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데카르트 연구 : 방법서설ㆍ성찰
르네 데카르트 / 창 / 2010.3.24
데카르트의 저서 『방법서설』과 『성찰』의 번역본과 데카르트에 대한 연구서인 『데카르트의 중심 사상과 현대적 정신의 형성』, 『데카르트의 생애』를 함께 담아 제작한 책이다.
근세철학의 창시자인 데카르트의 철학적 원리와 내적 시사를 통해 그의 진면목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 목차
머 리 말
데카르트의 생애
서장 (序章) 천재의 세기
– 서양 사상사에서 데카르트의 위치
1.늦잠 자는 데카르트
2.방랑 (放浪)
3.소명의 꿈
4.진리의 자유를 위하여 숨어 사는 데카르트;저작
5.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와 데카르트; 평화에의 희원 (希願)
6.데카르트의 영향
방법서설 (方法序說)
제1부 학문에 관한 고찰
제2부 방법의 주요 규칙
제3부 이 방법에서 나오는 도덕의 규칙
제4부 하나님 및 인간 영혼의 현존의 증명
제5부 자연학의 문제의 순서
제6부 자연탐구를 전진시키는 데 필요한 것
성 찰 (省察)
파리 신학부에 보내는 편지
독자에게 드리는 서언
다음 여섯 성찰의 요약
성찰1 의심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성찰2 인간의 정신의 본성에 관하여;
정신은 신체보다 인식되기가 더 쉽다는 것
성찰3 하나님에 관하여; 그는 현존하신다는 것
성찰4 참과 거짓에 관하여
성찰5 물질적 사물의 본질에 관하여;
그리고 다시 하나님에 관하여, 그는 현존하신다는 것
성찰6 물질적 사물의 현존 및 정신과 신체의 실재적 구별에 관하여
데카르트 연구
제1편 데카르트의 중심사상
제1장 주체성의 문제
제2장 데카르트의 철학관
제3장 방법적 …회의
제4장 Cogito, ergo sum의 의미
제5장 데카르트의 인식론
제6장 데카르트의 신관 (神觀)
제2편 데카르트의 현대적 정신의 형성
제1장 근대화 문제
제2장 현대적 정신의 형성과 특색
제3장 데카르트의 사상적 편력
제4장 데카르트의 방법
제5장 데카르트의 자연상 (自然像)
제6장 정념론 (情念論)
참고문헌

○ 저자소개 : 르네 데카르트 (Rene Decartes, 1596 ~ 1650)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 (Rene Decartes, 1596년 3월 31일 ~ 1650년 2월 11일)는 1596년 3월 31일, 현재는 그의 이름을 따 데카르트로 지명을 바꾼 프랑스 중서부 투렌의 라 에이에서 조아킴 데카르트 (Joachim Descartes)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일 년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고전어, 수사학, 철학, 물리 등을 공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는 “우주는 무한”이라고 말한 브루노 (Giordano Bruno)가 화형당하는 한편, 갈릴레이 (Galileo Galilei)가 천체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는 등 중세의 기독교적 도그마와 근대과학의 희미한 서막이 공존하는 때였다.
데카르트는 프아티에 대학에 입학해 법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세상이라는 큰 책’을 배우고자 여행길에 올랐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그는 놀라운 학문의 기초를 직관하도록 한 세 가지 꿈을 꾸고 나서 지혜를 추구하며 보편학을 정립할 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정신지도규칙’ (Regulae ad directionem ingenii)을 집필했고, 그가 쓴 최초의 철학서라 할 수 있는 ‘방법서설’ (Discours de la methode)을 비롯해 ‘성찰’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철학의 원리’ (Principia philosophiae) 등을 차례로 내놓았다.
1643년 데카르트를 사숙 (私淑) 했던 엘리자베스 왕녀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했으며, 2년 후 그녀의 요청으로 ‘정념론’을 집필하기 시작해 1649년 책이 출간되기에 이른다.
평소 몸이 약해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매일 이른 아침 만나 대화하길 요청하는 스웨덴 여왕 크리스틴으로 인해 면역 체계에 문제가 생겨 이듬해 폐렴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끊임없는 의심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명증한 진리를 모든 학문의 시작으로 보았으며, 사유의 확신자를 신에게서 인간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근대의 철학적 주체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철학사에 큰 획을 그은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된다.

