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인생 수업 (Life Lessons)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데이비드 케슬러 저 / 류시화 역 / 이레 / 200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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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수업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년 7월 8일~2004년 8월 24일)는 스위스 출신의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며 임종 연구(near-death studies) 분야의 개척자이며 ‘죽음과 임종에 관하여’(On Death and Dying, 1969)을 출판하였고, 죽음의 5 단계 이론을 제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살에 자원봉사활동에 나선 엘리자베스는 폴란드 유대인 수용소에서 인생을 바칠 소명을 발견한다.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이 수용소 벽에 그려 놓은, 환생을 상징하는 나비들을 보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미국의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맡는다. 의료진이 심박수, 심전도, 폐기능 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환자를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아,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의료계에 불러일으켰다.
그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David Kessler)는 그녀의 유업을 이어서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작가이자 강연자이며 호스피스, 완화 치료 그리고 애도 분야의 전문가이다. (데이비드 케슬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게서 말기 환자들이 평화롭게 삶을 정리하도록 돕는 일을 배웠다. 그는 마더 테레사가 캘커타에 세운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에서도 봉사하며 호스피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했다. 그가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첫 번째 책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필요한 것 : The Needs of the Dying’은 마더 데레사의 찬사를 받으며 영국, 중국, 체코, 독일, 홍콩, 일본, 네덜란드, 폴란드, 대만, 스페인, 남미 등지에서 번역 소개되었다. ‘인생 수업’, ‘슬픔에 대하여 : On Grief and Grieving’를 썼고, 현재는 시트러스 밸리 헬스 파트너스(Citrus Valley Health Partners) 의료원 원장을 맡아 가정 및 병동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_ 편집자 첨부)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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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깨달음의 책
인생 수업에는 행복하라는 숙제뿐 -류시화
1. 자기자신으로 존재하기
2. 사랑없이 여행하지 말라
3.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4. 상실과 이별의 수업
5.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6.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7. 영원과 하루
8.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9. 용서와 치유의 시간
10.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
데이비드 케슬러의 말
저자에 대하여
○ 인생수업 리뷰
인생수업은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인터뷰해, 삶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정리한 책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세상이란 학교에 등록해서 다양한 과목을 배운다. 내가 잘하는 과목도 있지만 못하는 과목도 있다. 필수과목도 있지만 선택과목도 있다. 기쁨과 행복과 같은 좋아하는 과목도 있지만, 슬픔과 불행과 같은 싫어하는 과목도 있다. 사람은 인생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각 과목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대충대충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졸업할 시간이 되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게을리했는가를 깨닫고 후회한다. 책은 질문한다. 오늘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녀는 답한다.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십시오”.
‘인생수업’은 10가지의 주제를 이야기 형식으로 조용하게 풀어가고 있다. 서론에서 책을 쓴 목적을 밝히고 있다. “평생을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죽음에 대한 책을 써온 나는 꼭 책 한 권을 더 쓰고 싶었다. 죽음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삶과 살아가는 일에 대한 책 말이다. 삶의 끝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글로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썼고, 아직까지 삶에 도전하고 그 결과를 음미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
1. 자기자신으로 존재하라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피에타 상이나 다비드 상 같은 조각상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이미 조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필요없는 부분을 깎아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 주었을 뿐이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그의 명언을 하나 더 첨부한다. “삶이 즐겁다면 죽음도 그래야 한다. 그것은 같은 주인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책이 던진 첫 번째 화두는 자기자신이다. 인생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여행은 만남이다. 여행은 유적지를 방문해서 ‘어제의 사람’과 만나고, 길을 걸으며 ‘오늘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내일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배낭을 메고 유럽과 성지순례를 다니다가 내린 여행에 대한 정의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위대함의 씨앗을 갖고 있다. 위대한 사람은 가장 뛰어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제거해 버렸을 뿐이다. 인생은 내 안에 있는 진짜 나를 찾는 여행이다.
