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자유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빛을 되찾은 날입니다. 우리는 단지 나라를 되찾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그 자유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영어에 자유는 Liberation과 Freedom이 있습니다. 둘 다 자유와 관련된 개념이지만, 뉘앙스와 사용되는 맥락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Liberation은 외적 자유를 강조하고, Freedom은 내적 자유를 의미합니다. 광복절은 ‘Liberation Day’입니다. 외적 억업으로부터 해방된 날입니다. 내적 자유 없는 외적 자유는 방종이 될 수 있고,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한반도는 좌우 이념의 격전지로 변했습니다. 좌익과 우익은 신탁통치 방안을 두고 극심한 대립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한반도에 두개의 정부가 수립되고, 급기야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광복 80년이된 지금도 한반도는 허리가 잘려 아파하고 있습니다.
3 종류의 자유가 있습니다. 외적 자유, 내적 자유 그리고 영적 자유입니다. 외적 자유는 보이는 환경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내적 자유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 자유는 죄와 사망이라는 근원적인 억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 외적 자유 (External Freedom)
외적 자유란 인간이 외부의 억압이나 물리적, 제도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정치적 독립이나 감옥에서의 석방, 표현과 종교의 자유, 경제적 자립과 같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외적 자유는 인간의 존엄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기도 합니다.
광복절은 빛을 다시 찾은 날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의 고통, 말과 글을 금지당한 문화적 억압, 생명의 위협 앞에서 절규하던 그 시절은 외적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광복절은 일제로부터의 민족 해방과 주권 회복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외적 자유의 회복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외적 자유는 외부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보장되거나 제한될 수 있으며, 법과 제도, 권력 구조에 크게 의존합니다. 따라서 국가나 사회는 외적 자유를 보장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자유가 억압된다면, 인간의 존엄 자체가 침해받게 됩니다.
그러나 외적 자유는 인간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으시고, 그들의 내면까지 새롭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은 육체는 자유로웠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신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결국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외적 자유가 내적 자유의 통제를 받지 못하면 방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내적 자유 (Inner Freedom)
내적 자유란 인간이 외부의 상황이나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태도, 선택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자기 성찰과 인격의 성숙을 통해 형성되며, 외적인 조건과는 독립적으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내적 자유를 지닌 사람은 환경이 어려워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으며, 외부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의 기준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외적 자극과 내적 반응 사이에는 ‘마음의 쿠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건 자체는 통제할 수 없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보다 태도입니다. 태도는 사건을 넘어 삶의 방향과 의미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다윗은 사울 앞에서 복수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렸고,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처럼 내적 자유는 외적 억압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강인한 힘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앞에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신 장면은 최고의 내적 자유의 본보기입니다.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입니다. 그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 직접 수용소 생활을 경험했지만, 그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의 생존 경험과 그로부터 도출한 ‘의미의 치료’(logotherapy)을 다룬 책입니다. 프랭클은 삶의 원동력은 행복이나 쾌락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살아야 할 의미를 가진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 영적 자유 (Spiritual Freedom)
영적 자유란 인간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자유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영적 자유는 율법의 멍에에서 해방되어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며,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그 결과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은 이 자유가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인간이 스스로 얻을 수 없었던 이 자유를 값없이 선물로 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고,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외적 자유, 내적 자유 그리고 영적 자유는 각각 독립된 개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육을 가진 전인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외적 자유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되며, 내적 자유는 그 자유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성숙한 태도를 말합니다. 영적 자유는 이 모든 자유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자유입니다. 이 세 가지 자유는 단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룹니다.
바울은 자유가 단순히 억압에서 벗어나는 해방이나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랑으로 타인을 섬기기 위한 능동적이고 목적 있는 자유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라고 말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이 율법의 속박과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그 자유가 육체의 기회, 즉 자기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자유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는 삶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여기서 ‘종 노릇 하라’는 표현은 강제적인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인 헌신과 섬김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유의 실천은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진정한 자유는 단지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자신을 드릴 수 있는 사랑의 자유로 향해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From의 자유에서 To의 자유로 향해야 합니다. 애굽으로 ‘부터의 자유’는 가나안으로 ‘향하는 자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사랑으로 이웃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자유를 얻어, 사랑으로 종이 되는 사람입니다.

구원의 세 단계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 2:12)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로마서 13:11)
구원의 세 단계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구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단순히 죽은 뒤 천국에 가는 보증 정도로만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훨씬 더 깊고 풍성합니다. 성경에서 구원(Salvation)이란 단어는 ‘소테리아'(σωτηρία)입니다. 소테리아는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심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영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소테리아는 영혼구원을 넘어 전인구원, 개인구원을 넘어 사회구원에 사용됩니다.
