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이해
갈라디아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로부터 이방인들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행 13:1-3; 14:25-27). 그 소식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안디옥교회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도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유대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구원을 얻는 데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 믿음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고 곧 유대적 의식들, 특히 할례도 역시 불가결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무리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방인들의 회개 소식에 항의를 하였다(행 15:1). 이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주의자들은 갈라디아를 누비면서 이방인들도 구원의 한 방법으로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사도의 직분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지 않고 인간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며 따라서 바울의 복음은 간접적으로 전수된 것이며 그는 단순히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힘쓰며 만약 조건만 부합하면 자신도 할례를 전한다고 주장함으로 바울의 신뢰성에 도전을 하였다. 가만히 들어온 이 사람들의 소리에 갈라디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자 바울은 기독교적 자유의 교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1. 저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다. 본서에서 기록자는 자신의 이름을 바울이라고 밝히고 있다(갈 1:1). 그러나 튜빙겐 학파와 부르노 바우어, 로만, 피어슨, 나벨 그리고 반 마엔 등이 바울의 저작권을 부인하지만 이 모든 것은 주관적 추론에 근거하여 주장하는 것에 그친다. 이들은 갈2:11-21에 묘사되어 있는 바울의 기독교와 유대주의자의 기독교간의 날카로운 갈등은 사도 바울 당시와 같이 그렇게 일찍 커져 있을 수 없었으며 갈라디아 사람들의 기독교정신은 비길 데 없이 숭고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세비우스 갈라디아서를 바울의 서신 목록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오리겐, 터툴리안, 알렉산더의 클레멘트, 그리고 이레니우스 등은 자신들의 서신에서 인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초대교회의 인물들이 본서를 저자를 바울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서가 저자를 바울임을 자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서신은 매우 인간적이며 전체 내용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한사람’을 보이고 있는데 바로 다소의 바울이다.
1) 내증
① 갈 1:1-3과 5:2에서 본서의 저자가 바울 자신임을 밝히고 있다.
②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성격과 사상이 로마서와 고린도 전후서와 일치하고 있다.
2) 외증
1970년 무라토리(L. A. Muratori)에 의해 발견된 무라토리 단편(Muratorian Fragment), 주후 4세기 초엽에 가이사랴의 주교로 있었던 신학자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주후 1세기경의 영지주의자 마르시온(Marcion), 19세기의 튀빙겐 학파 등이 모두 본서의 저자가 바울임을 인정하고 있다.
2. 연대 및 수신자
1) 연대
저작연대는 수신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먼저 두 견해를 살펴본 후 저작연대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북갈라디아설에 따른 연대
처음의 저작연대는 갈 1:6의 타케오스(quickly)라는 단어에 의해 갈라디아를 바울이 방문한 직후에 씌어졌다는 것인데 이 단어는 갈라디아인들의 변절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므로 옳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직후에 기록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주장은 갈라디아서가 로마서보다 먼저 씌어졌으며 고린도 후서가 기록된 후에 씌어졌다고 보고 제 3차 전도 여행 말기에 고린도에서 보낸 서신으로 보고 있다.
(2) 남갈라디아설에 따른 연대
남갈라디아설도 갈4:13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예루살렘 공회 후에 기록되었다는 견해와 예루살렘 공회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견해로 나뉘게 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저작연대에 관한 결정은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살펴봄으로써 결정지을 수 있다고 본다. 예루살렘 방문에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즉 갈 2:1-10이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 방문이었다는 견해와 갈 2:1-10이 행 11:30에 나오는 방문과 같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전자의 견해는 전통적인 견해로 두 본문의 유사점을 들어 설명하지만 갈2:1에 나오는 ‘다시’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바울이 예루살렘 공회를 방문하기 전에 그곳에 두번 방문한 사실(첫 번째 방문은 행 9:26 이하의 바울이 회심한 직후에 있었고, 두 번째 방문은 행 11:30에서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으로 구제기금을 가지고 갔을 때에 이루어졌다)은 구제기금을 가지고 방문한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갈 2장과 행 15장이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즉 행 15장에 언급된 공회기간에 합의를 보았다는 법령에 관한 것들이 갈라디아서에는 빠져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갈 2:6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더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식사 문제로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사건은 그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한 예루살렘공회 후에 있은 사건이었다기보다는 공회 이전의 사건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반박들로 인하여 갈라디아서 2장과 사도행전 15장이 동일하다는 견해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이 안디옥교회로부터 예루살렘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전하는 자로 파송을 받아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함께 교제할 것을 권면하였다. 그러나 베드로가 교제를 나누던 중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을 피한 일이 있어 책망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안디옥 교회에 대표자들을 급히 보내게 하였다. 그리하여 안디옥교회는 이러한 일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바울 등의 사람들을 보내고 이 결정을 위하여 회의가 소집된 것으로 본다(행 15장). 이와 같은 주장들을 볼 때에 본 서신은 바울이 공회에 참석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쓰여졌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저작 연대는 주후 49년경이라고 보여진다.
2) 수신자
갈 3:1을 보면 본 서신의 수신자들을 갈라디아 사람들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갈라디아인들이 누구인지에 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북갈라디아설과 남갈라디아설로 요약할 수 있다.
