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제7일
위화 / 푸른숲 / 2013.8.26
– 세계가 사랑한 작가, 중국 최고 이야기꾼의 귀환!
‘허삼관 매혈기’ ‘인생’으로 독자들에게 중국 소설의 새로운 재미를 일깨워준 위화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작가 스스로도 ‘30년 문학 인생의 결정판’으로 꼽는 작품이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중국 작가로 꼽히는 위화의 매력을 오랜만에 한껏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주인공 양페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난 후, 이승은 떠났지만 저승으로 넘어가지 못한 7일 동안(창세기에서 모티브를 땄다)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작가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사회의 부조리마저 유머러스하고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시키며 독자들로 하여금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위화는 인생 자체에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향해 우직하게 걸어가며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곱씹어보게 하는 저력을 지니고 있으며, 정이나 관계, 인연이나 인간성 등 인류가 부딪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요소들을 작품 곳곳에 풍부하게 담고 있다.
또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여느 나라와도 다른 여정을 꿋꿋이 밟아가는 중국 사회만의 개별성을 작품 안에 잘 녹여내어 독자들을 더욱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경험으로 이끈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이 원하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차원을 넘어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문화적 창문의 역할까지 나아간다.
작가는 생과 사라는 문제를 작품 정면에 던져놓음으로서 숙명이라는 물음과 마주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서러움과 슬픔을 담담히 묘사한다. 만남과 이별을 연거푸 겪으면서도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걸어나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를 보여준다.
○ 저자소개 : 위화 (Yu Hua, ユイ.ホア, 余華)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1983)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1988)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1993)을 선보인 위화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인생'(1993)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인생’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이는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중국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매년 40만 부씩 판매되며 베스트셀러 순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1996)는 출간되자마자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위화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 중국 현대사회를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형제'(2005)와 ‘제7일’ (2013)은 중국 사회에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전 세계 독자들에게는 중국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산문집으로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등이 있다.
1998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 Premio Grinzane Cavour, 2002 제임스 조이스 문학상 James Joyce Foundation Award, 2004 프랑스 문화 훈장 Cheval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2004 반즈앤노블 신인작가상 Barnes & Noble Discovery Great New Writers Award, 2005 중화도서특별공로상 Special Book Award of China, 2008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해외도서상 Prix Courrier International, 2014 주세페 아체르비 국제문학상 Giuseppe Acerbi International Literary Prize, 2017 이보 안드리치 문학상 The Grand Prize Ivo Andric, 2018 보타리 라테스 그린차네 문학상 Premio Bottari Lattes Grinzane을 수상하였다.
– 역자 : 문현선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와 같은 대학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2013년 현재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물처럼 단단하게》 《사서》 《경화연》(전2권) 《생긴대로 살게 내버려둬》 《사랑을 담는 지갑》 등이 있다.
○ 줄거리
첫째 날 아침에 일어난 주인공 양페이는 화장터에 오라는 통지가 문앞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죽은 것이다.
얼굴이 다 뒤틀려 있고 수의도 갖춰 입지 못한 양페이는 신혼 때 마련한 커플 잠옷을 입고 화장터에 간다.
화장터에서는 화장하는 순서를 번호표로 나눠주고 있다.
유골함도 묘지도 없는 사람은 화장된 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양페이는 화장터를 나선다.
그렇게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도는 양페이는 둘째 날, 셋째 날 등을 차례로 지내면서 이승에서의 삶을 되돌아본다.
짧았던 3년간의 결혼 생활, 기찻간에서 태어나 철로로 떨어져 21살의 선로공이었던 양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은 일, 대학 졸업 즈음 친부모와 재회한 일 등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중간 중간 마주쳤던 인연들과 사건들이 7일 안에 녹아들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 출판사 서평
– 세계가 사랑한 작가, 중국 최고 이야기꾼의 귀환!
