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시성, 베르길리우스 (Vergilius, BC 70 ~ BC 19)의 서사시 ‘아이네이스’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 (Vergil or Virgil, 라: Publius Vergilius Maro, 기원전 70년 10월 15일 ~ 기원전 19년 9월 21일)는 로마의 국가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저자이다.
로마의 시성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시인으로 이후 전유럽의 시성으로 추앙받게 되는 시인으로 단테가 저승의 안내자로 그를 선정할 만큼 위대한 시인이었다.

– 베르길리우스 (Vergilius)
.출생: 기원전 70년 10월 15일, 갈리아 키살피나
.사망: 기원전 19년 9월 21일, 브룬디시움
.직업: 시인
.국적: 로마 제국
.장르: 서사시
전설에 따르면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 왕족인 안키세스와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 이다 산에서 5살 때까지 요정들이 기르다가 5살 이후로는 아버지 안키세스가 트로이로 데려와서 길렀다고 한다. 그리스군이 트로이로 쳐들어오자 사촌 헥토르를 도와 혁혁한 공을 세운다. 신들에게 꽤나 사랑을 받는 듯한 묘사가 나오는데, 디오메데스와 결투를 하게 되었을 때는 어머니 아프로디테가 그를 도와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아킬레우스와의 싸움에서는 포세이돈이 그를 도왔다고 한다. 든든한 백을 가진 어찌보면 엄친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일리아스 4권에서 디오메데스에게 죽을 뻔하고, 일리아스 20권에서도 아킬레우스에게 죽을 뻔한다.
최강의 인간인 아킬레우스는 물론, 디오메데스에게는 기습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비난할 일은 못 된다. 아카이아군에게는 공포의 상징이며 트로이에게 자랑이었던 헥토르도 아이아스의 돌 투척을 맞아서 아이네이아스처럼 죽을 뻔한 적이 있다. 이 경우는 아이네이아스처럼 아폴론이 개입하여 둘 다 신에 의해서 목숨을 건진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것도 《일리아스》에서나 이렇지 이탈리아 도착 후를 그린 《아이네이스》에서는 거의 누구도 막을 자가 없는 인간 병기로 묘사된다.
상기한 내용의 전과가 있는데 아킬레우스와의 일대일 격투 묘사를 보면 헥토르보다 비교우위를 보인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다. 아킬레우스가 칼을 들고 달려오는 동안 아이네이아스도 보통 인간이 못드는 돌덩이를 들고 아킬레우스의 머리를 내려치려 하는 알 수 없는 승부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포세이돈이 아이네이아스를 구해준 걸 봐도 아킬레우스가 객관적인 우세가 맞지만ㅈ 그 무거운 바위로 아킬레우스와 맞설 기세였기에 더 강한 장수인 아킬레우스가 당할 여지가 있었다.
프리아모스 왕은 자신과 왕비 헤카베의 딸 크레우사를 아내로 주었고 둘 사이에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태어났다. 하지만 일리아스를 보면 프리아모스는 왕족이고 능력이 뛰어난 아이네이아스를 은근히 경계한 듯, 제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묘사도 나온다.
목마 안에 숨어있던 그리스군이 목마에서 나와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기 전, 어머니 아프로디테는 아이네이아스에게 트로이 성이 함락될 것이니 그 전에 트로이에서 도망치라고 경고하여 어머니의 충고대로 가족들과 함께 트로이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뒤쳐졌던 아내 크레우사는 죽었다고도 한다.
이미 일리아스에서 아이네이아스가 멸망 후 트로이 생존자들의 지도자가 되는 건 예견되어 있었다. 아이네이아스가 아킬레우스에게서 도망갈 때 신들은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 함락 후 생존자들을 이끌 운명이니 살려야 된다고 얘기한다. 단, 전승에 따라선 이탈리아로 가지 않고 멸망한 트로이를 그 자리에서 재건하기도 한다.