(1) 북갈라디아설
갈라디아는 지리적인 위치로 볼 때 로마령인 갈라디아의 북쪽 지역으로 바울이 이 지역에 여러 교회들을 세웠고 갈라디아서는 그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 북갈라디아설은 여러 가지의 증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갈라디아 사람들’이란 말의 통속적 사용을 볼 때에 북갈라디아 지역을 말한다고 한다. 북갈라디아 지역에는 본래 브루기아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후에 고을족이 정복하여 자신들의 호칭으로 자기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명칭으로 삼았다고 본다. 그리고 누가가 사용한 행 13:13, 14과 행 14:6, 그리고 행 16:6의 일반적 용법과 남갈라디아 여러 도읍들에 관한 누가의 설명, 행 16:6과 행 18:23의 의미를 볼 때에 갈라디아란 행정구역이 아니며, 모패트(J. Moffatt)는 누가가 사용한 “통과했다”는 말을 행 18:23에 사용된 같은 단어와 관련지어 볼 때 이 말은 “통과했다”는 의미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통과했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어를 모패트(J. Moffatt)와 같이 이해를 한다면 바울이 북쪽 지역에 몇 개의 교회를 세웠다는 견해를 지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지역이 아니고 두 지역이 언급된 것을 볼 때 갈라디아는 브루기아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갈라디아란 행정구역이라 할 수 없다라고 주장되어 왔다. 제 3차 전도여행 초기에 북쪽 지역을 방문했을 때 세운 교회라고 본다. 그러나 북갈라디아설은 이제 남갈라디아설에 의해 매우 광범위하게 논박되고 있다.
(2) 남갈라디아설
이 남갈라디아설은 19세기 이후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견해이다. ① 사도행전에 그 당시 중요한 논쟁이 있었던 북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을 볼 때에 남갈라디아설을 지지한다. ② 갈라디아서에는 바울이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에 갈라디아 교회들을 처음 방문하였다고 하였는데(갈 4:13), 이는 건강의 회복기에 있는 환자로서 지형이 매우 험악한 북쪽 지역을 말하기보다는 남쪽지역일 가능성이 많음을 보여준다. ③ 바울은 자기 세운 교회들을 언급할 때 교회가 위치해 있는 행정 구역의 명칭들을 사용하였으므로 ‘갈라디아 사람들’이란 그 행정구역에 속해있는 교회의 사람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④ 바나바의 이름이 갈 2장에 세 번이나 기록되었는데 이는 그가 남갈라디아 교회들에 개인적으로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갈라디아설에 대하여는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람세이(Ramsay)경은 세계 제1차 대전 전에 소아시아에서 한 고고학적 연구 결과로 바울 사도가 전혀 북쪽 갈라디아를 방문한 때가 없으며, 그러므로 남부 갈라디아인들에게 갈라디아 편지를 썼으며, 만일 북쪽 갈라디아를 방문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역점은 남쪽 갈라디아라고 했다. 그 실례로 본도인(행 18:2), 알렉산더인(행 18:24), 아시아인(행 20:4) 등이다. 이상과 같이 수신지인 갈라디아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 이론들을 종합해 볼 때에 남갈라디아설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3. 배경과 목적
기록 배경은 그 당시 율법과 할례에 대하여 지나친 열심을 가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 분쟁의 근원을 제공하여 갈라디아에서 기독교적 자유의 교리가 위기에 처하게 된 갈라디아교회들에게 자극을 받은 것이 그 이유라고 본다. 그리고 목적은 바울이 교회 안에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는 반대되는 율법을 통한 정의를 강조함으로써 교회 안에 혼란이 일어난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율법과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재강조하고,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생활로써 그 믿음의 순전함을 입증하려는 권면을 하려고 한 것이었다.
4. 주제와 특징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구원의 방법으로서의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와 은혜에 의한 구원을 뜻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 사도의 가장 큰 염려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유일하고 참된 복음을 붙잡히는 일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음을 분명히 알게 한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모른다. 그 복음의 진수는 “사람이 의롭게 함을 얻는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을 줄 아노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의 대주제는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의 복음을 그 훼방자에 대항하여, 옹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는 로마서의 주제이기도 한다. 그 장편의 서신과 이 단편 서신사이에는 유사점들이 있다. 그런 반면 상이점도 있다. 로마서는 조용하고 장엄하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막론하고 모든 죄인을 위해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완전하고 값없는 구원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는 조용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때로 맹렬한 어조로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그 훼방자들에 대항하여, 옹호하고 있다. 그 훼방자들에 대한 본 서신의 징계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그 수신자들은 훼방자들에게 귀가 솔깃하여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들에 대한 사도의 질책들은 준열한 것이며, 동시에 대조법을 따른 것인데 이것이 바로 본 서신의 특징이다. 아울러 본 서신은 거짓된 교리를 강하게 논박하는 성격을 띠고 있으며, 바울서신들중 고린도후서와 더불어 바울의 자서전적 특징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 신앙에 관한 핵심적 내용이 되는 율법과 복음의 의미와 그 관계를 명쾌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관한 교리와 더불어 신앙의 실천적인 면에 말하고 있는 올바른 기독교 윤리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본서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5. 내용분해
갈라디아서의 핵심어는 은혜와 자유이다. 우리 자신의 선한 행동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값을 치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자유를 가지고 죄를 지을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
1) 이신득의의 설명(1:1-2:21)
① 변질된 신앙에 대한 책망(1:1-10)
② 바울이 전한 복음의 근원(1:11-24)
③ 예루살렘 지도자들에 의한 확증(2:1-10)
④ 베드로의 외식을 책망함(2:11-21)
2) 이신득의의 예증(3:1-4:31)
① 믿음과 율법의 비교(3:1-25)
②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3:26-4:31)
3) 이신득의의 적용(5:1-6:18)
①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5:1-26)
②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따른 책임(6:1-18)

임운규 목사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편집·발행인)
CerIII · IV, Diplom, B.Th, M,A, M.Div, M.Th, D.Th, D.Pt c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