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현대 사회의 성ㆍ사랑ㆍ에로티시즘 : 친밀성의 구조 변동
앤서니 기든스 / 새물결 / 2001.6.30
이 책의 미덕은 얼핏 한줄기 유행을 휘몰아치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는 섹슈얼리티 문제를 땅으로 끌어내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로 삼는다는 데 있다. 섹슈얼리티를 삶의 역사와 현재의 지형도 속에 자리매김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구체적 성찰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열어준다.

○ 목차
1. 일상적 실험, 관계, 섹슈얼리티
2. 푸코와 섹슈얼리티
3. 낭만적 사랑, 그리고 다른 애착들
4. 사랑, 헌신 그리고 순수한 관계
5. 사랑, 섹스 그리고 다른 중독들
6. 공의존의 사회학적 의미
7. 인격적 교란, 성 트러블
8. 순수한 관계의 모순들
9. 섹슈얼리티, 억압, 문명
10. 민주주의로서의 친밀성
○ 저자소개 : 앤서니 기든스 (Anthony Giddens, Baron Giddens)
앤서니 기든스 (Anthony Giddens, Baron Giddens)는 1938년 1월 18일, 영국 런던 에드먼턴에서 출생했다.

현대 사회학계의 세계적인 석학인 그는 사회 이론과 계층론 분야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다.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유럽 지성의 쌍벽을 이루며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릴 만큼 대중적 지지와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 거장이다. 특히 사회 이론 분야에서 유럽의 지적 전통과 현대적 흐름을 반영한 ‘사회 구조화 이론’으로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사회주의의 경직성과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극복하는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사회 발전 모델을 주창하였다. 이 ‘제3의 길’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등 유럽을 이끄는 중도좌파 정치가들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기든스는 고전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검토하는 작업부터 현대성에 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사회 이론가로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사회학자가 사회학 입문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기든스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이 책을 계속 보완하며 제8판에 이르렀다. 그의 저작은 전 세계 29개 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데, 기든스 자신이 폴리티 (Polity)라는 학술 전문 출판사를 공동 설립해서 매년 80여 권의 학술 서적을 간행하는 출판인이기도 하다.
영국 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1959), 런던정치경제대학교 (LSE)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6). 영국 레스터대학교 사회학 강사 (1961 ~ 1970), 케임브리지대학교 강사와 교수 (1970 ~ 1997)를 거쳐 런던정치경제 대학교 학장 (1997 ~ 2003)을 역임했다. 현재 런던정치경제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자본주의와 현대 사회 이론』(1971), 『선진 사회의 계급 구조』(1973), 『사회학 방법의 새로운 규칙』(1976), 『사적 유물론 비판』(1981), 『민족 국가와 폭력』(1985), 『근대성의 결과』 (1990), 『근대성과 자아 정체성』(1991), 『친밀성의 변동: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1992),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1994), 『사회학의 변론』(1996), 『제3의 길: 사회 민주주의 쇄신』(1998), 『노동의 미래』 (2002)가 있다.
– 역자: 배은경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여성학협동과정 겸무교수로 일하고 있다. 인간 재생산과 돌봄 사회, 젠더 정치와 여성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막힌 사회와 그 비상구들』 (공저, 2019), 『경계를 가로질러 가족만들기』 (공저, 2017), 『현대 한국의 인간 재생산: 여성, 모성, 가족계획사업』(2012), 역서로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공역, 1999),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친밀성의 구조변동』(공역, [1996]2001) 등이 있다.
– 역자 : 황정미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 다문화주의의 성찰과 전망》 (공저, 2014), 《국경을 넘는 아시아 여성들》(공저, 2009)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현대사회의 성 / 사랑 / 에로티시즘》(공역, 2001)가 있다.
○ 책 속으로
옮긴이들이 보기에 섹슈얼리티는 결코 별개의 영토를 갖고 있는 미개척지가 아니다. 성은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재구성되어 온 인간관계와 사회적 제도의 장 (場) 속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으로부터 섹슈얼리티만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성에 대한 관심이 소중한 까닭은 성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생활의 인간관계 속에 스스로를 위치짓는 중요한 기준점이며, 그것을 통해 삶의 모든 면을 다시 성찰하는 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립되고 신비화된 성의 세계에 함몰되어서는 안되며, 연애·사랑·결혼·가족·외로움 · 증오 · 수치심 등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잡은
제도들과 인간적인 감정들이 뒤얽혀 있는 관계망으로서 섹슈얼리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나아가 우리가 (사회)구조‘ 라고 불러온 것들, 즉 생산과 소비와 지배가 조직되는 (공적) 영역의 변화 속에 그러한 관계망을 정당하게 위치지울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억압의 기제와 해방의 잠재성들을 새롭게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 p.13
기든스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내부-준거적 체계 (internally referent system)라는 점에서 전통사회와 구분된다.
