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연체동물 살펴보기(3)
문어[文魚]
한자 이름 ‘文魚’가 글을 아는 물고기라는 뜻이니 문어가 똑똑한 것은 고대 사람들도 알고 있었나 보다. 문어는 아주 복잡한 미로의 길을 찾아가고 먹이가 들어있는 병마개를 열 줄 안다. 그래서 문어가 개나 고양이만큼 똑똑할지 모른다는 말도 있었지만, 설마 했었다. 문어는 연체동물로서 무척추동물에 속하기 때문에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척추동물, 그중에서도 최상위 진화종인 포유류에 비해서는 지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논리적 판단이었던 것이다. 문어는 바다의 천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바다 속에서 문어를 관찰한 사람이라면 정말 똑똑한 생물이구나 하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문어는 주변에 위협적인 요소가 있다고 느끼면 몸의 색깔과 모습을 즉각 바꾼다. 마치 영화에서 지명수배자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변장을 하는 것을 보는 것 같은데, 시간이 채 1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은폐에도 매우 뛰어나다. 바위처럼 보이게 하는 등, 생명체가 아닌 척 능청을 떨기도 한다. 한마디로 위장의 천재다. 문어 중에서도 모습을 가장 다양하게 바꿀 줄 아는 것은 미믹 옥토퍼스[Mimic Octopus, 흉내 문어]라고 한다. 이런 특별한 종류의 문어가 있다는 사실은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미믹 옥토퍼스는 모래구멍에 숨어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주변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모습 수십 가지를 흉내 낸다. 독이 있거나 강력한 포식자의 모습을 흉내 낼 때도 있고, 영악하게도 자기를 공격하는 생물에 맞춰 그 생물이 가장 무서워하는 천적 모습을 흉내 내기도 한다. 그걸 어떻게 아는지, 고도의 지능이 없다면 불가능한 행동이다.문어는 뼈가 없는 연체동물이다 보니, 좁은 공간에도 큰 몸을 우겨서 들어가 숨을 수 있다. 코코넛 옥토퍼스(Coconut Octopus)라는 문어는 맨몸으로 다니다가도 숨어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양 다리로 조개 또는 비슷하게 생긴 것 뭐든지 두 쪽을 집어서 포개면서 그 속으로 쏙 들어가 숨기도 한다. 도구를 쓸 줄 아는 것이다.
문어의 DNA
미국 시카고대·UC 버클리·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 연구팀의 문어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해독한 논문이 있다. 시카고대 신경생리학자인 클리프턴 랙스데일 박사는 캘리포니아 두점박이 문어(Two-spot octopus)를 대상으로 한 문어 게놈 분석을 통해 “문어는 고도로 발달한 신경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또 이 연구에서 문어의 유전자 개수가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심지어 단백질 코딩 유전자(Protein-coding Genes) 수는 3만3천개로 인간(2만5천개)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어에게는 모두 168종의 프로토카데린 유전자가 존재하는데 이는 일반 포유류보다 2배, 무척추동물보다는 10배 많은 수치다. 뇌에서 생성되는 세포접착 단백질의 일종인 프로토카데린은 신경세포를 발달시키고 뉴런과 뉴런의 상호작용을 돕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알려져 있으며 문어의 머리가 큰 이유라는 것이다. 이 연구에 참가한 UC 버클리의 대니얼 로크샤 교수는 “문어의 신경 시스템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조직화됐다”면서 “무척추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특히 문어는 카메라처럼 정확한 시각과 뛰어난 위장 능력을 갖고 있으며, 빨판이 달린 8개의 팔은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문어는 5억년 전 지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원시 지능 동물이며, 이후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왔다. 문어는 주변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유전자를 복제해왔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문어는 척추동물이 갖고 있는 척수가 없지만 머리에서 팔을 통해 신경세포를 흘려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문어는 유사한 종인 오징어와는 달리 동료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고 개별 행동을 한다. 자기들끼리 경쟁하고 서로 잡아먹기도 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짝짓기 과정에서 수컷 문어가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경우가 많이 관찰된다고 한다. 왜 높은 지능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한다. 암컷 문어는 수천, 수만 개의 알을 낳는다. 암컷은 몇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지키고 관리를 하다가, 새끼들이 부화하면 목숨을 다한다. 어쩌면 수컷 문어는 암컷이 수정 후에 먹이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자기 몸을 식량으로 바친 것인지도 모른다. 잡아먹힌 것이 아니라 후손들을 위한 자발적 희생일 수 있다. 우리가 동물의 지능과 감정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극히 적은 것은 분명하다. 혹시 문어도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낄 줄 알지도 모른다. 인간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동물 생명의 존엄권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겨울철 동해안 다이빙에서 다이버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대왕문어와의 만남이다. 일반적으로 남해안에서 발견되는 왜[矮]문어와 달리 대왕문어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크기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대왕[大王]문어들이 수중의 구석진 곳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이버들을 흥분시키는 도전적인 재미를 느끼게 한다고 한다.
