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살아간다는 것
위화 / 푸른숲 / 1997.6.30
– 중국혁명과 대장정, 문화혁명으로 점철된 파란의 역사 속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늙은 농부 복귀의 인생 내력
우정과 사랑, 인간본성과 생명에 대한 근원적 믿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참혹하고 야만적인 전란과 문화대혁명의 시대를 살아낸 중국 민중의 서사시이다.
광대한 땅과 오랜 역사, 격변의 시절을 겪은 민초들의 의식과 정서의 서술은 너무 리얼해서 오히려 환상적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토록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통해 범상하고 누추한 삶이란 없다는 것, 누구의 것이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강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것인지, 위대한 것인지를 가식없이 진솔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장예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인생]의 원작.
○ 저자소개 : 위화 (Yu Hua, ユイ.ホア, 余華)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1983)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1988)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1993)을 선보인 위화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인생'(1993)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인생’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이는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중국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매년 40만 부씩 판매되며 베스트셀러 순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1996)는 출간되자마자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위화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 중국 현대사회를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형제'(2005)와 ‘제7일’ (2013)은 중국 사회에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전 세계 독자들에게는 중국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산문집으로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등이 있다.
1998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 Premio Grinzane Cavour, 2002 제임스 조이스 문학상 James Joyce Foundation Award, 2004 프랑스 문화 훈장 Cheval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2004 반즈앤노블 신인작가상 Barnes & Noble Discovery Great New Writers Award, 2005 중화도서특별공로상 Special Book Award of China, 2008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해외도서상 Prix Courrier International, 2014 주세페 아체르비 국제문학상 Giuseppe Acerbi International Literary Prize, 2017 이보 안드리치 문학상 The Grand Prize Ivo Andric, 2018 보타리 라테스 그린차네 문학상 Premio Bottari Lattes Grinzane을 수상하였다.
– 역자: 백원담
중문학자. 성공회대학교 인문융합자율학부/국제문화연구학과 교수, 일반대학원장과 동아시아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중국 상하이대학 문화연구학과 해외교수, 《황해문화》, 《人間思想》 편집위원,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냉전학회/한국문화연구학회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은 《1919와 1949: 21세기 한중 ‘역사 다시 쓰기’와 ‘다른 세계’》(2021), 《중국과 비(非)중국 그리고 인터 차이나》(2021), 《뉴노멀을 넘어; 팬데믹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대응과 정동》(2021), 《열전 속 냉전, 냉전 속 열전》(2017), 《신중국과 한국전쟁》(2013), 《냉전아시아의 문화풍경 I·II》(2008, 2009), 《동아시아 문화선택 한류》(2005)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춘생, 살아 있어야 해요’ 춘생은 고개를 끄덕였고, 가진은 안에서 울면서 말했다네.
‘당신은 우리에게 한 목숨을 빚졌으니, 당신 자신의 목숨으로 갚아주세요.’
춘생이 잠시 서 있다가 말했지.
‘알겠습니다.’
‘춘생, 자네 살아 있겠다고 약속하게.’
춘생은 몇 걸음 걸어가다가 돌아보며 말했어.
‘약속할게요.’ — 본문 중에서
˝노인의 뒷잔등과 소의 등이 하나같이 까무잡잡한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물어가는 두 생명이 그 낡은 판자 같은 밭을 화락화락 갈아엎는 모습이 수면 위로 솟구쳐오른 파도 같았다.˝ -p.18-
‘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봐, 몇개 이름을 불러 그를 속인 것이요. 다른 소도 밭을 갈고 있다고 알면 신이 날 것이고, 그러면 밭 가는 일도 힘이 날 것이 아니겠소.’-19쪽
˝<이 소는 그러니까 결국 이름이 몇 개입니까?>
….(중략)…….<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봐, 몇 개의 이름을 불러 그를 속인 것이오. 다른 소도 밭을 갈고 있다고 알면 신이 날 것이고, 그러면 밭 가는 일도 힘이 날 것이 아니겠소.>˝ -p.19
˝내 딸 봉하가 네 살 때, 늘 마을 어귀로 달려가 할아버지가 똥 누는 것을 구경하곤 했는데, 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시니까 똥통 위에 앉아 있는 다리가 사뭇 떨렸겠지. 그러면 봉하는 이렇게 묻곤 했다네.
<할아버지, 왜 흔들거리시는 거예요?>
그러면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시곤 했지.
