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잠자리의 한 살이
蜻蛉 (청령), 영어로는 ‘dragonfly’
필자의 뒷뜰은 북향이지만 하루 종일 햇볕이 잘 들어, 햇살을 받으며 앞쪽 숲을 바라보는 것이 하루의 작은 즐거움이다. 얼마 전부터 잠자리가 날아와 공중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보며 고향에서 하늘을 가득 메웠던 잠자리 떼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잠자리의 한 살이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한자로는 蜻蛉 (청령)이라 쓰며, 영어로는 dragonfly라 부른다. 흥미롭게도 이를 우리말로 풀면 ‘용파리’가 되는데, 이는 잠자리 유충이 용 (龍)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잠자리는 두 쌍의 날개가 앞뒤로 대칭되어 있으며, 투명하고 고운 날개맥 (翅脈)이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 그래서 예로부터 얇고 곱게 짠 비단을 두고 “잠자리 날개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학배기’, 잠자리의 애벌레
잠자리는 수초의 조직이나 축축한 흙, 나무토막 같은 곳에 알을 낳는다. 약 2주일 후 부화하면 유충인 수채 (水蠆)가 되는데, 이를 우리말로 학배기라 부른다.
이 학배기는 1년에서 길게는 수년 동안 물속에서 살아간다. 육식성인 학배기는 강한 턱으로 장구벌레, 실지렁이, 올챙이 등 다른 작은 생물을 거리낌 없이 잡아먹는다.
하지만 세상은 돌고 돈다. 학배기가 잠자리로 성장하면, 이제는 개구리가 된 올챙이에게 잡아먹히기도 하니, 정말 사람 팔자처럼 알 수 없는 일이다.
학배기는 성장 과정에서 10~15번의 탈피를 거친다. 숨은 항문과 연결된 직장 아가미로 쉬며, 잠자리는 나비처럼 번데기 단계를 거치지 않는 불완전변태 (不完全變態) 곤충이다.
물속 생활이 끝나면 연못가 식물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 날개돋이 (우화 · 羽化)를 한다. 이때 애벌레의 머리와 가슴 부분이 부풀고, 등짝이 Y자 형태로 갈라지며 물기 어린 성충 잠자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결혼비행 (結婚飛行), 사랑의 춤
수컷 잠자리는 짝짓기 시기가 되면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다른 수컷을 쫓아내며 순찰한다. 두 마리가 앞뒤로 붙어 날아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를 결혼비행 (結婚飛行)이라 부른다.
이는 교미 중인 것이 아니라 짝짓기를 준비하는 전희행위 (前戱行爲)다.
앞쪽이 수컷, 뒤쪽이 암컷이다. 수컷은 배 끝의 집게로 암컷의 목을 단단히 잡고 하늘을 난다.
짝짓기 시에는 암컷이 몸을 뒤집어 여섯 다리로 수컷의 배를 붙잡고 몸을 둥글게 구부려, 수컷 가슴 부분의 부생식기에 붙여둔 정자를 받아간다. 이때 두 잠자리의 모습이 하트 모양을 이루어 사랑의 상징처럼 보인다.
짝짓기가 끝난 후에도 암수는 한동안 붙어다니며 연못이나 웅덩이 주변에 알을 낳는다. 왕잠자리나 실잠자리는 창포 같은 부드러운 식물 줄기에 배 끝을 대고 알을 낳지만, 대부분의 잠자리는 물 위에 알을 떨어뜨린다. 물결 위를 살랑살랑 날며 파문을 일으키는 모습은 알을 낳을 장소를 살피는 행동이다.
시드니의 잠자리들
시드니에서 잠자리를 관찰하게 된 것은 필자에게 행운이다. 고향에서처럼 하늘을 가득 메우는 장관은 아니지만, 다양한 종류의 잠자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다.
잠자리가 날개를 반짝이며 빛을 가르는 순간, 자연의 섬세한 질서와 생명의 순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