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 Justice”를 읽고
마이클 샌델 / 이창신 역 / 김영사 / 2010년 5월 24일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생각보다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각 단락을 읽을 때마다 여러 생각들을 비교하고 판단할 능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존 스튜어트 밀, 홉스, 노직, 롤스, 센델 등을 살폈다. 그제서야 공리와 자유주의(자유방임주의, 자유평등주의), 목적론과 존재론, 공동체주의 등이 손에 잡혔다.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가 교수로 재직하는 하버드대학에서 했던 강의 ‘Justice’를 책으로 정리한 것으로, 당시 학부생 전체 7천명의 재학생중 1천명이 수강할 정도로 인기였다고 한다. 이 책이 2010년 한국어로 번역되어 발간되고 이후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드라마 소품처럼 장식용으로 들고다닐 정도로 많이 팔렸다는 비아냥이 붙을 정도다. 많이 읽히든, 들고 다녔든 간에 한국 출판계와 사회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정의(Justice)란 oo이다”라고 개념을 정리하고 있지 않다. 대신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게 한다.
정의는 무엇이고, 내가 내릴 수 있는 정의란 무엇일까?
내 선택과 판단이 내 의지와 전혀 다른 결과가 따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나 정부가 판단한 정의가 옳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하나?
정의는 정말 시시비비를 판단하나?

– 행복에 대하여
소수를 무시하고 다수의 찬성을 따르는 것이 옳은가?
다수가 원하고 행복하다면 그게 최대 행복이 맞는가?
– 자유에 대하여
자유사회의 시민은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자유시장은 공정한가?
– 덕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잘못인 때도 있는가?
도덕적으로 살인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가?
도덕을 입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 공동선에 대하여
개인의 권리와 공익은 상충하는가?
자유 민주 사회에서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과 이견이 난무하는 이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처럼 샌델은 “정의란 oo이다”라고 개념정리하지 않고 공리주의, 자유방임주의, 칸트주의와 아리스토렐레스적 존재론과 목적론적 입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상황과 예·예화(역사, 해외 토픽, 문헌 사례, 법적 공방,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들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온 에피소드 등) 등을 나열하고, 샌델 자신의 공동체주의도 소개한다.
저자 : 마이클 샌델 (Michael J. Sandel)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1980년부터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쳤고, 본서를 저작할 즈음인 2010년 샌델의 수업은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혔다. 존 롤스 이후 정의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인정받았다.
대표 저서로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완벽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 등이 있다.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는 중국 철학 연구자들이 마이클 샌델의 이론과 저작을 동양 철학의 시각으로 분석한 평론과 그에 대한 샌델의 답변을 함께 모은 것이다. 동서양의 철학적 대화를 살펴봄으로써 마이클 샌델의 ‘정의’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역자 : 이창신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번역을 전공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팩트풀니스’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더 패스’ ‘마인드웨어’ ‘성과를 내고 싶으면 실행하라’ ‘성격이란 무엇인가’ ‘숨겨진 인격’ ‘하버드 교양 강의’ ‘생각에 관한 생각’ ‘기후대전’ ‘정의란 무엇인가’ ‘신의 언어’ ‘욕망하는 지도’ ‘창조자들’ 등 다양한 책을 번역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강 옳은 일 하기
행복, 자유, 미덕│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구제금융을 둘러싼 분노│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철로를 이탈한 전차│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도덕적 딜레마
2강 최대 행복 원칙 – 공리주의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반박 1: 개인의 권리│반박 2: 가치를 나타내는 단일통화│대가를 받고 치르는 고통│존 스튜어트 밀
3강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 자유지상주의
최소국가│자유시장 철학│마이클 조던의 돈│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4강 대리인 고용하기 – 시장과 도덕
징집과 고용, 무엇이 옳은가?│자원군 옹호│대가를 받는 임신│대리 출산 계약과 정의│외주 임신
5강 중요한 것은 동기다 – 이마누엘 칸트
칸트의 권리 옹호│행복 극대화의 문제점│자유란 무엇인가?│사람과 사물│도덕이란 무엇인가? 동기를 찾아라│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정언명령 대 가언명령│도덕과 자유│칸트에 대한 의문│섹스, 거짓말, 그리고 정치
6강 평등 옹호 – 존 롤스

계약의 도덕적 한계│합의만으로는 부족할 때: 야구 카드와 물이 새는 변기│합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때: 흄의 집과 유리닦이│이익인가, 합의인가? 샘의 자동차 수리│완벽한 계약 상상하기│정의의 원칙 두 가지│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평등주의 악몽│도덕적 자격 거부하기│삶은 불공평한가?