2. 사랑없이 여행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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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이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당신의 임무는 사랑을 찾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방해물을 찾아내는 일이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삶에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행을 할 때는 사랑이 필수이다. 최후의 만찬 중 서로 높아지려던 제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이 때 예수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의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세족식을 마치고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3-15) 이어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말씀하셨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이 두 감정은 동시에 함께할 수 없다. 사랑을 느끼는 동시에 두려움을 느낄 수는 없다. 인간의 두려움은 사랑하지 않는데서 온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18) 인간의 두려움은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하지 못할 때 온다.
3.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사람과의 관계에서 때로 텅 빈 공간이 되라. 다른 사람이 지나다니게 하라. 자신 안에서 세계의 영혼을 발견하고, 인간 안에서 신의 정신을 보라. 그것이 진정한 관계이다. 삶은 거울과 같다. 삶에 미소 지으라. 그러면 삶이 당신에게 미소 지을 테니까.”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관계는 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이 바라는 인물이 아니라고 해서 관계를 깨트릴 수도 없습니다.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입니다. 곧, 관계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습니다. 같은 것을 끌어당기듯,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매력을 느낍니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다. 人間은 ‘사람 인자에 사이 간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는 존재란 뜻이다. 사이란 관계이다. 관계가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관계가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3종류의 관계가 있다. 하나님과 관계의 단절은 죽음이고 관계의 회복은 생명이다. 사람과 관계의 단절은 불행이고 관계의 회복은 행복이다. 자신과 관계의 단절은 의심이고 관계의 회복은 믿음이다.
4. 상실과 이별의 수업
“당신이 아름다운 정원에 앉아 있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통 속에 있다면, 만일 당신이 상실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만일 당신이 머리를 모래에 묻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주려는 선물로 여긴다면 당신은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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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다섯 단계인 관한 내용이 나온다. 부정(Denial), 분노(Anger), 협상(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
(1) 부정(Denial) 사람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 등 큰 충격을 받았을 경우, 제일 먼저 자신의 상황을 부정한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와 비슷한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검사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수많은 병원을 돌아다니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물어보면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상태가 심해지면 다른 환자와 결과가 바뀐 것 아닌가 의심하며, 자신은 나을 수 있다며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2) 분노(Anger) 분노의 단계에서는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이 분노의 대상이 된다. ‘다른 사람은 다 멀쩡한데 왜 나만 이렇게 되냐!’는 식의 말을 하며 돌봐주는 가족, 친구, 의사나 간호사, 혹은 신에게까지 분노를 표출한다. 이 시기 환자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무슨 행동을 해 주든 그게 분노로 연결되어 굉장히 다루기 어렵다. 넓게 보자면 이 단계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질투로도 볼 수 있다.
(3) 협상(Bargaining) 상황도 받아들였고 분노도 충분히 표출했으면 더 이상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고 상황을 미루려 한다. 이것이 협상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익숙한 예로는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시면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게요!’ 이런 식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경우 생명의 연장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에게 맹세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이 단계에서 장기기증을 약속하는 경우도 있다.
(4) 우울(Depression) 결국 협상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 극심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난다. 이 단계에선 증상이 더욱 확실하게 나타나 환자도 알아차릴 수 있다. 모든 일에 초연해지고, 웃음을 잃고 하루 종일 멍한 표정으로 있거나 아예 울어버리기도 한다. 이 단계의 우울함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자기가 죽으면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걱정으로 발생하는 반작용적인 우울증과 친구, 가족, 애인이나 소중한 물건들을 잃는다는 생각에 발생하는 예비적 우울증으로 나뉜다.
(5) 수용(Acceptance) 모든 감정이 지나가면 이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받아들이게 된다. 이 단계에선 우울하지도 않고 활기차지도 않으며,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좋은 기분인 것은 아니고, 이때까지 겪었던 모든 감정들 때문에 지친 것이다. 환자는 눈에 띄게 약해지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고 말수가 줄어들며, 침묵이 소통을 대신하게 된다. 이 단계를 거친다는 것은 그 전 단계들을 거쳐 왔다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환자는 자신이 끝까지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위로를 받기도 하며, 역으로 자신이 죽은 후 남겨질 사람들의 슬픔을 이해해주기도 한다.