– 주요업적
르네 데카르트는 근대사상의 기본 틀을 처음으로 확립함으로써 근대철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그는 정신과 물질,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이원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과학적 자연관과 정신의 형이상학을 연결지어 세상을 몰가치적이고 합리적으로 보는 태도와 정신의 내면성을 강조하였다. 대륙철학의 합리주의의 근본이 된 그의 회의론은 다양한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의심이 가능한 모든 믿음을 제외함으로써 기본적인 신념만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수학을 이러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본 신념으로 여겨 철학을 포함한 모든 진리를 수학적인 원리로 해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그는 철학 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적인 업적도 이룩하였다. 1625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광학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1637년 《방법서설》 및 이를 서론으로 하는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의 세 시론을 출간하였다. 수학자로서의 그는 직교 좌표계를 만들어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알려졌으며 방정식의 미지수에 최초로 {\displaystyle x}x를 사용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거듭제곱을 표현하기 위한 지수의 사용 등을 발명했다. 데카르트는 다양한 여러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수학을 만든 혁명적인 수학자이며 동시에 고대 그리스 과학을 모두 집대성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다. 그의 보편적인 수학은 본인이 예견했듯이 광학, 천문학, 기상학, 음향학, 화학, 건축학, 물리학, 회계 등에 다양하게 응용되었으며 본인이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분야인 전기학, 인공두뇌학, 미생물학, 유전학, 경제학 등에도 응용되고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며 이 절대적인 진리를 이용해 구성요소의 진리값을 이용한 다른 진술을 증명하는 법을 개발했다. 그는 과학을 대하는 데에 있어 크기, 모양, 운동 등의 경험적인 양에 집중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이론에 따라 진공의 개념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세 가지 물질의 연장이 곧 공간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르네 데카르트의 글과 방법론을 곁들인 데카르트적 회의는 서양철학의 특징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되었다. 데카르트의 철학에 관한 부분은 뒤에서 다루기로 한다.
.수학적 업적
르네 데카르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해석기하학의 창시이다. 특히 그가 고안한 직교좌표계는 이전까지 독립적으로 다루어졌던 대수론과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융합시켜 자신 이후의 뉴턴역학을 비롯한 근대 수학과 과학의 발전에 바탕이 되었다. 데카르트의 직교좌표계는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유클리드의 기하학적 공간을 대체하였고, 이는 아인슈타인이 새로운 공간 개념을 도입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방법서설》 (Discourse on Method)에 포함된 소논문 《La Géométrie》 (1637)은 수학의 역사에 큰 공헌을 했다. 논문에서 그는 곡선에 대수 방정식을 부여하는 방법을 발견해, 모든 원추곡선을 단 한 종류의 2차 방정식으로 표시하는 데에 성공하고 그를 제시함으로써 과학과 수학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또한 그는 숫자(밑) 위에 작은 숫자(지수)를 씀으로써 거듭제곱을 간단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생각해냈다. 그의 수학적 업적은 라이프니츠가 제안하고 뉴턴이 발전시킨 미적분학의 근간을 이루었다. “실계수의 n차방정식의 양의 실근의 개수는 다항식 f(x)}f(x)의 실수의 열사이에서 일어나는 부호변화의 수와 같거나 그 수보다 짝수 개만큼 적다.”는 데카르트의 부호법칙은 다항식의 근의 개수를 구하는 데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방정식의 미지수에 처음으로 x}x를 사용한 것도 르네 데카르트의 업적이다. 1618년 르네 데카르트는 네덜란드로 여행을 떠나 이삭 베크만을 조우했으며, 그에게 많은 문제에 수학을 적용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는 수학이 어떻게 류트의 음정을 맞추는 데에 정확하게 응용될 수 있는지와 무거운 물체가 물 속에 들어갔을 때 수면의 높이 변화를 나타내는 대수적인 공식을 제안했다. 또한 진공 상태에서 물체가 낙하할 때 임의의 시간에서 그 물체가 가속하는 속도를 예측하는 방법과 어떻게 회전하는 팽이가 똑바로 서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이 공중에 뜰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베크만의 일기를 통해 1618년 말까지 데카르트가 이미 기하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대수 방정식의 적용을 여러 방면에 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르네 데카르트는 수학을 “불연속적인 양의 과학”으로, 기하학을 “연속적인 양의 과학”으로 보았으나 그 둘 간의 장벽은 해석기하학이 창시됨에 따라 허물어졌다. 그는 산술과 대수학은 그저 숫자의 과학이 아니라 무리수의 사용을 정의하고 새로운 수학의 가능성을 연 명제의 과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방법서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을 통해 그는 수학과 모든 과학은 상호관계적이며 둘을 따로 생각하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다루는 것이 쉽다고 주장했다.