이전에는 관습이나 전통, 아니면 자연의 명령을 따라서 이루어졌던 인간 활동의 많은 부분들이 점차 사회 체계의 내적 논리 속으로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재생산 (자녀의 임신과출산)이 자연의 섭리이자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었던 현대 이전 사회에서는 섹슈얼리티 역시 자연으로부터 이미 결정되어 주어지는것이었으나, 재생산 없는 섹슈얼리티 (피임)와 섹슈얼리티 없는 재생산 (시험관 아기 등의 테크놀러지)이 모두 가능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성이 더 이상 단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문제로 변해가고 있다.
‘조형적 섹슈얼리티 (plastic sexuality)‘는 기든스가 이러한 상황을 조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한편 인간관계 역시 더이상 관습이나 전통에 따라 유지되지않고, 각각의 개인이 그 관계에 부여하는 의미와 관계의 내재적 속성에 따라 그 형태와 존속 여부가 결정되게 된다.
한번 결혼했으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식의 전통적 결혼관계가 관계 ‘외적인 관습과 전통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결혼생활을 통해 줄기차게 배우자의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사랑이 없다면 결혼관계를 미련없이 깨어버린다거나 혹은 사랑하면 되었지 결혼이라는 형식이 왜 필요하냐는 식의 인간 관계는 그 관계에 ‘내적인‘ 속성에 대한 당사자들의 판단에 따라 지속 여부가 좌우되는 것이다.
혈연에 의해 의무처럼 부과되던 친족관계가 점차 엷어지고 친밀성과 애정에 기초한 관계가 보다 중시되는 것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기든스는 이치럼 관계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관계 그 자체의 내재적 속성에 따라 유지 · 변화되는 관계를 순수한 관계 (pure relationship)‘ 라고 이름붙이고 있다. — p.15
섹슈얼리티는 재생산에서 벗어남으로써 성의 전진적 분화 (progressive differentiation)의 일부가 되었다. 재생산 기술이 보다 정교화됨으로써 그러한 분화는 오늘날 완결되었다. 임신은 인공적으로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공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며, 섹슈얼리티는 마침내 완전히 자율적인 것이 되었다. 재생산은 성행위가 없어도 가능하다. 이것이야 말로 섹슈얼리티를 위한 최후의 ‘해방’이며, 따라서 섹슈얼리티는 개인 상호간 교섭의 성질 (quality)이 될 수 있게 되었다.— p62.
서구사회에서는 성과 사랑이 대중적 관심사에 머무르지 않고 아카데미 담론에서도 일찍부터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어왔다. 프로이트, 라이히, 마르쿠제 등 고전적인 논의로부터 푸코를 거쳐 루만, 기든스, 울리히 벡 등의 사회학자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폭은 더욱 더 넓어지고 또 두터워졌다.— 이 책을 펴내면서 중에서
그러나 실제로는 낭만적 사랑은 권력면에서 철저히 비대칭적이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여성들의 꿈은 너무나 자주 완강한 가정적 종속으로 이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합류적 사랑은 감정적인 기부 앤 테이크 (give and take: 말하자면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 만큼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도 너를 사랑해준다.’같은 생각-옮긴이)에서 평등을 선취하는데, 사랑의 유대 (love tie)가 순수한 관계의 원형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런 사랑은 친밀성이 발전하는 만큼, 그리고 파트너 각자가 상대에게 자기 관심과 욕구를 드러내고 서로에게 민감해질 준비가되어있느 정도 만큼 그만큼씩만 발전하다.— p.109
○ 독자의 평 1
여성의 성이 사회적으로 억제되어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이전에 배웠던 ‘여성과 예술’ 이라는 페미니즘 미술사 강의가 생각났다. 대부분의 신화적 소재로 그려진 그림들은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탐미하기 위해 신화라는 서사를 덧입혀 그려진 것이며, 또 그 안에서도 인물의 자세, 놓인 물건들의 상징성을 통해 미루어볼 때 알 수 있는 여성에게 덧씌워진 이미지, 팜므파탈, 행복한 어머니 상 등이 있었다. 예술에서 여성의 신체가 다루어지는 방식들을 떠올려봤을 때 책의 내용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4장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여성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위 ‘취집’으로 여기는 과거의 여성들에 대해 설명하고 헬렌과 웬디의 사례가 나온다. 놀랍게도 이 시대의 현 사회에서도 본인의 자아성취를 위한 직업 선택보다는 취집을 선택하려는 여성들이 있다. 물론 가정의 일이 아직도 여성의 것으로만 한정되어있고 여성의 사회적으로 진출하기에 아직 많이 부족한 사회 제도들을 비추어봤을 때 사회 풍토상 여성을 직업 외 가정에만 한정시켜 생각하게 되는 것도 그렇게 무리 있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정에 속박된 여성에 대한 내용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독립적으로 직업을 갖는 것이 여성성을 위협 받는 일이다, 라는 말은 어이없게도 현재에 와서도 아직도 통용되는 것이다. 예전에 수험생시절 학교에서 논술을 준비했을 때 이화여자대학교 기출문제로 ‘여성이 여기자로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여성성을 위협받는 일이라 그 여성의 어머니는 반대하고 있고 딸이 직업을 포기하고 시집을 가길 원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그 방안은 무엇이냐’에 대한 내용이 나온 적이 있었다. 여성의 사회진출 문제는 아직도 부족한 사회 제도로 인해 현 사회의 이슈이고 이 사회에서 여성이라면 한번 쯤 깊게 고민해 보았을 문제여서 더 깊게 다가왔던 주제였다.
