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그녀들의 방 : 버지니아 울프 & 바네사 벨
수전 셀러스 / 안나푸르나 / 2015.3.16

-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욕망의 연대기! 현대소설의 선구자 버지니아 울프의 미술가 언니 바네사 벨의 시선으로 그녀들의 일생과 시대, 예술 세계를 담은 수전 셀러스 장편소설 『그녀들의 방』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문학을 연구한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내러티브 기법, 바네사 벨의 심미적이면서 인상주의적인 표현에서 영감을 얻어 마치 바네사가 직접 들려주듯 그녀들의 삶과 심리를 예민하게 담아냈으며, 창작 활동에 몰두하는 예술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버지니아가 남편 레너드 울프와 언니 바네사에게 유서를 남기고 주머니에 돌을 가득 담아 강에 몸을 던져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바네사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동생을 위한 글을 써 내려간다.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서로에게 헌신했던 그녀들 관계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적인 문장이 매혹의 극에 달하는 이 책의 마지막에 그것이 드러난다.
20세기 문학계의 가장 중요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 사건과 함께…
○ 목차
1 ~ 10
발문: 장정일
연표
○ 저자소개 : 수전 셀러스
저자 수전 셀러스 (Susan Sellers)는 유목민처럼 떠도는 유년기를 보낸 뒤 도망치듯 파리로 떠나 싸구려 월세 방 ‘샹브르 드 본느’에서 지내며 술집 웨이트리스와 투어가이드, 보모 생활을 전전했다. 소프트웨어 매뉴얼 등을 번역하고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와 공동으로 영화 대본을 집필하던 중에 엘렌 시수를 비롯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작가들과 친분을 쌓았고 그들의 작품을 영어권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파리를 떠나 아프리카 대륙 남쪽의 스와질란드에 가서 부족 할머니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었고, 페루의 여성인권단체에서도 일을 했다. 스코틀랜드에 정착한 후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2002년에 캐넌게이트 출판사의 신진작가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케임브리지 인근에서 작곡가인 남편과 함께 어린 아들을 키우며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 영문학 강사로 출강 중이다. 지금까지 다수의 번역서와 단편소설을 발표했지만 장편소설은 《그녀들의 방-버지니아 울프 & 바넷사 벨》이 처음이다.
– 역자: 강수정
역자 강수정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했으며 지금은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신도 버린 사람들》, 《안나와디의 아이들》, 《마지막 기회라니》,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 《모든 죽은 것》등이 있다.

○ 책 속으로
글을 쓰다가 고개를 들고 과거의 골목길들을 되돌아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간을 견뎌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내 속마음을 일부나마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건 오직 너뿐이었다. 오직 너만이 나의 꿈을 공유했다. 은밀하게, 그러나 점점 더 결연하게, 우리는 각자의 예술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삶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는지는 우리 둘 다 깨닫지 못했다. 서로의 차이를 과장하고 상대의 영역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달래고 양보했다. 말재주에서 항상 너보다 못했던 난 그걸 너한테 완전히 넘겨줬다. 그리고 그림을 택했다. (64쪽)
《등대로》는 달랐다. 그 책에서 나는 처음으로 너의 천재성이 제대로 발휘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성과 통찰력의 섬세한 균형에서, 그리고 모든 문장의 정교한 표현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네가 예술가로서 정점에 올랐으며,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도저히 견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너는 또다시 우리의 이야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전기와 예술의 간격을 메웠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너무나 똑같이 그려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마치 일정한 특징들을 포착함으로써 원형이라고 할 만큼 근원적이면서도 생생하고, 교훈적이면서도 현실감 있는 인물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너는 기억의 올가미에 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풀어냈고 그들을 통해 삶의 더 깊은 문제를 보여주었다. 그 모든 걸 어찌나 투명하고 신랄한 문장에 담아냈는지, 너의 재능에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담한 얼개를 통해 시간을 잡아 늘이고 무너뜨리며, 흐름 대신 그것의 영향력을 보여줌으로써 네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나는 내 작품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난관과 전망을 보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네가 이룬 것이 너무나 중요해서 우리 둘을 모두 앞으로 나가게 했다. (129쪽)
“나도 좀 보여줘.”