그 후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새로운 땅을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하피들과 싸워보기도 하고 네오프톨레모스가 오레스테스에게 죽은 뒤 해방되어 살고 있는 안드로마케와 헬레노스도 만나보고, 오디세우스처럼 스킬라도 피해보면서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 연안을 지나서 카르타고에 이르렀다. 그 후 카르타고에 배가 닿았는데 에로스가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에게 황금 화살을 쏴서 디도는 아이네이아스에게 반하게 된다. 아이네이아스도 디도와 결혼해서 카르타고에서 산 지 몇 달이 되도록 고민하다가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보내서 이탈리아로 가서 새 나라를 세우라는 말을 다시 전하자 아이네이아스는 어쩔 수 없이 카르타고에서 떠난다. 디도는 아이네이아스에게 제발 자신을 두고 떠나지 말라고 했지만 결국 떠나는 아이네이아스에게 “나의 자손과 당신의 자손은 적이 될 것”이라고 저주하며 자살한다.
헨리 퍼셀이 작곡한 오페라 ‘아이네이아스와 디도’에서는 마지막에 아이네이아스가 마음을 돌려 신을 거역할 각오로 디도에게 돌아오지만 디도는 자신을 한 번 떠날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증오스럽다고 아이네이아스를 쫓아낸다.
이후 시칠리아를 거쳐 이탈리아 연안을 거슬러 라티움에 상륙했다. 라티움의 왕 라티누스는 원래 자신의 딸인 라비니아를 투르누스에게 시집 보내려 했으나, 꿈에서 죽은 아버지가 나타나 “라비니아와 결혼할 사람은 먼 곳에서 오는데 이 결혼을 통해 온세계를 정복할 민족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여 마침 도착한 아이네이아스에게 라비니아를 결혼시키려고 하였다. 파혼으로 격분한 투르누스가 아이네이아스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헤라는 이에 투르누스를 돕는데 이는 아이네이아스의 어머니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빼앗긴 데 대한 복수였다. 그러나 결국 아이네이아스가 투르누스를 궁지로 몰게 되고 투르누스는 아이네이아스에게 패배를 인정하였는데 아이네이아스는 그를 살려주려고 했으나 투르누스의 어깨에 찬 팔라스의 어깨띠를 보고 그가 자신의 지원군인 팔라스를 죽였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투르누스를 죽이고 승리를 선포한다.
이후 라비니아와 함께 결혼하여 라비니움을 세우는데 이는 로마의 전신이 되었다. 트로이 전쟁 당시 아폴론은 “아이네이아스의 자손이 트로이를 지배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 예언대로 아이네이아스의 자손인 로마 제국이 그리스는 물론 트로이가 있는 소아시아까지 지배하게 되어 예언이 맞았다.
아이네이아스의 최후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소스의 기록에 의하면 말년에 루툴리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죽었고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프로디테의 간청에 의해 죽기 직전 제우스에게 들어올려져 신이 되었다고 하는 말도 있지만, 보다 객관적으론 전투 중 강에 빠져 죽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 베르길리우스의 생애
이탈리아의 포 강 중류의 만투아 (Mantua, 현재 만토바 Mantova) 근교의 안데스 (Andes)에서 태어나다 (출생시 집정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그의 고향은 당시 로마의 행정구역인 갈리아 키살피나 (Gallia cisalpina 갈리아 알프스 이쪽 지역, 즉 이탈리아 북부)로서 그의 부모는 서민 출신으로서, 아버지는 농부이자 도자기굽는 일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마기아 폴라 (Magia Polla)는 베르길리우스를 낳기 전에 월계수가 울창하게 자라는 해몽꿈을 꾸었다고 전해진다. 이 꿈과 관련하여 그의 이름 Vergilius는 라틴어의 virga (어린나무)에서, 그리고 여기서 기원후 5세기를 전후로 Virgilius라는 명칭이 (현재 영어나 프랑스어의 표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59년에서 53년까지 베르길리우스는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후, 메디올라눔 (Mediolanum, 현재 밀라노)로 가 웅변술과 여러 학문들을 배운다. 기원전 54년에 로마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웅변술을 배운 후, 실지로 소송 사건의 변론을 맡아 법정에서 활약을 하지만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사실과, 워낙 수줍음이 많은 천성이었던 베르길리우스는 정계 데뷰를 포기하고 젊은 문학자들과 잦은 교류를 통해 에피쿠로스 철학을 접하게 되고, 이후 문학에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기원후 52년 로마를 떠나 나폴리로 가서 시로가 주도하던 에피쿠로스학파에 들어가 약 3-4년간 생활을 하면서 고대 그리스 철학을 깊이 배우게 된다.