5.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 모두 제로가 된다. 삶의 끝에서 아무도 당신에게 당신이 얼마나 많은 학위를 가졌으며, 얼마나 큰 집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좋은 고급차를 굴리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내일이 없으므로 더 이상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게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오늘 가진 것만으로 충분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은 우리에게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오늘에 살고 있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다가올 오늘이다. 우리는 오늘의 시각으로 어제를 보고, 오늘의 시각으로 미래를 본다. 오늘 실패한 사람은 어제도 내일도 실패한 것이고, 오늘 성공한 사람은 어제도 내일도 성공한 것이다. 톨스토이의 ‘세가지 질문’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어떤 왕이 학자들에게 ‘세가지 질문’을 했다. 학자마다 제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왕은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숲 속의 현자를 찾아가 물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현자는 이렇게 답한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선행하는 일이다.”
6.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당신은 삶을 위하여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는가? 하루에 몇 시간씩이라고, 얼마를 벌고, 어떤 야망을 이루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 모든 일을 한다 하더라도, 삶은 언제까지나 저쪽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의 인생 시계는 몇시인가?”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대개 과거란 현재 이전의 시간이며 미래는 앞에 놓인 시간이라고 여기지만, 이것은 시간이 일직선으로 된 연속선상에 놓여 있음을 전제로 한 가정입니다. 과학자들은 시간이 일직선이 아니며, 우리가 ‘과거-현재-미래’라는 단단한 형태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면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Arrival’이란 SF 영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2017년 2월에 ‘컨택트’란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지금까지의 SF 영화와는 다르게, ‘언어적 차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영화는 언어학자 루이스가 딸 한나와 놀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듯하지만, 한나가 어린 나이에 병들어 죽게 되고, 루이스가 슬퍼하는 장면으로 바뀌어 버린다. 마치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았으나, 사실은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영화에 7개의 다리를 가진 문어같이 생긴 외계인이 등장한다. 외형에 착안해 ‘헵타포드’ (hepta+pod)라고 불렀다. Hepta는 7이고 Pod는 다리이다. 이들은 ‘원형의 표의문자’를 사용한다. 헵타포드 외계인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동등하게 인지하는 종족이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도 과거, 현재, 미래의 사고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된다. 영화에 사피어-워프 가설 (Sapir-Whorf hypothesis)이 등장한다. 사람의 사고는 배운 언어와 관련이 있다는 이론이다. 강한 주장은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이고 약한 주장은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준다’이다. 영화는 루이스가 자신의 불행한 미래를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며 막을 내린다.
7. 영원한 하루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별의 순례자이며, 단 한번의 즐거운 놀이를 위해 이곳에 왔다. 우리의 눈이 찬란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가?”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화를 내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며 알맞은 시간과 장소에서 적절하게 표현할 때는 매우 쓸모가 있다. 이를테면 화를 내는 환자들이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이 화를 냄으로써 더 많은 보살핌을 받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부적절하거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화를 표현하지 않는 한, 화를 내는 것은 유익하고 건강한 반응이다.”
화란 감정이다. 감정이란 ‘E+motion’이다. 행동하게 하는 힘이다. 상한 감정을 가지면 악한 행동을 하고, 좋은 감정을 가지면 선한 행동을 한다.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이 있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 있는 상한 감정을 풀지 못하면 병이 된다. 의학이 발달되기 전에는 두 가지 병뿐이 없었다. 화병(火病)과 염병(染病)이다. 염병은 전염병이고, 화병은 ‘상한 감정’을 억누를 때 생기는 병이다. 우리 안에 불(火)을 품고 있는데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는가? 화를 누르면 내가 다치고, 화를 분출하면 네가 다치니, 지혜롭게 화를 표현할 때 모두가 건강하게 된다.
