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우상의 황혼
프리드리히 니체 / 아카넷 / 2015.8.3
‘또는 어떻게 쇠망치로 철학을 하는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우상의 황혼’은 1888년 니체가 미치기 1년 전에 쓰인 후기 저작 중 하나로서 1888년에 쓰인 ‘안티크리스트’와 함께 니체가 말년에 도달한 사상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니체는 여기서 서양인들이 숭배해온 우상들에게 황혼이 임박했음을 고지하고 있으며, ‘쇠망치’로 우상들을 분쇄하는 작업을 통해 이러한 우상의 황혼을 앞당기려 하고 있다.…니체가 우상을 파괴하려 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데카당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사람들의 맹목적인 숭배를 받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병들게 하고 생명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니체는 이렇게 우상을 파괴하는 작업을 ‘모든 가치의 재평가’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것은 선과 행복 그리고 신 등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그것들에 새로운 정의를 내리는 작업이다.
○ 목차
저자 서문 | 9
잠언과 화살 | 11
소크라테스 문제 | 27
철학에서의 ‘이성’ | 40
어떻게 ‘참된 세계’가 마침내 우화가 되었는가? – 오류의 역사 | 50
자연에 반(反)하는 것으로서의 도덕 | 54
네 가지 커다란 오류 | 63
인류를 ‘개선하는 자들’ | 78
독일인들에게 부족한 것 | 85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 97
내가 옛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 | 166
쇠망치(Hammer)는 말한다. | 177
해제 | 179
찾아보기 | 239
○ 책 속으로
비극은 염세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비극은 오히려 염세주의에 대한 거부와 반대 절차로 간주되어야 한다.
(비극의 목적은) 공포와 동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나 감정의 격렬한 방출을 통해 위험한 감정에서 자기를 정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ㅡ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이해했지만ㅡ
쇼펜하우어는 ‘의지로부터의 해방’을 예술의 총체적 의도라고 가르쳤고, 체념시키는 것을 비극이 갖는 중대한 유용성이라며 경외했다. 그런데 이것은 염세주의자의 시각이며 사악한 시선이다. 우리는 예술가 자신들에게 물어보아햐 한다. “비극적 예술가는 자신의 무엇을 전달하는 것인가? “
그가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끔찍한 것과 의문스러운 것 앞에서의 공포 없는 상태가 아닌가? 그 상태 자체가 지극히 소망할 만한 것이다. 이런 상태를 알고 있는 자는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그가 예술가라면 그는 그 상태를 전달하며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강력한 적수 앞에서, 커다란 재난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문자 앞에서 느끼는 용기와 자유ㅡ 이런 승리의 상태가 바로 비극적 예술가가 선택하는 상태이며, 그가 찬미하는 상태이다. 비극 앞에서 우리 영혼 내부의 전사가 자신의 사티로스의 제의를 거행한다. 고통에 익숙한 자, 고통을 찾는 자, 영웅적인 인간은 비극과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찬양한다 ㅡ 오직 그에게만 비극 시인은 그런 가장 달콤한 잔혹의 술(비극)을 권한다. ― <우상의 황혼>
아주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우며 오만 가지 배려를 주고받는 우리 현대인은 우리가 제시하는 이런 섬세한 인간성, 그리고 관용과 친절과 상호 신뢰에 있어 이르게 된 의견 합일이 하나의 긍정적인 진보라고 믿어버리고, 이 점으로 인해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신경은 르네상스적 실재성을 견대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근육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현대인의 이런 무능은 진보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것, 즉 필연적으로 사려로 가득 찬 도덕을 발생시키는 더 약하고 더 유약함과 더 상처받기 쉬운 더 말기적인 소질을 증명해줄 뿐이다.
강렬한 시대와 고상한 문화는 동정과 ‘이웃 사랑’과 자아와 자의식의 결여를 경멸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ㅡ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적극적인 힘들에 의거해 측정될 수 있다ㅡ이럴 때 르네상스라는 그토록 풍요롭고 그토록 숙명적인 시대는 위대했던 최후의 시대로 드러나고, 우리 현대는 자기에 대한 소심한 염려와 이웃 사랑, 노동과 겸허와 공정성과 과학성이라는 덕을 가지고서ㅡ수집적이고 경제적이며 기계적인ㅡ약한 시대로 드러난다
‘평등권’ 이론에서 그 표현을 얻는 ‘평등’은 본질적으로 쇠퇴에 속한다 :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격, 계층과 계층 사이의 간격, 유형의 다수성,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의지,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고자 하는 의지, 내가 거리를 두는 파토스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강한 시대의 특성이다. 오늘날에는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긴장과 간격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ㅡ극단적인 것들은 희미해져 결국은 모두 유사하게 되어버린다 ― <우상의황혼>
더 이상 자신 있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해지게 한다. ― <우상의 황혼> 中. 즉,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나는 살아 있는 한 더 강해질 것이다.’ 라는 의미.

○ 저자소개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Friedrich Wilhelm Nietzsche,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독일 라이프치히 근교의 뢰켄에서 출생했으며, 아버지는 루터 교회의 목사였다.
슐포르타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바그너의 음악과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의 글에 심취했다. 그러나 뒷날엔 바그너의 음악을 비롯해 낭만주의를 맹비난한다. 본 대학과 라이프치히 대학을 다녔으며, 24세에 바젤 대학 교수가 되었다.
