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고사리를 중심으로 양치식물 이야기(1)
호주땅의 고사리
89년도에 처음으로 호주땅을 밟으며 울릉공으로 가는 국립공원의 숲속길에서 차장밖으로 펼쳐진 광경은 환상적이었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쭉쭉 뻗은 유칼립투스나무들과 함께 이에 질세라 고사리나무가 당당하게 하늘높이 치솟아 있는 것을 보며 한국에서는 느껴 볼 수 없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국립공원, 깊은 계곡의 숲속길을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경사지를 살펴보니 온통 고사리로 꽉차 있어서 한국의 산속과는 너무나 다른 호주의 자연생태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후에 호주의 다양한 종류의 고사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중에 식용고사리의 특색도 쉽게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식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고사리가 기세등등하게 치솟아 있는 것은 영화로 널리 알려진 쥬라기 공원의 무대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며 매혹에 빠지게 한다. 노년에 한가한 시간을 주변에서 흔하디 흔한 고사리관찰과 고사리공부를 해보려고 작심을 하였다. 공부를 하면서 독자들도 관심이 갈만한 내용을 간추려 칼럼으로 게재[揭載]하려고 한다.
호주대륙의 지각변화와 양치식물
고사리를 이야기 하려면 공룡을 빼 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약 2억년 전, 쥬라기에 고사리 무리인 양치식물[羊齒植物]이 공룡과 함께 지구를 압도하였었기 때문이다. 공룡도 식물성을 먹던 종류도 있고 육식성 공룡도 있었는데 식물성공룡들이 고사리류를 먹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한국인에게 소나무와 같이 고사리와 공룡은 생태적인 공생관계였을 것이라는 유추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불과 몇 십만년 전에 출현하여 약 7만년 전에야 인지혁명이라고 하는 진화를 거치며 지구를 구석구석 누비며 초토화 시키고 있는데 중생대의 지구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공룡패들은 약 1억 6천만년동안 지구를 지배하였었다는 것을 인식하며 겸손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구의 나이를 열거하면 학술용어라 기억하기도 쉽지 않고 흥미가 없는게 대부분이겠지만 큰 머리만 열거해 본다. 지구의 탄생을 46억년으로 보고 그로부터 8억년후에 생물체가 생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러니까 38억년 전에 지구상에 생명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생물체라고 하지만 바다물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분해하는 박테리아 정도의 유기체를 확인한 것이 전부다. 최초의 인간이 출현한 지역을 이야기 하려면 아프리카를 거론하게 되지만 지구의 나이 이야기라면 호주가 나서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의 잭힐스(Jack Hills) 지역에서 채집한 지르콘(Zircon)이다. 지르콘(Zircon)이라는 이 광물질이 굳은 시기가 44억 4백만년 전으로 알려진 광물 중 가장 오래된 광물로 인정받고 있고, 2011년에 호주와 영국 과학자들은 호주의 오랜 퇴적암층에서 석영질 모래 알갱이들 사이에 매우 잘 보존된 미소생물[微小生物-유공충, 방산충 , 편모조, 포자, 화분 등 현미경으로 봐야 할 크기의 생물] 화석을 발견했으며, 이들 생물이 황 성분 화합물을 이용해 에너지와 성장 동력을 얻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일이 있다. 지구의 대륙들이 영겁의 세월속에서 요동치며 이리저리 갈라지는 가운데서도 호주대륙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원형을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선캄브리아[Precambrian]기
암혹과 같은 이 시기를 선캄브리아[Precambrian]기라고 하는데 지구 탄생부터 5억 4천 2백만년 전까지를 말한다. 그 후에 현생누대라고 하는데 현생누대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눈다. 현생누대의 첫 번째 기간인 고생대의 시작단계를 캄브리아기기라고 하며 이때 폭발적으로 별야별 생물체가 등장해서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라는 표현을 한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생물종들이 지구상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고생대에 이미 생물체가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종족번식을 하며 특색을 들어내는 가운데 중생대를 맞이 하면서 지구를 집어 삼킬 것만 같은 공룡들이 출현한다. 큰 덩치의 공룡들이 지구의 구석수석을 누빈 발자욱을 화석의 형태로 남김으로써 그들이 활동하던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캄브리아기에 동물들만 살판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식물들이 먼저 기지개를 펴고 지구위 표면을 개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식물종도 다양하게 진화하며, 생태계를 구성하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양치류[羊齒類]가 단연 지구의 표면을 압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양치류는 말 그대로 양의 잇빨모양의 잎을 가진 식물류라는 뜻이다. 양치류는 꽃이 피지 않고 포자[胞子]로 번식하는 식물이다. 포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버섯같은 균류[菌類]를 연상할 수 있는데 꽃이라는 생식기관을 갖지 않고 포자로 종족번식을 하는 것이다. 포자로 번식하는 종류도 수없이 많지만 양치류는 포자식물중에서 가장 발달한 식물이며, 2억 2천 3백만년 전, 이첩기(二疊紀)라고 하는 지질시대에 식물계의 왕자였다. 키는 30m가 넘고 지름이 1m를 상회하는 커다란 양치나무들이 이때 무성하게 자랐고 그 밑에 공룡이 살기 시작했다. 