편지를 넘겨주는 순간 실수를 깨닫는다. 줄리언의 편지는 무방비 상태의 너를 급습한 셈이다. 너는 예전부터 줄리언을 부러워했다. 나는 철렁 내려앉은 가슴으로 편지를 읽는 너를 바라본다.
“내가 보내준 《올란도》 얘기를 했네.” 너의 목소리는 편하고 밝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도 말했으면 좋았을걸. 레너드가 대충 따져봤더니 그 책의 판매 수익이 벌써 2,000파운드를 넘었더라는 얘기 했던가?”
너의 가시는 정곡을 찌른다. 그 가시에 내 근육과 힘줄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너는 내가 그림으로 거의 한 푼도 벌지 못했으며, 모델에게 줄 돈조차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너는 다 읽은 줄리언의 편지를 내게 돌려준다. 나는 그걸 숨기듯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224쪽)
“던컨이랑 점심을 먹기로 했어. 그가 나한테… 피터를 만나보라고 했거든.”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한 네 눈에서 빛이 번득인다.
“아니 무슨 권리로! 언니한테 너무 가혹한 짓이잖아!”
“아냐. 내가 부탁했어. 그는 나를 위해 자리를 마련한 거야.”
“하지만 어째서?”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을 본다. 내 삶을 지탱하던 보루가 갈라져 머리 위로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다.
“왜냐면… 그를 보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 (241쪽)
줄리언의 마지막 날을 생각하면 이런 풍경이 떠오른다. 이른 기상, 이미 뜨겁게 이글거리는 태양,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틈을 이용해서 전선으로 가는 길의 웅덩이를 메우자는 계획. 적의 비행기가 출현하고 엄폐물을 찾아 몸을 던지지만, 비행기의 폭격에 뿌옇게 일어나는 흙먼지. 줄리언이 몸을 피한 앰뷸런스 옆에서 터지는 폭탄. 산탄이 그의 살을 파고 들어가고 쇼크가 일어난다. 그런데도 나한테 글을 남기려고 공책의 빈 여백에 급히 세 마디를 휘갈겨 쓴다.
전화가 오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다. 관자놀이가 쿵쾅거리고 숨을 쉬는 게 고통스럽다. 그러곤 모든 게 검게 변한다. 마침내 물이 나를 덮어버린다.
이번에도 네가 나를 구한다. 너는 내 침대 옆에 앉아 하염없이 말을 건다. 나는 구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의 말에 매달린다. 생각도 할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고, 오로지 듣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처음에는 너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수술대에 놓인 줄리언의 시체가 보이는 것 같아 비명을 지르며 너를 향해 몸을 돌린다. 너는 나를 꼭 끌어안는다. 세상은 예술 작품이라고, 네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비록 신은 없지만 우리는 섭리의 한 부분이라고. (277~278쪽)

○ 출판사 서평
“《그녀들의 방》을 통해 우리는 작가가 창조력을 발휘한 허구와 해석을 통해 ‘그녀들의 방’에서 일어난 두 자매 사이의 애증의 심연을 새롭게 관찰하게 된다.” _ 소설가 장정일
- 버지니아 울프와 미술가 언니 바네사 벨의
사랑과 예술, 욕망과 질투의 실체
현대소설의 선구자 버지니아 울프의 미술가 언니 바네사 벨의 시선으로 그녀들의 일생과 시대, 예술 세계를 담은 수전 셀러스 장편소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문학을 연구한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의 내러티브 기법, 바네사 벨의 심미적이면서 인상주의적인 표현에서 영감을 얻어 마치 바네사가 직접 들려주듯 그녀들의 삶과 심리를 눈에 보일 듯 담아냈으며, 창작 활동에 몰두하는 예술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이 책은 사랑과 복수, 광기와 천재성, 그리고 참담한 고통과 깊은 슬픔에 직면해서도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욕망의 연대기라 말할 수 있다.
