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출애굽의 목적은? (출 19:1-6)
출애굽기는 이집트에서 핍박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 탈출기’이다. 출애굽기는 40장 구성으로 되어 있고,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시내산 도착 전과 도착 후이다. 1-18장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내산 도착 전까지, 19-24장은 시내 산 계약 체결과 율법 주셨고, 25-31장은 성막 설계도를 주셨다. 32-34장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우상숭배 사건, 35-40장은 성막 완성과 하나님의 영광의 강림사건을 다루고 있다. 출애굽은 단순히 애굽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다. 출애굽의 목적을 3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구원과 예배와 선교이다.
구원 공동체 (출 3:10)
히브리인들이 번성하여 지자 애굽 사람들이 근심을 하게 되었다. 이웃과의 전쟁이 일어날 때 적들과 연합하게 되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애굽 왕, 바로는 강한 고역을 시킬 뿐 아니라, 산파를 시켜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히브리 사람들은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미디안 광야의 목동이었던 모세를 불러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고 말씀하셨다.
10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바로는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었다. 1-3 재앙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고센에도 재앙이 임하였으나, 4-9 재앙은 애굽 사람들에게만 임했다. 재앙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10번째 장자의 재앙에는 바로도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10가지 재앙의 목적은 애굽 백성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출 8:10,22, 9:14)
10 재앙을 통해서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알게 한 것 같이, 코로나19 사태로 하나님을 아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피조물이 한계를 깨닫고 창조자인 하나님께 나오기를 기도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인간이 자신들의 교만을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예배 공동체 (출 3:12, 출 5:1, 출 8:1)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애굽의 목적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 모세는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출 5: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출 8:1) 출애굽의 목적은 ‘구원 공동체’를 ‘예배 공동체’로 만들기 위함이다.
갈라디아서는 ‘자유의 헌장’이다. 중심주제는 자유이고, 핵심 구절은 5:1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마라”. ‘종의 멍에’란 율법을 말한다. 은혜가 아닌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멍에’가 되었다. 율법이 예수께로 나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요한복음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했다. 자유를 자신의 육신을 위한 기회로 삼게 되면 방종이 된다. 방종이란 사회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으로 사회 규범 및 공중도덕을 어기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사랑으로 종이 되기 위한 자유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진정한 자유인’은 ‘진정한 종’이 될 때 완성된다.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글에서 이를 ‘종의 자유’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자유’가 될 때 완성된다.
선교 공동체 (출 19:5-6, 벧전 2:9)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다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이 말씀은 신약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계 5:10)와 잘 연결되어 있다. 제사장이란 죄인인 인간과 거룩한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제사장 역할을 하는 ‘선교사’이고, 교회는 제사장 나라인 ‘선교 공동체’이다.
선교 전문가 두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한 분은 깡통 교회로 유명한 이동휘 목사이고 다른 분은 나섬 공동체 대표인 유해근 목사이다. ‘나섬’이란 ‘나그네를 섬기는 공동체’란 뜻이다. 유해근 목사는 선교를 하다가 과도한 업무로 실명하였다. 이동휘 목사는 ‘바울 선교회’ 대표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사이다. 두 분 모두에게 ‘선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이동휘 목사는 “예수를 먼저 믿은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에게 예수를 전하는 것이다.”라고 했고, 유해근 목사는 “나그네를 순례자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그네는 목적지를 모르고 여행하는 사람이고, 순례자는 목적지를 알고 여행하는 사람이다. 인생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돛단배와 같다. 목적지가 없는 배는 표류하고, 목적지가 있는 배는 항해한다. 선교란 나그네를 순례자로 만드는 일이고, 표류하는 인생을 항해하는 인생으로 만든 것이다.