7강 소수집단우대정책 논쟁
시험 격차 바로잡기│과거의 잘못 보상하기│다양성 증대│인종별 우대정책은 권리를 침해하는가?│인종분리정책과 반유대적 할당제│백인 우대 정책?│정의는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대학이 경매로 입학생을 뽑아도 될까?
8강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 아리스토텔레스
정의, 텔로스, 영광│목적론적 사고: 테니스 코트와 《곰돌이 푸》│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행동으로 터득하기│정치와 좋은 삶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사죄와 손해배상│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도덕적 개인주의│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정의와 자유│공동체의 요구│이야기하는 존재│합의를 넘어서는 의무│연대와 소속│애국심이 미덕인가?│연대는 우리 사람만 챙기는 편애인가?│충직이 보편적 도덕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정의와 좋은 삶
10강 정의와 공동선
중립을 지키려는 열망│낙태와 줄기세포 논란│동성혼│정의와 좋은 삶│공동선의 정치
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내용소개
저자 마이클 센델은 정의를 말하며 공리주의, 자유방임주의, 칸트주의·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 대해 예화를 들어 설명하며 공동체주의를 소개한다.
1강에서 행복을 극대화하고, 자유를 존중하며, 미덕을 기르는 행위의 의미, 그리고 그와 관련한 이상이 서로 충돌할 때, 무엇이 옳은 일인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대립한다.
센델은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구제금융을 둘러싼 분노’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철로를 이탈한 전차’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도덕적 딜레마’ 등을 예를 들어 설명하며 정치철학이 이런 여러 상황을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주장을 다듬고, 민주 시민으로 우리가 직면한 여러 대안에 도덕성을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다.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행복의 극대화, 자유, 미덕)’ 단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칸트,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고대부터 근현대 정치철학의 흐름 속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인 ‘행복의 극대화’, ‘자유’, ‘미덕의 추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이론들의 장단점들을 실제 일어난 이야기들과 논쟁들을 통해 살펴본다.
첫째로 ‘정의와 행복의 극대화를 연관짓는 이론은 무엇인가?’ 시장 중심의 사회에서 경제적 풍요와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은 오늘날의 정치 논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잘살게 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풍요로움은 행복에 기여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 생각을 들여다보려면 공리주의에 눈을 돌려야 한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둘째로 ‘정의와 자유를 연관짓는 이론들은 무엇인가?’ 이것은 개인의 권리 존중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정의가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오늘날의 정치에서 행복 극대화라는 공리주의 사고만큼이나 익숙하다. 정의는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자유에서 출발해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여러 유파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낸다. 가장 치열한 정치 논쟁은 자유방임주의와 공평주의 진영 사이에서 일어난다. 자유방임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자들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이다. 정의란 성인들의 합의에 따른 자발적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데 달렸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공평주의 진영에는 평등을 옹호하는 이론가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규제 없는 시장은 공정하지도 자유롭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정의를 구현하려면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을 바로잡고 모든 이에게 성공할 기회를 공평하게 나눠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
셋째로 ‘정의가 미덕, 좋은 삶과 밀접히 연관된다고 보는 이론은 무엇인가?’ 오늘날의 정치에서, 미덕 이론은 문화적으로 보수주의, 종교적으로 우파와 동일시된다. 도덕을 법으로 규정한다는 발상은 자유주의 사회 시민들이 보기에, 자칫 배타적이고 강압적인 상황을 불러올 수 있는 경악할 만한 발상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사회라면 미덕과 좋은 삶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은 공히 모든 이념에 깃들어 있으며 다양한 정치 활동과 주장에 영감을 주었다.

정의를 설명하는 다양한 견해들이 실제 일어난 이야기들 속에서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소개한다.
1) 태풍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생활재의 가격폭리처벌법에 대한 찬반 논쟁(13~21쪽)은 재화와 용역을 판매하는 사람이 자연재해를 이용해, 시장이 견디기만 한다면 어떤 가격을 불러도 상관없는가? 가격폭리 금지가 구매자와 판매자의 자유로운 거래를 방해할지라도 정부는 가격폭리를 금지해야 할까? 와 같이 무엇이 과연 옳은 일인가의 문제, 곧 정의에 관한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은 단지 개인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사회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며, 이에 대답하려면 정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2) 이라크 전에 참전한 군인 중 상이군인훈장 수여 대상(22~25쪽)의 자격에 대한 국방부의 선택은 옳았는가에 관한 논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에 담긴 도덕 논리를 그대로 보여 준다.