‘허삼관 매혈기’ ‘인생’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중국 소설의 새로운 재미를 일깨워준 위화의 신작 장편소설’제7일’이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중국에서는 올해 6월에 출간되었으며, 신작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가 집중된 만큼 초판 60만 부를 찍으며 올해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작가 스스로도 ‘30년 문학 인생의 결정판’으로 꼽는 작품이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중국 작가로 꼽히는 위화의 매력을 오랜만에 한껏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주인공 양페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난 후, 이승은 떠났지만 저승으로 넘어가지 못한 7일 동안(창세기에서 모티브를 땄다)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작가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사회의 부조리마저 유머러스하고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시키며 독자들로 하여금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나는 인생의 본질에 다가서려 노력한다. 일상의 본질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어차피 일상이란 진짜와 가짜가 섞여 혼탁한 상태가 아닌가?’라는 위화의 말은 중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그의 문학의 보편성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고도로 개인화된 취향과 그 취향을 증명하는 소비와 스타일을 찬양하는, 요즘 대세를 이루는 일군의 소설가들과는 달리, 위화는 인생 자체에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향해 우직하게 걸어가며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곱씹어보게 하는 저력을 지니고 있으며, 정이나 관계, 인연이나 인간성 등 인류가 부딪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요소들을 작품 곳곳에 풍부하게 담고 있다.
또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여느 나라와도 다른 여정을 꿋꿋이 밟아가는 중국 사회만의 개별성을 작품 안에 잘 녹여내어 독자들을 더욱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경험으로 이끈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이 원하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차원을 넘어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문화적 창문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헤밍웨이를 연상시키는’ 간결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편안히 다가서면서도 ‘현대판 발자크([르몽드])’, ‘현대판 찰스 디킨스([ARD, 독일 제1공영방송])등의 평을 들을 만큼 치밀한 현실 묘사를 놓치지 않는 그의 작품은 전 세계 평단과 문화 예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재해석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이전 작품 ‘인생’은 장이머우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위화 현상’의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한국에 소개된 지 10년이 넘도록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으며 중국 소설 초심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히는 ‘허삼관 매혈기’는 한국에서 배우 하정우의 주연 겸 연출로 영화화됐다.
– ‘제 7일’의 의미 _ 환상과 실제를 넘나들며 인생의 모든 기쁨과 슬픔, 선택과 희생을 서사로 품다
‘7일’은 창세기에서 천지 만물이 창조되는 기간을 말한다. 종교적으로 해석했을 때, 이 기간은 이 세계가 시작된 극적인 순간이다. 위화는 이에 인생을 마감한 후의 7일을 인간에게 대입했다. 시작과 대비되는 끝에도 같은 정도의 무게를 둔 것이다. 7일은 시간이기도 하고, 삶은 마감하였으나 묘지에 안장되기 전, 즉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7일은 양페이라는 한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마감한 이후 이승에서의 추억을 되새기고 저승의 안식을 기원하며 인생의 본질을 찾고 삶의 풍경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간이자 공간인 셈이다.
또한 살아 있는 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죽음마저 단신으로 처리되고 장례식조차 평온하게 치러낼 수 없는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의미,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음미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힘을 다시 찾게 하는 기간인 것이다.
7일은 또한 이승에서의 묵은 앙금을 털어버릴 수 있는 공간이다. “두 사람의 원한은 생사의 경계를 넘지 않았다. 원한은 저지당한 채 그 떠나간 세계에 남았다”는 구절처럼, 인간이 본래의 선한 모습으로, 조건이나 선입견 없이 다시 상대와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떠나보낼 사람은 훌훌 떠나보내고, 다시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다시 만나게 되는 그런 공간이다.
주인공인 양페이가 죽고, 화장터에 가기 위한 채비를 하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즉 이승을 떠나긴 했으나 저승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묘지가 없고 애도해줄 유족이 없는 양페이는 화장터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그곳을 떠나 7일간의 여정을 시작한다.
– 인생이란, 연속되는 극단적 선택의 순간들
인생에서는 때로 균형추가 흔들릴 때가 있다. 일이냐 사랑이냐, 출세냐 안정이냐, 부유하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환경이냐 편안하지만 곤궁한 환경이냐. 또한 선택을 되돌리는 사람이 있으며, 선택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사람이 있다. 위화는 이러한 선택의 순간들을 작품 속 인물들의 삶에 절절히 녹여냈다. 작가는 인물들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아준다. 다 그들만의, 그 상황만의 논리가 있기에 작가는 그 순간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독자들로 하여금 이입하고 반추하게 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강인함과 나약함, 과단성과 우유부단함을 한 폭의 인생길에 두루 펼쳐 보인다. 독자들은 “모르겠소”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인생 자체의 복잡다단함에 간결하면서도 깊숙이 도달하게 된다.
