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허삼관 매혈기
위화 / 푸른숲 / 2007.6.20
<허삼관매혈기>는 위화의 중국 장편소설이다. 1996년에 출간됐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 막 수립된 시기인 1950~1960년대의 베이징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인생을 그리고 있으며, 등장인물로는 허삼관, 허옥란,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등이 있다.
허삼관매혈기를 통해 문화대혁명과 아버지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한국내에서는 하정우 주연의 허삼관으로 영화화됐다.
본 작품은 중국어 이외에도 한국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을 포함하여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 중국 제3세대 소설가 위화의 세 번째 장편소설
1996년, 출간되자마자 중국 독서계를 뒤흔들며 베스트셀러 수위에 오른 이후 4년이지난 지금까지 부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문제작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살이가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 건 매혈로 여로를 걷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희비극이 교차하는 구조적 아이러니로 드러내면서 한층 정교하고 심화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 소설은 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에 소개돼 격찬을 받았으며 세계적으로 ‘여화현상’을 일으키는 일련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 저자소개 : 위화 (Yu Hua, ユイ.ホア, 余華)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1983)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1988)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1993)을 선보인 위화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인생'(1993)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인생’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이는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중국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매년 40만 부씩 판매되며 베스트셀러 순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1996)는 출간되자마자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위화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 중국 현대사회를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형제'(2005)와 ‘제7일’ (2013)은 중국 사회에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전 세계 독자들에게는 중국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산문집으로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등이 있다.
1998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 Premio Grinzane Cavour, 2002 제임스 조이스 문학상 James Joyce Foundation Award, 2004 프랑스 문화 훈장 Cheval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2004 반즈앤노블 신인작가상 Barnes & Noble Discovery Great New Writers Award, 2005 중화도서특별공로상 Special Book Award of China, 2008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해외도서상 Prix Courrier International, 2014 주세페 아체르비 국제문학상 Giuseppe Acerbi International Literary Prize, 2017 이보 안드리치 문학상 The Grand Prize Ivo Andric, 2018 보타리 라테스 그린차네 문학상 Premio Bottari Lattes Grinzane을 수상하였다.
– 역자 : 최용만
1967년 생으로, 1990년에 한림대학교 중국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에 북경대학교 중문과 대학원에서 당대문학(當代文學)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역서로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가랑비 속의 외침』, 위화의 산문집 『영혼의 식사』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허옥란은 세 아들의 말을 듣고는 그들에게 삿대질을 하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아, 니들 양심은 개에게 갖다 주었냐. 너희 아버지를 그렇게 말하다니. 너희 아버지는 피를 팔아서 번 돈을 전부 너희들을 위해서 썼는데, 너희들은 너희 아버지가 피를 팔아 키운 거란 말이다. 생각들 좀 해봐. 흉년 든 그해에 집에서 맨날 옥수수죽만 먹었을때 너희들 얼굴에 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어서 너희 아버지가 피를 팔아 너희들 국수 사 주셨잖니. 이젠 완전히 잊어먹었구나…(중략)…일락이 네가 상해 병원해 입원해 있었을때.집안에 돈이 없어서 너희 아버지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면서 피를 파셨다. 한 번 팔면 석 달은 쉬어야 하는데, 너 살리려고 자기 목숨은 신경도 쓰지 않고, 사흘 걸러 닷새 걸러 한번씩 피를 파셨단 말이다.송림에서는 돌아가실 뻔도 했는데 일락이 네가 그일을 잊어버렸다니…이자식들아 너희 양심은 개새끼가 물어 갔다더냐..이놈들아..’
허옥란은 한바탕 통렬한 독설을 퍼붓고는 허삼관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보, 갑시다. 우리 돼지 간 볶음 먹으러 가자구요. 황주도 마시구요.이제 가진게 돈뿐인데 뭘 그래요.’ — pp.322-323
허삼관은 일락이에게 비계로 된 홍소육을 만들어 준 뒤 허옥란에게 붕어찜을 요리해 주었다. 붕어에다 훈제 고기, 생강, 버섯을 함께 넣어 소금을 살짝 바르고 황주를 뿌린 뒤 잘게 썬 파를 얹어서 한 시간 정도 익힌 후에 뚜껑을 여니 맑은 향기가 방 안에 가득히…허삼관이 눈에 선하게 만들어 낸 붕어찜은 방 안 가득히 침 넘어가는 소리를 자아냈다. 그러자 허삼관이 아들들을 꾸짖었다.