.과학적 업적
과학자로서의 르네 데카르트는 물리학 분야에 큰 공헌을 했다. 10살 때, 라 플레슈(La Fleche)의 학교에 입학해 논리학, 윤리학, 물리학과 형이상학, 유클리드 기하학과 새로운 대수학 및 갈릴레이의 망원경에 의한 최신 업적에 이르기까지의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과학자로서의 초석을 다졌다. 1618년 르네는 군에 자원 입대하여 장교로서 복무하였는데, 이 때 그의 과학적 흥미는 탄도학, 음향학, 투시법, 군사기술, 항해술 등까지 발전시켰다. 그 해 겨울 아마추어 과학자이자 당시 수학의 지도자였던 이삭 베크만을 처음 만나 다시 이론적인 문제와 물리학에 흥미를 가진 이후 몇 년간 물리학분야에 있어 빛의 원리, 공학, 자유낙하 등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했다. 특히 그가 빛의 원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빛을 중요시하던 스토아 학파의 영향을 받은 점도 있다(사실 이는 당대 수학자나 과학자들의 공통적인 경향이기도 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이론적 전개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가장 작은 수의 원리로부터 출발하여 이미 알려져 있는 모든 사실을 설명하고, 더구나 새로운 사실의 발견으로까지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스넬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굴절의 법칙이 이 때 발견되었으며, 그는 자신의 저서 《굴절광학》에서 독자적으로 증명한 “굴절의 법칙”을 언급하는 한편, 시력에 관한 다양한 연구 내용을 설명했다. 여기서 그는 굴절의 법칙에 대해 서술할때 자신이 고안한 직교좌표계를 활용하여 법칙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는 《천체론(Le monde)》를 통해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주장한 지동설을 바탕으로 하는 세계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후일 뉴턴에 의해 거부된 그의 와류이론에 의하면 에테르의 미소한 입자들이 혹성이나 태양 주위에 거대한 회전흐름, 즉 소용돌이 속에 떠 있는 어린이의 보트와 같이, 이 태양의 소용돌이 속으로 운반되고, 달도 마찬가지로 지구의 주위로 운반된다는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의 물리학은 Clifford Truesdell로부터 “데카르트의 물리학은 현대적 의미의 시초이다.” (Truesdell 1984,6)라는 평을 들었다. 데카르트는 사물의 본질을 외연 (extension)으로 보았다. 사물에 체계적 의심을 적용해 그것의 감각적 특징들을 지워 나간다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공간의 일부를 채우고 있는 무색, 무미, 무취의 어떠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공간은 물질로 꽉 차있는 플레넘 (plenum)으로, 불의 원소, 공기의 원소, 흙의 원소의 세 종류의 물질로 채워져 있다. 다른 어떠한 감각적 속성이 없이도 크기, 모양, 운동 등으로만 물질을 정의해 차가움, 뜨거움, 습함 등의 질적인 개념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은 데카르트는 플래넘을 구성하는 작은 원소들의 충돌이 자연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또한 데카르트는 그의 책에서 눈에 대한 해부학적 구조를 설명하며 빛이나 외부 이미지가 동공과 내부 유리체를 거쳐 굴절되고 상이 뒤집혀 망막에 맺히고 시신경을 통해 자극이 전달되는 과정 뿐 아니라 눈이 얼마나 상을 최대화하고 또렷하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과정을 현미경과 망원경의 개념에까지 확대시켰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렌즈 깎는 법을 설명하며 망원경과 현미경의 유용성을 언급했다. 또한 생물학 분야에서의 르네 데카르트는 윌리암, 하베이와 나란히 근대 생리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전생리학의 기초가 되는 대가적 가설을 도입했다. 다양한 동물의 머리를 해부해보며 상상력과 기억이 위치하는 곳을 찾기 위한 연구를 했으며, 네덜란드에 머무른 기간 동안 많은 시간을 들여 인체를 해부했다. 데카르트는 가설적 모델 방법을 통해 육체 전체를 일종의 기계로 간주해 눈의 깜빡임과 같은 자율적인 동작 현상과 보행과 같은 복합 동작에 있어 많은 관찰과 다양한 기계론적 설명을 내세웠다. 이러한 모든 동작과 운동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방식은 근대적 생리학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결국 그는 자연에서 영혼을 제거시켜 중세적 자연관을 밀어내고 기계적 세계관을 정당화함으로써 자연계의 만물을 물체의 위치와 운동으로 설명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 역자 : 최명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그 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노스웨스턴 대학교 교환교수,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소르본느 대학교 방문교수,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문리과대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앙띠 오이디프스』로 제9회 서우 철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명예교수이다.

○ 출판사 서평
–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서설ㆍ성찰, 데카르트 연구”
이 책에는 데카르트의 저서 『방법서설』 · 『성찰』 의 번역과 데카르트 연구로서 『데카르트의 중심 사상과 현대적 정신의 형성』 · 『데카르트의 생애』가 수록되어 있다.
데카르트는 암흑을 헤치고, 정신의 힘만으로 끈기 있게 사색하여, 밝은 빛으로 나아간 독창적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 가운데에는 오늘날에 이르러 타당성을 잃은 것이 적지 않지만, 그의 줄기찬 철학적 사색의 자세와 정신은 지금도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슈베글러 (Albert Schwegler)는《서양철학사》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근세 철학의 창시자요 아버지는 데카르트다. 그는 여태까지의 철학과 절연하고 아주 새로운 일을 시작한 점에서는 과도기 사람들과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베이컨같이 그저 방법적 원리를 제시하기만 한 것이 아니고, 또 뵈외메 및 동시대의 이탈리아인같이 방법적 기초를 세우지 않고 철학적 견해를 논술하기만한 것도 아니라, 전혀 전제 없는 입장에서 출발하여 새롭고 적극적이고 내용이 풍부한 철학 원리를 제시하고, 이 원리로부터 곧장 일관된 논증의 길을 거쳐 자신의 체계의 여러 근본적 명제를 끌어내려 했다.
그는 자신의 원리의 무전제와 새로움에 의하여 근세 철학에 길을 열어 준 사람이요, 그 원리가 내적 시사를 간직하고 있음으로써 근세 철학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