구원은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이라는 긴장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 구원의 완성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세 단계를 깊이 살펴보며,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점검하고자 합니다.

- 칭의(Justification) – 초기적 구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
칭의는 초기적 구원입니다. 칭의란 의로운 분이 의롭다고 칭할 때 비로서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워지기에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칭의의 개념은 법정의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 법정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우리가 사형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그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무죄 판결을 내려주신 것과 같습니다. 이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선언은 우리의 신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의인이 된 것입니다. 어둠의 자식에서 빛의 자녀로 바꾸었습니다. 베드로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벧전 2:9).
오늘날 “나는 착한 사람이니까 천국 갈 수 있어”라고 예수를 믿지 않는 교만한 사람도 있고, 반대로 “나는 나쁜 일을 너무 많이 했어”라는 절망 속에서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칭의의 복음은 우리의 교만을 무너뜨리고, 동시에 우리의 절망을 치유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인간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성화(Sanctification) – 지속적 구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 2:12)
성화는 지속적 구원입니다. 칭의로 시작된 구원이 우리의 삶 속에서 점점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우리의 순종이 함께할 때, 거룩은 일상의 삶 속에서 열매 맺습니다. 말씀과 기도, 훈련과 절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칭의로 출발선에 선 우리는 멈추지 않고, 성화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듬어져 갑니다. 성화는 단순히 도덕적 성숙이 아니라,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의 여정입니다. 성화란 구원받은 자가 구원 받은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예수를 믿게 되는 것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예수 믿는 사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지만, 믿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봅니다. 전도를 할 때 제일 걸림돌은 교회가 서로 싸우고 분열하는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싸움이 있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왜 여기서 싸워요, 여기가 교회인 줄 아세요.” 언젠가 국회에서 논쟁이 있었을 때 “당신 나에게 설교하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설교가 듣기 싫으면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마5:16)
성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곧바로 완전한 신앙인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난과 훈련, 성령의 인도 가운데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갔습니다. 그의 서신에는 자신이 날마다 죽고(고전 15:31),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고백(고후 4:16)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로마서 7장에서는 바울의 내적 갈등과 영적 고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고백합니다(롬 7:15).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죄의 법 아래로 끌어간다”고 말하며, 속사람과 육신 사이의 전쟁을 묘사합니다 (롬 7:22–23). 절정에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탄식합니다(롬 7:24). 바울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답게 살지 못하는 ‘성결의 문제’로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에 들어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였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성령의 역사인 것처럼, 성결 역시 성령의 역사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화는 평생의 여정임을 잘 보여줍니다. 사람은 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고, 인생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 영화(Glorification) – 궁극적 구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로마서 13:11)
영화는 궁극적 구원입니다. 신자가 죽음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구원은 완전하게 성취됩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긴 사명을 다 완수하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이고, 죽는 다는 것은 일을 다 이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상칠언의 “이제 다 이루었다”는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게 있다고 합니다. 죽으면 더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하면서 왜 그렇게 안 가려고 하는지 이해할 없다고 합니다. 영화의 단계에서는 더 이상 죄와 눈물이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거룩과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작년에 부산외대에서 열린 세계 선교사 대회에서 만난 장순흥 총장님은 5C로 성경을 5분만에 요약하여 전도합니다. 첫번째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Creation), 두번째는 인간의 죄(Crime), 세번째는 예수그리스도(Christ), 네번째로 교회(Church), 다섯번째로 요한계시록의 완성(Completion)입니다. 영화는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는 영광의 상태입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지만, 그날에는 온전히 알게 되고, 온전히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구원은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구원은 칭의로 시작하여, 성화로 이어지고, 영화로 완성됩니다. 구원의 세 단계는 각각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이미 받은 칭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오늘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성결하게 살며, 장차 올 영화의 영광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주기철 목사
