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부부 관계를 회복하는 열쇠, 숨은 감정을 읽어라
많은 부부들이 평행선을 걸으며 관계의 진전을 경험하지 못한다. 상담실을 찾는 부부들 중에는 이미 오랫동안 같은 갈등을 반복해 온 끝에, 이제는 타협점이 없다고 느끼며 마지막 희망처럼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서로가 잘못했다고 비난하며, 더 이상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부 갈등의 겉모습은 분노, 비난, 회피, 무관심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더 깊은 정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로부터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고,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될 때 사람은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때로 분노나 비난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늦게 집에 오는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남편에게 화를 낼 수 있다. 겉으로는 분노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었어요”, “나는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고 싶어요”라는 깊은 욕구가 숨어 있을 수 있다. 남편이 이것을 알아차릴 때, 아내의 분노는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사랑을 갈망하는 신호로 이해될 수 있다.
반대로 남편이 집에 늦게 오는 것도 단순히 가정을 소홀히 여기거나 아내를 무시해서가 아닐 수 있다. 아내의 잔소리와 분노가 자신을 무능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실패감이 견디기 힘들어 회피하게 되는 것일 수 있다. 아내가 이것을 이해할 때, 남편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비난이 아니라 인정과 수용이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부부 갈등의 핵심은 종종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가’가 아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당신에게 사랑받고 있는가?”, “나는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인가?”, “당신은 내 곁에 있어 줄 것인가?”라는 애착의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부부는 쉽게 비난과 방어의 싸움에 빠진다. 한 사람은 계속 요구하고 비난하며 다가가고, 다른 한 사람은 회피하거나 침묵한다. 때로는 둘 다 서로를 공격하고, 때로는 둘 다 상처받기 싫어 피하기만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관계를 회복시키기보다 더 멀어지게 만든다.
한 남편은 아내가 과거의 성적 과오를 반복해서 언급하며 비난하자 점점 대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대화를 시도하고 화도 내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결국 자신도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었지만 남보다 더 대화가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정말 원했던 것은 아내에게는 수용과 존중의 회복이었고, 남편에게는 사랑의 회복이었다.
그래서 부부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 밑에 숨어 있는 부드럽고 취약한 감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분노 밑에는 외로움이 있을 수 있고, 비난 밑에는 사랑받고 싶은 갈망이 있을 수 있다. 침묵 밑에는 무력감과 실패감이 있을 수 있고, 회피 밑에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배우자에게 상처를 받을 때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표현하기보다, 배우자의 성격적 결함이나 도덕적 문제를 지적한다. “내 배우자는 나를 무시해요”, “내 배우자는 너무 이기적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의 더 깊은 내면에는 “나는 당신에게 존중받지 못해 너무 슬퍼요”, “나는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나는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고 싶어요”라는 진짜 감정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부부가 서로의 숨은 감정을 읽기 시작할 때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비난 대신 상처를 말하고, 공격 대신 두려움을 나누고, 회피 대신 자신의 연약함을 표현할 때 부부는 다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배우자의 부정적인 행동 아래 숨어 있는 애착의 선한 의도를 발견할 때, 두 사람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부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배우자를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가 배우자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바람이 좌절될 때 내 안에서 어떤 두려움과 상처가 일어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사랑받지 못할 때 느끼는 두려움, 관계가 멀어질 것 같은 불안, 존중받지 못할 때 경험하는 무가치감과 자존심의 상처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다.
부부 관계의 회복은 큰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나의 감정을 정직하게, 양파를 까듯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숨은 감정을 배우자와 나눌 때, 부부는 다시 서로를 향해 걸어갈 수 있다.

서미진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