시를 써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을 때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알게 되어, 일생 동안 황제의 도움을 받았다. 이후 ‘농경시’ (Georgica)등을 아우구스투스에게 직접 낭송하기도 한 그는,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건국을 다룬 작품을 써 보라고 권하자 그에 응하여 ‘아이네이스’ (Aineis)를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죽기 전의 11년 동안 썼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이 시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서사시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으며, 호메로스 서사시의 구조를 바탕으로 하여 집필하였다. 또한,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의 안내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작품집으로 ‘농경시’, ‘목가’, ‘아이네이스,’ 등이 있다.

○ 저서 ‘아이네이스’ (Aeneis)에 대하여
‘아이네이스’ (Aeneis)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의 제목이다.
- 아이네이스 (Aeneis)
.최초 발행일: BC 19년
.저자: 베르길리우스
.언어: 라틴어
.등장인물: 아이네이아스, Turnus, 크로노스, Venus, 디도, Juno
.장르: 서사시, 서사, 판타지 소설
- 개요
아이네이스는 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아스의 유랑을 노래한 서사시로서 라틴어로 쓰인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서사시는 전 12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라틴어 6각운으로 쓰여졌다. 베르길리우스는 서사시의 주제와 신화적 많은 자료들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빌어 왔다.
특히 서사시의 구성에서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전반 6편은 오디세이아 (모험)를 그리고 후반 6편은 일리아스 (전쟁)를 전범으로 삼고 있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시 아이네이스가 담고 있는 역사적 요소로는 로마의 건립을 칭송하고 신화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학작품이기에 작품의 내용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이후 베르길리우스는 호메로스, 단테와 함께 3대 서사시 작가로 불리게 된다.
서사시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로는 아이네아스, 디도, 투르누스, 알렉토, 라티누스 등이다.

- 첫 번째 노래
트로이의 영웅들과 그들이 이탈리아에 정착하기까지의 항해를 노래한다.
트로이에 적대심을 갖고 있는 유노는 트로이가 함락된 후 목숨을 건져, 아이네이스 지휘아래 시칠리아로 피신하는 트로이 함대를 파멸 시키려고 한다.
바람의 신 아이올루스는 유노의 명령으로 트로이 함대가 풍랑에 휩쓸리도록 하지만, 넵투누스의 개입으로 함대는 구출되어 카르타고항으로 피신을 한다.
유피테르는 베누스에게 트로이 유랑민이 라비니움에 정착한 후, 알바 롱가를 거쳐 로마를 건설하게 되리라 예언한다.
메르쿠리우스는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가 트로이 유랑민에게 호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한편 아이네이스는 사냥군으로 변장한 어머니 비너스를 만나 카르타고와 디도에 관해 정보를 얻는다.
얼마 후 아이네이스와 그가 이끄는 유랑민은 디도로부터 환영을 받음과 동시에, 디도는 비너스의 영향으로 아이네이스에게 호감을 갖는다.
환영 만찬회에서 디도는 트로이의 최후와 아이네이스의 7년간에 걸친 유랑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 줄 것을 청한다.

- 두 번째 노래
아이네이스는 트로이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 이른바 트로이 목마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와 그리고 이와 관련된 라오콘의 비극에 대해서 언급된다.
시논이 목마를 열자 그속에 숨어 있던 아카이군이 쏟아져 나와 트로이군을 습격하여 결국 프리아모스의 성이 함락된다.
아수라장이 된 성에서 아이네아스는 베스타 신전에 틀어박힌 헬레나를 발견하고 그녀를 죽일까 망설이는 순간에 베누스가 나타나 이를 만류한다.
아이네이스는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성에서 피신한다.
성문에 이르러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아 헤메는 가운데 아내의 화신이 나타나 이를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고 위로하며, 아이네이스의 앞날에 관해 작은 예언을 남긴 후 사라진다.
가족들이 있는 곳에 다시 돌아와 아이네이스는 그동안 까맣게 모인 피난민을 보고는 깜짝놀란다.
