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4.3, 미국에 묻다
허호준 / 선인 / 2021.3.29
- 이러한 민중 저항에 미국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폭력적 민중 저항’은 왜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에서 발생했는가?
미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4·3, 그 날들이 다큐멘터리 흑백 필름의 오래된 장면처럼 지나간다. 1947년 3월 1일 관덕정 광장에의 제주도민들의 함성과 총성, 그리고 미군의 모습이 얼핏 지나간다. 상공을 날아다니는 미군연락기, 미함정이 내뿜는 해안의 검은 연기, 낯선 이방인이 산야를 누비며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모습, 그 옆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두려운 눈빛의 제주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경비대의 작전에 동행하고, 초토화 시기 날마다 죽음의 기록들을 보고하던 미군 고문관들의 모습이 스친다. 미국의 군사고문단과 외교사절들이 한국 정부와 군에 제주도 진압을 재촉하는 장면이 보인다. 다시 묻는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책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선거’를 중심으로 4·3의 전개과정에서 자행된 제주도민 학살과 관련해 미국의 개입 수준을 밝히려는 시도이다.
첫째, 미국은 냉전 상황 속에서 4·3을 어떻게 인식했고 대응했는가. 둘째, 미군정은 제주도 5·10 선거의 성공적인 실시를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 셋째, 5·10 선거가 실패한 뒤 미군정, 그리고 정부 수립 뒤 미군사고문단과 주한미사절단 등의 대응강도는 어떠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 목차
책을 펴내며
들어가며
제1장 냉전과 제주도
제주도의 지정학적 가치
트루먼 독트린과 냉전의 형성
‘동양의 지브롤터’와 유엔총회의 ‘군사기지설’ 논란
유엔조위 필리핀 대표가 촉발시킨 논란
봉쇄전략의 구현 무대, 제주도
제2장 해방과 제주도
제주도 주둔 일본군의 항복과 미군의 등장
민족해방운동의 유산과 해방 제주
독립투사 탄압한 친일 경찰의 제주도 부임
미군정, 친일 경찰과 모리배…부패의 결합체
제주도의 인구 변동과 사회적 동요
제3장 5·10선거와 제주도
미군정, “5·10 선거 성공은 핵심 과제”
남한의 선거 결과와 미국의 평가
유엔조위의 제주도 사태 외면
제주도 5·10선거와 미군정의 감시 활동
제주도 선거의 실패와 유엔에서의 ‘제주도 선거’ 발언
제4장 미국의 국면별 개입
제1국면(1947. 3~1948. 4): 미군정의 초기 실책
38발의 총성과 미군정의 책임자 처벌 외면
극우 도지사의 우익 강화와 독재적 행태
박경훈 전 지사 기소를 둘러싼 미군정 내부의 이견
3·1절 발포사건 이후 경찰의 횡포와 반작용
군정장관 딘의 제주도 방문과 도지사 경질 건의 거부
제2국면(1948. 4~1948. 5): 4·3 무장봉기 발발과 미군정의 전략
잇단 고문치사사건과 4·3 무장봉기 발발
하지와 딘의 제주도 작전 명령
딘과 워드의 동시 시찰…국제문제화하는 제주도 사태
‘평화협상’과 미군정의 전략
연대 참모의 폭로 “그들은 ‘무차별 사살 명령’을 내렸다”
“무초와 로버츠, ‘제주도는 전략적 요충지, 진압 필요’”
제3국면(1948. 5~1948. 10): 미군정의 대응과 정부수립
제주도 5·10 선거 이후 미군정의 전면 대응
브라운 대령의 제주도 파견과 무차별 검거
6·23 재선거의 무기연기와 구겨진 미국의 ‘체면’
강경 토벌과 연대장 암살사건의 상관관계
정부 수립 시기 미군정의 진압정책
제4국면(1948. 10~1949. 5): 초토화, 그리고 재선거를 위한 정지작업
여순사건의 여파와 제9연대장의 포고령
학살의 합법화와 미군의 적극 지원
송요찬의 ‘대게릴라전략’과 미군의 관심
‘가혹한 탄압’ 지시와 미함정의 제주도 기항 배경
주한미사절단의 활동과 재선거를 위한 정지작업
이승만의 방문과 5·10 재선거, 주한미사절단의 인식
제5국면(1949. 5~1954. 9): 정부의 마지막 토벌과 미국의 인식
유엔한위의 형식적 제주도 시찰
무초의 제주도 사건 인식과 토벌대의 횡포
한국전쟁 발발과 미대사관 관리들의 시찰과 건의
미군 “미군·미국의 영향력이 드러나선 안 돼”
트루먼과 미의회의 무관심의 이면
제5장 내가 만난 제주도 미군 고문관
사진 한 장의 의미
고문관 Ⅰ(1948. 5~7): “제주도는 합법적 군사 작전지역”
고문관Ⅱ(1948. 7~9): “나의 임무는 반란 진압”
고문관Ⅲ(1948. 9~12): “나는 허수아비”
고문관 기억에 대한 비판적 검토
나오며
미주
참고문헌
4·3과 미국 일지
색인

○ 저자소개 : 허호준
정치학박사, 한겨레신문 기자
『한겨레』 기자. 제주 출생. 1989년 기자가 된 뒤 운명적으로 4·3을 만난 이래, 30여 년 동안 4·3의 진실과 그 의미를 밝히는 데 천착해 왔다. 연구와 취재를 통해 4·3의 진실을 밝히고, 드러내는 데 대한 노력으로 제주4·3평화재단이 주는 제1회 4·3언론상 본상(2022)을 수상했다. 기자이자 연구자로 활동하며 폭넓게 해온 취재의 기록이 이 책의 바탕이 되었다.
