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거머리 이야기
Beecroft의 보존 지역– Jacaranda Reserve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유카립투스가 가득한 계곡이 있다. 300여m나 되는 드라이브웨이를 거쳐 들어가면 두메산골 같은 산속에 딸네 집이 있다. Jacaranda Reserve라는 이름의 계곡이다. 딸 이야기를 들어보면 야생 동물이 흔하게 눈에 뜨인다는 것이다. 여우가 유유히 집 근처를 맴돌고, 밖에서 서성이다 보면 거머리가 발목에 달라붙어 아연실색 (啞然失色)하는 경유가 종종 있다고 한다. 시골에서 성장한 필자는 거머리에 관한 추억이 있다. 특히 논에 모를 심으며 거머리에 종아리를 뜯기던 추억은 생생하다. 종아리를 걷고 논에 들어서면 걱정거리가 종아리에 달라붙는 거머리였다. 한국에선 참거머리와 말거머리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세계적으론 500여 종의 거머리가 서식한다고 한다. 악동 (惡童) 시절 생명체에 잔인한 짓거리를 많이 하였다. 거머리를 잡아서 작은 꼬챙이를 입이나 항문에 대고 밀어서 뒤집어 보기도 하였는데 속엔 아무것도 없다. 단순히 입에서부터 항문까지가 전부 위 (밥통)로 되어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의 논에서 거머리를 구경할 래야 구경할 수조차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50년대 후반 전쟁통에 남정네들이 귀해지자 여성들도 어쩔 수 없이 모내기에 나섰다. 여성들의 종아리에 붙는 거머리는 최고의 기피 대상이었다.
문헌에 묘사 (描寫)된 거머리
문헌에 따르면 한자어로 수질 (水蛭)이 표준어였고, 질 (蛭) · 기 (蚑) · 지장 (至掌)이라고도 했으며, 우리말로 검어리 · 거멀리 · 거머리라고 하였다. 거머리류의 몸은 대부분 편평하거나 원주상이고 길다. 앞뒤 끝 배쪽 면에 각각 1개의 빨판 (흡반)이 있으며, 앞빨판 안에 입이 있다. 항문은 뒤 끝 등면 복판에 있다. 몸은 어떤 종류이거나 모두 34몸마디 [體節]로 되어 있으며, 각 몸마디는 다시 2∼16개의 몸고리 [體環]로 나뉜다. 몸 표면에는 몸고리홈 · 감각돌기 · 눈 등이 있다. 암수 한몸이며, 생식공 (生殖孔)은 제11 · 제12 몸마디의 배쪽 복판에 있다. 생식 시기는 봄과 여름 사이인 경우가 많고, 보통 연 1회 산란한다. 거머리류 중에는 사람이나 가축의 피를 빨아 해를 끼치는 것, 물고기에 기생하여 죽게 하는 것 등이 있는데, 대부분 물속 (민물 · 기수 · 바닷물)에서 산다. 민물 거머리는 세계 도처의 하천 · 호수 · 연못 · 도랑에 있으며, 조개류 · 곤충의 체액을 빨아먹는 것, 양서류·물새에 외부 기생하는 것, 지렁이류나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 것, 포유류의 피를 빨아먹는 것 등이 있다. 바다에서 사는 종류는 어류 · 거북 · 갑각류 등에 외부 기생을 한다. 소수의 종들은 육상에도 있어, 삼림 지대에 살면서 포유류의 피를 빨아먹는 것, 습지의 이끼 · 돌, 썩고 있는 나무 밑에 살면서 지렁이 따위를 잡아먹는 것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세계적으로는 약 5백 종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거머리가 어혈 (瘀血)과 적취 (積聚)를 다스리고 징결 (癥結)을 깨뜨리고 타태 (墮胎)하며, 수도 (水道)를 좋게 하고, 여자의 월경 불통에 혈로 (血勞)를 다스린다고 하였다. 지택 (池澤)에 나는 것을 5, 6월에 잡아서 햇볕에 말려 사용하는데, 소 · 말 · 사람의 피를 배불리 먹은 것이 좋다고 하였다. 현재에는 의용 거머리의 침샘에서 히루딘 (hirudine)을 추출하여 혈액 응고 방지제로 쓰기도 한다.
거머리의 고유 성분 히루딘 (hirudin)의 가공 (加工)

거머리는 속칭 마황 (螞蝗) 으로 불리며 체내에 히루딘 (hirudin), 헤파린 (heparin), 항혈전소 (ATX, I-II)을 함유하고 있다. 심장 혈관 질병, 종통 (腫痛: 붓고 아픔), 종양 치료에 사용할 수 있어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진귀한 중약재이다. 주 생산지는 산동, 안휘, 강소성 등이고 다른 성에서도 고르게 조금씩 생산된다. 최근 몇 년 간은 많이 부족해서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 매번 거머리가 성숙하는 여름철과 가을철에는 각지에서 채집하고 있으나 채집과 가공 기술상의 난관을 극복하기 어려워 채집 양은 적고 가공한 품질이 떨어져서 이익이 그다지 좋지 않다. 아래 간략하게 거머리 채집과 가공 기술을 소개한다. 1년에 6월 중 하순과 9월 중 하순에 두 번 채집할 수 있다.