- 미술가 언니 바네사 벨의 시선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보다
버지니아 울프만큼 유명한 여성 작가는 드물 것이다.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 중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라는 구절이나 영화 〈디 아워스〉에서의 니콜 키드먼의 연기로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그 존재감에 비해 이토록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도 드물다. 《그녀들의 방》은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소설이라는 형식에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그녀 가까이의 사람들과 그녀의 시대와 그녀의 문학 세계를 담담하고 아름답게 이야기한다.
화자 (話者)는 버지니아 울프의 미술가 언니 바네사 벨. 버지니아가 남편 레너드 울프와 언니 바네사에게 유서를 남기고 주머니에 돌을 가득 담아 강에 몸을 던져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바네사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동생을 위한 글을 써 내려간다.
어린 시절부터 버지니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 순간 함께했던 바네사의 눈으로 우리는 버지니아의 내밀한 곳까지 더 많은 것을 더 깊이, 더 가까이 보고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극과 위로와 의지가 되고 영감을 주었던 언니 바네사 벨의 영화 같은 생애와 그녀의 시대와 그녀의 예술 세계까지 경험할 수 있다.

- 자유롭고 치열한 삶,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 솔직한 사랑… 남다른 삶을 살고 간, 우울한 시대 속, 그녀들의 방
가족 구성은 복잡하다.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첫 번째 아내 해리엇 매리언 새커리와 사별하고 재혼을 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정신박약인 딸 로라가 있었는데, 매리언이 죽은 후 정신병원으로 보내져 75세로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녀들의 어머니 줄리아는 첫 남편과 사별한 후 자신의 아이들 조지, 스텔라, 제럴드를 데리고 레슬리와 결혼해 함께 살게 된다. 레슬리와 줄리아는 결혼 후 바네사, 토비, 버지니아, 에이드리언을 낳았다. 하지만 가족에게 헌신적이었던 어머니 줄리아는 그녀들이 어릴 적 독감 후유증으로 죽고 만다.
아버지 레슬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저널리스트, 수필가, 비평가, 전기작가, 역사학자로 당대 명성이 높은 지식인 중 하나였다. 알프레드 테니슨,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토머스 하디, 새커리, 번 존스, 매슈 아널드 등 유명 인사들이 그녀들의 집을 드나들었고, 그녀들은 빅토리아식 교육과 지적이고 예술적이며 자유주의적인 환경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작가로, 미술가로 자랐다.
그녀들 집안의 행복은 어머니 줄리아와 언니 스텔라의 잇단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아버지였던 레슬리는 자신에게 헌신적인 여성들이 떠나자 신경쇠약과 변덕으로 일관했고 자기연민에 빠져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빠 조지가 버지니아를 성추행하는 일이 일어났고, 버지니아 연구자들은 그 일이 버지니아의 일생을 괴롭힌 정신병 발작과 동성애 성향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 본다.