NSW 39년 동안 상원의원으로 봉직하고 있는 프레드 나일 목사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그는 1981년에 NSW 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국회는 나의 목회지라는 마음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목회자가 정치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나일 목사는 하나님에게 이 길이 하나님이 예비한 길이라면 3가지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다. 출근 첫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3가지 증거를 다 보여 주었다. 첫째는 국회가 과거에 교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국회를 개막하면서 주기도문을 하는 것이었고, 세 번째는 자신이 첫 번째 목사가 상원의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NSW 국회 최장수 상원으로 지금까지 국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이번 국회에 차별금지법(Anti-Discrimination)의 개정을 요청할 예정이다. 현행법은 ‘차별금지법’이란 이름으로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일 모래 국회에 가서 그를 만나 인터뷰할 예정이다.
출애굽의 목적은 단순히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들을 ‘예배 공동체’로 만들고, 더 나가 ‘선교 공동체’로 되어 주의 나라가 이땅에 건설되고 확장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행1:8) 과거에는 땅 끝으로 선교사들이 갔지만, 이제는 땅 끝이 우리에게로 오고 있다. 무슬림이 오고, 불교인이 오고, 힌두교인, 무신론자들이 시드니로 오고 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땅끝이고, 우리는 선교사이고, 우리가 속한 교회는 ‘선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인생의 무지개 (창 9:11-15)

‘무지개’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무지개는 ‘물+지게’로 구성되었다. ‘물’은 ‘물수(水)’의 ‘물’이고, ‘지게’는 ‘문’이다. 무지개는 물로 만든 ‘문’이란 뜻이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 무지개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는 ‘케쉐트’인데 고대 전쟁에서 사용하는 ‘궁수의 활’을 뜻한다. 영어로 무지개는 ‘Rainbow’로 Rain + Bow이다. ‘비로 만든 활’이다. 성경에서 무지개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에서 무지개는 ‘언약의 무지개’(창9:13), ‘영광의 무지개’(겔 1:28), ‘은혜의 무지개’이다.(계 4:3). 상징이란 보편적인 의미에 추가된 ‘다른 의미’를 암시하는 일체의 것들을 가리킨다.
1) 언약의 무지개 (창 9:13)
창세기는 시작에 대한 기록이다. 1-11장은 세상의 시작, 12-50장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이다. 1-11장은 4사건과 12-50장은 4사람의 이야기다. 4사건은 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의 사건이고, 4 사람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의 질서가 깨지면서 세상은 신음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극단의 조치를 취하여 홍수로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의인이었던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만드시기로 결심했다. 홍수가 그치고 하나님은 다시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세기 9:8-17절에는 “언약”이라는 말이 7번, “무지개”라는 말이 3번, “영원”이라는 말이 3번이나 나온다. 이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자녀들 사이에 맺으신 언약이다. 언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리스’는 계약(契約)이란 말인데, 말씀으로 이루어진 계약이어서 ‘언약’(言約)이라 일컫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언약인 노아언약에서 하나님은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않으리라”하시고 그 언약의 표시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둔다고 하셨다.
성경을 영어로 ‘Testament’ 혹은 ‘Covenant’라고 하는데 이는 ‘언약의 책’이란 의미이다. 옛 언약이 구약(舊約)이고 새 언약이 신약(新約)이다. 두 언약은 ‘모세의 언약'(출 24:8)과 ‘새 언약'(렘 31:31, 눅 22:20)에 입각하고 있다. 옛 언약은 율법의 언약이고, 새 언약은 복음의 언약이다. 법궤를 언약궤(Ark of the Covenant), 증거궤 또는 하나님의 궤 등으로 불렀다. 법궤의 뚜껑인 자비석(Mercy Seat)은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이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계시하여 주었다.(출 25:22) 계약은 맺는 것이 아니라, 자른다고 해야 한다. 계약을 맺을 때 동물을 자르고 그 사이로 지나가기 때문이다. 구약의 계약은 제사장이 제물을 제단에 드림으로 완성되고, 신약은 예수그리스도가 친히 제사장과 제물이 되시어 제단인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구속의 계약이 완성되었다.