‘이건 너희 엄마를 위해서 만든 건데, 너희들은 침을 왜 삼켜?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었으면 이젠 자도록 해라.’
마지막으로 허삼관은 자기가 먹을 돼지간볶음을 만들었다. — p.162
‘똑바로 보시오. 이 피는 내가 칼로 그어서 나온 것이오. 당신들…’
그리고 하소용의 부인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도, 만약에 당신들 중에 다시 한 번만 일락이가 내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칼로 베어 버릴 테요.’
말을 마친 뒤 허삼관은 칼을 내던지고 일락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일락아, 우리 집에 가자.’ — p.207
그때 허옥란은 자기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가 매일 누워 낮잠을 자느 등나무 평상에 앉아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눈주위가 벌겋게 상기된 채 걸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어제 방철장이 가져간 물건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세어 가며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있었다.
‘제가 10년간 힘들여 모은 물건들을 그 사람들은 두 시간만에 가져가 버렸어요. 10년간의 제 고생….옷감 두단도 가져갔어요.아버지가 저 시집갈 때 주신 그 옷감 말이에요. 옷 해 입기도 아까워서 애지중지 아껴 두던 것들인데…’
그렇게 허옥란이 손가락들을 꼽고 있을 때 방철장 일행은 모든 물건들을 되돌려 놓고 있었고,그녀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그들이 돌아간 후였다. 그녀는 문 앞에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어제 실려 나갔던 물건들이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탁자며 상자,걸상…보고 또 보고서야 그녀는 10년 동안이나 고락을 함께했던,방 한 가운데의 탁자 곁에 앉아 있는 허삼관을 바라보게 되었다. — p.111.
“일락이가 방 철장의 아들 머리를 박살냈을 때 피를 팔러 갔었지. 그 임 뚱땡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었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조차 흔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더우면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식구들이 57일간 죽을 마신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나.” —p.167
○ 출판사 서평
중국 ‘제3세대 소설가’ 여화 (余華)의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는 ‘살아간다는 것’ (活着) 이후 4년 만에 발표된 여화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출간 직후부터 중국 독서계를 뒤흔들며 여화를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 목록에 올려놓은 문제작으로 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에 소개돼 격찬을 받은 바 있다.
이 소설은 특별히 잘나지도, 그렇다고 선량하지도 않은 허삼관이라는 한 가난한 노동자가 삶의 기본 양식 (樣式)과 양식(良識)을 지키고 양식 (糧食)을 구하기 위해 아홉 차례에 걸쳐 피를 파는 사연을 기둥 줄거리로 한다.
작가는 서사 진행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교차 반복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며 이 비극적인 여로 (旅路)의 흐름을 원만하게 한다.
국공합작과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현대사의 거센 물살을 배음 (背音)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 건 매혈 여로를 걷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희비극이 교차하는 구조적 아이러니로 드러내면서 한층 정교하고 심화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 독자의 평 1
희극을 안고 시작하는 <허삼관 매혈기>는 허삼관이라는 ‘성안의 생사(生絲) 공장에서 누에고치 대 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_13) 주인공이 피를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삶을 들려준다. 피를 팔아 이야기를 짓는데, 그게 왜 재미있는가 하면 그게 단순히 피를 파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곳에서는 중국 사회, 그리고 중국인들의 특징이 깊게 베어있어 한편의, 긴 단편극을 보는 것 같아 눈 돌릴 틈이 없겠는거라.
류진운의 <닭털 같은 나날>은 마치, 도시 사람들을 포장(이야기를 꾸며)을 보태 그들의 행태를 풍자했다면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희극(웃음을 주조로 하여 인간과 사회의 문제점을 경쾌하고 흥미 있게 다룬 연극이나 극 형식) 그 자체였다. 그런데 책에 감정을 쏟아내 읽으려 하면, 껄껄껄 하고 웃다가도 허, 하고 깊게 숨을 셔야 하겠는거라, 이 또한 단순히 소설로 치부할 이야기가 아니니까!
