는 도전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몸의 8,000kcal 잠재력을 끌어내고,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강인함까지 얻는 여정입니다. 지금 당장 마라톤을 뛸 수 없는 이유는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단지 당신의 시스템이 그 부담을 견딜 만큼 ‘적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달리고 위 사항에 대한 훈련을 한다면, 마라톤은 더 이상 꿈이 아닌, 당신의 발아래 펼쳐질 현실이 될 것입니다. 마라톤 완주후의 삶의 자세는 긍적적이고 나도 할수 있다는 삶의 자신감이 주어지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김병근 목사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엠마오상담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