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대한민국의 시인 백석 (白石, 1912 ~ 1996) 시 모음

백석 (白石, 1912년 7월 1일 ~ 1996년 1월 7일)은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문학가이다.
-학력
평안북도 정주 오산보통학교 졸업
평안북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 졸업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 졸업
-경력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조광》 편집위원
조선일보 자매지 《여성》 편집위원
문학신문 편집위원
본명 (本名)은 백기행 (白夔行)이고 아명은 백기연 (白夔衍, 1915년에 백기행 <白夔行>으로 개명)이며 1945년 일본국 패망 및 조선국 광복 후 사실상 백석 (白石)으로 개명 (改名)한 그의 본관은 수원 (水原)이다.
석 (石)이라는 이름은 일본 시문학가 이시카와 다쿠보쿠 (石川啄木)의 시작품을 매우 좋아하여 그 이름의 석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고향 (故鄕)
나는 북관 (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 (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 (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탕약 (湯藥)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六味湯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끊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萬年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손으로 고히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맑아진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구붓하고: 몸이 구부정한
.모래톱: 넓은 모래 벌판, 모래사장
.지중지중: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모습, 의태어
.개지꽃: 나팔꽃
.쇠리쇠리하야: 눈이 부셔, 눈이 시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아서라 세상사’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따디기: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 흙이 풀려 푸석푸석한 저녁 무렵
.누굿하니: 여유있는
.살틀하든: 너무나 다정스러우며 허물없이 위해주고 보살펴 주던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엽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잠풍: 잔잔하게 부는 바람
.달재: 달째, 달강어, 쑥지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진장: 진간장, 오래 묵어서 진하게 된 간장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헛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없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단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삿: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을 붙이었다: 주인집에 세 들었다
.딜옹배기: 아주 작은 자배기
.붇덕불: 짚북더기를 태운 불
.굴기도 하면서: 구르기도 하면서
.나줏손: 저녁 무렵
.바우섶: 바위 옆
.갈매나부: 키가 2m쯤 자라는 낙엽 활엽 교목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긋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서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바람벽: 집안의 안벽
.때글은: 오래도록 땀과 때에 전
.쉬이고: 잠시 머무르게 하고, 쉬게 하고
.앞대: 평안도를 벗어난 남쪽지방. 멀리 해변가
.개포: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이즈막하야: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르지 않은, 이슥한 시간이 되어서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 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가지취: 참취나물
.금덤판: 금을 캐거나 파는 산골의 장소로 간이 식료품 등 잡품을 파는 곳
.섶벌: 울타리 옆에 놓아 치는 꿀벌, 재래종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탸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마가리: 오막살이
.고조곤히: 고요히, 소리없이
*통영2
구마산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 집의 어린 딸은 난이라는 이 같고
난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고당: 고장
.갓갓기도: 가깝기도
.아개미: 아가미
.호루기: 쭈꾸미와 비슷하게 생긴 해산물
.황화장사: 온갖 잡살뱅이 물건을 지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파는 사람
.오구작작: 여러 사람이 뒤섞여 떠드는 수선스런 모양
*여우난골족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 고무, 고무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 고무, 고무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
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
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
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오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 깨돌
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 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
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육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구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홍성홍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룻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어느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굳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멕이고: 활발히 움직이고
.김치가재미: 김치독 묻어두는 곳
.은댕이: 언저리
.예대가리밭: 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비탈밭
.산멍에: 산몽아, 전설상의 커다란 뱀, 이무기
.분틀: 국수를 짜는 분틀
.들쿠레한: 좀 달고 구수하고 시원한
.사리워: 담겨져서
.집등색이: 짚등석, 짚이나 칡덩굴로 짜서 만든 자리
.댕추가루: 고춧가루
.탄수: 식초
.아르굳: 아랫목
.고담하고: 속되지 않고 아취가 있는…

백석 (白石) 본명은 백기행 (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였다. 1924년 오산소학교를 졸업하고 오산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일 때 조만식, 홍명희가 교장으로 부임한 적이 있고, 6년 선배인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한 후,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었고, 조선일보사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東京]의 아오야마[靑山] 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하였다. 유학 중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즐겨 읽었고, 모더니즘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1934년 졸업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서울생활을 시작하였고, 허준, 신현중 등과 자주 어울렸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8월 30일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주막」, 「여우난골족」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36년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한정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해에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함흥에서 소설가 한설야, 시인 김동명을 만났고, 기생 김진향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고야」, 「통영」, 「남행시초 (연작)」 등을 발표하였다.