3) 2008~2009년 구제금융을 둘러싼 논쟁(25~32쪽)은 무모한 투자로 회사를 파산으로 몰고 간 사람들에게 수백만 달러의 상여금을 지급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의 중심에 정의와 도덕적 자격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경제적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 잘못을 저지른 은행과 투자사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대단히 불공정한 일이라는 생각의 갈등 속에서 과연 구제 금융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이 보여주는 딜레마는 정치철학의 중대한 문제를 드러낸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의 미덕을 장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은 미덕에 관한 서로 다른 개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시민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고대 정치사상과 근대 정치사상을 가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누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결정하려면,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주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식부터 심사숙고해야만 무엇이 정의로운 법인지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18세기의 칸트부터, 20세기의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정치철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권리를 규정하는 정의의 원칙은 미덕과 최선의 삶에 관한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각자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현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대조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정치를 움직이는 정의에 관한 일반인들의 주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매우 복잡한 그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는 경제적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같지만, 그러한 주장에 찬성하거나 맞서면서 어떤 미덕이 영광과 포상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좋은 사회가 장려해야 하는 생활방식은 무엇인지에 관해서, 풍요로움과 자유를 지지하면서도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가닥 끈을 완전히 놓지 못한다. 정의에는 선택뿐만 아니라 미덕도 포함되는 생각이 뿌리 깊다. 그러므로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인간에게 있어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
2강 ‘최대 행복 원칙 : 공리주의’에서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반박 1: 개인의 권리’ ‘반박 2: 가치를 나타내는 단일통화’ ‘대가를 받고 치르는 고통’ ‘존 스튜어트 밀’을 언급하며 “공리가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자문하고 “도덕은 공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때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을 막는 것 일체를 의미한다.
샌델은 개인의 권리가 짓밟힐 가능성과 가치를 단일 통화로 평가하는 것이 비인간적이라는 두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공리주의를 비판한다. 첫 번째로 그는 공리주의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소수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으므로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이익이 얼마나 많은지와 상관없이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은 피해 받는 개인에게 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그는 공리주의가 중요한 도덕적 문제를 쾌락과 고통이라는 하나의 저울로 측정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모든 가치를 동일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다면 편익을 위한 비용을 분석해 인간의 생명에도 가격을 매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샌델은 목숨을 비용으로 계산해 사회적으로 맹렬히 지탄을 받은 사건들을 언급하며 모든 것을 하나의 저울로 평가하려는 생각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정서라고 말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두 가지 비판으로부터 공리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공리주의에 인간적인 원칙을 더한다. 우선, 밀은 “쾌락을 추구하는 도덕 원칙은 인권을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장기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극대화하려면 먼저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여 소수의 의견이 평가될 기회를 얻는다면 사회는 독단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이 관습과 관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최대 행복과 인권 존중은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 비판에 의하면 공리주의는 모든 도덕적 가치를 쾌락의 질이 아니라 양을 통해 판단한다. 따라서 셰익스피어 박물관보다는 동물학대를 통해 비뚤어진 쾌락을 충족하는 투견장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밀은 인간의 존엄성이란 개념을 통해 이 비판을 반박한다. 인간에게는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구인 존엄성이 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인간의 능력을 더 이끌어내는 고급쾌락과 그렇지 못한 저급쾌락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샌델은 여전히 공리주의가 도덕적 기초로 부적절하다는 것을 두 가지 근거를 통해 보여준다. 첫 번째로, 샌델은 공리주의가 여전히 개인의 권리에 대한 설득력 있는 도덕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밀의 공리주의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그 자체로 존중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샌델은 밀이 공리주의와 무관한 존엄성이라는 도덕적 이상에 기대며 공리주의를 벗어났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밀의 공리주의에서는 욕구만으로 무엇이 고급이고, 저급인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3강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 자유지상주의’에는 ‘최소국가’ ‘자유시장 철학’ ‘마이클 조던의 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란 예와 예화로 “그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와 사회에 타고난 것 모두 행운일 뿐”이라며 자유지상주의의 허실을 지적한다. 자유지상주의자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 자체가 개인의 자유권 침해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조건에만 위배되지 않으면 그 소유물을 가질 자격이 있으며 평등하든 불평등하든 정당하다”고 본다. 이때 그의 성공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빚을 진 것도 고려해야 함을 말한다. 내가 나를 소유한다면 나는 내 노동도 소유해야 한다. 세금을 통해서 내 노동의 결과를 강탈한다면 이는 국가나 공동체가 나의 부분적 소유주임을 주장하는 행위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그 돈이 더 절실하다.