8.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그 어떤 것이라도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신이 무화과 하나를 원한다고 나에게 말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고, 먼저 꽃을 피우도록 기다리라고, 열매를 맺고, 그것이 마침내 익을 때까지 시간을 주라고.”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당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상황 때문에 불행하다면, 당신의 힘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인가 바꿔야 하고, 당신에게 그것을 바꿀 힘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싸움이 우리를 소모시킨다.” 라인홀드 리버의 평온의 기도도 나온다. “하나님,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평온한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가 변화시켜야 하는 것들은 우리가 그것을 바꿀 수 있도록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이 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삶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과정이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배울게 남아있는 것이다. 배우는 자는 끝까지 겸손해야 한다. 인생의 가장 교만한 자는 더 이상 배울게 없다고 생각하는 자이다. 저자는 배움에서 인내를 강조하고 있다. “명사 환자 (Patient)와 형용사 참을성 (Patient)의 형태가 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두 가지 모두 참는다는 의미의 라틴어 ‘pati’에서 온 것입니다.” 그녀도 스스로 이렇게 고백한다. “인내는 가장 힘든 배움, 아마도 가장 큰 절망감을 안겨주는 배움일 것입니다. 나는 결코 참을성 많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병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으므로 인내가 가져다주는 배움을 얻고 있는 중입니다. 인내가 배움이 된다는 사실은 싫지만 아플 때는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고린도전도 13장은 사랑장이다. 사랑의 첫 번째 덕목은 ‘오래 참음’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9. 용서와 치유의 시간
“용서의 치유 단계는 상대방을 다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은 실수 투성이고, 부서지기 쉽고, 외롭고, 궁핍하고, 정서적으로 불완전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리 자신과 똑같다. 그들 역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가득한 인생길을 걷고 있는 영혼들이다.”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용서해야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나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까지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어도 스스로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의 시작은 자신부터이다. 자신을 용서하는 근거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나를 조건 없이 용서하셨기에 나도 나를 용서해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마태복음 22:36, 율법사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나이까?” 질문에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말씀을 풀어서 이야기하면,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근거는, 똑똑하고 잘나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했기에 그 사랑을 근거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내가 나를 용서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용서와 관련된 ‘밀양’ (Secret Sunshine)이란 영화가 있다. 교통사고로 남편이 죽은 후,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신애’(전도연)는 아들과 함께 이사를 간다. 그곳에서 피아노 학원을 열고 정착에 노력했지만, 아들 마자 그곳에서 잃는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녀는 예수를 믿게 된다. 신앙생활이 깊어지면 질수록 그녀는 한 가지 풀어야할 숙제가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자신을 조건 없이 용서한 것처럼 자신도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는 것이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감옥을 찾아간다. 하지만 살인범은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다는 것이 아닌가! 피해자인 나는 아직도 아파하는데, 가해자인 살인범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평안하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후 그녀는 반기독교인으로 변신하고, 자신의 감정을 어찌하지 못하여 미쳐 버린다. 그녀는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그를 위한 용서가 아닌 자신만을 위한 용서를 고집한 것은 아닐까?
10.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상실은 무엇이 소중한지 보여주며, 사랑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가르쳐 준다. 관계는 자신을 일깨워 주고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두려움, 분노, 죄책감조차도 훌륭한 교사이다.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그 특별한 매력을 나타내기 위해 굴곡이 있는 것이다.”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무렵에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우리는 삶의 끝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글로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썼고, 아직 삶에 도전하고 그 결과를 즐길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사합니다. 죽음을 앞둔 삶들이 가르쳐 주는 가장 놀라운 배움 중 하나는 삶은 불치병을 진단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인생의 비극은 짧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선고받는 순간부터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사랑하고, 웃으며 살아야 한다.
○ 마치며
끝으로 영화 이야기를 하나 더하고 나의 책리뷰를 마치려고 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란 영화가 있다. 미국의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2010년에 상영된 영화이다. 길버트는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언젠가부터 이게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인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녀는 진짜 자신을 찾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일상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무작정 떠났다. 2002년 여행을 떠나기 전, 남편인 ‘마이클 쿠퍼’와도 이혼을 했다.
그녀가 방문한 3나라 모두 “I”로 시작한다. ‘자신’(I)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호세 누이스’와 깊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영화는 아름답게 마무리하지만, 인생은 영화와 같지 않다. 그녀는 그와 이혼했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수업’은 계속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김환기 사관 (시드니시나브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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