<바람이 분 것이란다.>˝ -p.21
˝나중에 나는 생각했네. `스스로 자신을 위협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모두 운명이다. 옛말에 큰 재난에 죽지 않으면 반드시 훗날에 복을 받는다고 했으니 내 나머지 반생은 분명 점점 나아질 것이다`라고 말일세. 그런 생각을 가진에게 말해주었더니 가진이 이로 실을 끊으면서 나를 보며 말했네.
<복은 안 받아도 좋으니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 있기만 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나는 가진의 말뜻을 알아들었다네. 아내는 우리들이 앞으로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야. 그녀의 얼굴이 많이 늙은 것을 보고 가슴이 시리게 아파오더군. 가진의 말이 맞았어. 한 가족이 매일 함께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복이 어디 있겠는가?˝ -p.111
˝길을 걸어가는 동안 정말 견디기 어렵더구만. 나는 일부러 봉하를 쳐다보지 않고 내처 앞으로만 갔는데, 가다 보니 날은 저물었고 찬바람이 쌩쌩 소리를 내며 얼굴로 불어닥치는가 싶더니 목덜미로 파고들었어. 봉하는 두 손으로 내 옷소매를 꼭 잡은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쭈그리고 앉아 두 발을 문질러주자 작은 두 손을 내 목에 얹었다네. 그애의 손은 차가웠고 가만히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네. 거기서부터 봉하를 등에 엎고 갔지.
읍내에 이르러 그 집이 가까이 보이자 가로등 밑에 봉하를 내려놓고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네. 우리 봉하는 얼마나 착한 아이였던지 그 순간에도 울지 않고 눈만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볼 뿐이었어. 나는 그애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고, 그애도 손을 펴서 내 얼굴을 매만졌는데, 그애의 작은 손이 내 얼굴을 매만지는 순간 더 이상 그애를 그 집에 돌려보낼 수 없다는 생각을 했구만. 그래 봉하를 업고 도로 길을 돌아나왔지. 봉하는 작은 팔로 내 목을 잡고 있었는데, 얼마쯤 가자 갑자기 나를 꼭 껴안았다네. 자기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 -p.128
˝옷을 벗어 소매통을 찢어서 유경이의 눈을 가리고 옷으로 감싸서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는 아버지 무덤 앞에 가서 말씀드렸지.
<유경이가 갈 거예요. 잘 대해주세요. 그애가 살아 있을 때 저는 잘해주지 못했어요. 두 분이 저 대신 그애를 달래주세요.>
유경이가 구덩이 속에 누워 있는데, 보면 볼수록 어찌나 작던지 열세 살이라기보다는 가진이 처음 갓 낳아놓았을 때의 모습처럼 조그맣더군. 손으로 흙을 퍼서 유경의 몸 위에 덮고 작은 돌로 표시를 해놓았는데, 행여 돌이 그애의 몸을 아프게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 -p.199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내 옷은 흥건히 젖어버렸고, 가진은 울면서 말했지.
<유경이가 이젠 이 길을 달릴 수가 없어요.>
구불구불 읍내로 통한 작은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내 아들이 벗은 발로 뛰어가는 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네. 달빛만 처연하게 길 위를 내비추는데, 소금, 하얀 소금이 한가득 흩어져 있는 것 같았어.˝ -p.204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내 옷은 흥건히 젖어버렸고, 가진은 울면서 말했지.
<유경이가 이젠 이 길을 달릴 수가 없어요.>
구불구불 읍내로 통한 작은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내 아들이 벗은 발로 뛰어가는 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네. 달빛만 처연하게 길 위를 내비추는데, 소금, 하얀 소금이 한가득 흩어져 있는 것 같았어.˝ -p.204
사람이 무언가 먹고자 하면 그걸로 된 것이라네.