4강 ‘대리인 고용하기 : 시장과 도덕’에는 ‘징집과 고용, 무엇이 옳은가?’ ‘자원군 옹호’ ‘대가를 받는 임신’ ‘대리 출산 계약과 정의’ ‘외주 임신’ 등을 통해 시장과 도덕을 말한다.
자유시장은 과연 공정한가? 자유시장 옹호의 두 가지 논거는 첫째, 자유지상주의자의 견해다. 자발적 교환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길이며, 자유시장을 간섭하는 법은 개인의 자유침해다. 둘째, 행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공리주의의 관점으로 자유시장이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원리로 거래 당사자 둘 다 이익을 얻는다고 말한다.
시장회의론자들은 시장에서의 선택이 늘 자유롭지만은 않다고 반박한다. 또한 재화나 사회적 행위는 돈으로 사고팔 경우 질이 더 떨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징집과 고용, 무엇이 옳은가?’ 징병제도는 미국의 개인주의 전통을 거스르는 일이였다. 따라서 남북전쟁 당시 징집을 원치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대신 보내는 일이 많았다. 이는 부자들의 전쟁, 가난한 자들의 싸움이라는 비난에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대리인을 고용할 권리는 그대로 두고, 정부에 300달러를 내면 병역을 면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목숨에 가격을 매기는 셈이기에 대리복무에 비해 인기도 덜했다. 실제로 20만명 정도가 법적으로 징집대상자인데, 이중 8만이 면제비용을 지불, 7만여명이 대리복무를 해서 실제 복무한 대상자는 4만여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대리복무제도에 대해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비판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100%자원병 제도 역시 원리적으로는 별 다를 바가 없다. 왜냐하면 남북전쟁시에는 부자가 직접 돈을 지금해서 자신의 복무를 대신했다면, 오늘날은 가난한 자들이 돈을 벌기위해 부자들이 낸 세금을 월급으로 받아 복무를 대신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부자는 군에 가지 않고 가난한 자들만 군에 입대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다음 세 가지의 병역 의무 이행 방법중에 어떤 것이 가장 정당한 방법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징병제, 유급 대리인을 허용하는 징병제, 시장체제(자원군제도) 이중 어느 제도가 정당하다 생각되는가?
대리출산 문제에 대해서 1심 법원은 당사자들의 선택의 자유를 반영한 자유지상주의적 거래로 아이와 돈으로 양측이 모두 이익을 얻는다는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거로 대리출산에 대한 계약을 지지하였고, 1심 판결에 대한 상고를 받은 대법원은 이에 대해 대리모의 선택이 전적으로 자발적이었는가에 대한 당시의 그녀의 상황에 주목함과 동시에 대리 출산이 적어도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판매하는 옳지 않은 행위라는 반박을 바탕으로 계약은 무효라는 판결이 났다.
5강 ‘중요한 것은 동기다 : 이마누엘 칸트’는 ‘칸트의 권리 옹호’ ‘행복 극대화의 문제점’ ‘자유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물’ ‘도덕이란 무엇인가? 동기를 찾아라’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 ‘정언명령 대 가언명령’ ‘도덕과 자유’ ‘칸트에 대한 의문’ ‘섹스, 거짓말, 그리고 정치’을 통해 칸트의 ‘인간 그 자체로서의 존재 가치’를 강조한다. 이마누엘 칸트는 의무와 권리에 대해 다른 어떤 철학자보다 분명하고 영향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칸트가 말하는 도덕이란 행복 극대화를 비롯한 어떤 목적과도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도덕은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칸트는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현대의 보편 인권 개념을 예고한 것이다. 인간만이 그 자체가 목적이면서 존재만으로도 절대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그렇다면 칸트가 말하는 자유와 도덕의 개념은 무엇일까? 칸트가 생각하는 자유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개념이다.