항상 자신감이 넘쳤던 그녀가 처음으로 위축된 모습을 보인 순간이었다. 그녀가 불안하게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그 사람이 이혼했다고, 자신을 위해 이혼한 거라고, 그와 잘 통하니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한 번 그가 자신을 위해 이혼한 거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힘이 실린 것을 느끼면서 어떤 남자든 그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를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와 함께라면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살 뿐이지만 그와 함께라면 멋지게 사업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사실 나는 6개월 전에 이미 그녀가 떠나리라는 걸 어렴풋하게 예감했고 6개월 동안 그 예감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말했다.
“우리 이혼해요.”
“그래.”
말을 내뱉자 눈물이 걷잡을 수 없게 흘러내렸다. 헤어지기 싫었지만 붙잡을 능력이 없었다. _p.70
– 스스로 상장을 단 사람들
상장이란 산 사람들이 죽은 자를 애도하면서 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스스로 상장을 단,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서로의 존재나 멸실을 알지 못해 추모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애도하며 함께 새로운 삶을 다시금 꾸려간다. 갓 죽은 이들은 자신의 죽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중에 온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죽은 이유와 남겨진 사람들의 소식을 전해준다.
스스로 상장을 단 사람들은 가족도 없지만 한편으로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그늘이 되고 만 사람들이다. 이들은 탄압받는 자들이고 존재를 부정당하는 자들이다. 이 작품에서는 현실에서는 그늘이 되었던 인물들이 곳곳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 작가가 때로는 대변인이 되어 심정을 토로하고, 때로는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 들릴 기회를 갖지 못했던 목소리를 들어준다. 허구라는 기틀에 서 있지만 현실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문학의 특성을 십분 살려, 그늘이 된 사람들을 구경거리나 뉴스거리가 아니라 당연히 위무받아야 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제 부모님과 형님 내외는 제가 죽였다고 믿지 않았지만 나중에 제가 죽였다고 인정하자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매우 슬퍼하며 저를 원망했어요. 저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요. 우리 농촌은 그렇거든요. 집에 살인범이 있으면 온 가족이 전부 낯을 들지 못하지요.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내릴 때 저희 가족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처가에서는 모두 왔고요. 하지만 그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잡혀간 뒤 면회하고 싶어 했지만 경찰이 허락하지 않았지요. 그들은 모두 순박하고 고지식한 사람들이라 제가 억울하다는 것을 몰랐어요.
아내를 죽였다고 인정한 건 어쩔 수 없어서였습니다. 경찰이 저를 매달아놓고 때리면서 인정하라고 윽박질렀거든요. _p.223
– 인간이란, 숙명을 살아내면서도 부단히 가능성을 찾는 존재
작가는 생과 사라는 문제를 작품 정면에 던져놓음으로서 숙명이라는 물음과 마주한다. “나 간다”, “나 가요” 라는 말을 남기며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서러움과 슬픔을 담담히 묘사한다. 만남과 이별을 연거푸 겪으면서도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걸어나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를 보여준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 능력을 알지 않느냐며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2만 위안만 가방에 넣고 나머지 4만여 위안은 탁자에 놓았다. 그러고는 우리가 함께했던 집을 애틋하게 둘러보며 집에게 말했다.
“나 간다.” _p.71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조금도 두렵지 않단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 보는 거야.”