1937년 소설가 최정희, 시인 노천명, 모윤숙 등과 자주 어울렸으며, 「함주시초」, 「바다」 등을 발표하였다. 1938년 함경도 성천강 상류 산간지역을 여행하였고, 함흥의 교원직을 그만두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산중음 (연작)」, 「석양」, 「고향」, 「절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물닭의 소리 (연작)」 등 22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1939년 자야와 동거하면서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경 (神京, 지금의 장춘 (長春))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의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만에 그만두었다. 6월부터 만주 체험이 담긴 시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10월 중순 자신이 번역한 토마스 하디의 장편소설 『테스』의 출간을 앞두고 교정을 보러 경성에 다녀갔다. 「목구」, 「수박씨, 호박씨」, 「북방에서」, 「허준」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41년 「귀농」,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발표하였다. 1942년 만주의 안둥 [安東] 세관에서 일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0월에 조만식을 따라 소설가 최명익, 극작가 오영진 등과 ‘김일성 장군 환영회’에 참석해 러시아어 통역을 맡았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되었으나 처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가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허준이 백석이 해방 전에 쓴 시 「적막강산」,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등을 보관하고 있다가 1947년 말부터 1948년 가을에 걸쳐 서울의 잡지에 실었다. 1948년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발표하였다. 남쪽 잡지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였다.
1949년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등을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1953년 전국작가예술가대회 이후 외국문학 분과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번역에 집중하였다. 1956년 동화시 「까치와 물까치」, 「집게네 네 형제」를 발표하였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나의 항의, 나의 제의」 등의 산문을 발표하였다. 10월에 열린 제2차 조선작가대회 이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정현웅의 삽화를 넣어 간행하였고, 동시 「멧돼지」, 「강가루」, 「기린」, 「산양」을 발표한 뒤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6월에 「큰 문제, 작은 고찰」과 「아동문학의 협소화를 반대하는 위치에서」를 발표하면서 아동문학 논쟁이 본격화되었고, 9월 아동문학토론회에서 자아비판을 하였다. 1958년 시 「제3인공위성」을 발표하였고, 9월의 ‘붉은 편지 사건’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문학적 활동이 대부분 중단되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에 있는 국영협동조합으로 내려가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았다. 삼수군 문화회관에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면서 농촌 체험을 담은 시 「이른 봄」, 「공무여인숙」, 「갓나물」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60년 1월 평양의 『문학신문』 주최 ‘현지 파견 작가 좌담회’에 참석하였고, 시 「눈」, 「전별」 등과 동시 「오리들이 운다」, 「앞산 꿩, 뒷산 꿩」 등을 발표하였다. 1961년 「탑이 서는 거리」, 「손벽을 침은」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62년 시 「조국의 바다여」, 「나루터」 등을 마지막으로 발표하였다. 10월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활동을 일절 하지 못하게 되었다. 1996년 삼수군 관평리에서 사망하였다.
백석은 소월과 만해, 지용이 다져놓은 현대시의 기틀 위에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세움으로써 한국 시의 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한 시인이다. 평안 방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언어들을 시어로 끌어들이고 고어와 토착어를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시켰다. 또한 우리말의 구문이 품고 있는 의미 자질을 적절히 활용하여 경험세계를 감각적으로 재현하였다. 백석의 시는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정제된 운율이 있는 전통적인 서정시 형식 대신 이야기 구조를 갖춘 서사지향적인 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때 ‘이야기 구조’는 서사양식처럼 사건의 서사적 진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장면 묘사와 서술에 의미의 중심이 놓여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주 짤막한 형태로 이루어진 시들은 대상의 미감을 가장 압축된 형태로 포착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시각 외에 청각과 후각, 촉각, 미각 등 거의 모든 감각을 사용하여 대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표현해냈다. 구체적인 생활 현장에서 벌어지는 삶의 면면들을 그려낸 시들은 풍속을 시로 재현해냄으로써 풍속사적인 의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백석의 시 중에서 1인칭 화자의 주관적 독백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서정시들은 특별한 수사나 기교 없이 평명한 언어로써 차분하게 내면을 성찰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