6강 ‘평등 옹호 : 존 롤스’에는 ‘계약의 도덕적 한계’ ‘합의만으로는 부족할 때 : 야구 카드와 물이 새는 변기’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때 : 흄의 집과 유리닦이’ ‘이익인가, 합의인가? 샘의 자동차 수리’ ‘완벽한 계약 상상하기’ ‘정의의 원칙 두 가지’ ‘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 ‘평등주의 악몽’ ‘도덕적 자격 거부하기’ ‘삶은 불공평한가?’ 등의 주제로 평등을 말한다. ‘계약의 도덕적 한계’를 논하면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한 계약이라도 공정할 수 없다. 계약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되고 별도의 공정성 기준이 필요하다. 합의는 어느 한쪽이 협상을 잘한다든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든가, 교환 대상의 가치를 더 잘 안다는가 하는 문제로 바람직하지 않는 거래로 이어질 수 있다. 합의에서 불공정한 요소가 있다고 해서 파기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이행할 의무가 있다.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은 인간이 가진 이성적 능력과 그에 의거한 판단력이 올바르고 양심적으로 사용될 지라도, 편견과 고정관념, 관습과 같은 이성의 부담들로 인해 철학적, 도덕적, 종교적인 포괄적 견해에 있어 합리적인 사람들 간에도 합당한 의견의 불일치를 예상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한다. 인간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보편적, 절대적인 도덕이론을 부정하고 다원주의 현실 속에서 실제 현실에 필요한 사회 기반을 만들기 위한 정의의 기준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원초적 입장’이라는 관념은 거기에서 합의된 어떤 원칙도 정의로운 것이 되게 하는 공정함을 설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 목적은 순수 절차적 정의라는 관념을 이론의 기초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어떻게든 우리는 사람들을 불화하게 하고 그들의 사회적, 자연적 여건을 그들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도록 유혹하는 특수한 우연성의 결과를 무효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7강 ‘소수집단우대정책 논쟁’은 ‘시험 격차 바로잡기’ ‘과거의 잘못 보상하기’ ‘다양성 증대’ ‘인종별 우대정책은 권리를 침해하는가?’ ‘인종분리정책과 반유대적 할당제’ ‘백인 우대 정책?’ ‘정의는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대학이 경매로 입학생을 뽑아도 될까?’란 주제를 예로 설명한다.
한 예로 가난한 백인집안 출신의 셰릴 홉우드라는 학생이 텍사스 법학전문대학원에 지원했는데 성적이 나쁘지 않았는데도 떨어졌다. 그러나 그녀보다 점수가 낮은 흑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은 합격한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자신은 소수집단우대정책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한다. 대학은 법률사무소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법정을 포함해 텍사스 법조계에 인종적, 민족적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텍사스 법학전문대학원의 사명 중 하나라고 답했다. 이를 위해 대학은 소수집단 출신 지원자들에게 비소수집단 지원자들보다 낮은 입학 기준을 두었으며 그로 인해 홉우드는 떨어진 것이다. 이런 법정 다툼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었다. 2003년에 미시간 법학전문대학원이 관련된 소송에서 대법원은 인종은 입학 심사에서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바 있다.
여기서 샌델은 헌법은 제처 두고 도덕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즉, 취업과 대학 입학에서 인종과 민족을 고려하는 행위가 부당한가에 대해 소수인종 지지자들의 의견을 제시하며,.고용과 입학에 적용되는 소수집단우대정책이 평등권 보호를 보장하는 미국 헌법을 위반하는지, 취업과 대학 입학에서 인종과 민족을 고려하는 행위는 부당한 것인가 등에 대해 반문한다.
8강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 아리스토텔레스’에는 ‘정의, 텔로스, 영광’ ‘목적론적 사고 : 테니스 코트와 곰돌이 푸’ ‘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행동으로 터득하기’ ‘정치와 좋은 삶’을 주제로 논한다. ‘텔로스’(telos)는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낸 개념으로 ‘목적’, ‘본질’ 등의 뜻을 지닌 단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 사고로 테니스장의 목적, 대학의 목적, 정치의 목적 등을 상기시키며 인간의 목적을 알게 한다. 이때 본인은 한 인간이자 교역자로서의 목적을 생각게 했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에는 ‘사죄와 손해배상’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도덕적 개인주의’ ‘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정의와 자유’ ‘공동체의 요구’ ‘이야기하는 존재’ ‘합의를 넘어서는 의무’ ‘연대와 소속’ ‘애국심이 미덕인가?’ ‘연대는 우리 사람만 챙기는 편애인가?’ ‘충직이 보편적 도덕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정의와 좋은 삶’을 주제로 샌델의 공동체주의적 입장을 선보인다.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샌델은 호주의 하워드 전 총리가 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현 세대가 앞선 세대의 행위를 공식 사죄하고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말을 언급하며 사죄에서 중요한 부분은 ‘사고방식’ 즉 이 사고방식에서 중요한 점은 책임의식이라고 한다.