“80년대 말 개혁개방의 급물살을 타고 마약정맥주사와 동성애 문화가 밀려들어오면서 중국 정부는 에이즈 예방을 위해 수혈 관련 제품의 수입 금지를 단행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내에서는 채혈을 통해 돈벌이를 하는 혈액은행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당시 ‘혈장(血漿)경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채혈은 중국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주 채혈 대상은 낙후된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월 소득 100위안 미만의 빈농들로 ‘매혈 대군’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매회 40위안~50위안의 대가를 받고 목숨을 건 매혈을 이어갔다.
수 십 년이 흘렀지만 허구 같은 현실은 현대사회에서도 진행 중이다. 하루에도 몇 건씩 혈액 매매 광고가 인터넷에 게재될 정도로 생계를 위한 매혈 여로를 걷고 있는 ‘현대판 허삼관’은 여전히 존재한다.” _ 아주경제 취재현장 – 현대판 ‘허삼관’이 말해주는 중국사회의 명과 암
<허삼관 매혈기>가 단순히 희극으로 끝이 난다면, 이리도 많은 사람들의 글 속에 담길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중국의 뼈아픈 문화를 다시 보게 됐다. 덤덤하게 그러나 여실히.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을 허삼관에 비추어 속살을 보게 되니, 대단하다 싶었다. 물론, 부정적으로.
어떤 이를 믿고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참혹한지 이제서야 알았다, 그 것이 전국민을 움직이는 힘이라면 더더욱.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고, 마오쩌둥은 공산주의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 듯하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허삼관 매혈기> 145페이지부터 시작하는데 정말 놀랍다. ‘앞으로는 자기 소유의 논밭을 가질 수 없는 거라구. 전부 국가에 귀속되는 거지. 즉 국가로부터 논밭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거라 이거야’(p.145)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앞으로는 어느 집이든 밥을 할 수 없다는 거야. 전부 식당 가서 밥을 먹어야 한다 더군.’(p.146)을 시작으로 마오쩌둥의 유토피아적 환상은 고꾸라져 땅으로 처박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식당은 이리저리 문을 닫기 시작하고, 쌀 값이나 밀가루 값은 천정부지로 값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식구들이 57일간 죽을 마신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나.’ (p.167) 이와 같은 참사는 대자보를 시작으로 ‘비판대회’가 열리면서 절정으로 치닫다. ‘그들이 비판대회장에서 내 머리를 잘랐을 때 사람들이 웃는 소리를 들었어요. 내 머리카락이 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죠. 그랬더니 바로 뺨을 후려치는 거예요.’(p.215)
‘오늘, 우리 집에서도 비판투쟁대회를 열려고 한다. 누굴 비판하느냐? 바로 허옥란을 비판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저 사람을 허옥란이라고 불러야 한다. 엄마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이 말이다. 왜냐하면 이건 비판대회니까. 비판투쟁대회가 끝나야 다시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거다’(p.224)
가난이, 어디든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면 아마 우리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허삼관을 통해 우리네 아버지를 본다. 한껏 과장된 허옥란을 보며, 엄마들도 더불어 그려진다. ‘피를 팔아’ 만든 목돈으로 돼지간볶음과 뜨끈하게 데운 황주 두어 잔으로 피를 달래고, 그 ‘피를 팔아’ 만든 35원으로 다양한 거사를 해치우는 ‘허삼관’. 그는 ‘허이, 참 답답하다’ 할 참이면, ‘아이, 된 사람이구먼’ 하고 내뱉게 만드는, 어수룩해 보여도 온정 많고 진국인 게 어쩌면 ‘우리네 옛 선조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피를 팔아 거사를 치르는 일들이 비단, 최하서민층의 일일 뿐일까.
땀과 혈을 팔아 돈을 내는 현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찌됐던, 우리는 자본주의의 노예니까. 여전히.
