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경 목사의 신학논단

신앙적 포획과 영적 성숙
1. 서론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숙으로 이끄는 여정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그리고 개개인의 영적 삶 속에서 신앙은 다양한 형태의 “포획 (captivity)”을 경험한다. 짐 월리스 (Jim Wallis)가 지적했듯이, 복음은 정치적·문화적 포획 속에서 본래의 초월성과 보편성을 상실할 수 있다.¹ 이러한 포획 현상은 단순히 교회라는 제도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의 영적 상태 속에서도 발생하며, 그 결과 영적 성숙을 방해하고 사회적 공공선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본회퍼는 교회가 국가 권력과 결탁하는 문제를 지적하며, “교회의 타락은 단순히 제도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개개인의 제자도가 상실될 때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즉, 개인 신앙의 위선과 안일함이 결국 교회를 체제 순응의 도구로 전락시킨다고 본 것이다. [*각주1 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trans. R. H. Fuller (New York: Macmillan, 1959), 99] 이는 제도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의 제자도와 영적 성숙이 본질적으로 교회의 진정성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기독교 철학자 월터스토르프는 Justice: Rights and Wrongs에서, 신앙이 자기 의와 집단 이익에 포획될 때 정의와 공공선이 훼손된다고 지적합니다. [*각주2 Nicholas Wolterstorff, Justice: Rights and Wrong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8), 210–15]
신앙은 본래 약자와 타자를 향해야 하지만, 왜곡될 경우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신앙적 포획의 신학적 이해
신앙적 포획은 곧 복음의 본질이 왜곡되어 개인적 욕망, 집단적 동일시, 혹은 제도적 이해에 종속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신약에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마 23:27)라고 경고하신 것은, 종교적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위선의 포획을 드러낸 것이다. 바울 또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딤후 3:5)라고 지적하며, 신앙적 외형이 내적 실재와 괴리되는 현상을 경계하였다. 이러한 성경적 비판은 신앙적 포획이 곧 영적 성숙의 핵심인 자기부인과 은혜의 수용을 차단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3. 심리학적 분석 :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동일시
칼 융 (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은 신앙적 포획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융에 따르면, 페르소나 (Persona)는 사회적 가면으로서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자아 (ego)가 페르소나와 동일시될 때 인간은 자기(Self)를 상실하게 된다.² 교회와 개인 신앙이 사회적 인정과 집단적 정체성의 가면 속에 묶일 때, 신앙은 내적 통합의 길을 잃고 부분적 삶만을 살아가게 된다. 이는 곧 영적 성숙을 위한 그림자 직면과 자기 수용의 과정을 가로막는다.³
심리학적 투사 (projection) 개념 또한 신앙적 포획을 설명한다. 개인은 내적 불안과 그림자를 외부 집단이나 타인에게 투사하여, 신앙적 언어로 이를 합리화한다.⁴ 예컨대 교회가 사회적 위기 속에서 특정 집단을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 낙인찍을 때, 이는 실제로는 교회 공동체 내부의 불안과 분열이 외부로 투사된 결과일 수 있다.
4. 신앙적 포획이 영적 성숙에 미치는 영향
신앙적 포획은 영적 성숙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첫째, 자기 성찰 능력 상실이다. 영적 성숙은 자신의 죄와 한계를 직면하고 회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지만, 포획된 신앙은 이를 회피하고 외부로 투사한다. 둘째, 은혜의 왜곡이다. 포획된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의 (self-righteousness)와 종교적 성취로 대체하여, 은혜의 자유와 생명을 잃는다. 셋째, 성령의 열매 결핍이다. 사랑, 화평, 오래 참음 (갈 5:22)이 아닌 분열, 적개심, 교만이 신앙의 특징으로 나타난다.⁵
5. 신앙적 포획과 공공선의 파괴
신앙적 포획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도 공공선을 파괴한다. 위선적 신앙은 공동체 내 불신을 확산시키고, 정치적 포획은 교회를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시킨다. 경제적 포획은 번영신학으로 나타나, 약자와의 연대를 단절시킨다. 결국 신앙적 포획은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무력화시키며, 공공선보다는 집단적 이익을 강화한다.
6. 결론
신앙적 포획은 개인과 교회 모두에서 영적 성숙을 방해하고, 공공선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는 끊임없이 자기 성찰과 회개를 통해 신앙적 포획을 넘어서는 과정을 실천해야 한다. 신학적으로는 은혜 중심의 복음을 회복하고, 심리학적으로는 자기 (Self)의 통합과 그림자 수용을 추구할 때, 신앙은 비로소 성숙과 자유를 향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회는 다시금 세상 속에서 복음적·예언자적 증언을 감당할 수 있다.
*각주
Jim Wallis, God’s Politics: Why the Right Gets It Wrong and the Left Doesn’t Get It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2005), 25–28.
C. G. Jung, Aion: Researches into the Phenomenology of the Self, trans. R. F. C. Hull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8), 120–22.
Murray Stein, Jung’s Map of the Soul: An Introduction (Chicago: Open Court, 1998), 87–90.
Ann Casement, ed., Carl Gustav Jung: Critical Assessments (London: Routledge, 2001), 145–50.
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trans. R. H. Fuller (New York: Macmillan, 1959), 39–43.

박만경 목사
(시드니 우림 교회 담임, Iona Trinity College 상담학 교수, 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