2) 영광의 무지개 (겔 1:28)
에스겔은 597년 2차 포로 때 바벨론으로 잡혀 간 제사장이다. 그는 30세 때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이 에스겔에게 나타났다.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그 권능이 에스겔을 뒤덮는 일이 일어났다. 첫째로 네 생물의 얼굴을 가진 그룹(cherubim)이었다.(5~14) 두 번째로 본 것은 바퀴다.(15~21) 세 번째로 본 것은 보좌였다.(22~28) 4 생물의 얼굴은 사자, 소, 사람, 독수리였다. 이 생물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상징하기도 한다.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겔 1:28) 에스겔은 자기가 보는 환상이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임을 알게 되고, 바로 땅에 엎드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28) 하나님은 패역한 백성에게 나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을 하시고, 에스겔은 하나님이 주신 두루마리를 먹고,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3:3)라고 고백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하나님은 자기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전할 것을 명령하셨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3:17) 에스겔의 전반부 32장까지는 심판과 회개에 대한 메시지이고, 예루살렘이 멸망되자 33장부터 48장까지는 회복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재현될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에스겔서의 핵심장인 37장에 마른 뼈들의 환상에서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영광(Glory)이란 히브리어로 카보드(Kabod), 헬라어로는 독사(Doxa)로 하나님의 현존, 임재(The presence of God)를 뜻한다. 영광은 하나님의 현현에서 나타난 광체 또는 빛남을 말한다. 신약에서는 독사(Doxa)로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상대방을 높이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님의 구약의 ‘카보드’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 현현을 뜻한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3) 은혜의 무지개 (계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보좌란 하나님이 앉는 자리이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심판과 은혜를 주시기도 한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시 9:4),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시 9:7)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라고 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보좌인데 그 곳은 ‘은혜의 자리’이다. 그곳에서 긍휼하심을 받는 것이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는다. ‘긍휼‘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시는 자비를 말한다. 은혜란 헬라어로 ’카리스‘로 자격 없는 자에게 조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가야 한다. ‘담대히’는 원어로 ‘파레이시아’ 인데 ‘자유’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자유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 사관학교에서 이웃을 방문하여 설문조사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만약 지금 당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크리스천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천국에 가려면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자기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국은 착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 은혜로 가는 곳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은 언약백성으로, 영광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어야 한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선지자로 부름 받았다.(사 6:1) 이사야는 웃시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등 4명의 왕을 거치면서 40여 년간 선지자로 활동을 했다. 이사야가 활동하는 시기는 북왕국이 앗수루에 의하여 멸망할 때이고, 남 유다는 위기에 처한 시기이다. 이사야서는 66권으로 되어 있으면 1-39권까지는 심판, 40-66장까지는 회복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이사야’란 이름과 같이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은 우상을 숭배할 때이다. 우상이란 다른 신을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다. 자녀가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물질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명예가 우상이 될 수도 있다. 솔로몬의 말년 실정과 아들인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이스라엘은 BC 930년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갈라진다. 북왕국은 BC 722년에 멸망하고, 남왕국은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한다. 북왕국이 멸망할 당시 왕은 호세아였고, 남왕국은 왕은 히스기야였다. 열왕기 상하는 남북왕국의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였다. 열왕기상 12장에 분열되어 열왕기하 17장에 북왕국이 멸망하고, 열왕기하 마지막 장인 25장에 남왕국은 바벨론에 의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사야 36-37장은 북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 왕, 산헤립은 남유다를 침공하여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히스기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지만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으로 적을 물리친다. 38-39장은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으나 기도하여 15년간 생명이 연장되었다. 바벨론의 사신이 축하하러 찾아왔을 때, 무기고 및 보물 창고를 다 보여주었다. 이 사실을 알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멸망될 것이고 예언을 했다. 이사야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져 남왕국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다. 그리고 이사야 전반부인 39장이 막을 내린다.