그녀들은 아버지의 죽음 후 상당한 유산을 받고 블룸즈버리 고든 스퀘어로 이사한다. 토비의 주도로 바로 이 집에서 영국 지식계의 전설이 된 ‘블룸즈버리 그룹 (Bloomsbury group)’이 생겨났다. 그녀들은 지식인 남성들의 모임 블룸즈버리 그룹의 모임을 보조하면서 클라이브 벨, 리튼 스트래치, 색슨 시드니 터너, 레너드 울프, E. M. 포스터, 던컨 그랜트, 스티븐 톰린, 레이먼드 모티머, 로저 프라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 버트런드 러셀, 올더스 헉슬리, T. S. 엘리엇 등과 어울렸다. 그중 바네사는 예술평론가 클라이브 벨, 버지니아는 정치평론가 레너드 울프와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후에 작가로, 미술가로 더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녀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내심 경쟁하고 질투하며 자극받았는데, 이 책 《그녀들의 방》에 그것들이 두 사람의 작업과 작품에까지 어떻게 나타났는지 잘 드러나 있다. 두 사람은 질투가 지나쳐 서로의 결혼 생활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녀들은 사랑에서도 자유롭고 열정적이었다. 버지니아는 소설가 비타 색빌-웨스트와 동성 연인이었으며, 바네사는 남편 클라이브 벨과 ‘자유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바네사는 다른 남자들과 염문이 있었고 함께 살았으며, 그녀의 셋째 아이 안젤리카의 아버지는 동료 화가이며 막내 동생 에이드리언의 동성 연인 던컨 그랜트였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올랜도》, 《자기만의 방》, 《세월》 등 버지니아의 소설들을 보면 모두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를 모아 출판할 만큼 일상에 예민했으며 일상의 매 순간을 관찰하고 파헤쳤다. 그런 과정이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나타났고, 인간 정신의 섬세한 묘사로 문단의 주목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일상을 그려내 성공한 그녀의 작품들에는 가족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그녀를 공감할 기회를 얻지만, 동시에 그녀를 향한 바네사의 일생의 질투심도 연유하게 된다.
그렇게 그녀들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서로에게 헌신적이었고 욕망과 추문, 질병과 가난,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예술가로 살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한다.
바네사 벨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술가다. 그녀는 결혼 후 화가이며 예술평론가이고 연인이었던 로저 프라이가 주도한 오메가 공방 (Omega Workshop)에서 공동 책임자로 일하면서 디자인과 회화를 결합한 시도로 주목받았다. 폴 세잔의 인상주의 회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추상화〉, 〈욕조〉, 〈두 여자가 있는 풍경〉 등의 그림과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당대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초상이 잘 알려져 있다.
- 우리의 영혼을 자극하며 삶의 기쁨과 슬픔, 통찰과 영감을 안겨주는 그녀들의 이야기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서로에게 헌신했던 그녀들 관계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적인 문장이 매혹의 극에 달하는 이 책의 마지막에 그것이 드러난다. 20세기 문학계의 가장 중요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 사건과 함께.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문학을 연구한 작가 수전 셀러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내러티브 기법, 바네사 벨의 심미적이면서 인상주의적인 표현에서 영감을 얻어 마치 바네사가 직접 들려주듯 그녀들의 삶과 심리를 예민하게 담아냈으며, 창작 활동에 몰두하는 예술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그녀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그녀들의 고민은 유효하다. 어쩌면 지금이 그녀들이 살았던 시대보다 더 삶에 대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살아나가기가 힘든 시대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 담긴 그녀들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고민들과 삶의 본질,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그녀들의 방》은 사랑과 복수, 광기와 천재성, 그리고 참담한 고통과 깊은 슬픔에 직면해서도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욕망의 연대기이다.

○ 추천사
우리는 작가가 창조력을 발휘한 허구와 해석을 통해 ‘그녀들의 방’에서 일어난 두 자매 사이의 애증의 심연을 새롭게 관찰하게 된다. _ 소설가 장정일
사랑과 예술, 욕망과 질투를 능숙하고 매끄럽게 버무려낸 수전 셀러스의 소설은 천재적인 두 자매의 관계를 설득력 있고 내밀하게 보여준다. 담백하면서 세련된 이 책은 읽는 재미를 안겨준다. _ 로버트 크로포드 (시인, 영문학 교수)
천재적인 두 자매, 바네사 벨과 버지니아 울프의 평생에 걸친 사랑과 경쟁을 통해 예술의 진정한 목적을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소설. 신비로운 기운과 강한 설득력으로 헤어 나오기 힘든 매력을 발산한다. _ 존 번사이드 (스코틀랜드 작가)
○ 독자의 평
연결된 두 사람의 이야기 – 수전 셀러스, <그녀들의 방>
내게 이 이야기는 단순히 자매간의 애증 관계, 혹은 여성 예술가들 사이의 미묘한 경계심과 질투심만으로 범벅된 소설로서 읽히지 않는다. 수전 셀러스의 <그녀들의 방>은 내면적으로는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온전히 함께이기엔 힘들었기에 행복을 품에 안고 눈감을 수 없었던 두 여자의 예술적 투쟁으로의 레즈비어니즘을 이야기한 작품임에 다름없다.