1. 채집법 : (1) 대나무체로 잡는 법 – 가제로 싼 대나무체나 플라스틱 망태기 중간에 동물의 피나 동물 내장을 넣은 다음 대나무 장대에 단단히 묶어 못이나 호수나 저수나 논 속에 집어넣었다가 이튿날 대나무체를 끄집어 내면 거머리를 잡을 수 있다. (2) 대쪽으로 잡는 법 – 대통을 반으로 갈라 중간에 동물의 피를 문지르고 다시 붙여 잘 묶은 다음 논, 못, 호수 등지에 집어넣으면 이튿날 거미를 잡을 수 있다. (3) 수세미 속 섬유로 잡는 법 – 수세미 속 섬유를 동물의 피 속에 담갔다가 볕이나 불에 말리고 대나무 장대에 잘 묶어 논, 못, 호수 등에 집어넣었다가 이튿날 수세미 속 섬유를 건져내면 많은 거머리를 떨어낼 수 있다. (4) 풀단으로 잡는 법 – 우선 볏짚으로 가운데는 느슨하고 양머리를 단단히 묶은 풀단을 만들고 동물의 피를 풀단 속에 주입시켜 연못의 수구 (水口)에 눕혀놓고 물을 천천히 연못으로 유입시킨 다음 4 ~ 5시간 후에 풀단을 꺼내면 거머리를 잡을 수 있다.
2. 가공하기: (1) 생으로 볕에 말리기, (2) 끓는 물에 데치기 – 거머리를 깨끗이 씻어 그릇 속에 넣고 끓는 물을 거머리가 잠기도록 3cm 정도 붓는다. 20분 후에 데쳐 죽인 거머리를 건져내 볕에 말린다. (3) 소금에 굽기 – 거머리와 식용 소금 가루를 같이 그릇 속에 집어넣고 위 아래로 거머리를 뒤집으면서 볶아준다. 거머리가 작게 줄어들면 다시 깨끗이 씻어 볕에 말린다. (4) 석회에 묻어 두기 – 거머리를 석회 속에 20분간 묻었다가 거머리가 죽은 다음 석회를 털어내고 물로 씻어 볕이나 불에 말린다. 또 거머리를 초목회 속에 묻었다가 30분 후에 거머리가 죽으면 초목회를 털어 내고 물로 씻어 볕에 말린다. (5) 담배에 묻어 두기 – 거머리를 썬 담배 속에 약 30분간 묻어 두었다가 죽으면 다시 씻어 볕에 말린다. (6) 술에 담가 두기 – 도수가 높은 술을 거머리가 담긴 그릇 속에 따라 붓고 30분간 봉해 두었다가 거머리가 죽은 다음 건져서 다시 맑은 물로 씻어 볕에 말린다. (7) 염제법 – 거머리를 그릇 속에 넣되 소금 1층, 거머리 1층을 넣어 그릇을 가득 채운다. 소금기가 스며 죽은 거머리를 볕에 말리면 된다. (8) 그늘에 말리기 – 그늘지고 서늘하며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죽은 거머리를 깨끗한 죽간, 멍석, 목판 등에 고르게 펼쳐 말리면 된다. (9) 불에 말리기 – 죽은 거머리를 깨끗이 씻어 저온 (70℃)에 말린다. 가공한 품질의 좋고 나쁨은 거머리의 수매가를 결정한다. 상품성 있게 가공된 거머리는 편편한 방추형으로 등 부분은 약간 융기하고 배 부분은 평탄해야 하며 질이 연하고 쉽게 끊어지며 끊어진 면은 콜로이드처럼 광택이 나고 색깔은 흑갈색이어야 한다.거머리를 말린 상품은 쉽게 습기 차고 벌레가 나기 쉬우니 반드시 판매될 때까지 포대에 담아 겉을 비닐봉지로 단단히 밀봉하여 건조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걸어둔다.
거머리의 응용 (應用)과 조상들의 조화의 지혜
우리 조상들은 미나리에 붙어 처치 곤란한 거머리를 놋수저로 방제하였다고 한다. 어릴 적에 본 미나리 키우는 곳은 매우 불결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미나리 논속엔 징그럽게 생긴 거머리들이 상당히 많이 살았다. 때문에 겁이 많은 부녀자들은 아예 미나리 논에 손을 못대고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낫으로 몇 웅큼 쓱쓱 베어와서 넓적한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붓고 미나리를 그 속에 넣는다. 그리고는 감자만 긁어서 끝이 뾰족하게 닳은 빼때기 놋숟가락을 미나리 속에 던져놓고 나서 한참을 기다리면 시커먼 거머리들이 넘심넘실 물위에 떠다닌다. 손바닥으로 그들을 건져서 마당에 버리곤 했었다. 그때 그저 그러러니 하고 미나리를 들여다 보고만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일상생활에 응용하게 되었을까? 그렇듯 비브리오균과 거머리를 쫓아내는 신비한 놋그릇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체인 청동 제품이란다. 현대 금석 공학에선 주석과의 합금체에서 주석의 비율을 10% 이상을 넘기지 말라고 권한다는데 우리 조상들은 그릇을 만들 때에 주석을 22%까지 넣어서 유기 그릇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비율의 조화로움에서 그런 나쁜 것을 몰아내는 좋은 기운이 나온다고 하니 자못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화는 안정이요, 화합이며 또한 평화로움이다. 그 속엔 각각의 다름이 합류되어 있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구가 쉼 없이 돌면서 주야를 이루며 만물을 생성시키는 대자연의 원리도 그 조화로움에서 이뤄지며 그 자연 속에서 뭇 생명이 살아가는 그 이치 또한 다름에서 서로 의지하여 조화를 이루는데서 비롯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생명의 탄생이나 존재의 조건이 그 모두가 다름에서 형성된 그 조화의 덕택이거늘 유독 인간만이 그 조화의 원리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어깃장을 놓는다. 그렇게도 아는 것이 많은 우리들은 왜 단순하고 합리적인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할까? 붓다는 말한다. “근본 원인은 그러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없는 무지 (無智)”라고 천명하셨다. 캄캄한 방에 들어가서 더듬거리며 불안해하더라도 전깃불을 켜면 안도의 숨을 내쉬듯이 세상됨의 원리와 삶의 조화를 접목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한 생각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요즈음이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