‘그걸 가리켜서 좆털이 눈썹보다 나가기는 늦게 나지만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구’(p.324)
○ 독자의 평 2
“돼지간볶음과 황주주세요. 황주는 데워서요…”
이것은 허삼관이 피를 팔고나서 매번 식당에 들러 하는 음식주문 내용이다. 피를 팔고나면 몸의 기가 빠져나가서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두통과 한기가 올 때도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허삼관은 가난한 서민이다. 그러던 어느날 피를 팔면 한 순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땀을 흘려서 버는 돈으로는 근근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일을 살기에도 벅차지만, 피를 파는 돈으로는 집도 살 수 있을만큼 큰 몫돈이 된다. 그래서 허삼관은 처음으로 피를 판 돈으로 결혼을 하기로 한다.
허옥란, 그녀는 허삼관을 만나 일락,이락, 삼락이란 이름을 지은 세 명의 아들을 낳는다. 가난하지만 오손도손 행복했던 그들이었는데, 일락이가 허삼관의 아들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된다. 허옥란이 결혼 전 사귀었던 하소용이란 사람의 아이인 것이다. 그런 일락이가 동네 아이와 싸움을 벌려 그 아이의 치료비를 물게 된다. 자신의 아이도 아닌 아들을 위해 치료비를 되기는 싫은 허삼관은 친부인 하소용에게 일락이를 보내지만 그는 일락을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책은 중국의 문화혁명기를 전후한 시대에 제목처럼 피를 팔아 삶을 살아간 허삼관이란 가난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 도입부에서의 이 책은 지루했다. 허옥란과 허삼관이 자신의 아들이 아닌 일락으로 끊임없이 부부싸움을 하는 크게 매력적이지않은 즉 자극적인 붉은 색의 매운 음식이 아닌 멀건 음식의 싱거움의 사건들이 평행선에 줄지어 서서 걸어가는 그런 밍숭함이어서 책장을 넘기는 일이 쉽지않았다. 너무나 자극적인 사건 전개에만 길들어져 버린 탓인지 이 책은 어떤 기후변화도 없는 잔잔한 강가를 거닐고 있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그랬다. 그런 밍숭함과 잔잔함이 지루함으로 나를 옥죄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삐져나오는 웃음을 짓고, 따스해지는 뭉클함에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적셔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그렇게 싫다고 투정부리게 만들었던 그 밍숭함과 잔잔함이 감동이 되어 다시 한번 다른 느낌으로 나를 옥죄어오리라고는 말이다.
흉년으로 매일의 끼니를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은 허삼관의 생일이었다.
그날도 저녁으로 옥수수죽을 먹고난 뒤였지만 여전히 허기짐을 떨쳐낼 수 없었던 그 밤, 허삼관은 상상요리를 가족들에게 선사하기 시작한다. 막내 삼락이 부터 요리 주문을 받는다.
튀긴 돼지고기 요리인 홍사오러우를 주문하는 삼락이, 이 요리는 오로지 삼락이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나머지 식구들은 자신들의 음식이 나올 때까지는 침을 삼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허삼관은 소리친다..”안돼, 이건 삼락이 요리란 말야. 삼락이만 먹어야 해..자 이락이 넌 무슨 요리 먹을래?” 이락이 역시 홍사오러우를 주문한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돼지를 튀기고 그렇게 또 다시 입으로 요리를 하여 이락에게 상상요리를 내미는 허삼관. 나는 이 장면에서 어찌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던지 웃음이 절로 베어나왔다. 일락이 역시 홍사오러우를 주문한다. 그리고 아내 허옥란을 위해 붕어찜을 요리한다. 아이들 침을 삼키는 소리에 허삼관은 이것은 엄마를 위한 요리이며 너희들은 고기 많이 먹었으니 침 삼키지말고 자라고 엄포를 놓는다. 마지막으로 허삼관은 자신을 위한 요리를 시작한다. 돼지간볶음….여기저기 침이 넘어가는 소리들로 그 어둔 밤이 시끄럽다. 결국 허삼관은 “좋아, 모두들 내 음식을 훔쳐먹고 있군. 그러나 오늘은 내 생일이니 인심 쓴다..모두들 돼지간볶음을 맛나게 먹자..”