샌델은 본 9강에서 여러 주제들을 논하며 범죄자를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의무같은 도덕보다 충직과 연대가 더 무거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딜레마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의무가 합의나, 인간 대 인간의 보편적 의무에만 기초한다면 인간애에서 나오는 딜레마를 설명하기 힘들다. 샌델은 ‘정의와 좋은 삶’에서 “연대의식은 우리가 도덕과 정치를 경험하며 흔히 마주치는 특징이며 우리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소속된 존재로 파악한다. 도덕적 개인주의라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며 합의라는 윤리로도 포착할 수 없다”고 했다.
10강 ‘정의와 공동선’에는 ‘중립을 지키려는 열망’ ‘낙태와 줄기세포 논란’ ‘동성혼’ ‘정의와 좋은 삶’ ‘공동선의 정치’란 논의를 통해 샌델의 공동체주의를 드러낸다.
“종교는 정치와 분리(케네디), 종교는 정치와 무관하지 않음(오바마), 도덕적·종교적 문제에서 중립을 지켜, 무엇이 좋은 삶인지 개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함(정부)”
존 F 케네디와 버락 오바마는 정치에서 종교의 역할에 관해서는 매우 다른 의견을 보였다. 케네디는 자유주의 입장에서 종교적 신념은 사적인 문제라고 말하며 법과 공적인 문제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버락 오바마는 이런 논쟁에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논의가 빠진 담론은 도덕과 사회의 정의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곧 도덕적·종교적 신념이 정치와 법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라는 이야기다.
종교를 사적인 것으로 보는 케네디의 견해는 공공 철학을 반영했다. 공공 철학은, 정부는 도덕적·종교적 문제에서 중립을 지켜, 무엇이 좋은 삶인지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미국의 양대 정당도 중립을 주장했지만, 세부 내용은 달랐다. 공화당은 자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 반대했고, 민주당은 정부가 경제 보다 크게 개입하는 수단을 옹호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사회·문화 주제에서는 정부가 중립을 지켜 개인이 알아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를 ‘좋은 삶’(공동선; 도덕적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분리하려는 시도는 두 가지 이유로 잘못이다. 첫째로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할 수 없다. 둘째로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낙태와 배아줄기세포’에 관련해 언제부터 태아는 생명일까(도덕), 배아줄기세포를 파괴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도덕), 무엇이 좋은 삶인지 개개인이 선택(산모가 아이를 살릴 지, 죽일 지 고르라는 말과 같다)
‘동성혼’ 관련해 동성 결혼을 법제화(개개인의 선택), 결혼은 남녀 간에 만 이루어져야 한다(개개인의 선택), 서로의 선택이 충돌(도덕적 문제 -기독교라면 동성애를 죄악이라 할 것)이 있다.
여러 사안들에 대해 공리주의적 이해 방식의 단점은 1)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만든다. 2) 인간 행위의 가치를 하나의 도량형으로 환산해 획일화 하면서 그것들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다. 한편 자유주의적 이해에 따르면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의 도덕적 가치, 우리 삶의 의미와 중요성,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특성과 질은 하나같이 정의의 영역을 벗어난다. 즉,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샌델은 그러한 의미에서 공동체주의적 접근을 말한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규정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공동체주의자들은 공공의 목적이나 공공선(公共善)에 의거하지 않은 어떤 정치체계를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이며 또한 시민이나 공공 삶에의 참여자로서 역할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자아를 형성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인상적인 단락들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다섯 명의 인부를 들이받으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하자.) 필사적인 심정이 된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돌려! 죄 없는 사람 하나가 죽겠지만, 다섯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목숨을 구하는 행위는 정당해 보인다.
이제 다른 전차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저 아래 철로로 전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에 인부 다섯 명이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전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받기 직전이다.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 무력감을 느끼다가 문득 당신 옆에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서 전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당신이 직접 철로로 몸을 던질 생각도 했지만, 전차를 멈추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
그렇다면 덩치 큰 남자를 철로로 미는 행위가 옳은 일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연히 옳지 않지. 그 남자를 철로로 미는 건 아주 몹쓸 짓이야.”
누군가를 다리 아래로 밀어 죽게 하는 행위는 비록 죄 없는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해도 끔찍한 짓 같다. 그러나 여기서 애매한 도덕적 문제가 생긴다.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사람을 구하는 첫 번째 예에서는 옳은 것 같았던 원칙이 왜 두 번째 예에서는 잘못된 원칙으로 보일까? _ ‘옳은 일 하기’ 중에서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 부대는 탈레반 지도자를 찾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은밀히 정찰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무장하지 않은 염소 목동 두 명과 열네 살가량의 남자아이와 조우했다. 염소 목동들은 민간인으로 보였기에 놓아주어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특수 부대의 소재를 탈레반에 알려 줄 위험이 있었다.