그러나 곧 이들을 이끌고 이다 산을 향해 유랑길에 오른다.

- 줄거리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학이 으레 그렇듯 무사 여신에게서 작품을 위한 영감을 불어넣고 줄거리를 내려달라고 간청하는 것에서 시작해, 아이네이아스 일행이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장면을 비추고, 그를 둘러싼 신들의 분분한 의론을 보여준 후, 아이네이아스 일행이 디도 여왕이 다스리는 카르타고에 닿으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후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 함락과 이후의 방랑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디도와 결혼한다. 메가데레 상태인 여왕님 디도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아이네이아스는 문득 디도가 수절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왕들과의 결혼을 거부하다가 자신과 결혼했음을, 디도가 고립무원의 상황임을 깨닫는다.
그러자 디도가 자신과 백성들을 지켜줄 강한 전사들과 지도자를 원하던 것이 무거운 의미로 다가오고, 이제 신들의 예언과는 동떨어진 장소에 정착했으면서도 커다란 위험에 둘러싸인 처지임을 자각한다.
그래서 아이네이아스는 행복한 결혼생활이 채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카르타고에서 몰래 도망친다.
디도는 떠나기 직전에 눈치채고 아이네이아스에게 간절하게 애원해 보나 소용없었다.
참고로 이 부분은 “아르고 호 이야기” 제4권 354행 이하에 보이는 메데이아의 연설과 닮아있고, 또한 비극 “메데이아” 446행 이하를 상기시킨다.
디도와 메데이아 두 여인은 상당히 닮아있는데, 다만 차이점은 메데이아는 배신당했다고 여긴 후 이아손과 자신의 아이를 죽인 반면, 디도는 마지막에는 떠나되 겨울을 보내고 자식을 남겨놓고 떠나도록 타협안까지 제시한다.
“하다못해 혹여 떠나기 전에 내가 그대에게 자손을 얻는다면, 내 안뜰에 나의 자그마한 에네앗이 노닐며 그에게서 당신을 찾는다면 전부 빼앗기고 버려졌다 하지 않을 것인데” _ 4권 297-300행, 김남우 번역
그러나 아이네이아스는 자신의 사랑은 조국이라며 거절한다.
이용당하고 버려졌으며 버려진 몸으로 백성들을 바라보고 통치해야 하는 절망감과 수치심과 분노, 그리고 그동안 청혼을 거절당했던 주변 왕들이 침략해올 공포를 이기지 못해 디도는, 티레 (카르타고) 백성들에게 영원히 아이네아스의 핏줄 모두에 대한 미움을 버리지 말라는 약속을 시키고, 언젠가 자신의 무덤에서 생겨난 복수자가 불과 칼을 들어 트로이 백성을 쫓아갈 것이라는 저주를 남기고는 자살한다.
“또 너희 튀리아여! 영원히 그의 핏줄 모두에 미움을 버리지 말라! 너희는 내 주검 앞에 이를 약속하라! 저들과의 평화는 일체 없으리라! 이제든 언제든 아무 때나 무력을 갖출 때에 내 무덤에서 누군가 생겨나 원수를 갚을 것, 불과 칼을 들어 달다냐 백성을 쫓아갈 것이니, 해안이 해안에 대립하고, 바다가 바다에 맞서 원컨대 무기에 무기로 당대도 후손도 싸우라! _ 제4권 622-629행, 김남우 번역
오디세우스가 겪었던 것과 같은 고난을 일부 겪은 항해 이후 (오디세우스가 만났던 퀴클롭스족 폴리페모스도 등장한다) 이탈리아에 도착, 무녀 시빌라의 도움으로 저승에 내려가 미래에 그의 자손이 위대한 제국을 세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사기가 회복되어 돌아온 후 라티움의 공주인 라비니아와 결혼하여 동맹을 맺고자 한다. 허나 왕비의 반대 및 왕비가 지지하던 구혼자인 루툴리족의 왕 투르누스 및 그의 동지인 메제티우스와 함께 아이네이아스를 정벌하러 군대를 일으킨다.
