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 칼럼

스트레스는 적이 아니라 신호다
스트레스 검사를 하다 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게 나타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과 업무를 비교적 잘 감당하며 살아간다. 반면 같은 수준의 점수를 받고도 이미 탈진 상태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음을 느끼며 깊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스트레스 수치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중요한 위험 신호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반대로 스트레스 점수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기질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는 성향을 가진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가 적고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 오래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스트레스 검사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보인 사람이 있었는데, 살펴보니 10년 이상 같은 직종에서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가정환경 역시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삶은 안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도전과 성장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을 가능성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 역시 비교적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과거에는 타인의 말이나 반응에 쉽게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았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수치심으로 이어졌던 기억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소한 말일 수 있지만, 예민한 사람에게는 작은 언어적 자극도 깊은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말은 사람의 마음과 정서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흐르면서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감정 조절 능력도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예민함은 여전히 삶의 일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예민함 자체가 약점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그것은 하나의 기질적 특성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태도다. “왜 나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잘 받을까”라고 자책하기보다, “나는 상황과 감정에 더 섬세하게 반응하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민함은 공감 능력과 책임감, 관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고 스트레스 환경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변화가 지나치게 많은 환경을 피하거나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동시에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점진적으로 키워가는 노력도 중요하다. 작은 도전에서 시작해 점차 범위를 넓혀 가거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연습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스트레스는 단지 마음의 문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은 정서적·신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몸에도 다양한 신호로 나타난다. 충분한 수면과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과 같은 기본적인 자기돌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트레스는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삶의 일부다. 문제는 스트레스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치하는 데 있다.
자신의 스트레스 신호를 읽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만이 삶을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걸어갈 수 있다.
혼잣말이 바꾸는 불안의 온도
지인의 권유로 난생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기본 자세조차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숙련자들 사이에 서 있으니 긴장이 앞섰다. 스윙은 번번이 빗나갔고, 공은 힘없이 굴러가기 일쑤였다. 그때 무심코 나온 혼잣말은 이랬다. “왜 이렇게 안 되지?”, “또 못 쳤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돌이켜보면, 그 순간 나를 위축시킨 것은 서툰 실력보다도 스스로를 향한 냉혹한 평가였다. 실수는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내 혼잣말은 그것을 ‘능력 부족’이나 ‘실패’로 규정하고 있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에게 건네는 말의 태도였다.
인간은 하루 종일 자신과 대화하며 살아간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끊임없이 자신을 해석하고 평가한다. 그 혼잣말은 때로 약이 되지만, 때로 독이 된다.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언어는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도전을 지속하게 하지만, 반복되는 자기 비난과 부정적 단정은 불안을 증폭시키고 행동을 위축시킨다. 혼잣말은 감정의 온도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조절 장치다.
한 청년은 연인과의 이별 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생각은 점차 확신이 되었고, 불안은 커졌으며, 그는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모든 사람이 그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현실이 그를 고립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반복해 들려준 말이 그의 세계를 좁히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은 감정을 만들고, 감정은 행동을 결정한다는 단순한 원리가 여기에 적용된다.
오늘날 불안은 가장 흔히 경험되는 정신적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예측하기 어려운 경제 상황, 기후 변화와 재난, 국제 분쟁과 사회적 갈등은 일상의 안정감을 흔든다. 특히 미래를 준비해야 할 젊은 세대는 더 큰 불확실성 앞에 서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불안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불안을 어떻게 해석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그 출발점이 바로 ‘혼잣말’이다.
불안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혼잣말의 방법은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칭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실패했다” 대신 “○○는 실패했다” 혹은 “너는 실패했다”라고 표현해 보면 심리적 거리가 생겨 감정의 강도가 완화된다. 상황과 자아를 분리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둘째, 시제를 바꾸는 것이다.
불안이 고조될 때 우리는 “지금 숨을 못 쉬겠다”, “지금 너무 불안하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숨을 못 쉴 것 같았다”, “매우 불안했다”와 같이 과거형으로 전환하면, 뇌는 최고조의 순간이 이미 지나갔다고 인식하며 긴장을 낮춘다.
셋째, 단정 대신 질문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단정은 사고를 닫아 버린다. 반면 “정말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사고를 열어 두고, 뇌가 자연스럽게 다른 가능성을 찾도록 한다. 흑백 논리를 완화하고 사고의 유연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넷째, 자기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부정적 혼잣말은 이미 상처받은 자신에게 또 다른 상처를 더한다. 대신 “괜찮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애써 왔다”와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야 한다. 자기 자비는 자기 연민과 달리,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신을 지지하는 태도다.
다섯째,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불안하다”는 막연한 표현은 두려움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멀어질까 봐 불안하다”, “경제적 불안정이 염려된다”처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문제의 윤곽이 드러나고 현실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여섯째, 문제 중심이 아닌 해결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한다.
“나는 왜 이렇게 잘못이 많은가”라는 자책은 정체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대신 “지금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실천이 반복되면 자기 효능감이 회복되고, 불안은 점차 완화된다. 초점이 과거 실수에서 미래 가능성으로 이동할 때 정서의 흐름도 바뀐다.
혼잣말은 사소해 보이지만 반복되면 사고 습관이 되고, 결국 삶의 태도가 된다. 우리는 외부 불확실성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을 무너뜨리는 언어 대신, 자신을 세우는 언어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다.

김훈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