한 부대원은 “우리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저들을 놓아주는 것은 잘못이다”며 이들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대의 지휘관인 루트렐은 망설였다. 그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그들을 풀어 주자는 쪽의 손을 들어 줬다. 곧 후회할 결정이었다. 염소 목동들을 풀어 준 후 특수 부대는 탈레반 병사에게 포위되었다.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부대원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구출하러 온 미군 헬기 한 대까지 격추당하는 바람에 군인 열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루트렐은 중상을 입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_ ‘옳은 일 하기’ 중에서

이 책은 사상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도덕적·철학적 사고를 여행한다. 이 책의 목적은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 주는 정치 사상사를 다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정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립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도록 만들어, 자신이 무엇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도록 하는 데 있다. _ ‘옳은 일 하기’ 중에서
2007년, 일흔아홉 살의 잭 키보키언 박사는 죽기를 원하는 말기 환자들에게 독극물을 투여한 죄로 미시간 교도소에서 8년간 복역하다 출소했다. ‘죽음의 의사’로 불리게 된 키보키언 박사는 1990년대에 안락사 허용 운동을 벌였고, 환자 130명의 자살을 도우며 자신의 주장을 실천에 옮겼다. … 키보키언 박사가 살던 미시간 주에서는 안락사가 불법이다. 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를 제외한 미국의 모든 주에서도 금지되어 있다. … 언뜻 안락사 찬성 주장은 자유지상주의 철학을 그대로 적용한 것처럼 보인다. 자유지상주의자들 생각에는 안락사를 금지한 법이 부당하게 여겨질 것이다. 내 생명이 내 것이라면, 내게는 그것을 포기할 자유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 내 죽음을 돕도록 내가 허락한다면, 국가는 이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_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 자유지상주의’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벤담, 밀과 달리 칸트는 정치론에 관해 주요 저술을 남기지 않고, 몇 편의 에세이만 썼을 뿐이다. 하지만 윤리를 다룬 글의 도덕과 자유에 관한 설명에는 정의를 함축하는 힘 있는 주장이 담겨있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그는 공리주의를 거부하고 사회 계약을 기초로 한 정의론을 지지한다. _ ‘중요한 것은 동기다 : 이마누엘 칸트’ 중에서
마이클 조던의 막대한 소득이나 빌 게이츠의 엄청난 재산은 어떤가? 그러한 불평등은 차등 원칙에 부합할까? 물론 롤스의 이론은 개개인의 소득이 공정한가를 평가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롤스의 이론은 사회의 기본 구조에 관한 것이며 권리와 의무, 소득과 부, 권력과 기회의 배분 방식에 관한 것이다. 롤스가 묻고자 하는 질문은 전반적으로 볼 때 빌 게이츠의 재산이 가장 못사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돌리는 사회 체제에서 나왔는가 하는 것이다. _ ‘평등 옹호 : 존 롤스’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시민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민보다 더 숭고하고 엄격한 의미의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는 여러 면에서 경제와 다르다. 정치의 목적은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개인의 이익 추구를 위해 공정한 규칙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의 본성을 표현하고, 좋은 삶의 본질과 인간의 능력을 펼쳐 보이는 데 있다. _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 아리스토텔레스’ 중에서
일본은 전쟁에서 저지른 만행을 사과하는 데 인색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소위 ‘위안부 여성’에게 공식 사과와 배상을 하라는 세계 각국의 압력에 직면해 왔다. 1990년대에 희생자들에게 민간 기금이 전달되었고, 일본 지도자들이 일부 사과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2007년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군은 여성들을 성 노예로 동원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국 의회는 일본 정부에 위안부 여성을 노예로 삼은 일본군의 책임을 공식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미국에서도 공개 사과와 배상에 관한 논쟁이 최근 수십 년 사이 두드러졌다. 1988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 서해안 포로 수용소에 일본계 미국인을 가두었던 일을 공식 사과하는 법에 서명했다. 1993년에는 의회가 1세기 전 하와이 독립 왕국을 전복한 잘못을 사과했다. 일본은 전쟁 때 저지른 만행을 사과하는 데 미온적이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소위 ‘위안부 여성’에게 공식 사과와 배상을 하라는 세계 각국의 점증하는 압력에 직면해 왔다. 1990년대에 민간 기금이 희생자에게 일부를 지불하였고, 일본 지도자들은 제한적인 사과를 했다. 하지만 이후 2007년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여성들을 성 노예로 동원한 책임이 일본군에게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국 의회는 위안부 여성을 성 노예로 삼은 일본군의 역할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일본정부에 촉구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 미국에서도 공개 사과와 배상에 관한 논쟁이 최근 수십 년 사이 두드러졌다. 1988년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계 미국인들을 미국 서해안 수용소에 억류했던 일을 공식 사과하는 법에 서명했다. 1993년에는 의회가 보다 앞선 과거의 잘못(1세기 전 하와이 독립 왕국의 전복)을 사과했다. _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중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해야 한다면, 어떤 정치 담론이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이끄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 내가 봤던 사람 중에, 이 방면에서 가장 유망한 목소리를 낸 인물은 196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로버트 케네디였다. 