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의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캔버스에 유화, 262×205, 1668년, 러시아 예르미타시 미술관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네: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년 7월 15일~1669년 10월 4일)은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 일반적으로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예술 분야에서 그의 기여는 역사가들이 소위 네덜란드 황금시대라고 부르는 시대를 불러오게 하였다.
1606년 7월 15일 암스테르담 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레이던에서 방아간 주인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이고 렘브란트는 개신교 신자였다. 렘브란트는 화가가 되었을 때에 모친이 성서를 읽는 모습을 그림에 담아냄으로써 신심이 진지한 모친에 대한 존경을 보였다.
14세에 레이던 대학교에 입학, 학교공부보다 그림에 열중해 그의 부모는 야코프 판 스바넨뷔르흐 (Jacob van Swanenburgh) 밑에서 3년간 미술 수업을 받게 하였다.
1625년 개인 화실을 연 직후,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던 피터르 라스트만(Pieter Lastman)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지도를 받으면서 미술에 관한 시야를 넓혔으며, 이를 계기로 1632년 거처를 암스테르담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 외과 의사 조합의 주문으로 ‘튈프 박사의 해부’를 제작하여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주요 작품으로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1632), ‘돌다리가 있는 풍경’(1637), ‘야경: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1642), ‘세 개의 십자가’(1653), ‘밧세바’(1654), ‘돌아온 탕자’(1668) 등이 있다.
렘브란트의 그림의 특징은 시대의 관행을 뛰어넘어 개성을 발휘했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야경의 경우 얼굴이 모두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그림도 있는데, 이는 모두 얼굴이 나오게 하는 단체 인물화가들의 관행을 뛰어넘은 것이다.
성서를 주제로 한 성화들도 성화 (이콘)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거룩한 느낌 대신, 인물들의 심리를 담아내는 심리묘사가 특징이다. 이를테면 구약성서의 족장설화 중 하나인 아브라함이 첩 하갈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를 버리는 장면을 그림으로 묘사하면서, 아브라함의 고뇌와 정실부인인 사라의 뿌듯함을 아브라함은 고뇌하는 표정을 짓고, 사라는 숨어서 웃는 모습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한편 렘브란트의 1668년 작품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는 그의 말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렘브란트는 자신을 그림속에 그려 넣거나, 성경의 사건 속에 대입시키기를 좋아했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뒤 고독한 상태인 자신의 심정을 성경속 사건을 토대로 표현한다.
성경 누가복음 15장에 나온 둘째 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린 이 그림에는 정교하고 섬세한 의미들이 담겨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둘째 아들은 밝은 빛 아래 속해 있지만 큰아들은 어둠에 가려져 있다. 그리고 따뜻한 표정의 아버지에 반해 큰아들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고 두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꼿꼿이 서 있다. 돌아온 동생을 반겨주기 보다는 못마땅해 하는 재판관처럼 보인다.
그에 반해 아버지의 손을 보면, 왼손은 부드럽고 오른손은 매우 강건해 보인다. 왼손은 죄를 짓고 돌아온 아들을 향한 사랑과 은혜, 오른손은 아들을 향해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듯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을 보면, 마치 장님처럼 시선이 정확치 않고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듯하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는 헨리 나우웬이 감동적인 감상평을 써 책을 내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