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경 목사 칼럼

병오년, 말처럼 달리는 시대의 그림자
2026년, 병오년 (丙午年)이 다가오고 있다. 말띠의 해이다. 병오년의 병(丙)은 조용히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비추고 숨김없이 드러내는 불을 의미한다. 어둠 속에 머물러 있던 것들까지 밝히 드러내는, 강렬한 빛의 불이다. 또한 오(午)는 태양이 하루 중 가장 높이 떠오르는 시점, 곧 에너지가 최고조에 이른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오(午)는 멈춤 없는 활력과 긴장, 그리고 절정의 시간을 상징한다. 이 두 상징이 만나는 2026년 병오년은, 어쩌면 21세기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해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빠르게 드러나고, 감추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 시대. 속도와 열정, 경쟁과 확장이 극대화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병오년은 바로 이 시대의 얼굴을 닮아있다.
이처럼 해가 가장 밝게 떠오를 새해를 앞두고, 필자는 역설적으로 그림자를 떠올린다. 왜냐하면 그림자는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는 시간에 오히려 가장 진하게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빛이 강렬할수록, 그 빛 아래 형성되는 그림자 역시 또렷해진다. 오늘의 시대가 그렇다. 현대인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고, 의료와 복지의 향상은 평균 수명을 늘렸다.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정보와 오락은 손끝에서 즉시 제공된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인간의 삶의 질은 분명 향상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정말 덜 외로워졌는가?” 그렇다면 개인의 고독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현실은 그 기대와 정반대다. 어처구니없게도 과학과 생활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현대인의 고독은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다.
외로움, 고립, 소속감의 상실은 이제 일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모든 것이 드러나는 시대, 모든 것이 빠르게 연결되는 시대이지만, 그 한가운데서 우리는 고독이라는 그림자의 실체를 더욱 분명히 마주하고 있다. 겉으로는 밝고 분주해 보이지만, 그 그림자 속에는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외로움과 고립이 자리하고 있다. 병오년의 강렬한 빛 아래에서, 우리는 더 이상 고독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고독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누구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가, 그리고 서로의 그림자 곁에 머물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말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 (Robert D. Putnam)은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자본의 붕괴’로 설명한다. 그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웃과 깊이 연결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경험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 속에 있지만, 더 이상 함께 있음의 무게를 나누지 않는다. 교회, 지역 공동체, 이웃 간의 관계는 약해졌고, 개인은 점점 홀로 서게 되었다. 퍼트넘이 말한 “혼자 볼링을 치는 사회”는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과도 같다. 심리학 연구 역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자살 연구의 권위자인 토마스 조이너 (Thomas Joiner)는 자살 위험의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좌절된 소속감, 곧 “나는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는 감각을 꼽는다. 인간은 단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 소속감이 무너질 때, 삶은 점점 견디기 어려운 무게가 된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고독과 고립은 자살 증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정서적으로 지지해 줄 관계가 없고, 혼자 살아가는 이들 가운데 자살 위험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는 고독이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현실은 더욱 깊은 질문을 던진다. 성경은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이해한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는 창세기의 선언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음을 말해 준다. 현대 사회의 고독은 단지 사람의 부족이 아니라, 관계의 파괴,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의 단절에서 비롯된 고독일지도 모른다.
과학은 발전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함께 있음”을 갈망한다. 기술은 연결을 제공했지만, 임재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현대인의 고독은 단순히 외로움이 아니라, 의미를 잃어버린 관계의 침묵으로 나타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연결이 아니라, 더 깊은 만남일 것이다. 고독을 제거하려는 시도보다, 고독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 머무를 용기,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서로의 존재를 다시 불러내는 공동체적 회복이 요청된다. 삶의 질을 진정으로 높이는 길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서로를 붙드는 관계의 회복에 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 약속이야말로, 고독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 공동체가 다시 붙들어야 할 복음의 중심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말은 활동성, 속도, 열정, 전진성을 상징해 왔다.
들판을 가르며 달리는 말의 모습은 멈추지 않는 에너지와 생동감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말의 해는 흔히 새로운 도전과 역동적인 변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경과 삶의 지혜는 말의 힘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말은 강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방향을 잃으면 위험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속도는 목적을 대신할 수 없고, 열정은 동행을 보장하지 않는다. 잘 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 누구와 함께 달리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2026년은 더 빨리 달리는 해가 아니라, 속도를 잠시 늦추고 동행을 회복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말의 힘이 길들일 때 공동체를 살리듯, 우리의 열정과 전진성도 사랑과 책임 안에 놓일 때 비로소 생명을 낳는다. 우리는 혼자 질주하는 말이 아니라, 한 길을 함께 걷는 나그네들이다.
병오년을 맞이하며 교회 공동체는 다시 묻게 된다. 누가 뒤처지고 있는지, 누가 홀로 달리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고삐를 붙들어 주고 있는지 말이다. 고독의 시대를 건너는 신앙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다. 2026년, 말의 해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는 분명하다. 더 멀리 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이 복이다.

박만경 목사
(시드니 우림 교회 담임, Iona Trinity College 상담학 교수, 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