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 중국 문화대혁명을 헤처온 한 남자의 일생
옌거링 / 오일북스 / 2015.5.18

– 중일전쟁과 국민정부를 거쳐 문화대혁명까지 , 중국의 역사와 함께 흘러간 개인의 삶!
계모와 아내 사이에서 자유를 갈구하다 대초원에 유배된 지식인 루옌스. 정부가 뭐라고 한들, 사상이 어떻게 변한들, 지식인의 삶이 응당 어떠해야 한들 언어를 사랑하는 자유인으로 살고 싶었다.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고 탈옥하지만 이미 기억을 놓친 아내와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사상에 세뇌당한 아이들에게 그는 가족과 정부를 배반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20여 년간 대초원에 유배된 루옌스는 과연 모진 혁명의 시대를 견뎌 내고 아내의 사랑과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는 그렇게 대초원에서 탈옥한 루옌스의 일대기를 손녀가 받아 적은 구성으로, 중국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옌거링의 최신작이다.
○ 저자소개 : 옌거링
옌거링은 독자들에게 가장 호평받는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영어권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으며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중국인민해방군 칭다오 군사구역 문화선전공작단에 참가하여 무도를 배우는 한편 부대 내에서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1986년 첫 작품을 내놓은 이후 지금까지 2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고 30개가 넘는 상을 받았다. 그녀의 소설은 15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서 출간되었으며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장이머우 감독이 각색, 연출한 영화 ‘진링의 13소녀’와 ‘5일의 마중'(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이 한국에서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다.
– 역자 : 김남희
전북대 중어중문학과,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강의와 전문 통번역 활동 중 문학에 관심을 갖고 중국 칭화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 ‘1980년대 중국 사상문예계의 번역 실천과 문학 생산의 관계’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등 대학에서 중국 당대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번역에 참여했고, ‘진상제일교귀발’을 공역했다.

○ 출판사 서평
중국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옌거링은 20대 초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20여 편을 출간했다.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리얼리티, 섬세하고 절제된 묘사, 깊이 있는 역사적 시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온 그녀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난징 대학살의 비극을 다룬 ‘진링의 13소녀’로 장이머우 감독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역시 장이머우 감독의 손에서 영화 ‘5일의 마중’으로 탄생, 문화대혁명이 빚은 개인과 가족의 비극을 서정적으로 그려 냈다.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는 루옌스가 14살이었던 1921년부터 1990년까지 긴 일대기를 섬세하게 그려내어 마치 중국 근대사의 한복판에 와 있는 착각마저 준다. 개인은 어쩔 수 없이 정부와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루옌스처럼 유복한 가정의 모던보이에서 탈옥수로 변하듯,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변할 수도 있다. 주인공 루옌스는 신문물, 특히 서양의 문화에 눈을 떠 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인물이다. 그랬던 그를 정부는 ‘사상개조’란 명목으로 ‘반혁명분자’로 규정짓고 사회 밖으로 내던져버린다. 그리고 근근이 옥살이를 하며 지내다 탈옥을 결심하여 아내와 가정으로 돌아오길 처절하게 갈망한다.
○ 독자의 평 1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나의 할아버지 루옌스는 문화대혁명 때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수감된 죄수다. 루옌스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고 죄수번호 혹은 꼽사리로 불리거나 이따금 “라오 루”라고 불렸다. 사막 한 가운데 감시자들도 치통에 시달리고 추위에 버티기 힘들었던 그곳에서 루옌스는 4년을 버텨낸다. 이야기의 시작은 루옌스의 막내 딸이 나오는 홍보영화를 보기 위해 휴가를 얻어내려고 애쓰는 루옌스의 수감시절 이었다. 이야기의 전체 내용은 모두 한번 본 단어는 뇌에 넣고 잃어버리지 않는 천재적인 암기력을 가진 루옌스가 기록한 내용이었다. 4개 국어를 할 줄 알고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지만 그곳에서 배우고 직접 느낀 자유는 중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삶을 사회에서 동떨어지게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루옌스가 미국유학을 가길 원했던 것이 한시적인 자유였다면 그가 수감되었던 시절은 끝을 알 수 없는 자유의 박탈기였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제작했다는 영화 ‘5월의 마중’을 보았었다. 영화에서는 루옌스가 수감직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며 성장했고, 수감시절 얼마나 큰 고통과 인간 이하의 생활을 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이 ‘탈옥’이라고 붙여진 것이 조금 낯설었고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었다. 중국에서 반혁명분자의 위치가 어느정도 인지 짐작은 되었지만 강간이나 살해를 한 범죄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루옌스와 펑위완의 관계도 좀 의외였던 게 영화에서는 둘의 만남과 사랑이 처음부터 애절하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서의 루옌스와 펑위안의 관계는 피동적이다 못해 수감되기 전까지 펑위안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 눈물이 주무기였던 새어머니가 자신을 붙들어두기 위해 자신의 조카였던 펑위안을 소개했던 순간부터 루옌스는 얼굴은 미소지었지만 온몸으로 그녀를 멀리했었다. 유학길에 올랐을 때는 물론 귀국 후에도 루옌스는 펑위안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루옌스가 직접적인 의미의 자유를 상실하게 되서야 비로소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탈옥까지 감행하는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출감 이후 가족에게 돌아왔을 때 루옌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냉대와 소외감이었다. 루옌스가 인간이하의 취급을 창살안에서 당했다면 그의 가족들은 그를 정말 잊길 바라는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젊은 날의 자신을 힘들게 만든 루옌스만을 기억하고 비로소 자신의 사랑을 깨달은 루옌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였다.
영화의 중심이 펑위안과 외동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책은 루옌스와 그가 쓴 원고를 유일하게 물려받은 손녀딸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원작소설이라고는 해도 전혀 다른 개별적인 작품으로 봐야할지도 모른다. 루옌스가 수감시절 겪었던 옥중기로 봐도 좋았고, 남녀의 사랑이 세월의 풍파속에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해 가는가를 지켜보는 깊은 감동도 느낄 수 있었다.

