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피아니스트
The Pianist: The Extraordinary True Story of One Man’s Survival in Warsaw, 1939-1945
불라디슬라브 스필만 / 황금가지 / 2002.12.25
- 2차대전 중 폐허의 바르샤바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의 수기
2차 세계 대전이 낳은 탁월한 수기문학으로, 반 세기 만에 발굴되어 우리말로 소개된다. 거장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만들어 200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원작으로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이 독일군 점령 하의 바르샤바에서 6년간 살아남은 경험을 기술한 작품이다.
잘 알려진 수기 『안네의 일기』가 소녀의 눈으로 전쟁의 일상을 바라보았다면 이 책은 청년의 시각을 보여준다. 피아니스트로서 인생과 예술에 진지하고 부모 형제를 사랑했던 한 청년이 놀랄 만큼 담담한 언어로 픽션보다 더 극적인 체험담을 이야기한다.
28세로 고전 음악 연주와 대중가요, 영화 음악 작곡가로 각광받으며 폴란드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던 스필만은 독일군에게 폴란드가 함락된 이후 게토 (유태인 강제 거주 지구)의 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그의 가족은 가스실로 가는 열차를 타고 오로지 스필만 그 자신만 그를 알아본 사람에게 구조를 받아 가족과 헤어진다. 게토에서 탈출하여 폐허의 빈집에 숨은 그는 절대적인 고독과 굶주림 속에서 독일군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목숨을 이어나간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수많은 순간들을 지나 살아남은 한 유태인 청년의 이 수기는 실제 있었던 체험담이 아니라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극적이지만 스필만은 그저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술해 나간다. 이 담담함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더 큰 감정의 울림을 전해준다.
부록으로 스필만이 이름도 모른 채 도움을 받았던 독일 장교 빌름 호젠필트의 전쟁중 일기 및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의 전후를 밝힌 해설이 수록되어있다.

○ 목차
블라디슬라브 스필만의 수기
- 아이들과 미친 사람들의 시간
- 전쟁
- 처음 본 독일군들
- 아버지, 독일군들에게 인사하다
- 당신들 유태인들이지?
- 클로드나 가에서의 춤
- K 부인의 멋진 제스처
- 위험에 처한 개미집
- 움쉴라크플라츠
- 살아남을 기회를 얻다
- 저격병들이여, 총을 들고 일어서라
- 마요렉
- 옆집 부부의 말다툼
- 살라스의 배신
- 불타는 건물 속에서
- 한 도시의 죽음
- 목숨과 바꾼 술
- 야상곡 C샵 단조
빌름 호젠펠트의 일기 초
해설

○ 저자소개 : 불라디슬라브 스필만
1911년에 태어났다. 피아니스트로서 바르샤바 음악 학교와 베를린 예술원에서 수학했고 1945년에서 1963년까지 폴란드 라디오의 음악부장을 지냈다. 그는 몇 편의 교향곡과 수백 편의 대중가요 및 영화 음악 등을 작곡하여 폴란드 인들에게 크게 사랑받은 작곡가이기도 했으며 연주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전후에서 주로 바르샤바에 거주하다가 2000년 7월 6일 세상을 떠났다.
– 역자: 김훈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빈방〉으로 당선. 옮긴 책으로 《희박한 공기 속으로》《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세상 끝 천 개의 얼굴》 《성난 물소 놓아주기》《그런 깨달음은 없다》《모든 것의 목격자》《켄 윌버, 진실 없는 진실의 시대》《늘 깨어나는 지금》 외 백여 권이 있다. 현재 부여에서 번역 작업을 하면서 파트타임 농부로 지속 가능한 자연생태 농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 책 속으로
전쟁 기간 동안 나는 바르샤바 게토 (유태인 강제 거주 지구 – 옮긴이)의 중심부에 위치한 노볼리스키 가의 카페 노보체스나에서 처음 피아니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1940년 11월, 게토의 대문들이 폐쇄될 즈음 우리 가족은 이미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치운 지 오래였다. 우리 집의 가장 귀한 재산이 피아노까지도. 내게 삶이란 그리 대단치 않게 비쳤지만 그래도 살기는 해야겠기에 부득불 무관심한 태도를 떨쳐버리고 생계비를 벌 방도를 찾아 나섰으며, 다행히 일자리를 얻었다. 그 일을 하느라 나는 시름에 잠길 시간이 거의 없었으며 온 가족이 내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차차 과거의 무력감과 절망감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내 하루 일과는 오후에 시작되었다. 그 카페에 가려면 게토 깊숙이 이어지는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들을 요리조리 빠져나가야 했다. 사람들이 게토 안에 물건을 몰래 들여오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을 구경하고 싶을 때면 그 골목길들 대신 장벽을 따라 갈 수도 있었다.
물건을 밀반입하기에는 오후 시간이 그중 좋았다. 오전 내내 제 주머니를 채우느라 혈안이 되어 뛰어다니던 경찰들도 그 무렵이 되면 벌어들인 돈을 세기 바빠 경계가 좀 느슨해 졌으니까. 담을 따라 늘어선 공동 주택들의 현관문과 창문에서는 사람들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가 재빨리 숙이곤 하면서 마차나 전차가 다가오는 소리를 조바심치며 기다렸다. 이따금 한번씩 장벽 너머에서 그런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곤 했다. 그리고 마차를 끄는 말이 따각거리고 지나가면서 미리 정해진 신호인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물건들인 든 자루나 짐 보따리들이 담 너머로 날아 들어왔고, 그러면 건물 안에서 포복한 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문 밖으로 튀어나와 재빨리 그 전리품들을 낚아채 집 안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나서 거리에는 기대감과 조바심과 은밀한 속삭임으로 가득한 팽팽한 침묵이 몇 분간 지속된다. — pp.13-14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작업 조건은 악화되었다. 이제 우리를 감시하는 일을 맡은 리투아니아 인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일절 사지 못하게 했고 게토로 들어가는 주요 검문소를 통과할 때면 점점 더 검문 검색이 심해졌다. 어느 날 오후, 우리 작업 팀이 검문소에 이르렀을 때 느닷없이 그 인원들 중에서 반을 걸러 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양소매를 걷어올린 젊은 독일 경찰 하나가 검문소 밖에 서서 본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사람들을 가려내 살릴 사람들은 오른편에 죽일 사람들은 왼편에 세워 놨다. 그는 내게 오른쪽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왼쪽에 선 사람들은 땅바닥에 엎드려야 했다. 그런 뒤 그는 자신의 연발 권총으로 그들을 하나하나 사살해 버렸다.
일주일쯤 지난 뒤 게토의 장벽에는 바르샤바에 남아 있는 모든 유태인들을 새로 가려 뽑은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공고가 나붙었다. 이미 30만 명이 다른 데로 이전해갔고 이제 10만 명쯤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 독일인들에게 꼭 필요한 전문 직업인들과 그 밖의 일꾼들 2만 5천 명만 시내에 남겨둘 것이라 했다. — pp.161-162