당시 지구의 기후는 남·북극 등 극지까지도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아서 양치식물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에 있는 금무봉(錦舞峯)에서는 1억 2천 5백만년 전에 ‘사라’라고 하는 나무고사리가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살아있는 사라고사리를 볼 수 없으나 일본의 남부와 대만에서는 이와 비슷한 종류가 아직 남아 있다. 금무봉에서는 사라고사리가 화석상태로 발견된다. 개중에는 줄기의 지름이 20cm, 길이가 70cm나 되는 것들도 있었다. 비록 잎의 크기를 보여주는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줄기만으로 볼 때 오늘의 양치식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라고사리류가 번창했던 지역은 아열대와 열대지방이었다. 한결같이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은 환경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건조하고 온도가 내려간 환경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먼지같은 포자로 번식해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암술, 수술, 암꽃, 수꽃을 따로 갖고 있으며 이런 구조물이 열매를 맺게 하며 또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보내는 식물도 있다. 그런가 하면 화려한 꽃 색깔로 벌레를 유도하는 식물도 허다하다. 이 식물들은 먹을 것을 벌레에게 주고 대신 자신의 꽃가루를 운반시킨다. 이처럼 식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종족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포자식물의 번식은 꽃피는 식물의 번식법과는 전연 다르다. 꽃은 영양체에 붙어서 살지만 포자의 생식체는 영양체와 전혀 무관하게, 즉 독립체로서 생활하고 있다. 포자는 크기가 작아서 맨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옛 사람들은 은밀히 꽃이 핀다고 생각해 양치식물을 은화식물[隱花植物]이라고 불렀다. 꽃가루는 꽃에서 나오는데 양치식물의 포자(胞子)는 어디서 나올까. 포자에 대한 옛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옛날 어느 꽃집에서 관엽식물로 양치식물을 기르고 있었다. 이것을 산 손님이 며칠 후 찾아와서 꽃이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바꿔 갔다. 그러나 한달쯤 지나서 다시 바꾸러 왔다. 손님이 병이라고 여긴 것은 잎 뒤에 붙은 빈대같은 것이었다. 주인도 이것을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바로 포자가 들어있는 포자주머니였다. 포자는 작아서 먼지같이 보이고 포자주머니 안에 들어 있다. 포자주머니는 여러개가 한데 모여 있는데 그래서 ‘포자낭군’ 또는 ‘낭퇴’라고 한다. ‘낭퇴’는 보통 벌레같이 보인다.
양치류의 일생
양치류를 일생을 이해하는 것도 생물진화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식물은 물에서 시작되었고 물에서 육지로 상륙한 단계의 식물이 이끼류이며 이끼류와 비슷한 생식방식에 다가 육상에 적합한 포자체세대라고 하는 획기적인 기관을 만들어 육지를 점령할 만큼 번창할 수 있게 진화한 것이다. 양치식물은 꽃이 없고 포자를 만들어 사방으로 날려 보낸다. 포자가 습기가 많은 땅에 떨어지면 오래지 않아 싹이 트는데 이 싹은 마치 잎같이 생긴 전엽체(前葉體)로 발달한다. 전엽체의 이해를 돕기위해 식물 진화의 단계와 분류의 기준이 되는 식물기관의 차이를 살펴본다. 김이나 미역 등 물속에서 사는 식물은 물을 흡수하는 특별한 구조를 갖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관[管-pipe]이 없다. 그래서 김, 미역같은 식물을 엽상식물이라도 하는데 물속에 있는 엽상식물보다 한 단계 발전한 식물의 구조를 엽상체[葉狀體]라고 한다. 축축한 담장 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솔이끼나 우산이끼가 엽상체 식물이며 선태식물[蘚苔植物]이라고 한다. 바로 이 심장모양의 전엽체에서 암수를 가르는 생식기관이 생긴다. 성숙한 정자는 물속으로 헤엄을 쳐서 난세포가 있는 곳으로 간다. 이때 정자는 절대로 같은 엽상체[葉狀體]를 향하지 않고 이웃 엽상체에 있는 난세포를 찾아간다. 이를 음미하면 근친결혼을 꺼리는 것은 사람뿐이 아닌 것 같다. 정충[sperm]에는 털이 있어 헤엄치기 쉽게 생겼으나 보통 나선상으로 회전해 목적을 달성한다. 암수의 핵이 합쳐진 것을 접합자(接合子)라고 한다. 접합자는 계속적인 세포분열을 통해 커지면서 뿌리가 돋아나고 잎이 자라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커다란 식물체가 된다. 아무리 큰 식물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한개의 세포에서 출발한다. 자랄대로 자란 양치식물의 잎에는 한때 병소이거나 벌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즉 포자는 잎의 뒷면에 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잎 가장자리에 달리거나 잎의 일부 또는 전체가 포자낭이 될 수도 있다. 음양고비는 전자에 속하고 고비와 꿩고비 등은 후자에 해당한다. 이와같이 영양생장을 하면서 생식기관을 생산하는 것을 조포체(造胞體) 또는 영양체라고 부르고 포자가 떨어져서 싹이 튼 다음 새로운 접합자가 생길 때까지를 배우체(配偶體)라고 한다. 양치식물은 이처럼 조포세대와 배우체세대를 번갈아가며 자란다. 꽃이 피는 식물의 경우 배우체세대가 조포체세대에 포함돼 있다. 이 점에서도 두 세대로 나눌 수 있는 양치식물과는 현저히 다르다. 생물을 배웠다면 고사리의 ‘세대 교번’[世代 交番]을 필수적으로 공부하였을 것이나 흥미롭게 학습한 사람은 몇 않될 것이다. 식물의 최고 진화한 식물이 물에서부터 육지로 상륙하며 땅속에 가냘프게 분로돼 있는 물을 끌어들여 가며 몸을 부풀리고 웅장하게 성장하게 되기까지 수 십만년 수 억년을 통해 노하우를 축척해서 DNA로 설계도를 구비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상에서 번식할 수 있게 생식체계를 정비하고 물을 끌어들이는 pipe line을 장착한 양치류는 지구상에서 종족을 늘려 가며 수많은 세월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누리게 된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