아이네이아스가 전쟁을 대비해 다른 도시들과 동맹을 맺고 동맹군을 모아오기 위해 떠난 사이 당한 기습이라 트로이 난민들은 위기에 빠지나, 아이네이아스의 귀환과 함께 두 번에 걸친 전쟁을 승리하고 투르누스를 죽이는데,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탓인지 책은 여기서 갑작스럽게 끝을 맺는다.
“지금 그대는 내 전우에게서 벗긴 이 전리품을 두르고서 여기서 벗어나기를 바라는가? 지금 이 가격은 팔라스가 그대를 죽이는 것이며, 팔라스가 살해자인 그대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는 분기등등하여 적의 가슴 깊숙히 칼을 찔렀다.
그러자 투르누스의 사지가 싸늘하게 풀리며 그의 목숨이 신음 소리와 함께 불만에 가득 차 지하의 그림자들에게로 내려갔다.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천병희 번역본 12권 946-952행. 이 구절이 아이네이스의 마지막 구절이다.

- 평가와 의의
유명한 권은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에서 도망나오는 2권,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의 파멸을 다룬 4권, 그리고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6권이 있다.
특히 6권은 저승의 묘사가 세밀하고 독특해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다. 기독교의 지옥과 비슷한 고통의 장소 타르타로스, 장례를 못 치루면 유령처럼 떠돌게 되는 혼백들, 천국과 비슷한 엘리시움, 때가 되면 환생이 가능한 엘리시움의 유령들. 이 때 죽은 아이네이아스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세우게 될 나라의 미래를 쭉 예언하는데, 많은 장군과 왕들과 현인들을 묘사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크게 찬미하며 끝을 맺는다. 아우구스투스는 베르길리우스의 이러한 상세한 묘사를 통해, 아이네이스와 자신이 겹쳐지며 그가 행해왔던 냉혹한 처단은 마치 아이네이스가 살려달라고 비는 투르누스를 죽인 것처럼 로마의 숭고한 미래를 위한 결단으로 포장되는 덕을 입었다.
아이네이스 전체를 용비어천가로 여기는 관점도 있으나, 농경시나 전원시 등에서 성실하고 건전한 농경생활이나 전원생활을 예찬하고 신봉하는 베르길리우스의 관점에서 볼 때 아우구스투스는 오랜 로마의 혼란과 전쟁을 종결하고 로마의 밝은 미래를 가져다 줄 지도자였다. 따라서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 내에서 많은 예언이나 계시, 불카누스가 아이네이아스에게 마련해준 방패의 조각 묘사를 통해 그리스 로마 시대와 아우구스투스 시대를 하나로 묶는 효과를 거둔다.
또한 이 작품은 호라티우스가 그대들은 신들의 하인이므로 지상의 주인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아우구스투스가 마음껏 민족을 다스려라, 정복된 자들을 살려주고 교만한 자들을 쳐부수라라고 말했던 것처럼, 로마인의 기원을 신과, 그들의 사명과 권리가 정복, 문명에 있음을 제시한다. 또한 아이네이아스가 겪게 되는 수많은 아픔과 고난, 트로이 낙성, 아버지를 업고 아들의 손을 쥐며 필사의 탈출, 그 과정에서 부인의 실종, 오랜 방랑, 또다른 전쟁과 살육, 특히 모든 자존심을 내다버리고 애원하는 디도와의 이별 등을 보면, 차라리 아이네이아스는 이 과정을 전부 겪지 않는 것이 행복했을 것이다. 특히 디도와 결합한 채로 카르타고의 왕이 되었어도 위태롭기는 해도 충분히 왕으로서 운명을 개척해 볼 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에서 왕이 되는 것은, 로마를 건설하는 것은 그렇게도 위대한 임무였으니까 그러한 것이다.