다음 날 나의 아버지는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갔다. 아무런 낌새도 없이, 쪽지 한 장도 남기지 않고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끌고 나를 떠나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내 소홀함을 끊임없이 자책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기 며칠 전, 장롱에서 새 철도원 제복을 꺼내 베개 옆에 놓아달라고 했다. 나는 그게 어떤 조짐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새 제복을 보고 싶어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건 아버지가 퇴직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받은 제복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오랜 습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새 철도원 제복을 입는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말았다. _p.135
그러나 작가가 인간을 숙명에 순응하는 나약한 존재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서 인물들은 업둥이 아이를 거두어 기르고 젖을 나누어 먹이면서 사랑하고 기댈 대상을 꾸준히 찾아 자신의 삶을 더욱 충만하게 채워나간다. 이승을 떠난 이후에도 스스로를 애도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주며 오히려 이승에서보다도 더욱 다채로운 삶을 꾸려간다. 여기서 작가는 현실적인 것을 넘어선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현대사회가 공공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지만 인간이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를 구원하고 삶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작가는 이러한 가능성을 작품 전체에서 조명하면서 인간과 인간성 그리고 인간이 가진 상상력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 양진뱌오는 고집스럽게도 나의 친부모가 나를 기차 바퀴에 치여 죽이려고 철길에 버렸다고 믿었다. 그는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독한 부모가 있담” 하며 중얼거리곤 했다. 그 집요한 확신 때문에 아버지는 각별히 나를 아꼈다. 철길에서 아버지 품에 안긴 이후 나는 아버지와 꼭 붙어 다녔다. 갓난아기였을 때는 아버지 가슴의 포대기에서 자랐다. 리 아줌마가 만들어줬던 첫 번째 포대기와 나중에 아버지가 직접 만든 포대기 모두 파란색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출근할 때마다 분유 탄 젖병을 체온으로 따뜻하게 유지하려고 가슴 앞쪽, 팔딱거리는 심장 가까이에 집어넣었다. […]
내가 으앙 하고 깨면 아버지는 배고프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젖병을 꺼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젖병과 아버지의 체온을 빨며 하루하루 자라났다. _p.97-98
아버지의 인생이 내 궤도로 돌아왔다. 그 이후 아버지는 결혼을 거부했다. 당연히 처음으로 거절한 상대는 머리를 길게 땋았던 그 아가씨였다. 무척 상심한 아가씨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리 아줌마에게 달려가 울며 하소연했다. 아줌마는 그제야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채고 아버지를 책망했다. 자기와 하오 아저씨가 나를 거둘 의향이 있다며, 나는 자기 젖을 먹었으니 이미 자기 아들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하지만 아줌마가 그 아가씨와 다시 잘해보라고 권했을 때, 고지식한 우리 아버지는 나와 아가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서 말했다.
“난 양페이만 원해요.” _p.111
내 눈앞에 있는 서른여덟 명의 해골은 명단에서 제외된 사망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가족은 어떻게 된 걸까, 나는 의문이 들었다.
“여러분 가족은 왜 진상을 숨긴 거죠?”
“위협을 받고 입을 다무는 대가로 돈을 받았어요.” 노인이 말했다. “ 우리는 어차피 죽었으니까 살아 있는 가족들이 편안히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요.”
“아이들은요? 아이들 부모는…….”
“지금은 우리가 이 아이들 부모예요.” 노인이 내 말을 잘랐다.
그런 다음 그들은 손을 잡고 몸을 기댄 채 내 옆으로 스르르 지나갔다. 한 덩어리로, 거센 바람도 흩어놓을 수 없을 것처럼 꼭 붙어 지나갔다. _p.203-204
– 유머, 눈물과 웃음을 가장 강력하게 전달하는 장치
위화는 인생의 눈물과 웃음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유머로 전달하는 작가다. 우스개 유머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믿음이 담긴 온기가 있는 유머다. 자살 소동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모여 있는 군중들을 향해 선글라스니 도청기니 ‘쾌락유’니 하는 물건을 파는 장사치들이 있고, 경찰의 가혹 행위에 항의하는 시위에 ‘내 불알을 돌려달라’는 팻말을 들고 나오는 시민 등 씁쓸하고 처참한 상황에서도 독자들이 웃음을 잃지 않도록 배려한다. 이는 인간의 낙천성에 대한 작가의 단단한 믿음을 확인하게 하는 동시에 비극이 꼭 비극인 것만은 아니고, 희극이 꼭 희극인 것만이 아니라는, 인간은 누구나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인생의 진리를 알아차리게 하는 장치다.