지역사, 한국사의 범주를 넘어 4·3과 미국의 관계, 세계사 속에서의 4·3의 의미에 주목하여 제주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리스와 제주, 비극의 역사와 그 후』(2014), 『4·3, 미국에 묻다』(2021) 등 꾸준한 저술 작업을 이어왔다. 이밖에 『현대 사회와 제노사이드』(공동, 2005), 『20세기의 대량 학살과 제노사이드)(공동, 2006)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고, 제주4·3연구소가 펴낸 『무덤에서 살아나온 4·3 수형자들』(2002), 『그늘 속의 4·3』(2009), 『4·3과 여성』(전3권) 등 4·3 생존 희생자들의 육성을 담아낸 여러 구술집 작업에도 참여했다.
〈저서〉
『그리스와 제주-비극의 역사와 그 후』(2014)
『4·3과 여성-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2019), 『4·3과 여성2-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2020), 『빼앗긴 시대 빼앗긴 시절-제주도 민중들의 이야기』(2007) 등 다수의 구술집 작업 참여
〈번역서〉
『20세기의 대량 학살과 제노사이드』(공동, 2006)
『현대사회와 제노사이드』(공동, 2005)

○ 언론소개
- 73년 전 발생한 제주4.3,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
.한겨레신문 허호준 기자 ‘4.3, 미국에 묻다’ 출간 .군정장관 딘 소장‧조병옥 경무청장 ‘무차별 사살 명령’ 신문기사도 발굴
70여년 전 3만명이 넘는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제주4.3에 미국의 직‧간접적인 개입 정황을 쫓기 위한 연구서가 발간됐다.
4.3과 미국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서 ‘4.3, 미국에 묻다’를 쓴 저자는 현직 기자인 한겨레신문 허호준 기자다.
허 기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의 취재와 석‧박사 학위 논문, 각종 사료 분석을 바탕으로 4.3과 미국의 관계를 조명하고 분석하는 데 매진해 왔다.
미국이 왜 4.3에 주목하고 관심을 가졌는지, 미국의 직‧간접적인 개입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는 4.3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중요한 연구과제다.
실제로 1970년대 중반 처음으로 4‧3을 주제로 하버드대 석사학위 논문을 썼던 미국 국무부 관리 출신 존 메릴 (John R. Merrill)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점령 지역에서 제주도에서와 같은 폭력적 민중 저항이 일어난 곳은 없다고 평가한 바 있다.
존 메릴 박사의 이같은 평가는 역으로 “왜 이러한 민중 저항이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에서 일어났으며, 미국은 어떻게 대응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저자는 세계적 냉전이 제주도에까지 영향을 끼쳤고, 이는 미군정과 미군사고문단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이 4‧3의 전개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된 이유로 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직접 사료를 발굴하거나 재해석을 통해 4‧3의 전개과정에서 미국의 개입 수준을 새롭게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해방 직후 패망한 일본군의 제주도 자치기구 결성 운동을 경고하는 문서와 제주도에서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체결된 영문과 일문으로 된 항복문서 등도 발굴,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저자가 발굴해낸 자료 중에는 1948년 5월 5일 제주도에서 군정장관 딘 소장 등이 참석한 제주도 현지 회의에 대한 당시 9연대장 김익렬의 회고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눈길을 끈다.
그의 회고록에서는 이 회의에서 강경 진압이 결정됐다고 하지만, 그 신빙성 여부가 관심을 끌어왔는데 저자는 이 회의와 관련해 당시 제11연대장 작전참모가 군정장관 딘 소장과 조병옥 경무부장이 ‘무차별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이 담긴 신문기사를 발굴해냈다. 당시 이런 명령을 내린 사실은 두 군데 이상의 신문사에서 발견된다.
1949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제주도 사태는 미 해군이 기항하여 호결과를 냈다”고 한 발언의 이면에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간절한 요청이 있었으며,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인 미해군 함정이 3시간 남짓 기항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유엔에서 미국의 제주도 군사기지설에 대한 미‧소 대표의 논란과 제주도 5‧10 선거에 대한 소련 대표의 발언이 담긴 자료, 미국 대통령 트루먼과 미 의회 지도자들이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 사실을 인지했으며, 이에 대해 무관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찾아냈다.
평화협상 이전 무장봉기 초기 경비대가 무장대를 우호적으로 바라보았다는 시각, 평화협상이 이른바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깨진 것이 아니라 미군정의 전략 속에서 추진됐고, 깨졌다는 해석을 시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책에는 또 저자가 4‧3 당시 제주도에 주둔했던 미군 고문관들의 소재를 찾아내 미국에서 직접 인터뷰한 내용도 들어있다. 이들 가운데 초토화 시기 고문관은 “제주도민들에게 유감스럽다”고 하면서도 9연대장 송요찬에게 무기 수와 희생자 수의 불일치를 지적했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허수아비’였다고 주장했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
저자는 “미국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는 미군정의 형태로 직접 개입을, 그 이후에는 군사고문단이나 미사절단 등의 이름으로 직‧간접 개입을 통해 토벌을 조장했다. 미국의 개입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_ 2021-04-06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