로마인들에게 이상적인 인간형은 아킬레우스처럼 개인의 영광을 위해 앞뒤 앞가리고 돌진하는 영웅 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인간형 이었고, 이런 면에서 늙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3대가 함께 트로이를 탈출하여 조국 재건의 막중한 임무를 맡은 아이네이아스는 로마인들이 중시한 가문, 씨족에 대한 충성심 (로마인들은 이를 ‘敬親 pietas’이라고 표현했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이처럼 로마인들이 아킬레우스를 무시하고 아이네이아스를 칭송하는 것은, 아이네이아스는 그들의 시조왕이지만 동시에 로마의 거대한 통치와 문명과 그 앞에 선 개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거대함 앞에 개인이 겪는 고통이나 좌절에도 불구하고 아이네이아스는 운명에 대한 꺾이지 않은 희망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킬레우스와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 책 속으로
나는 감히 어둠 사이로 큰 소리로 부르며 거리들을 내 고함으로 가득 메웠고, 비감에 젖어 ‘크레우사!’ ‘크레우사!’하고 거듭거듭 그녀를 불렀으나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찾아 끝없이 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내닫고 있을 때 크레우사의 가련한 환영과 그림자가 내 눈앞에 나타났는데 우리가 알고 있던 그녀의 모습보다 더 컸습니다.
소름이 끼치고 모골이 송연해서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네며 이런 말로 내 근심을 쫒아버렸습니다.
‘오오! 사랑하는 낭군이여, 그리 미친듯이 슬픔에 빠져드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요? 이런 일들은 신들의 동의 없이는 일어나지 않아요.
당신이 여기서 크레우사를 데려간다는 것은 법도가 아니거니와 높은 올륌푸스의 저 위대한 통치자께서도 허용하시지 않아요.
긴 망명이 당신의 운명이며, 당신은 망망대해를 쟁기질해야 해요.
당신은 헤스페리아 땅에 가게 될 것인데, 그곳에는 농부들의 풍요한 들판 사이로 뤼디아의 튀브리스 강이 유유히 흘러가지요. 그곳에서 즐거운 일들과 왕국과 왕족 출신의 아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의 사랑하는 크레우사를 위해서라면 더는 눈물 흘리지 마세요.
다르다누스의 자손이자 베누스 여신의 며느리인 나는 뮈르미도네스족과 돌로페스족의 오만한 궁전들을 보게 되지도 않을 것이며 가서 그라이키아 여인들의 노예가 되는 일도 없을 거에요…
천만에, 신들의 위대한 어머니께서 나를 이 해안에 붙들고 계세요. 자, 이제 잘 가세요.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아들을 언제까지나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말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많은 말을 하고 싶어하는 내 곁을 떠나 희박한 대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세 번이나 나는 그곳에서 그녀의 목을 얼싸안으려 했으나, 세 번이나 그녀의 환영은 헛되이 포옹하는 내 두 손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가벼운 바람결처럼, 그 무엇보다도 날개 달린 꿈처럼. _ 아이네이스 2권 750-794행, 천병희 번역본
참다 못해 나는 어둠을 향하여 소리를 질러 고함으로 길을 채웠고, 울먹이며 크류사를 헛되이 거듭하고 거듭하여 반복해 불렀다.
처연한 환영, 다름 아닌 크류사의 그림자가, 실성하여 도성 곳곳을 끝도 없이 찾아다니던 내게, 눈앞에 기억 보다 커진 형상이 보였다.
머리끝은 쭈뼛하고 얼어붙었다. 목이 메었다.
이렇게 말을 건네며 말로 근심을 덜어 주었다.
“그렇게 슬픔에 정신을 잃으시면 어찌합니까?
사랑하는 이여, 이는 오로지 신들의 뜻에 따라 벌어진 일이니, 예서 크류사를 데려가는 일은 불가하며, 지고한 올림폿의 왕도 불허할 일.
추수할 수 없는 바다를 일구는 길고 긴 망명 길.
장차 저녁 땅에 닿을 것이니, 거기 뤼디아의 강 튀브릿이 유유히 농부들의 옥토를 흐르지요.
게서 좋은 일이 생긴즉, 왕국과 왕녀를 아내로 얻겠죠. 크류사를 그리는 눈물일랑 거두세요.
저는 뮐미돈의 혹은 돌로펫의 오만한 궁전을 보거나 그래웃 여인을 시중들지도 않으리다.
달다냐의 여자, 베누스의 며느리.
저를 위대한 퀴벨레께서 이 땅에 묶으셨지요.
이제 떠나세요. 우리의 아들을 사랑해 주세요.”