1872년에 최초의 저서 『비극의 탄생』 출간했다.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 『선과 악을 넘어서』(1886), 『적그리스도』(1888) 등을 발표했다.
1889년에 신경쇠약을 겪은 뒤로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다.
○ 출판사 서평
1. 소크라테스 문제
『우상의 황혼』을 니체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시작하고 있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서양 형이상학과 종교를 우상으로 보면서 파괴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따라서 니체가 이러한 우상 파괴를 소크라테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야말로 서양 전통 형이상학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의 소크라테스 비판은 소크라테스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사상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서양 전통 형이상학 전체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2. 철학에서의 ‘이성’
니체는 여기서 서양철학을 지배해온 이성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이성중심주의는 감각과 본능 그리고 정념을 무시하고 억압한다. 이러한 이성주의는 생성·변화하는 것은 가상일 뿐이며 영원불변하게 존재하는 것만이 실재한다고 본다. 니체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비롯된 이원론적 세계관은 이러한 이성중심주의 논리의 기반 위에 형성된 것이다. 플라톤 철학에서 이데아계는 이성에 의해서만 포착되는 참되고 완전한 세계다. 이러한 이데아계에 진입하기 위해 우리는 현상계에 속하는 감각과 육체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이성과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
3. 어떻게 ‘참된 세계’가 마침내 우화가 되었는가?: 오류의 역사
니체는 이 장에서 전통 형이상학이 지향하던 초감성적 세계가 신빙성을 점차로 상실해가면서 한갓 우화로 전락하는 한편, 형이상학에 의해 그동안 무시되어왔던 차안의 감성적 세계가 본래의 심원한 의미를 회복해가는 과정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니체는 초감성적인 세계를 실재로 정립하는 형이상학의 역사가 플라톤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니체는 다른 곳에서는 플라톤적인 이원론과 그리스도교적인 이원론 그리고 칸트식 이원론을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면서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뉘앙스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그것들 사이의 차이를 상당히 섬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4. 자연에 반하는 것으로서의 도덕
니체는 흔히 이성을 무시하고 열정을 중시하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니체도 우리가 열정에 눈이 멀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따라서 니체도 우리 자신을 열정에 내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의 정신화를 주창한다. 그러나 전통 도덕은 열정이 갖는 어리석음에만 주목하면서 열정 자체와 싸우고 열정을 죽이려고 했다. 니체는 이렇게 열정 자체를 제거하려고 했던 전통도덕을 도덕적 괴물(Moral-Unthiere)이라고 보았다.
5. 네 가지 커다란 오류
흔히 니체는 인과율을 부정한 철학자로 이해된다. 실로 실재의 본질을 창조적인 생성 과정으로 보는 니체의 사상과 인과율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니체가 인과율 자체를 부정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니체 자신도 자신의 사상을 개진할 때 끊임없이 인과율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서양 형이상학이 이원론에 빠진 이유는 서양인들의 힘에의 의지가 허약했기 ‘때문’이라고 보면서 인과율에 입각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가 비판하는 인과율은 특정한 형태의 인과율, 즉 원인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실체로 보는 인과율이다. 따라서 니체는 인과율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인과관계에 대한 특정한 형이상학적 이론을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니체는 「네 가지 커다란 오류」에서 인과율과 관련해 일반적으로 범해
진 네 가지 오류를 검토하고 있다.
6. 인류를 개선하는 자들
「인류를 개선하는 자들」이라는 장을 니체는 ‘도덕적 사실이란 없으며 특정한 현상들에 대한 도덕적 해석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시작하고 있다. 이 경우 니체는 도덕이라는 말로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반자연적인 도덕’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이러한 반자연적 도덕이 자명한 진리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도덕 역시 인간의 행동에 대한 하나의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해석자의 생리적 상태를 보여주는 징후일 뿐이다. 도덕은 단지 기호언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자연적 도덕은 자신의 본능과 열망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없는 허약한 자가 자신의 본능과 열망에 대해서 내리는 극단적 조치다. 허약한 자는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본능과 열망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것들을 악으로 단죄하여 근절하려 하는 것이다.
7. 독일인들에게 부족한 것
니체는 이 장에서 독일 통일과 함께 세워진 새로운 독일제국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독일의 군사력은 강화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독일의 정신은 퇴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니체는 독일은 유럽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한 용기와 자존심, 신뢰성, 근면성, 인내심, 절제심, 복종하는 것을 굴욕으로 느끼지 않고 복종하는 것, 자신의 적을 경멸하지 않는 것’과 같은 남성적인 미덕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니체는 독일의 국력이 강화될수록 나날이 섬세한 취미나 고상한 본능이 사라지고 있다고 본다. 한때 시인과 사상가의 민족으로 불렸던 독일민족은 진정으로 정신적인 것들을 위해 필요한 모든 진지함을 정치에 다 소모해버렸다는 것이다.
8.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이 장에서 니체는 당대의 철학, 예술, 정치, 문화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상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우상으로 니체는 루소나 칸트, 실러, 위고, 콩쿠르 형제 등 다양한 인물들과 아울러 이들이 대표하는 다양한 예술사조나 정치사상 등을 든다. 이 부분에서 니체는 이러한 우상
들을 파괴하는 작업 외에 예술과 천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작업도 행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