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까뮈 / 책세상 / 1989.6.1
알베르 카뮈(까뮈)가 1939년에 집필한 서정적 에세이. 지드의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의 ‘섬’과 더불어 프랑스 지적 산문집의 3대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 알베르 카뮈 전집 『결혼 여름』. 부조리와 반항의 정신, 20세기 문학의 한 정점이자 앙가주망 지식인의 전형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한 사람인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 전집은 1986년 첫 출간 이래로 소설, 산문, 희곡, 철학적 에세이, 시평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 목차
옮긴이의 말 /김화영
.결혼
편집자의 말
티파니에서의 결혼
제밀라의 바람
알제의 여름
사막
.여름
미노타우로스 또는 오랑에서 잠시
편도나무들
명부의 프로메테우스
과거가 없는 도시들을 위한 간단한 안내
헬레네의 추방
수수께끼
티파시에 돌아오다
가장 가까운 바다
해설
○ 책 속으로
내가 하루 낮을 넘도록 티파사에 머무는 법은 절대로 없었다. 이떤 것을 흡족하게 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듯이 어떤 풍경을 너무 보아서 물려버리는 때가 언제나 오게 마련이다. 고즈넉이 보지 않고 너무 뚫어지게 들여다본 탓으로 마침내 그것의 삭막한 면이나 찬란한 구석을 발견하게 되는 얼굴들이나 마찬가지로,
산이나 하늘, 바다도 어떤 새로운 기운을 입어 변모를 겪을 필요가있다. 단지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다가 다시 보기만 해도 세계가 새롭게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고 감탄해야 할 터인데 사람들은 너무빨리 싫증이 난다고 불평을 한다.
자정에 해안에 홀로, 아직 더 기다릴 것, 그리고 나는 떠나리라.
마치 바로 이 시간에 전 세계에서 항구들의 어두운 물을 비추는 불들로 뒤덮인 저 상선들처럼, 하늘 그 자체가 저 모든 별들과 더불어 멎어 있다. 공간과 침묵이 똑같은 무게로 가슴을 누른다. (185쪽)
나는 굳이 이곳에 혼자 애쓰지 않는다. 나는 흔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이곳에 찾아오곤 했다. (10쪽)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이란 속눈썹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들 뿐이다. 엄청난 열기 속에서 향초(香草)들의 육감적인 냄새가 목을 긁고 숨을 컥컥 막는다. 풍경 깊숙이, 마을 주변의 언덕들에 뿌리를 내린 슈누아의 시커먼 덩치가 보일락 말락 하더니 이윽고 확고하고 육중한 속도로 털고 일어나서 바닷속으로 가서 웅크려 엎드린다. (13쪽)
사람은 그저 몇 가지 익숙한 생각들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 두 세 가지의 생각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떠돌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서 그 생각들을 반들반들해지도록 닦아 지니거나 변모시킨다. 이것이 바로 나의 생각이라고 제대로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는 데는 10년이 걸린다. 이렇게 볼 때 사실 다소 절망적인 느낌이 들 만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의 아름다운 얼굴과 어떤 식으로 낯이 익어지게 된다. 지금까지 그는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러니 이제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서 그 얼굴의 프로필을 바라보아야 한다. 젊은 사람은 세계를 정면에다 놓고 바라본다. 그는 비록 죽음이나 무(無)의 끔찍한 맛을 씹어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죽음과 무에 대한 관념을 윤이 나도록 다듬을 시간이 없었다. 젊음이란 것은 바로 그런 것, 죽음과의 저 모진 정대면이요 태양을 사랑하는 동물 특유의 저 육체적인 공포, 바로 그것일는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적어도, 흔히들 하는 말과는 반대로 젊은이게게 환상 따위는 없다. 환상을 만들어낼 시간도 경건함도 없다. (28쪽)
우리가 어떤 도시와 주고받는 사랑은 흔히 은밀한 사랑이다. 파리, 프라하, 심지어 피렌체 같은 도시들은 웅크리고 돌아앉아 있어서 그것 특유의 세계에 테를 두르듯 한계를 짓는다. 그러나 알제는, 그리고 그와 더불어 바다에 면한 도시들처럼 몇몇 특혜받은 장소들은, 입처럼 혹은 상처처럼 하늘로 열려 있다. 우리가 알제에서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은 누구나 다 향유할 수 있는 것, 길 모퉁이를 돌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바다, 어떤 햇빛의 무게, 인종(人種)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 거리낌없이 주어진 풍성한 선물 속에는 더욱 은밀한 향기가 담겨 있다. (33쪽)
그리스인들은 다른 모든 악들을 쏟아 놓고 난 후에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악인 희망을 쏟아 냈다.이보다 더 감동적인 상징을 나는 알지 못한다.왜냐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희망은 체념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49쪽)
사람이 가슴으로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이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늘이 피렌체 들판의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들을 엄청나고 말없는 슬픔으로 뒤덮어가기 시작하는 어떤 저녁, 나는 이 진실이 자명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이 고장의 슬픔은 아름다움에 대한 한갓 주석만은 결코 아니다. 저녁을 가르며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 속에서 무엇인가의 응어리가 풀려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슬픔의 얼굴을 가진 이것이 그래도 행복이라고 불리는 것임을 오늘 내가 어찌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56-57쪽)