그에게 정의는 그저 국민 총생산의 규모와 분배의 문제에만 관련되어 있지 않았다. 더 높은 도덕적 목적에도 관련이 있었다. …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뒤, 2008년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하던 버락 오바마도 보다 큰 목적을 지향하는 공적인 삶에 목마른 미국인의 갈증에 호소하며 도덕적·영적 갈망이 담긴 정치를 역설했다. 과연 그가 도덕과 시민 의식을 강조했던 대선 공약을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로 실현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오늘날 금융 위기와 심각한 경기 침체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방해받을 수밖에 없을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_ ‘정의와 공동선’ 중에서
마무리하며
민주 사회에서의 삶은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한 이견으로 가득하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낙태 권리를 옹호하나 다른 사람은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한다. 어떤 사람은 낙태를 옹호하나 다른 사람은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한다. 어떤 사람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노력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빼앗는 행위는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입학에서 소수집단우대정책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잘못을 바로잡는 정책이라고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능력 있는 인재를 역차별 하는 공정치 못한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어떤 사람은 테러 용의자를 고문하는 행위는 자유 사회에 걸맞지 않은 혐오스러운 일이라며 반대하나, 다른 사람은 테러를 예방하는 마지막 수단이라며 찬성한다. 선거에서는 이러한 이견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기도 한다.
어려운 도덕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도덕적 고민이 어떤 식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대개 옳은 행위에 관한 견해나 확신에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확신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그 근거가 되는 원칙을 찾는다. 그리고 그 원칙을 반박하는 상황을 고려한 뒤에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혼란의 힘과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원하는 바이리라.
우리는 긴장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옳은 행위에 관한 판단을 재검토하거나 애초에 옹호하던 원칙을 재고할 수도 있다.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며, 자신의 판단과 원칙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판단에 비추어 원칙을 재고하고 원칙에 비추어 판단을 재고한다. 도덕적 주장을 고민하는 이런 방식, 다시 말해 특정한 상황에 대한 판단과 고심 끝에 단정한 원칙 사이를 오가는 변증법의 역사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도덕적 사고란 혼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대화를 통해 노력해서 얻는 것이다. 자기성찰만으로는 정의의 의미나 최선의 삶의 방식을 발견할 수 없다. 정의의 의미와 좋은 삶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편견과 판에 박힌 일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변증법적 질문과 대답을 통하여, 고대와 근현대 정치 철학자들은 정의와 권리, 의무와 합의, 영광과 미덕, 도덕과 법 같은 개념들을 더러는 급진적이고 놀라운 방식으로 고민한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존 슈트어트 밀, 롤스의 견해를 흥미롭게 다루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추상적이어서 어렵게 느껴졌던 ‘정의란 무엇인가’ 등 정치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실제 이슈들과 연관·적용시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도덕 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하거나 상충되는 생각이 들 때,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본서에서 도발적으로 질문하고, 반박하고, 재검토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은 다원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각계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지도자(정치지도자, 교육자, 종교지도자 등)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 사회가 움직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결정들이 어떤 배경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이해한다면 개인이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데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한 시민으로 살면서 부딪히는 어려운 질문과 상황들을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과 프레임을 갖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본서와 맥을 같이 하는 샌델의 다른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곧 읽어보려 한다.
한편 본인은 이 책에 대해 결론을 맺으며 “사안에 따라 때론 공리적으로, 때론 자유방임적으로, 때론 칸트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존재론이나 목적론적으로, 때론 공동체주의적으로 융합적인 접근을 하려한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임운규 (시드니시나브로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