잡상인들도 왔다. […] 어떤 상인이 쾌락유를 사라고 하자 누군가 쾌락유가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상인은 한번 문지르면 성기가 강철처럼 단단하게 발기되는 오일이라며 비아그라보다 신기하다고 답했다. […] 선글라스 장수가 하나에 10위안이라고 소리치면서 높이도 보고 멀리도 보고 태양 앞에서도 당당해, 하며 아주 감칠맛 나는 말을 늘어놓았다. 몇몇 사람이 선글라스를 사서 끼고는 펑페이 빌딩에 있는 작은 그림자를 계속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이 경찰을 봤다고, 여자 옆의 창문에서 경찰이 머리를 내밀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경찰이 지금 자살하려는 여자에게 심리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도 했다. 얼마 뒤 10위안짜리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소리쳤다. 경찰이 손을 뻗었다, 여자도 손을 뻗었다, 심리 작전이 성공했다. 하지만 곧이어 아, 하는 외마디 비명 소리가 나고 적막이 이어졌다. 나는 여자의 몸이 바닥에 부딪히는 음울한 소리를 들었다. _p.166-167
○ 추천평
백만 원군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가뭄에 단비 같은 신선함이 있다. -이문구(소설가)
동아시아인으로, 동시대의 젊은이로 국가의 운명에 상처 입어본 자들로서의 동질감은 언어의 장벽보다 언제나 컸기에 나는 그의 소설의 열렬한 독자다. – 공지영(소설가)
수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문장이지만 커다란 인생을 맛볼 수 있다. 내공이란 말은 이럴 때 사용해야 마땅하다. – 김혜수(배우)
○ 독자의 평 1
‘위화’라는 이름을 듣기로는 <허삼관 매혈기>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아직 중국 작가들의 글을 읽지 않았지만,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접하게 되었다.
책 표지에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영원한 인연을 다시 찾은 7일간의 이야기’라는 글을 보고는 혹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TV드라마는 ‘사랑’, 특히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는 빠지리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섣부른 판단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승에서의 사람들이 이승에서 맺은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가끔은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준다.
죽어서도 고급 수의나 VIP에 대한 예우를 보면서 이승에서의 권력이 저승에서 이어지는 것을 보고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죽어서도 이런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죽으면 끝이 아닌가? 화장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아직도 빈부귀천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는 괜히 허탈해 지는 느낌이…
7일간 찾는 영원한 인연은 결국 아버지였다. 불행하게 태어난 양페이가 결국 행복을 느끼며, 멋지게 살아간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 양진바오의 희생과 사랑 때문이었다.
자신의 결혼을 위해 양페이를 버리려다 결국은 결혼을 포기하고 양페이와 함께 살기로 결정을 한다. 어린 아들을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은 평생의 짐으로 느깐다. 결국, 죽음이 가까워지자 아들이 느꼈을 공포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백화점의 붕괴와 영아 사체, 빈민촌 철거로 인한 죽음 등 사회주의 중국에서 공안이나 정부의 발표는 믿을 수 없다는 내용도 나온다. 말하는 사회적 질서를 위해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지,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정부의 말을 많은 사람들을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요즘 세태의 반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짝퉁 휴대폰과 관련된 슈메이와 우차오의 이야기는 젊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사랑하지만 서로를 채워주지 못해 갈등하고, 이해하면서도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짝퉁 아이폰으로 인한 슈메이의 죽음. 그 후의 이야기로 인한 우차오의 희생…
중국의 사회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부조리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러한 일을 당하는 서민들은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슈메이의 화장터로 가는 길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
부모의 사랑에는 끝이 없다. 간혹 사람들은 낳은 정, 기른 정을 나누기도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할 때는 의미없는 이야기들인 듯 하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나중에 자식들도 알게 된다. 아낌없는 부모의 사랑을 언젠가는 아이들이 깨딷게 되는 것이리라…
영원한 인원이란 천륜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 독자의 평 2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위화가 쓴 소설 [제7일]의 주인공은 사자(死者)다. 모든 사자가 그렇듯이, 그도 한때는 살아 있었다. 이미 태어나 버린 것을 마지못해, 죽지 못해 꾸역꾸역 살았던 것이 아니라 아주 성실하고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40년을 살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아침에 그의 집 문에 붙어 있는, 화장터 몇 호로 오라는 쪽지를 확인하며 이 소설은 시작한다.