소설의 화자인 바네사 벨은 자신의 여동생 버지니아 울프를 가리켜 ‘세상과 맞설 때 너와 나는 자연스레 동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어처구니없는 세상, 즉 몸가짐이 단정하고 헌신적인 숙녀 혹은 천사의 모습을 한 보좌관과 같은 어머니를 요구하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들이 생득적으로 취하게 된 여성이라는 성별은 자매가 가진 예술적 야망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버지니아는 숙녀와 천사의 완벽하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펜 끝으로 찔렀으며 바네사는 그 생생한 살해 장면을 그녀 정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조하고 받아들인다. 매우 정서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시냅스형성이 둘 사이의 가교가 되어 그녀들의 애정 관계와 예술 세계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바네사는 붓으로, 버지니아는 펜으로, 아름답고 처연한 달음박질을 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작품 속에는 바네사의 그림에 대한 묘사가 자주 언급된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네사의 그림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버지니아의 영혼이다.
‘붉은 계통의 두 색이 서로를 피하고 또 부르는 모습이 매혹적이다. 이따금 캔버스에서 한 발 멀찍이 떨어져서 봐도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p.78)’
같은 계통의 붉은 색들이 그림 안에서 서로를 매혹할 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직사각형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 낸 바네사는 그제야 비로소 스스로가 ‘내 집’, 곧 ‘자기만의 방’의 주인이라고 느낀다. 동시에 바로 다음 장에서 버지니아의 존재를 어두운 주홍색이 다홍색에 섞여든 빛깔이라 표현하며 그녀가 있음으로 인해 자신의 흐릿한 색감이 빛을 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바네사의 예술에 있어 버지니아가 필수불가결한 존재였음을 뜻하고 이것은 물론 버지니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버지니아는 자신의 가족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 허구적 상상력을 덧붙여 생생한 문학작품으로 버무려내는데 그 작품들은 예술적 이상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바네사를 위한 것이었다. 소설 출간 전 자신도 좋아할 만한 책이냐는 바네사의 질문에 버지니아는 희미하게 애원하는 투로 대답한다. “나야 그러길 바라지……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언니를 위한 거라는 거 알잖아.(p.126)” 이외에도 바네사가 유달리 사랑했던 형제 ‘토비’의 이야기를 오직 바네사를 위해 쓰기로 한 점 등이 그러하다. 그녀들의 예술은 서로를 떼어놓고는 완성될 수 없었고 바네사는 버지니아가 있음으로 인해 균형을 유지하고 작품의 의미를 채울 수 있다고 소설 속에서 덤덤히 고백한다.
그러나 그들이 단순히 뜻을 같이 하는 동료이자 서로의 뮤즈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추구하는 예술적 이상에 있어서도 같은 팔레트 구획의 색깔처럼 연결된 존재였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연결은 결코 누군가가 대체할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존재감과 성애적 감정 자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의붓 언니의 이른 죽음,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의붓 형제들의 정서적 학대 속에서 두 사람은 오롯이 서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애정의 영역을 오랜 시간 공유하게 된다. 언젠가는 자신들을 두르고 있는 그 모든 족쇄로부터 벗어나 둘만의 안락한 세상 속으로 뛰어들기를 꿈꾸며 그 어떤 사랑의 연인보다 친밀한 시간을 어린 시절부터 함께 보내온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부둥켜안는다. 요양원의 벽이 사라지고, 우리는 한밤중에 놀이방에서 단 둘이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너는 나의 말썽꾸러기 염소, 나의 웜바트, 나의 생쥐다. 나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너의 털을 쓰다듬고, 너는 코를 내 뺨에 비빈다. 욕심 많은 원숭이 같은 네 입술은 배가 고픈 것처럼 장난스럽게 내 목을 잘근잘근 씹어댄다. 나는 다시 한 번 너의 돌고래 엄마가 되고 너의 입맞춤에 끈적끈적한 침 범벅이 된다. 아무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는 바닷속 깊은 곳으로 너를 데려가줄게.’(p.75)
후에 버지니아는 결혼한 바네사의 남편 클라이브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남긴다. “첫사랑을 대신하기란 힘들어요. 돌고래들은 다 아는 사실이죠.(p.102)” 그리고 둘만의 이야기에서만 주고받아지곤 했던 ‘돌고래’ 이야기에 바네사는 공연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표현한다.
