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 人革黨 사건 47周年

朴正熙의 人權蹂躪
朴正熙의 人權蹂躪은 人革黨 사건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朴正熙의 北韓 팔이는 어떤 手段보다 강력했다.
朴正熙의 人權蹂躪을 어떻게 筆舌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수많은 人權蹂躪 事例 중에 人革黨 사건으로 集約된다.
오늘, 4월 8일은 人革黨 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의 烈士들의 넉을 달래야 하는 47周年이 되는 해이다. 事件槪要를 세세하게 羅列할 수 없어 단편적인 극히 일부만 들춰본다.
스위스이 있는 國際法學者協會는 이 사건에 대해 强力하게 批判했으며, 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 역사상 暗黑의 날 (Dark day for the history of jurisdictions)”로 規正했다.
이는 해당 사건이 法治主義와 人權의 原則을 심각하게 毁損한 事例로 看做되었기 때문이다. 實體가 없는 이 사건으로 死刑당한 烈士 8인은 다음과 같다.

서도원 (52, 무직, 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도예종 (51, 삼화토건 회장), 하재완 (43, 양조장 경영), 이수병 (37, 삼락일어학원 강사), 김용원 (39, 경기여고 교사), 우홍선 (45, 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 송상진 (46, 양봉업), 여정남 (31, 무직, 전 경북대 학생회장)
그러나 8인 희생자의 한 사람이며 이수병씨의 절친한 친구였던 김용원씨 같은 분은 아마도 억울하게 희생당한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는 서울대에서 物理學을 전공한 건실한 自然科學도로서 고등학교 동창인 이수병씨가 징역을 사는 동안 그를 꾸준히 돌봐 준 사람이다.
두 분은 네 것 내 것을 가리지 않을 정도의 사이였고, 따라서 일어학원의 강사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이수병씨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돈을 빌려주기도 했는데, 이것이 中情의 酷毒한 拷問에 의해 組織資金으로 遁甲한 것이다.
조용하고 성실한 高等學校 선생님, 따라서 죽인다고 해도 주위에서 시끄럽게 떠들 社會的 관계가 거의 없다는 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 놓은 이유의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이 날을 기억하자. 司法殺人의 날 4월 8일!
獨裁者는 人權은 奢侈品일 뿐이다. 權力有志만이 最終目標다. 權力을 위해서는 手段과 方法을 가리지 않는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