문어와 참문어
우리가 보통 대왕문어라고 부르는 종의 정식 명칭은 그냥 문어(文魚)이다. 영어로 하면 자이언트 태평양 문어(Giant Pacific Octopus)로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우리나라 동해안과 중국해까지 태평양 북쪽 연안을 따라 분포하는 문어이다. 학명으로는 “Enteroctopus dofleini”이며, 어민들과 시장에서는 피문어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크기가 작으며 보통 돌문어, 왜문어라고 불리는 종은 정식 명칭이 참문어이다. 온대에서 열대지역까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기 때문에 영어로는 보통문어(Common Octopus)라고 하며 학명은 “Octopus vulgaris”이다.
대왕문어(문어)와 참문어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참문어는 크기가 커도 팔을 양측을 펼친 길이가 1m를 넘지 않지만 대왕문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문어 종류들 중에서는 크기가 가장 크다. 과학적으로 검정된 살아있는 대왕문어의 최대 기록은 무게가 71kg이지만,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는 다른 기록에 따르면 무게 272kg에 팔 길이가 9m나 되는 것도 있었다고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전설 속의 괴물 크라켄[Kraken-신화 속의 거대한 바다괴물로,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의 해안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설화속의 괴물]이 맞을 것이다. 다자란 대왕문어의 일반적인 크기는 무게 15kg에 팔길이가 4m가 넘는다.
대왕문어의 생태
대왕문어의 평균 수명은 4년 정도로 수명이 12개월~15개월에 불과한 참문어 보다는 훨씬 오래 살지만 그 크기에 비해서는 수명이 짧은 편이다. 이런 짧은 수명을 보상하기 위해서 대왕문어는 알을 많이 낳는 전략을 구사하는데 암컷은 보통 10만개 정도의 알을 낳아서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다. 쌀알 크기의 알들을 동굴 천정이나 바위 벽 위에 붙여놓고, 끊임없이 출수공으로 물을 뿜어서 산소를 공급하고, 알을 먹으려는 포식자들의 공격을 물리친다. 이렇게 해서 알들이 부화되면 암컷은 체력이 달려서 포식자들을 막지 못해 죽게 된다. 수컷은 짝짓기를 할 때 변형된 다리인 교접완(交接腕, hectocotylus)으로 정자가 들어있는 주머니인 정포(精包, spermatophore)를 암컷의 외투강 속으로 집어넣는다. 대왕문어의 정포는 그 길이가 1m가 넘는다. 수컷 역시 짝짓기를 마치고 몇 달 안에 죽는다. 이들의 산란기는 봄부터 여름까지로 알려져 있다.동해에서 대왕문어는 수심 65m 내외까지 서식하는데 크기가 작은 문어들은 연중 얕은 수심대에서 관찰되지만 10kg 이상의 성숙한 대왕문어들은 산란기를 즈음하여 얕은 수심으로 올라온다. 따라서 다이버들이 성숙한 대왕문어들을 주로 관찰할 수 있는 때는 설 이후라고 한다. 대왕문어의 먹이는 새우, 게, 전복, 조개, 물고기 등이며 1m 정도 되는 길이의 상어를 잡아먹는 광경이 포착되기도 했다. 반면에 이들은 물개, 수달, 향유고래에게 잡아먹히기도 하는데 가장 위험한 포식자는 역시 사람들이다. 미국과 일본, 한국 등에서 상업적으로 대왕문어를 어획하는데 아직까지 대왕문어에 대해서 연구된 것도 별로 없으며,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되고 있지도 않다. 지난 5월 3일에 방송된 “채널A”의 “도시어부”라는 프로에서 인기연예인 L씨가 4.88kg의 대왕문어를 잡아 올리는 장면을 보며 놀라워 한일이 있다. 대왕문어가 동해안 최북단인 강원 고성군 앞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이를 활용해서 강원 고성 저도어장에서 잡히는 대왕문어를 테마로 한 ‘대문어축제’가 매년 5월 초에 열린다. 저도어장 대문어는 큰 것의 경우 50㎏을 넘는다. 이들 문어는 저도어장에서 서식하다 해마다 4월부터 첫 조업을 하는 어민들에게 잡혀 올라온다. 저도어장은 매년 4월 1일부터 12월까지 조업할 수 있고 3월까지는 휴식기를 갖는다고 한다.