버지니아에게 있어 문학에 대한 애정을 제외하고 평생에 걸친 단 하나의 사랑이 있었다면 아마 바네사였을 것이다. 그에 대한 암시가 소설 곳곳 버지니아의 대사나 두 사람 간의 대화, 마주침에서 은연중에 드러나 있다. 소설 속에서 버지니아는 클라이브와 만남으로써 자신의 통제력 너머로 빠져나가는 관능적인 언니를 바라보며 펜으로 종이를 맹렬히 긁어대고 후에 언니가 가지게 된 아이에게도 강한 질투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버지니아 혼자만의 쓰라린 애정이 아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바네사에게 있어 버지니아 또한 평생 대체할 수 없었던 사랑의 존재이자 연인이었다.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감정의 실이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두 사람을 강하게 이었고 바네사 또한 실을 감아올리듯 소설 전체 속에서 끊임없이 버지니아를 부르고, 그리워하고, 찾아 헤맨다. 심지어 레너드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것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동생의 소식을 듣고 기운이 나서 곧바로 두 뺨에 생기가 되돌아 올 정도로.
바네사는 끊임없이 사랑할 존재를 찾는다. 하지만 단지 예술적 신념이나 육체적 끌림으로 인해 이어져 온 남성과의 관계에 있어 내적으로 충만한 만족은 결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바네사가 함께 그림을 그리던 남자, 던컨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그녀가 그 안에서 버지니아의 영혼을 찾았을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아 주고 문학적으로 지지해 준 남편 레너드 울프에게 죽기 전까지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했던 버지니아였지만 삶의 커다란 결핍을 느꼈던 그녀는 결국 강둑의 돌을 주머니에 한가득 넣고 차가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세상은 우리의 예술작품이고 우리는 섭리의 한 부분‘이라 언니에게 이야기했던 버지니아는 바네사와 온전히 함께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그녀가 죽은 뒤 바네사는 자신이 그린 그림 속 여자가 사실은 붓이 아닌 펜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는 예술도, 삶도, 그 모든 것이 두 사람간의 강한 유대이자 연결에서 비롯된 것이며 심지어 그 자체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네사는 죽은 버지니아의 마지막 소설 표지 작업을 맡는다. 두 사람이 세상에 대해 맞서고 투쟁하고자 선택한 수단이었던 스스로의 문학과 그림이 완전하게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우리 둘 중에서 한 사람이 항복하면 또 한 사람은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투쟁에서 흘린 피를 목격한다. 그리고 저 멀리, 괴물처럼, 찬란한 색깔의 풍선이 둥실둥실 떠간다.(p.278)’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바네사는 이젤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 노랗게 빛나는 햇빛을 응시하며 버지니아에게 독백한다. ‘네가 옳다. 중요한 건 창작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p.299)’라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버지니아에게 보내는 일종의 서신과도 같아 보인다. 함께 세상과 예술에 대한 꿈을 꾸며 사랑을 나누고 둘만의 해저로 들어가 걷기를 원했지만 이룩하지 못한 것의 완결에 바치는 사랑의 경구가 색색으로 흩뿌려진 편지 말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