쪽지를 확인한 그는 전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양페이는 자신의 몸은 죽었고, 자신은 혼이 되어 사후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느끼고 있었다. 자기를 위하여 준비된 무덤이 없기에 그는 화장터에서 안식을 맞는 대신, 생전의 기억에 이끌려 몸이 살았을 적에 걸었던 거리를 찾아다닌다. 독자는 양페이 혼의 정처 없는 여로를 동행한다.
“시간 나면 편지도 쓰고 전화도 해라. 잘 지내는지 알려주렴. 내 걱정은 말고.”
내가 올라탄 기차가 역을 떠날 때 아버지는 그곳에 선 채 멀어지는 기차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플랫폼은 오가는 사람들도 붐볐지만 아버지 혼자만 거기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아버지가 내 삶에서 조용히 사라진 이후, 나는 그 여름날 아침 플랫폼의 광경을 가슴 시리게 떠올리곤 했다. 아버지가 스물한 살 때 갑자기 아버지 삶으로 뛰어든 나는 아버지의 삶을 송두리째 장악해버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마땅히 누려야 했던 행복은 아버지 삶에 비집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온갖 고생을 참고 견디며 나를 길러낸 그 아버지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플랫폼에 내버린 것이다. p.122-123
양페이가 사후 세계를 방황하는 목적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다. 우연히 철로에서 갓난쟁이를 주운 그 여름날 이후, 총각은 결혼도 포기하고 이 갓난쟁이를 번듯한 청년으로 키워냈다. 아버지의 가슴 절절한 사랑을 기억하는 양페이는 자기보다 먼저 죽었을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사후 세계의 이곳저곳을 수소문한다.
이 여정에서 양페이는 현대 중국의 부패하고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희생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저자는 양페이의 여정을 빌어, 천박한 자본주의와 부조리한 공산주의라는 양극단의 패악을 함께 앓고 있는 중국의 민낯을 드러낸다. 자본 제일의 논리에 밀려 가족이 분해되고 장기 밀매가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이승 속에서 사람들은 사람다운 생애를 살지 못한다. 이 끔찍한 모순들을 특유의 역설과 유머로 그려낸 저자는 독자에게 묻는 듯하다. ‘정말 거기 인생이 있는가?’
언젠가 저자는 어느 인터뷰에서 소소하게 살아가는 어떤 버릇 같은 평범한 일상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의 관심사는 일상이 아닌 인생의 본질이라고. 그런 저자는 이 책에서 죽은 자들의 회상과 독백을 통하여 사람답게 사는 일의 본질을 두드린다.
몸이 죽은 양페이가 갔던 화장터에서조차 비싼 무덤과 수의, 높으신 신분에 따라 화장 순서와 가마가 결정된다. (이미 몸이 죽었는데 시장이니 재산이 무슨 소용이라고!) 사후 세계에서조차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 모순은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그래서 양페이는 화장터를 떠나 7일 동안을 아버지를 찾아 헤맸나보다. 양페이에게 인생의 참다운 가치를 가르쳐준 것도, 인생의 본질이 되어준 것도 결국 그의 아버지였으니까.
돈과 정치, 권력과 체면이 지배하는 인생의 모순을 대담하고 유쾌하게 꼬집은 저자는 동시에, 이 혼돈한 세계 속에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사랑과 희생, 생명과 존엄의 가치도 드러낸다.
작품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양페이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는 너무나 아름답고 따듯하다. 요란한 사랑의 표현이나 과장된 희생이 있어서가 아니다. 철로 옆에 흔들리듯 피어난 풀꽃이 화려한 색이나 향기가 없어도 신선한 기쁨을 주듯이. 소란한 세상 속, 욕심껏 지내는 인간들 틈에서 그들이 남긴 기억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따듯하다. 양페이를 담담히 사랑한 그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죽은 후에까지도 사랑한 아들의 이야기는, 책장을 덮은 뒤에도 한참동안 이들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 인생이 이래서야 되겠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문제제기만 하는 작품이라면, 아마 우리는 위화라는 작가를 이토록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위화가 그려낸, 때로 이별과 상실을 겪더라도 자신의 삶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독자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