나는 바로 이 상상요리를 하는 장면에서 이 책이 품어내는 따스함, 그 인간미에 뭉클한 감동의 바다에 빠져들고 말았다. 저자가 끝까지 놓지않고 있던 그 메세지를 이 장면을 통해 비로소 가슴으로 눈을 뜨게된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살아내어야 했던 그 지난한 가난의 세월을 모른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내었던 전쟁이 남겼던 가난의 모짐 또한 모른다. 그들이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견뎌내야했던 그 역경의 세월들엔 그러나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소중한 가족이 있었다. 가난했지만 그래서 주인공 허삼관은 자신의 피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했지만 잃고싶지않았던 양심이 있었고, 지켜내고 싶었던 가족이 있었다.
허삼관은 몇 번의 사건들로 인해 피를 팔아야 했다. 처음은 자신의 결혼 자금으로였고, 다음은 자신의 아들이 아닌 일락이가 친 사고때문에 잃었던 살림을 다시 구해와야 했기 때문이고, 아이들이 커서 농촌 일손지원으로 가게 되었을 때는 아이들이 다시 도시로 배속되어오길 바라는 맘에 그 담당자에게 잘 보이기위해 음식 대접을 한다고 피를 팔았으며, 가난때문에 옥수수죽으로만 연명해야하는 가족이 안스러워 국수를 먹이려고 또 피를 팔았으며,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 닥쳐와 또 아들이 입원한 상하이까지 매혈여행을 하면서 가기도 했다. 허삼관은 그렇게 매번 피를 팔 수 밖에 없는 시대의 가난 속에서도 꿋꿋이 가족을 지켜내며 살아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안스럽고 또한 감동적이며 고단해보이던지 우리내 아버지를 보는 듯 하여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진다.
처음엔 이 책이 전원일기처럼 뚜렷한 흥미로운 사건이 없는 매일의 단조로운 일상같은 느낌의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중반부부터 마지막 장을 손에서 놓아야 할 때가 되었을 때는 이 책만큼 소중함의 여운을 안겨주는 글을 만난 것은 오랜만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엔 내가 알지못한 중국의 문화혁명기의 전후시대가 배경이다. 그래서 처음엔 그다지 와닿지않았기에 더 지루함을 느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그들이 살아낸 시대의 폭로를 그 고단함을 피를 팔아서 가족을 지켜내고 있는 허삼관을 통해 통렬하지만 조용히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뭉클함으로 가득찬 책이다..눈물짓게 하지만 그것은 아파서라기보다 그 아픔을 승화해내고있는 허삼관의 삶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라서 였다. 남의 자식을 뱃 속에 담고 결혼한 아내라고 겉으로는 구박하지만 그런 아내가 자아비판 대상이 되어 거리에서 팻말을 걸고 있어야하고 가족 앞에서조차 비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왔을 때 그녀를 아껴주었던 사람 또한 허삼관이었다. 자기 아들 아니라고 일락이에겐 자신의 피 팔아 받은 돈을 쓰기싫다고 말했던 그였지만, 가출하여 돌아온 일락에게 국수를 사 준 사람 또한 허삼관이었다. 피를 한 번 팔면 적어도 삼개월이 지나야 다시 팔 수 있다고 했지만 죽음을 맞닥뜨리고 있는 일락을 위해 삼 사일만에 다시 피를 팔아 쓰러지기까지 한 사람 또한 허삼관이었다.
시대의 아픔을 말하는 책은 많다. 이 책 역시 그 아픈 시대를 살아간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아픔을 투정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켜내고 있는 우리내 이웃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있는 글이었다.
겉으론 투박하고 무뚝무뚝하지만 속내는 사랑으로 펄펄 끓고 있는 그런 우리내 아버지말이다.
너무나 따스한 책이라서 독자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두고두고 긴 여운이 있는 그 따스함에 겨울의 추위조차 위세를 떨칠 수 없는 그런 책이기에 꼭, 독자들이 읽어보길 자꾸만 말하게 되는 책이다. 오래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