이런 말을 하더니 눈물로 수많은 말을 하려던 나를 떠나 홀연히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세 번이나 나는 아내를 안으려고 시도하였고, 세 번이나 안긴 환영은 헛된 손을 빠져나갔다.
가벼운 바람처럼, 덧없이 날아가 버린 꿈처럼. _ 아이네이스 2권 750-794행, 김남우 번역본
라틴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것으로는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완역본과 김남우 번역이 있다. 위에 실은 번역본 예시를 보면 알 수 있듯 천병희 본은 원문을 정확히 옮긴 대신 문체가 현대 어투의 산문체로 되어 있어 신화적인 장중함이 약간 부족하다는 평이 있고, 김남우 본의 경우 원문 시행이 ‘육보격 (여섯걸음 운율)’로 구성된 것을 반영하여 문체를 운문체로 하고 모든 번역 시행이 18자 이하로 되어있어 장중한 서사시의 느낌은 천병희 본보다 더 나은 대신 운율 때문인지 고유명사가 3음절 이하로 표기되었고 (아이네아스 ->에네앗) 아직 원문의 4권까지만 번역되었다. 추후 완역된다.
○ 로마와 아이네이아스
사실 고대 로마와 아이네이아스와는 별 상관이 없는 듯한데, 아마도 로마 제국이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로마의 전신인 알바롱가가 세워지기 훨씬 이전의 인물로 추정되는 아이네이아스를 끌어들인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아이네이아스는 로마의 시조로 로마인들은 굳게 믿었고 아우구스투스는 이런 건국신화를 널리 퍼뜨리고 자신의 권위를 높일 요량으로 베르길리우스에게 대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짓도록 지원했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가 병으로 다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베르길리우스는 미완성인 “아이네이스”의 원고를 파기할 것을 유언했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이런 위대한 작품을 태울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미완성의 “아이네이스”를 출판하게 했다 한다.
아우구스투스가 아이네이아스를 높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것은 아이네이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의 별명인 이울루스 (Iulus)가 율리우스 (Iulius) 가문의 선조라는 주장 때문이다. 다시말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이고, 카이사르의 외조카이자 양자인 아우구스투스도 아이네이아스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결국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는것은 당연하다 라는 논리를 성립시킨것이다. 참고로 카이사르는 자신의 고모인 가이우스 마리우스 아내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조상이 아이네이아스이니 결국 따지고 올라가면 아프로디테 (베누스)의 자손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아이네이아스가 아우구스투스의 지원하에 쓰여진 서사시라 어쩔 수 없긴 했다.
첫 등장에는 폭풍우를 만나 트로이의 생존자들에게 격려를 해주면서 본인은 속으로 절망하고 있었으며 디도를 두고 떠나려할 때 디도가 불같이 화를 내자 제대로 변명도 못 하고 어물거렸다. 그 점에서 인간적으로 보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좀 약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애시당초 일리아스에서도 별로 중요 인물은 아니었고 사실 집도 절도 없이 방랑하다 닿은 땅에서 정식으로 여왕과 결혼해놓고 재미 볼 거 다 보고서는 몇 달 지나지도 않아서 떠나는 처지인데 입이 백 개인들 무슨 할 말이 있으랴 … 내용을 좀 현실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집도 절도 없이 떠돌다 주변의 싸늘한 분위기에 무서워하던 디도에게 전사세력을 안겨주고 전사의 우두머리로서 결합했다가 몇 달 있어 보니 못 당해낼 거 같아서 도망치는 거라 디도 말이 다 맞아서 할 말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런 인간이 시조라고 하면 좀 폼이 안 나지 않을까 … 하지만 로마인들은 그래도 상관없었던 듯하다.