먹고 싶다는 것, 그것만큼 살아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확인해 주는 것은 없으니까.-213쪽
˝집에 돌아와 이희는 봉하를 침대에 누이고 자기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봉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지. 이희의 몸은 점차 동그마니 오그라드는데, 그런 모습을 눈뜨고는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얼굴을 돌리고 벽에 그려진 그와 봉하의 그림자만 바라보았네. 그러나 그 또한 기가 막혀 볼 수가 없더군. 그 두 그림자는 검고 커다랐는데, 하나는 누워 있고, 하나는 꿇어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어. 오직 이희의 눈물만이 움직이고 있어서 방울방울 커다란 검은 점이 두 사람의 그림자 사이에서 굴러내리는 것을 응시할 따름이었네.˝ -p.259
사람이란 말일세, 살아나갈 때 더 많은 고통을 받는 법이지, 막상 죽어갈 때가 되면 자기를 편안하게 할 방법을 생각하는 법이라네.-263쪽
˝<생각해봐. 보러 오지 않는 건 그렇다 치고, 나는 어린아이니까 길을 잘 모르잖아. 그러니 네가 나를 데리고 돌아가야지.>
<네 아빠는 너를 보러 올 수 없어. 나도 너를 데리고 돌아갈 수가 없고. 네 아빠는 죽었거든.>
<나도 아빠가 죽었다는 건 알아. 하지만 깜깜해졌는데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잖아.>
나는 그날 저녁 이불 속에 누워서 녀석에게 죽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말해주었네. 사람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곧 땅에 묻히는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고 설명해 주었지. 녀석은 처음에는 무서워서 덜덜 떨더니, 그 뒤로는 더 이상 제 아비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피 울었다네. 고근이의 작은 뺨을 내 목 위에 대니, 뜨거운 눈물이 내 가슴으로 흘러내렸지. 고근이는 그렇게 울다가 울다가 잠이 들었다네.˝ -p.279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게 좋은거야. 아웅다웅 이리 채이고 저리 부대끼다 보면 누구든 자기 운명만큼 배상받을 수 있게 마련이라네. -289쪽
˝나는 안다. 황혼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는 것을. 나는 광활한 대지가 바야흐로 결실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모습이다. 여인이 자기 아이들을 부르듯, 대지가 어두운 밤이 내리도록 부르고 있는 것이다.˝ -p.294
‘너는 나이가 많지 않느냐. 그런데도 이처럼 밭을 갈 수 있는 것은 네가 너의 온 마음과 힘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란다. ‘-294쪽
○ 출판사 서평
‘살아간다는 것’은 1987년 단편소설 ’18세에 집을 나가 먼 길을 가다’를 발표한 이후 10년 동안의 소설창작으로 중국에서 여화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중국평단에서 ’20세기를 총괄하고 21세기로 넘어서려는 세기말의식이 체현된 작가’ (陣思和, 복단대 교수), ’90년대 문학적 역량이 가장 뛰어난 작가’ (陣曉明, 중국사회과학원연구원)로 평가받고 있는 여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중국혁명과 대약진, 문화혁명으로 점철된 파란의 역사 속에서 재산과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아 저물어가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늙은 농부 복귀가 들려주는 자신이 살아온 내력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가차없는 현실과 운명에 맞설 수 있게 하는 사랑과 우정의 힘과, 인간 본성과 생명에 대한 근원적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어떤 파란 속에서도 살아간다는 것 자체의 중요성만을 부여잡고 역사의 물줄기와 함께 굽이쳐온 생생한 삶의 기록인 이 소설은 다만 중국민의 그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그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독일에서 출간되어 많은 문학독자들에게 호평받은 이 소설은 장예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1994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인생’의 원작이기도 하다.
○ 독자의 평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난 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다시 여화의 책을 만났다. 그의 글은 참 좋았다. 삶이란
화려하지도 그렇게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처참하지도 않다는 것을 그는 보여 주었다.
그에게 좋은 기억을 가졌으나, … 평소 소설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굳이 찾아읽지 않았으며…. 따지고 보니 요즘은 책 읽기 자체가 무지 뜸한 편이었군….
누군가의 추천으로 다시 여화의 작품을 만났다…. 음.. 영화 “인생”의 원작이란다. 제목이 참…. 여화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것”—-모두가 살아가고 있지만…. 다 겪고 있는 이야기들이어서 그런가? 더욱 말하기도 어렵고 정의하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별로 살았다고 말할 처지가 아닌 나도 삶이란 그다지 친절하거나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감히 이 글의 주인공인 복귀 앞에선 그 말을 못 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과 커다란 역사적 변화 속에서 복귀는 부귀를 누리며 세상에 겁날 것 없던 망나니에서 완전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쟁도 끌려가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를 잃게 된다.
아이구…. 난 그도 그렇지만 그의 가족 이야기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착하디 착한 아내 가진과 너무나 슬픈 팔자를 타고난 봉하와 너무나 어이없이 죽어버린 달리기 잘하거 그의 아들 유경이와…. 슬픈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이희와 …… 오랜만에 보는 콩에 배가 터져 죽은 고근이까지… 어쩜 이렇게 비극과 아픔들이 그들의 주변을 에워싸는지….
그렇지만 여화는 이런 비극을 지지부진 청승맞게 쓰지 않아서 좋았다.
아… 오랜만에 좋은 책 읽어서 기분 좋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