주기철 목사는 일제강점기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이자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그의 삶은 신앙의 절개와 민족의 자유를 지키려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생애 개요
출생: 1897년 11월 25일, 경상남도 웅천군 (현 창원시 진해구)
사망: 1944년 4월 21일, 평양형무소에서 고문 후 순교
학력: 웅천초등학교,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1926년 졸업)
교회 사역: 부산초량교회, 마산문창교회, 평양 산정현교회 초빙목사 (1936년부터)
- 신사참배 반대와 순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교계와 성도들을 결집하여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주도
1938년부터 1944년까지 수차례 투옥과 고문을 겪음
1940년 마지막 설교: 「다섯 종목의 나의 기원」
1944년 평양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순교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 표창 추서
- 신앙과 설교
그의 설교는 “일사각오 (一死覺悟)” 정신을 강조하며, 자기 희생을 통한 신앙 실천을 촉구
- 기념과 유산
주기철 목사 기념관: 창원시에 위치, 그의 생애와 신앙을 기리는 전시 운영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창원특례시가 기념관을 방문하며 그의 정신을 재조명 (*2024년 6월 24일)

상담은 소통이다 (Counseling is Communication)
‘상담은 소통이다’이다. 이 말은 단순히 대화를 주고받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 마음과 마음이 깊이 맞닿아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과정이다. 상담은 단어와 문장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의 틈새, 표정의 변화, 호흡의 리듬, 침묵의 무게, 그리고 눈빛 속에 담긴 무언의 이야기를 발견해 가는 여정이다. 이 여정의 중심에는 경청, 공감, 그리고 관계 형성이라는 세 개의 견고한 축이 자리하며, 이 축들이 맞물려 돌아갈 때 상담은 비로소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경청의 공간
상담에서의 첫걸음은 언제나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듣기’는 단순히 소리를 귀로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다. 이는 마음의 귀를 활짝 열고, 눈과 몸 전체, 전 존재를 내담자에게 맞추어 집중하는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이다. 내담자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 문장 사이의 망설임, 목소리의 떨림, 호흡의 길이와 깊이, 시선이 머무는 곳, 그리고 길고 무거운 침묵 속에는 그의 삶과 상처, 희망과 두려움이 녹아 있다. 상담자는 이런 모든 비언어적 신호를 민감하게 감지하며, 그 신호들을 퍼즐처럼 맞추어 내담자의 내면 풍경을 그려나간다. 이런 경청의 공간 속에서 내담자는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끼며, 심리적 안전기반이 단단히 마련되는 것이다.
공감의 다리
공감은 단순한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내담자의 감정을 함께 느끼고 그 감정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과정이다. 상담자는 언어적 표현뿐 아니라 눈빛의 부드러움, 몸의 기울기,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제스처와 같은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나는 당신의 마음을 느끼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러한 공감은 마치 강 위에 놓인 튼튼한 다리처럼, 내담자가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안전하게 건너오도록 돕는다. 때로는 “그 상황에서 정말 힘드셨겠군요”라는 한 문장이 내담자의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주어,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눈물과 함께 흘러나오게 한다. 이때 공감은 단순한 상담 기법이 아니라, 상담자의 진정성이 내담자의 상처에 스며들어 치유를 시작하게 하는 따뜻한 손길인 것이다.
관계의 형성
상담의 관계는 결코 위계적이지 않다. 상담자는 지식을 가진 전문가이지만, 심판자나 권위자가 아니라 내담자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동행자이다. 이 동행의 출발점은 ‘있는 그대로의 수용’이다. 내담자가 어떠한 모습으로, 어떤 이야기를 안고 오든 그것을 판단하거나 수정하려 하지 않고 먼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이렇게 형성된 수용의 분위기 속에서 내담자는 서서히 마음의 방어막을 내리고, 자신의 깊은 내면을 탐색할 용기를 얻게 된다. 신뢰가 단단해질수록 변화의 씨앗이 싹트고, 그 변화는 상담자와의 대화와 관계 속에서 서서히 자라나 현실 속 행동과 태도의 변화로 이어진다. 결국 상담은 언어를 매개로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를 통해 변화와 성장을 이끄는 살아있는 소통의 예술인 것이다.
상담은 경청에서 출발해, 공감을 통해 연결되고, 관계 형성을 통해 변화로 나아가는 흐름 속에서 진정한 소통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상담은 단순한 대화를 넘어, 인간 존재의 깊은 차원과 만나고, 그 안에서 생명력 있는 치유와 회복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Counseling is Communication.
The phrase ‘counseling is communication’ goes beyond the mere technical exchange of conversation. It’s a delicate process of connecting hearts and minds, allowing us to see into each other’s inner selves. Counseling doesn’t exist solely in words and sentences. Rather, it’s a journey of discovering the gaps in language, the shifts in facial expressions, the rhythm of breathing, the weight of silence, and the unspoken stories contained in eyes. At the heart of this journey lie three solid pillars: listening, empathy, and relationship building. Only when these pillars interlock and revolve does counseling truly unleash its healing power.
A Space for Listening
The first step in counseling always begins with “listening,” not speaking. However, this “listening” isn’t simply a passive act of receiving sounds. It’s an active and intentional act of opening the ears of the heart and focusing the eyes, body, and entire being on the client. Every word a client uses, every hesitation between sentences, every tremble in their voice, the length and depth of their breathing, the places their gaze lingers, and every long, heavy silence is imbued with their life, their wounds, their hopes, and their fears. The counselor is sensitive to all these nonverbal cues and, like a puzzle piece, pieces them together to create a picture of the client’s inner landscape. In this space of attentive listening, the client feels fully accepted, and a solid foundation of psychological safety is established.