6장에서는 ‘유독한 부모’로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 겪게 될 일종의 트라우마를 심어주는 부모들의 행동에 대해 나왔었는데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떠올랐었다. 아이들에게는 유독한 부모도 있지만 유독한 선생님도 있을 수 있는데 내가 10살 때 겪었던 안좋았던 기억이 지금에서도 트라우마로 남아 내가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적 측면으로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많이 느껴왔기 때문에 더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또 아이들 일기 검사를 하다가 아이들 일기에 부모들이 간섭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부모가 아이에게 가하려는 조작적인 행동들과 간섭을 보면서 6장의 많은 내용들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공의존’과 관련된 개념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7장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에 대한 설명이 나왔는데 프로이트 이론은 깊게 수용하기보다 그냥 현재에 미친 영향력을 인정해주면서 그러려니 넘어갔다.
8장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왔는데 동성애를 개인의 성적 취향으로 인정해주고 차별하지 말아야된다는 건 동의하지만 지나치게 동성애를 허용하려고만 할 시에 자칫하면동성애를 권장하는 듯한 사회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다양한, 너무 우리가 보수적이고 얽매여 있어서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어느 정도는 허용해 주어야 된다는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지만 나는 그것에 반대한다. 나는 확실히 그런 행동들이 권장할 만한 행동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육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어느 정도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당사자이고 그것 때문에 많은 피해와 차별을 받는 것은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겠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풀어주면 장려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아직 성 정체성이 모호한 사춘기 아이들에게 큰 문제를 만들어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주의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10장에서는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관계에서의 형평성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만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성차의 속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남녀간의 평등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면 이전에 존재했던 남성성과 여성성이 양성적 모델로 수렴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 말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여성적이다, 남성적이다라는 말들은 (물론 여성과 남성은 확실히 많은 차이가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을 사회적으로 규정하여 개인을 그 틀에 맞추려는 폭력적인 여지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회에서는 남녀간의 평등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려면 여성성이다 남성성이다라는 말을 더 적게 사용해야 될 것이다. 무슨 그림에 대한 설명을 보더라도 다양한 색채와 푸근한 감성으로 작가의 ‘여성적’인 세심함이 돋보인다 라는 등 우리 사회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제약이 정말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책을 읽으면서도 괜히 책 제목이 신경 쓰이고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직접적이라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미 사회화가 되어버릴 대로 되어버린 나로서는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아직도 체면 치레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면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구나 하고 느껴졌던 책이었다.
○ 독자의 평 2
1.
남녀 간의 사랑과 애정, 즉 에로티시즘처럼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여 유난히 관심이 넘치는 대화주제도 드물었다. 정신적 사랑의 영원불멸함에서부터 육체적 성애에 대한 이야기까지 인류사회에서 흥미를 이끄는 이야기 주제로 에로티시즘만한 것이 없다. 왜 사랑과 에로티시즘의 문제는 이토록 특별한 관심 대상이 되었을까?