어차피 로마인들에게 이상적인 인간형은 아킬레우스처럼 개인의 영광을 위해 앞뒤 앞가리고 돌진하는 영웅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인간형이었고, 이런 면에서 늙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3대가 함께 트로이를 탈출하는 아이네이아스는 로마인들이 중시한 가문, 씨족에 대한 충성심 (로마인들은 이를 ‘敬親 [pietas]’이라고 표현했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더욱이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고 조국 재건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다는 면에서 아이네이아스는 로마인들의 공화주의적 심성에 잘 부합했다. 그리고 묘사를 보면 마음이 약해지는 장면도 제법 많이 나오는 게 착한 사람으로 묘사되긴 했다. 게다가 트로이를 탈출하면서 아내 크레우사가 뒤쳐지자 다시 불타는 도시로 돌아가 울먹이며 그녀를 찾아다니는 등 그리스 신화에서 주를 이루는 남성적이고 화끈한 영웅상과는 색다른 매력을 풍기는 캐릭터이다.
“그때 운명이 내 아내 크레우사를 가련한 나에게서 낚아채어 갔습니다.
(중략)
나는 감히 어둠 사이로 큰 소리로 부르며 거리들을 내 고함으로 가득 메웠고, 비감에 젖어 ‘크레우사!’ ‘크레우사!’ 하고 거듭거듭 그녀를 불렀으나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찾아 끝없이 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내닫고 있을 때 크레우사의 가련한 환영과 그림자가 내 눈앞에 나타났는데 우리가 알고 있던 그녀의 모습보다 더 컸습니다.
소름이 끼치고 모골이 송연해서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네며 이런 말로 내 근심을 쫒아버렸습니다.
‘오오! 사랑하는 낭군이여, 그리 미친듯이 슬픔에 빠져드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요? 이런 일들은 신들의 동의 없이는 일어나지 않아요.
당신이 여기서 크레우사를 데려간다는 것은 법도가 아니거니와 높은 올륌푸스의 저 위대한 통치자께서도 허용하시지 않아요.
긴 망명이 당신의 운명이며, 당신은 망망대해를 쟁기질해야 해요.
당신은 헤스페리아 땅에 가게 될 것인데, 그곳에는 농부들의 풍요한 들판 사이로 뤼디아의 튀브리스 강이 유유히 흘러가지요. 그곳에서 즐거운 일들과 왕국과 왕족 출신의 아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의 사랑하는 크레우사를 위해서라면 더는 눈물 흘리지 마세요.
다르다누스의 자손이자 베누스 여신의 며느리인 나는 뮈르미도네스족과 돌로페스족의 오만한 궁전들을 보게 되지도 않을 것이며 가서 그라이키아 여인들의 노예가 되는 일도 없을 거에요…
천만에, 신들의 위대한 어머니께서 나를 이 해안에 붙들고 계세요. 자, 이제 잘 가세요.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아들을 언제까지나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말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많은 말을 하고 싶어하는 내 곁을 떠나 희박한 대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세 번이나 나는 그곳에서 그녀의 목을 얼싸안으려 했으나, 세 번이나 그녀의 환영은 헛되이 포옹하는 내 두 손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가벼운 바람결처럼, 그 무엇보다도 날개 달린 꿈처럼.” _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2권 738-794행, 천병희 번역본
단테의 신곡에서는 헥토르와 함께 림보에 있다. 사실상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모든 그리스 영웅들은 지옥에 떨어진 걸 보면 장기적으론 트로이의 승리이다.

○ 그리스 로마 신화의 트로이아 영웅 ‘아이네이아스’
아이네이아스 (Αινείας)는 고대 그리스의 트로이 전쟁의 한 영웅으로서, 전설상 아프로디테와 트로이 사람 안키세스의 아들이라 한다.
트로이가 그리스 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후, 그의 아버지와 아들 율루스(Iulus)와 함께 이탈리아 반도로 피신하였다고 전해지며, 이 전설은 후에 로마의 국가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혹은 아이네이드)에서 극적으로 노래 되었다.
이에 따르면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를 떠난 뒤 카르타고에 닿아 그곳의 여왕 디도와 사랑을 나누는 등 7년 동안의 유랑 끝에 이탈리아의 라티움에 상륙하였다.
아이네이아스는 그곳의 왕 라티누스의 딸 라비니아와 결혼하여 새로운 도시 라비니움을 건설하였고 이후 로마 제국의 건국 시조로 묘사되었다.
또한 아이네이아스가 로마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조상이라는 로마 건국 신화도 있다.
또한 아이네이아스의 증손이 영국으로 이주하여 최초의 영국 왕이 되었다고도 한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예스24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