유일한 세계란 다름 아닌 인간이 없는 자연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는 나를 무화(無化)한다. 그것은 나를 저 극한에까지 떠밀어간다. 세계는 분노하지 않은 채 나를 부정한다. (67쪽)
황혼은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 광선이 장엄한 임종을 알린다. 바다는 군청빛, 길은 엉킨 핏빛, 해변은 노란 빛이다. 모두가 초록빛 태양과 함께 사라진다. 한 시간 후에는 언덕에 달빛이 흘러 넘친다. 그러면 별들이 비오듯 하는 광막한 밤이다. 소낙비가 가끔 밤을 가로질러 가고, 번개가 모래언덕을 끼고 달리며 하늘을 창백케 하고 모래 위와 사람의 눈자위 속에 오렌지빛 미광을 뿌린다. 그러나 이것은 남과 나누어 가질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것을 몸소 체험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만큼한 고독과 위대함은 그 장소에 잊지 못할 얼굴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102쪽)
신화는 그것 자체로는 생명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다가 피와 살을 부여해주기를 기다린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요청에 응하면 신화는 우리들에게 그 싱싱한 즙을 고스란히 제공해준다. 우리는 그 즙을 보존해야 하며, 소생이 가능하게 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잠이 치명적이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121쪽)
역사의 가장 어두운 중심에서 프로메테우스의 인간들은 그들의 벅찬 직무의 일손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대지 위에,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히드 위에 눈길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사슬에 묶인 영웅은 신들의 천둥번개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그의 조용한 믿음을 잃지않고 지니고있다. (122쪽)
긍정과 부정, 정오와 자정, 반항과 사랑 사이의 가슴을 찢어놓을 듯한 갈등을 겪어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바닷가에 피워 올리는 모닥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그곳엔 어떤 불꽃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131쪽)
대낮의 아름다움은 이제 한갓 추억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그 진창투성이의 티파사에서는 추억 그 자체도 희미해졌다. 물론 아름다움, 충만감, 혹은 청춘이 관심사였는데도 말이다! (160쪽)
○ 저자소개 : 알베르 카뮈

1913년 알제리의 몬도비(Mondovi)에서 아홉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지만 1930년 폐결핵으로 중퇴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고 대학을 중퇴한 뒤에도 가정교사, 자동차 수리공, 기상청 인턴과 같은 잡다한 일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평생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를 만났다. 1935년 플로티누스(Plotinus)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학사 학위 과정을 끝냈다. 아마추어 극단을 주재했고 가난했지만 멋쟁이였으며 운동을 좋아했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면적인 갈등을 겪다 탈퇴했다. 진보 일간지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단번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에세이《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 등을 발표했다.1947년에 7년 동안 집필한 《페스트》를 출간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비평가상을 수상했고 44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47세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사고 당시 카뮈의 품에는 발표되지 않은 《최초의 인간》 원고가, 코트 주머니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전철 티켓이 있었다고 한다.
– 역자: 김화영
181종 (모두보기)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이다. 저서로는 『행복의 충격』, 『김화영의 번역수첩』, 『여름의 묘약』,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프랑스 문학 산책』, 『바람을 담는 집』, 『발자크와 플로베르』,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 『지상의 양식』, 『마담 보바리』, 『섬』, 『지중해의 영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어린 왕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팔월의 일요일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짧은 글 긴 침묵』, 『뒷모습』, 『예찬』, 『내 생애의 아이들』, 『걷기예찬』 외 다수가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