우선, 에로티시즘은 남녀 (혹은 동성) 둘 사이의 친밀성과 상호의존관계를 강화시키며 외부에 대한 배타성을 강조하는 독특한 관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인류세대를 끊임 없이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에로티시즘에 사회적인 의미를 지속적으로 부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결혼과 가족의 형성, 출산 등 다양한 인간의 일생의 특정한 과정과 경로에 의미가 부여되고, 그 의미를 통해 인간들의 삶 자체와 삶에 대한 태도가 규정되면서 사랑의 의미체계가 강화되고 확장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에로티시즘을 사석에서 흥미있는 주제로 즐겨 이야기했으나, 공석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이와 더불어 공사의 영역을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사회학의 딱딱한 학문적 분위기도 에로티시즘과 같은 내밀한 문제를 연구주제로 삼는 것을 금기시하였다.
앤소니 기든스는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 – 친밀성의 구조변동’을 통해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문제시하여, 공적이고 거시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민주화와 대비되어 친밀한 일상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적인 소통과정의 민주화 과정을 관심있게 살피고 있다. 기든스는 사적 영역에서의 친밀한 관계와 사회적 관계에서 비슷한 점을 찾는다. 즉, 공적이고 사회적인 수준에서 제시되는 민주주의와 사적이고 작은 수준에서 제시되는 에로티시즘은 개인이 각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든스는 공적인 영역에서 마찬가지로 성과 애정이 개입된 친밀한 관계에서 평등한 관계와 자율성을 서로 인정해야 하며, 친밀한 영역에서 상호 관계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통해서만 자아의 미래를 성찰적으로 기획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2.
「기든스」는 낭만, 순수, 진실, 열정 등 사랑에 필요한 덕목으로 생각되어왔던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의 관계 양식을 재해석하려 시도한다. 특히 현대 이전의 ‘에로티시즘’적 사랑이라는 관념이 사회적 재생산의 필요에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현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을 진지하게 밟고 있다. 기존에는 ‘에로티시즘’과 ‘섹슈얼리티’가 사회적 재생산의 목표에 종속되어 있다고 여겼다. 즉, 전통적으로 새로 남편과 아내가 된 남성과 여성은 진실한 사랑이란 한번 발견되면 영원해야 한다는 관념에 억눌리면서 상호 간의 친밀한 감정이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지속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이러한 관념을 통해 사회의 안정과 재생산을 담당하는 성별 분업이 남편의 임노동과 아내의 가사노동을 통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랑의 형태는 과거에는 사회적 재생산에 종속되었으나,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전을 통해 피임과 낙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동성애, 양성애 등 기존에는 억눌려왔거나 개념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사랑의 관계가 사회의 전면에 등장되면서 개념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랑이 다른 여러 조건에 구속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로 순수하게 추구해야 할 목표로 설정된 것이다. ‘기든스’는 이처럼 생물학적 재생산의 필요에서 해방된 탈중심화된 섹슈얼리티를 ‘조형적 섹슈얼리티’로 정의한다. ‘조형적 섹슈얼리티’가 현대사회의 새로운 친밀성의 양자관계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에 대한 상당히 익숙한 개념 중 하나가 ‘낭만적 사랑’이다. 일반적으로 ‘낭만적 사랑’이란 개념은 아직 실제적인 사랑을 접해보지 못한 10대 소녀들의 판타지에 가까우며, 현실세계에서 접할 수 있는 실제적인 친밀성의 형태라기보다는 이상화된 비현실적 세계에 존재하는 관계양식이라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세인들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개념을 현실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미흡하고 어리숙한 의사소통양식에 대한 실망을 중화시키기 위한 조작된 이미지라 단정했다. 「기든스」는 이러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부정적으로 널리 퍼진 관념에 대해 새로운 관점의 해석을 시도하는데, 기존에 공유된 ‘낭만적 사랑’에 대한 개념이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주체로 서서 능동적으로 사랑을 생산하고, 독립적인 행위를 시작하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 해석된 ‘낭만적 사랑’은 새로운 관계양식을 촉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통해 ‘상호적인 서사적 전기’를 써 가는 기회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기든스」에 의하면 ‘낭만적 사랑’이 친밀한 상호 관계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순수성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에로티시즘’이 작용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품어왔던 이상적 대상의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투영한다. 