○ 영화화
영화 ‘피아니스트’ (The Pianist)는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일생을 소재로 한 전기 소설을 영화로 구성한 것이다.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Władysław Szpilman)의 저서를 바탕으로 한 로만 폴란스키의 제2차 세계 대전, 홀로코스트 영화다.
폴란드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유대인 가족이 나치의 침공에 의해 해체되는 모습을 그렸다.
영화는 2002년 제75회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주연상 그리고 각색상을 수상했다. 200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피아니스트’는 거대한 스케일과 완벽한 역사현장의 재현을 자랑하는, 근래 보기 드문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역사상 거대했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독일, 폴란드, 영국 등 전 유럽대륙의 노련한 노하우와 장인정신이 완성시킨 대서사시이다. 총 제작비 3천5백만달러(약 420억원), 1천명이 넘는 스텝과 연기자,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촬영세트가 이 영화를 위해 준비되었다. ‘쉰들러 리스트’로 오스카를 수상한 세계적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란 스타스키는 수개월의 사전조사와 준비를 통해 1930~40년대의 유럽을 21세기에 다시 세웠다. 그러나 ‘피아니스트’가 단지 대작 영화의 장점만을 지녔다면 유사한 다른 영화가 주는 오락적 재미만을 선사했을지 모른다. 이 영화는 CG나 얄팍한 영상스타일을 배제하였다. 감독 폴란스키는 거짓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영화가 아닌, 제작부터 진솔한 인간의 땀을 사용함으로써 강요된 감동이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격정적인 눈물을 이끌어내고자 했고 그것은 성공했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폴란스키 감독은 주연 배우를 찾기 위해 유럽에서 미국까지 샅샅이 다녔다. 그는 스필만과 외모적인 흡사함이 아닌 이미지의 일체를 가져다주는 배우를 원했다. 영국에서의 대규모 오디션도 폴란스키에게 만족스런 배우를 가져다주지 못했으나 미국까지 배우영역을 확장시킨 폴란스키는 마침내 애드리언 브로디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빵과 장미’ ‘씬 레드 라인’에서 연기력을 펼친 브로디는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공포에서 살아남는 폴란드 예술가 슈필만의 감정을 세심하게 연기해내었다. 한편, 폴란스키는 주연뿐만 아니라 잠깐 스치는 보조연기자에도 완벽함을 원했다. 그는 반세기 전 폴란드, 유대인, 독일인들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보조연기자들을 수 천명의 인터뷰와 사진촬영 등을 통해 캐스팅하였다. 특히 독일 나치군을 연기한 배우들은 감독조차 다시 한번 유년시절의 공포를 경험하게 할만큼 섬뜩한 분위기를 던져내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