○ 독자의 평 2
우리나라의 20세기가 격동의 세월이었던 것처럼 중국 또한 어마어마한 변화 속에 있었다. 신해혁명에 이어 전쟁 속에 머물렀고 장제스의 국민정부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까지. 급변하는 역사 속의 한 페이지를 살아간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다. 내가 살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역사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일이 똑같이 여겨지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순간 속에 있다면 말이다.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는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다. 훌륭한 류씨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번듯한 교육에 더불어 뛰어난 지성까지 갖춘 류옌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책임과 의무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모든 중국 가정의 장자와 장손이 그렇듯, 모든 중국 인텔리 집안의 남자 아이가 그렇듯”…(p.72) 다소 유약한 심성은 그의 책임과 의무를 몇 배로 가중시켰고 그가 그토록 원하는 자유를 자연스럽게 앗아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은 계모가 흘리는 눈물 앞에서, 사랑하지도 않는 의무 결혼이지만 갸냘픈 등을 가진 그의 아내 뒤에서. 때문에 그는 조금이라도 시간과 거리가 생기면 자유를 향해 날았다. 남들은 방탕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에겐 자유였다. 그리고 그 모든 자유가 차단되었을 때라도 그는 그가 사랑하는 언어만큼은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 싶었다.
역사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자신의 학문에서 만큼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했던 루옌스는 역사와, 혼돈과, 적들과 타협하지 않아 점점 도태되어 간다. 루옌스는 일상 생활에선 우유부단하지만 자유를 지키고 싶어했던 자신의 전공분야에서는 절대로 나약하지 않았다. 적당히 넘어갈 줄 아는 융통성을 보이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밝혔다. 때문에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디지 않는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가게 되고 그 여파로 그는 희생양이 되고 만다.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는 루옌스의 손녀 쉐펑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쉐펑은 할아버지가 오랜 기간에 걸쳐 머리 속으로 쓴 수필을 원고지에 옮기는 작업을 함께 했고 그 이후 원고가 쉐펑의 손으로 들어간 것이다. 때문에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시간적 순서에 따른 이야기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아 어느날 정확한 이유도 알 수 없이 끌려가 오랜 기간 감옥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그 평원에서의 이야기가 오버랩 된다.
한 개인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희생당했다. 하지만 그는 그 역경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내고 인내심을 배우며 더욱 자신을 갈고 닦는다. 그래도 말이다. 사회주의 속에 세뇌된 자녀들 앞에서 당당할 수 없었던 그가, 무척이나 애처롭다. 적어도 가족만은 그를 지지해 주었어야 하지 않나.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들만 있어야 할까.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아니다. 난 그런 사람들의 뻔뻔함과 치사함, 약삭빠름이 싫다. 때론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때론 “쓸모 없는” 사람들도 있어야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쓸모 없다고 이용당하고 희생을 강요당한다면, 그런 세상은 무척 살기 힘들 것만 같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