따라서 상대방이 자신의 내부에서 지금까지 형성되어 왔던 이상적 이미지와 합치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계속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든스」가 투사적 동일시 (projective identification)라고 정의한 이러한 관계로 인해 양자 간의 이상과 실제가 서로 불일치하면서 관계가 분열되기 시작한다. 즉, 서로 투사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해 일체감을 창조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이 친밀성에 의존해서 지속되는 관계의 발전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타자에게 열어 보이는 과정에서 상호 협상과 이를 통한 인식과 습관 · 태도의 상호 변화과정은 필수적이다. 합류적 사랑 (confluent love), 즉, 두 사람의 정체성이 과거로부터 서로 다른 기반을 통해 형성되어 왔음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비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유대를 공유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협상해가는 사랑의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순수하고 합류적인 사랑의 양식이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하는데 필요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사랑을 통한 관계가 개인의 자기정체성이나 인격적 자율성을 증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아가 스스로 자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양자의 친근한 관계가 개인의 자율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의 발전 가능성의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도록 하며, 그러한 긍정적인 친근한 관계의 모습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친근한 관계가 개인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경우는 무척 많이 존재한다. 특히, 마약에 중독되는 것처럼 사랑과 섹스 자체에 중독되어 스스로에게 질곡을 가하는 경우, 타인과의 관계 자체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자신의 발전 보다 타인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 더 지나친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경우 등 스스로의 자율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예인 것이다.
개인의 미래가 온전히 자신을 통해 개척되고, 스스로 미래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즉 미래의 식민화 (colonising the future)를 위한 자기-성찰적 (self-reflexive) 모색을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를 감정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단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과거 반성이 아닌, 자신의 과거를 감정적으로 뒤돌아보고 재구성하여 보듬어 안을 수 있어야 미래에 대한 성찰적 자기 기획도 가능하다. 이렇게 성찰적 자기 기획을 위한 대안적 방법론 중 하나로 「기든스」는 여성들의 세계에서 배타적으로 누리던 감성적 이야기 방식에 남성들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리와 이성, 정복과 지배, 감성적 소통관계의 배제 등 남성적 서사구조가 횡행했던 인류역사를 상처와 질곡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감성적인 자기 성찰에 대한 이야기’로 들고 있는 것이다. 감정적 서사는 외부에서 강제한 논리와 이야기에 스스로를 복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자기 이야기에 대한 내적 근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스스로 모색하는 가운데 자신의 미래를 식민화하고, 미래에 대한 기획을 통해 개인적인 발전이라는 원래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3.
그 동안 앤소니 기든스의 학문적 관심 분야는 사회적 불평등, 복지국가 및 자본주의의 미래, 세계화, 생태적 위기 등 국가 혹은 세계적 규모의 사회 문제들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화의 관계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할 영역은 단지 거시적 영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발전된 성찰성으로 충만한 전 지구적 세계에서는 모든 사회적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당연시되며, 따라서 그러한 문제 제기는 직접적으로 정치적 비판을 야기’ (U. Beck, A. Giddens, Lash, Reflexive Modernization, 1996)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난 근대화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성찰적 근대화의 과정은 사적영역에서의 친밀한 일상세계에서의 상호 소통 관계를 성찰하는데도 필요하다. 개인의 자기 발전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친밀한 관계에서 진행되는 개인적 관계의 모색과 발전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친밀성은 양자 간 의무를 지속적으로 강제하는 억압적인 요청일 수도 있지만, 상호 평등하다는 전제 하에서 지속적으로 협상하면서 관계의 모색과 발전을 모색하는 인격적 관계에서의 협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기든스」는 이러한 관계가 공적 영역에서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인식한다.