The Bridge of Empathy
Empathy goes beyond mere “understanding.” It is the process of sharing the client’s emotions and bearing their weight. Beyond verbal expression, the counselor conveys the message, “I feel what you’re feeling,” through nonverbal cues like a soft gaze, a tilt of the body, and a nod. This empathy, like a sturdy bridge over a river, opens the door of the client’s heart and helps them cross safely. Sometimes, a single phrase like, “That must have been really difficult for you,” resonates deeply within a client, causing suppressed emotions to flow out, accompanied by tears. Empathy, in this case, is not simply a counseling technique; it’s a warm touch, where the counselor’s sincerity seeps into the client’s wounds and initiates healing.
Building a Relationship
The relationship in counseling is never hierarchical. While the counselor is a knowledgeable expert, they are not judges or authorities, but companions who walk alongside the client on their journey. This companionship begins with “acceptance as is.” Regardless of the client’s appearance or story, the counselor accepts them as they are, without judging or modifying them. Within this atmosphere of acceptance, the client gradually lets down their emotional defenses and gains the courage to explore their inner selves. As trust solidifies, the seeds of change sprout, and this change gradually grows through conversation and connection with the counselor, leading to real-world behavioral and attitude shifts. Ultimately, counseling is a living art of communication, fostering relationships through language and fostering change and growth through those relationships.
Counseling begins with listening, connects through empathy, and moves toward change through relationship building, where true communication is achieved. Through this process, counseling goes beyond simple conversation to connect with the deeper dimensions of human existence, opening the way to vibrant healing and recovery.

Communication의 Channel
① 송신자(Sender)
커뮤니케이션은 먼저 송신자, 즉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송신자는 자신의 생각, 감정, 정보 등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담자는 내담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메시지를 준비합니다.
② 부호화(Encoding)
송신자는 자신의 내면의 생각이나 감정을 부호화합니다. 즉, 말, 글, 표정, 몸짓 등으로 표현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이때 사용하는 언어, 어조, 비언어적 표현은 메시지의 의미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지쳐 보입니다”라는 말이 따뜻한 목소리로 전달되면 공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냉정한 말투로 전달되면 판단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③ 메시지(Message)
부호화된 표현은 이제 메시지가 됩니다. 메시지는 송신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며, 말뿐 아니라 표정, 눈빛, 침묵까지도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감정과 태도, 관계의 신호를 포함합니다.
④ 채널(Channel)
메시지는 채널을 통해 전달됩니다. 채널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말하기, 글쓰기, 전화, 이메일, 영상 등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상담에서는 대면 대화가 주요 채널이며, 비언어적 요소(눈빛, 자세, 거리감 등)도 중요한 채널로 작용합니다.
⑤ 수신자(Receiver)
메시지는 수신자, 즉 듣는 사람에게 도달합니다. 수신자는 송신자가 전달한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경험, 감정,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해석합니다.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상담자의 말을 듣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⑥ 해독(Decoding)
수신자는 받은 메시지를 해독합니다. 해독은 메시지를 의미 있는 정보로 바꾸는 과정이며, 이때 수신자의 심리 상태, 언어 능력, 문화적 맥락 등이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쳐 보인다”는 말이 어떤 내담자에게는 공감으로, 다른 내담자에게는 비판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⑦ 잡음(Noise)
메시지 전달 과정에는 종종 잡음이 발생합니다. 잡음은 메시지의 정확한 전달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의미합니다. 물리적 잡음(소음, 기술적 문제)뿐 아니라 심리적 잡음(불안, 방어, 오해), 문화적 잡음(언어 차이, 가치관 차이)도 포함됩니다.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불신, 과거 경험, 감정적 방어 등이 잡음이 되어 메시지의 의미를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⑧ 피드백(Feedback)
마지막으로, 수신자는 송신자에게 피드백을 보냅니다. 피드백은 메시지를 듣고 난 후의 반응으로, 말, 표정, 행동 등으로 표현됩니다. 피드백은 송신자가 자신의 메시지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메시지를 조정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반응을 통해 상담자가 자신의 표현을 조율하고, 더 깊은 공감과 이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당신은 지쳐 보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상담자의 마음에서 시작되어 언어로 표현되고, 내담자에게 전달되어 해석됩니다. 이 과정에서 내담자의 감정, 과거 경험, 문화적 배경이 영향을 미치며, 내담자는 그 말에 반응합니다. 이 모든 흐름이 전달 모델의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채스우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