문어의 효능
문어의 각종 효능은 현대에 들어와 영양성분이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분석되며 새롭게 검증을 받고 있다. 특히 문어의 성분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간의 해독을 돕는 것으로 유명한 타우린 성분이다. 오징어, 낙지 등 연체동물의 두족류에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타우린[Taurine]은 간 해독 외에도 신경계와 시력기능 향상, 항동맥경화, 항고지혈증, 비만 및 당뇨병 예방 효과 등을 지녔다. 최근에는 타우린이 뇌기능 향상에 좋다는 사실이 발표돼 화제가 됐다. 이와 함께 최근 문어에 비타민B 성분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주목을 받고 있다. 문어를 혓바늘 예방에 유익한 식품으로 권할 수 있는 것은 비타민B 성분을 풍부하게 지녔기 때문이다. 에너지 생성에 관여해 ‘면역 비타민’으로 불리는 비타민B군은 부족하면 입안에 염증이 생기는 구내염 등 각종 결핍 현상을 유발한다. 그러나 몸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문어처럼 비타민B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식품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비타민B 중에서도 코발라민[cobalamin]으로도 불리는 비타민B12는 결핍될 경우 혓바늘 증세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우리나라 성인의 비타민 B12 권장섭취량은 2.4㎍인데 문어 100g에는 1.3㎍의 비타민B12가 들어있다. 찐 문어 몇 점이면 비타민B12 하루 권장량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셈이다. 비타민B12는 동물성 식품에만 존재하며 간, 육류, 어패류, 생선, 알류, 우유 및 유제품 등이 주요 급원 식품이다. 식물성 식품에 존재하는 비타민B12도 주로 미생물, 토양, 곤충 등에서 유래한 것이다. 비타민B12는 적혈구 생산을 돕기 때문에 붉은 비타민이라고도 부르며 철분을 섭취하고도 치료가 안되는 악성빈혈에도 효능을 지녔다. 채식주의자이며 계란과 유제품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비타민B12 제제를 일부러 먹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비타민B12는 매일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거나 평소 음주량이 많은 사람에게도 중요한 영양소다. 또 문어에는 DHA와 EPA 성분이 풍부한데 이 성분들이 기억력 향상에 좋은 영향을 끼쳐 학습 능률을 향상시켜준다. 문어가 수험생들의 간식은 물론 어르신들의 치매 예방 식품으로 권해지는 것도 그처럼 몸에 유익한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 피부 노화를 걱정하는 여성들에게도 문어의 꾸준한 섭취가 유익할 수 있다. 문어에 함유되어 있는 니아신과 비타민E 등의 성분은 세포의 노화를 억제해주면서 세포들을 활성화시켜 피부 노화를 막아준다. 한편 문어를 고를 때는 우선 다리 개수부터 확인해야 한다. 문어의 다리는 8개인데 종종 한두 개가 없는 문어가 발견된다. 또 상태가 좋은 문어를 고르기 위해서는 빨판 확인도 필요하다. 빨판이 크고 제대로 있는 것이 신선한 문어다. 국산과 외국산의 구별은 색깔로 할 수 있는데 국내산 문어의 경우 붉은빛이 도는 반면, 외국산은 검은색이나 회색빛을 띤다는 것을 유의 하라고 한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