「기든스」는 이러한 성찰을 통해 ‘친밀성의 구조변동’, 즉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의 관계회복이 기존의 거시적 사회질서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동안 현대사회에서 사람들 간의 친밀한 상호 관계를 통해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구조적으로 지속되면서, 이에 대한 정서적 대리만족의 대상으로 상품소비를 통한 욕구충족이 부상하였다. 이러한 과정이 거시적으로 경제성장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제성장의 논리는 현대사회와 사회체제를 지속불가능하도록 하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친밀한 상호 관계의 논리는 끝없는 상품소비를 강요하여 생존을 유지하려는 현대자본주의체제에 맞서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성찰하게 함으로써,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 독자의 평 3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말만큼 이 책을 잘 설명하는 말이 있을까! 뒤집어서 말하면 안에서 새지 않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지 않는다는 말이지 않나. 이 책의 방식대로 이 말을 번역해보자. 이 속담에서 말하는 ‘안’은 곧 기든스 책의 ‘사적 영역’으로 놓을 수 있다. 그리고 ‘바깥’은 ‘공적 영역’으로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는 바가지라는 말은 비민주화 혹은 비합리적 권위, 즉 폭력의 관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새지 않는 바가지라는 말은 민주주화와 합리적 권위의 관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결국 사생활이 민주화되어 있는 사람은 공적인 영역에서도 민주주의의 감수성을 관철시키고 키워나갈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 강조하는 “사생활의 민주화”라는 것은 사적 영역에서 생활하는 우리의 자유 그리고 평등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연인들은 자유와 평등이 관철되는 ‘순수한 관계’를 지향하고자 할 것인데, 이러한 연인들 사이의 파트너십이라는 것은 지속적인 정서적 합의 및 협상을 거쳐야 하는 것이며, 이전과 달리 기존의 남성 권력을 통해 이루어지던 억압적 특성을 벗어나는 것일 게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서 순수한 관계의 사례인 ‘합류적 사랑’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
그런데 위 속담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즉 중심이 되는 방향이 바깥이 아니라 안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바깥에서 새는 바가지가 안에서도 샌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도 샌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의 확장이 사회적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처럼, 혹은 가정에서 형성된 지배-피지배라는 위계가 사회적인 위계로 확장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는 바깥에서 안으로 유입되는 영향력에 무게를 싣기보다, 안에서 바깥으로 미치는 영향력에 저자가 무게를 둔다는 말일 텐데, 이는 아마 저자가 자본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 경제, 즉 자유경쟁 시장경제나 권위적 지배체제에서 ‘적응’하던 사람들이 사적 영역에서 탈권위적으로 돌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게다. 결국 저자는 사적 영역에서 형성한 친밀성의 감수성, 즉 자유와 평등의 감수성이 공적영역으로 진출하는 남성과 여성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것이 사적 영역의 민주화를 통한 사회비판 및 변혁으로 이어질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 가운데 ‘성 혁명’이 나름의 입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사적 영역에서 형성한 자유와 평등의 감수성을 통해 ‘합류적 사랑’의 이상이 실현되고, 이러한 감수성이 공적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이 바로 “안에서 새지 않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지 않는다.”는 전치된 속담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런데 이 책은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을 단순히 섹슈얼리티의 영역에 제한하는 것을 넘어서 이러한 감수성이 우리가 사는 생활세계의 다양성을 키워나갈 원동력이라고 보는 점에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처럼 모든 담론이 ‘경제’로 환원된 적이 예전에 있었던가?”하고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의 일상적 삶은 거의 경제로 시작해서 경제로 끝날 정도로 단선적이고 일면적이다. 그러나 기든스는 바로 사적 영역에서 등장하는 친밀성의 감수성을 되살림으로써 우리 삶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고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의미의 생산처로서의 사적 영역, 여기서 형성되는 타인에 대한 관용과 포용, 도착의 쇠퇴는 노동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물화되고 상품화된 성의 영역만을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세계를 위해 희생당했던 모든 삶의 영역을 회복시킬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영역으로서 예술의 영역, 소외되지 않은 종교의 영역, 산업화되지 않은 문화의 영역 그리고 생태 및 환경 문제 등을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새지 않는 바가지를 만들어준 역사적 원동력이 페미니즘에 있다고 조명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확히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페미니즘의 긍정성을 조명하고 있다. 여성이 친밀성의 영역을 맡으면서 형성한 정체성이 남성의 정체성을 위협하기 보다는 오히려 남성의 모호한 정체성에 성찰적 동력을 제공한다는 것 말이다. 즉 페미니즘을 남성을 향한 공격으로 판단하고 수세적 태도를 취하는 뭇 남성들의 편견에 대항하여, 이 책은 페미니즘이 남성 정체성 형성의 조력자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편견을 불식시킬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 아닐까? 더 할 말은 많지만, 이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이 책의 가능성을 손쉽게 평가절하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이쯤에서 독자에게 직접 권해본다. 이 책 한번 읽어보심이…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