40장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헨델의 ‘메시야’는 53장으로 되었는데, 시작은 이사야 40장 ‘회복의 서곡’으로 시작된다. 40장 1절은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Comfort, comfort my people’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성령을 ‘보혜사’라고 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영어로는 4가지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Helper(돕는자), Counsellor(상담자), Advocate(대언자) 그리고 Comforter(위로자)이다. 성령은 위로자이다. 신약에는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아 증인의 삶을 살고, 구약의 요엘 2:28절에 성령이 임하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이라고 했다. 성령이 임하면 나이를 초월하여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지금 상황은 바벨론 포로지만 곧 회복될 것이라는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오늘이 힘든 것은 오늘의 문제보다 내일이 없을 때 오늘이 힘들다. 지옥이란 내일이 없는 오늘이다. 파스칼은 팡세란 책에서 3종류의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 내일 죽을 사람, 내일 결혼식을 앞둔 사람, 이 세 사람 중에 오늘을 누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물론 결혼식을 앞둔 사람이다. 내일은 내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일은 반드시 희망이어야 한다.
3절에는 ‘외치는 자의 소리여’, 6절에는 ‘말하는 자의 소리여’, 9절에는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라고 칭하고 위로의 말씀을 전하라고 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마 3:4) 구약에 기름 부은 받은 직책이 3가지가 있다. 왕, 선지자, 제사장이다.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고, 제사장은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이며,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 앞에 선 사람이다. 우리는 본문에서 3가지 외침을 들을 수 있다.
5절 :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영광(Glory)이란 히브리어로 카보드(Kabod), 헬라어로는 독사(Doxa)로 하나님의 현존, 임재(The presence of God)를 뜻한다. 영광은 하나님의 현현에서 나타난 광체 또는 빛남을 말한다. 신약에서는 독사(Doxa)로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상대방을 높이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님의 구약의 ‘카보드’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 현현을 뜻한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출애굽기는 1-18장은 모세가 이스라엘의 출애굽 탈출을 탈출하여 시내산 도착 전까지, 19-24장은 시내 산 계약 체결과 율법 주셨고, 25-31장은 성막 설계도를 주셨다. 32-34장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우상숭배 사건, 35-40장은 성막 완성과 하나님의 영광의 강림사건을 다루고 있다. 40장 성막이 완성하고 법궤를 안치하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출40:34)고 하였다. 출애굽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난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40:38) 구름과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8절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사 40:8)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39),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성경은 영적인 구원 뿐 아니라 성도의 삶의 나침반과도 같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7)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9절 : 하나님을 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항상 잊어버리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습관적인 불평을 일삼아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쉽게 망각했다. 가나안을 향하는 길에 에돔 왕이 자기 땅을 지나가는 것을 용납지 않아, 우회하게 되어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였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왜 우리를 애굽 땅에서 데리고 와서 이 고생을 시키고 만나와 같은 박한 음식을 먹게 하며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고 다시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았다.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셨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범죄를 용서하라며, 모세에게 하나님께 대신하여 기도해 달라고 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고 누구든지 놋뱀을 보는 자마다 살 것이라고 했고, 놋뱀을 보는 자들은 죽지 않았다.(민 21:4-9)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요 3:14-15)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의 절망에 빠진 백성을 위하여 이사야에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코로나 사태로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위로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 모두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격려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몇 칠 전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격려의 손 편지를 받고 감격하였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손 편지로 힘든 시기를 주님의 도움으로 이기라는 격려의 편지였다. 구세군 대장은 유튜브를 통하여 페이스 북으로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호주 사령관과 지방장관도 메일로, 유튜브로 중심어린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제 우리도 일어나 오늘 이사야의 말을 함께 외치기를 원한다. 교회가 교회만을 위하여 존재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교회가 세상을 위하여 존재할 때 세상은 변화된다. 모이는 교회가 방주의 역할을 한다면, 흩어지는 교회는 구조선의 역할을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교회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