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수 칼럼
JS 2세 보고서(7) 이중적 정체성형성
이중적인 정체성 형성은 한인2세 청소년들의 삶을 설명해주는 주요 특징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2세 청소년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건강한 정체성 확립을 위해 이중적인 과정을 겪고 있는데 개인정체성과 민족정체성 형성이 바로 그것이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개인정체성 확립은 청소년 시기에 성취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하였다. 에릭슨은 특히 청소년의 정체성 형성과정에서 모라토리움(Moratorium) 단계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는데 모라토리움은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 유예 상태이지만 적극적으로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이다. 그에게 모라토리움은 정체성 확립으로 넘어가는 터닝 포인트이다. 모라토리움 없이는 누구도 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없다고 에릭슨은 역설하였다. 진 피니(Jean Phinney) 와 앤소니 옹(Anthony Ong)은 에릭슨의 정체성 발달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에릭슨에게 정체성이란 개인들에게 안정적인 자아 인식을 제공하며 여러 가지 선택의 자리에서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동일성과 계속성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이다. 정체성은 자동적으로 생기는 어떤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체성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주로 청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반추와 관찰’ 과정을 통하여 계속하여 발전하면서 정립되는 것이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이 과정이 계속 진행된다. 확립된 정체성은 어린 시절의 인식들, 개개인의 관심과 재능들, 현재 상황에서 허락되는 기회들을 통합한다. 이 과정은 심리적인 웰빙과 관련한 여러 가지 지표들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그런데 모든 개인들이 정체성 형성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건강한 정체성 형성에 실패하게 되면 역할 혼란에 빠지게 되고 의미 있는 삶으로 성장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에릭슨의 정체성 개념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에릭슨은 정체성의 개인적인 측면들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측면들까지 중시했다는 사실이다. 즉 한 개인은 개인적인 요인들만 고려해서는 건강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다. 건강하고 안정적인 정체성 정립을 위해서는 개인에게 중요한 공동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에릭슨은 주장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계 호주인으로 두 문화 사이에서 성장하는 2세 자녀들에게는 긍정적인 민족정체성 형성이 각 개인의 정체성 확립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체릴 홀콤–맥코이 또한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그녀는 두 문화 사이에서 성장하는 이민2세들의 경우 견고한 민족공동체 소속감을 가질수록 건강한 개인정체성을 확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하였다. 진 피니(Jean Phinney), 가브리엘 호렌직크(Gabriel Horenczyk), 카멜라 립킨드(Karmela Liebkind), 그리고 폴 베더(Paul Vedder) 도 이 주장에 동조한다. 그들은 이민2세 자녀들의 삶에서 민족정체성이 갖는 중요성을 다각도로 평가하였다. 그렇기에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이민2세 젊은이들이 건강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있어 민족정체성 형성은 매우 중요한 성장 과제라고 주장하였다.
피니와 옹은 제임스 마르시아(James Marcia)의 정체성 이론에 근거하여 청소년들이 민족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탐구와 헌신의 과정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이민 자녀들의 민족정체성 형성과정을 마르시아의 이론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한 개인은 민족정체성 혼돈이나 유실 에서 반드시 정체성 유예라 불리는 적극적인 탐구의 과정을 거친 후 민족정체성 성취로 발전한다. 여기서 혼돈으로 해석되는 diffusion은 아직 명확한 정체성 의식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유실로 해석되는 foreclosure는 자기 자신의 헌신이 없는, 즉 타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답습하는 상태를 말한다. 피니와 옹은 에릭슨처럼 성인이 되었다고 모두 다 민족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많은 이민2세 젊은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민족정체성 형성과정을 밟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평한다.
이처럼 호주 한인2세들처럼 소수민족 청소년들에게 견고한 민족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은 복잡하다. 양 문화 사이에서 균형 잡힌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민족 문화에 대한 강한 동질감을 가져야 하고, 또한 주류 사회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인종 차별과 문화적 편견 가운데 자신의 민족공동체에 대한 높은 자존감도 유지해야 한다. 또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로 생기는 가정 내에서의 부모와의 갈등도 해결해야 하고, 청소년 시기에 겪게 되는 자아 정체성 발달과정을 겪으며 정체성 관련 이슈들을 탐색하고 참여하며 헌신해야 한다. 개인정체성 발달과 민족정체성 발달은 긴밀하게 상호연관 되어 있기에 2세 청소들은 이중적인 정체성 형성과정을 겪는 것이다. 인터뷰에 참가한 대부분의 2세 청소년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중적인 정체성 형성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다음 지면에서 이 과정을 좀 더 살펴보자.
박종수 목사
(호주이민교회교육연구소장, 오션그로브연합교회담임,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