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정지용 (鄭芝溶, 1902 ~ 1950) 시 모음
정지용 (鄭芝溶, 1902년 6월 20일 / 음력 5월 15일 ~ 1950년 9월 25일)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아명은 지룡 (池龍)이다.

– 정지용 (鄭芝溶)
.출생: 1902년 6월 20일, 대한제국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사망: 1950년 9월 25일 (48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또는 대한민국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으로 추정 (사인은 폭사로 추정)
.직업: 시인
.국적: 대한제국 (1902~1910), 대한민국 (1948~1950)
.학력: 도시샤 대학 영문과
.종교: 천주교 (세례명: 방지거)
.필명: 아명 (兒名)은 정지룡 (鄭池龍)
.활동기간: 1926 ~ 1949년
.부모: 정태국(부), 정미하(모)
.배우자: 송재숙 (宋在淑)
.자녀: 장자 구관 (求寬), 차자 구익 (求翼), 삼자 구인 (求寅), 장녀 구원 (求園)
.기념: 정지용 사이버 문학관
본관은 연일 (延日). 충청북도 옥천 (沃川) 출신. 아명 (兒名)은 태몽에서 유래된 지용 (池龍)이고 세례명은 프란시스코 (方濟角)이다.
가끔 ‘지용’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을 뿐이며, 여타의 아호 (雅號)나 필명은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납북 여부와 사인이 모호하여 한때 이름이 ‘정X용’으로 표기되고 그의 시가 금기시 되었으나, 1988년 해금되어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시 향수가 수록되었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유리창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러갔구나!
*유리창 2
내어다 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앞 잣나무가 자꼬 켜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쫏다.
아아, 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랏빛 누뤼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뺌은 차라리 연정스레히
유리에 부빈다. 차디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 꽃!
도회에는 고운 화재가 오른다.
*종달새
삼동 내 —-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
왜 저리 놀려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지리 지리리 ……
왜 저리 놀려대누.
해 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발열
처마끝에 서린 연기 따러
포도순이 기여 나가는 밤,소리 없이,
가물음 땅에 스며든 더운김이
등에 서리나니 ,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어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신교도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으듯 하여라.
*산너머 저쪽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우 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맞어 쩌르렁!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늘 오던 바늘장수도
이봄 들며 아니 뵈네.

*석류
장미꽃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여
홍보석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 달 ,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 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오월소식
오동나무 꽃으로 불밝힌 이곳 첫여름이 그립지 아니한가?
어린 나그네 꿈이 시시로 파랑새가 되여 오려니.
나무 밑으로 가나 책상 턱에 이마를 고일 때나,
네가 남기고 간 기억만이 소근 소근거리는구나.
모초롬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남설거리나니….
나는 갈매기 같은 종선을 한창 치달리고 있다…
쾌활한 오월넥타이가 내처 난데없는 순풍이 되여,
하늘과 딱닿은 푸른 물결우에 솟은,
외따른 섬 로만틱을 찾어갈가나.
일본말과 아라비아 글씨를 아르키러간
쬐그만 이 페스탈로치야, 꾀꼬리 같은 선생님 이야,
날마다 밤마다 섬둘레가 근심스런 풍랑에 씹히는가 하노니,
은은히 밀려 오는듯 머얼미
*장수산 1
벌목정정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 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 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
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 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여섯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카페프랑스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 · 프랑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앞장을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 · 프랑스에 가자.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 오오 패롤서방! 꿋 이브닝!」
「꿋 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 아기씨는 이밤에도
경사 커-틴 밑에서 조시는 구료!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뺌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 강아지야
내 발을 빨어다오.
내 발을 빨어다오

*풍랑몽 1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
끝없는 울음 바다를 안으올 때
포도빛 밤이 밀려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
물건너 외딴 섬, 은회색 거인이
바람 사나운 날, 덮쳐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
창밖에는 참새떼 눈초리 무거웁고
창안에는시름겨워 턱을 고일때,
은고리 같은 새벽달
부끄럼성 스런 낯가림을 벗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
외로운 졸음, 풍랑에 어리울때
앞 포구에는 궂은비 자욱히 들리고
행선배 북이 웁니다
*풍랑몽 2
바람은 이렇게 몹시도 부옵는데
저달 영원의 등화!
꺼질 법도 아니하옵거니,
엊저녁 풍랑 우에 님 실려 보내고
아닌 밤중 무서운 꿈에 소스라쳐
*바다 1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바다 2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이 애쓴 해도(海圖)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휘동그란히 받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蓮)잎인 양 오므라들고 …… 펴고 …….
*춘설(春雪)
문 열자 선뜻 !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숭거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워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 기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비극
‘비극’의 흰 얼굴을 뵈인 적이 있느냐?
그 손님의 얼굴은 실로 아름다워라.
검은 옷에 가리어 오는 이 고귀한 심방에
사람들은 부질없이 당황한다.
실상 그가 남기고 간 자취가
얼마나 향그럽기에 오랜 후일에야
평화와 슬픔과 사랑의 선물을 두고간 줄을 알았다.
그의 발옮김이 또한
표범의 뒤를 따르듯 조심스럽기에
가리어 듣는 귀가 오직 그의 노크를 안다.
묵이 말라 시가 써지지 아니하는 이 밤에도
나는 맞이할 예비가 있다.
일찍이 나의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드린 일이 있기에
혹은 이 밤에 그가
예의를 갖추지 않고 올량이면
문 밖에서 가벼이 사양하겠다.

*그의 반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령혼안의 고흔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갑진이,
바다에서 솟아 올라 나래 떠는 金星,
쪽빛 하늘에 힌꽃을 달은 高山植物,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사로 한가러워―항상 머언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지 수그릴뿐.
때없이 가슴에 두손이 염으여지며
구비 구비 돌아나간 시름의 黃昏길우―
나―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 임을 고히 진히고 것노라.
*난초(蘭草)
난초닢은
차라리 수묵색(水墨色).
난초닢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닢은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
난초닢은
별빛에 눈떳다 돌아 눕다.
난초닢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쨔지 못한다.
난초닢에 적은 바람이 오다.
난초닢은
칩다.
*따알리라
가을 볕 째앵 하게
내려 쪼이는 잔디밭.
함빡 피어난 따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
시약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젓가슴과 붓그럼성이
익을 대로 익었구나.
시약시야, 순하디 순하여 다오.
암사심처럼 뛰여 다녀 보아라.
물오리 떠 돌아 다니는
힌 못물 같은 하눌 밑에,
함빡 피어 나온 따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따알리아.

*바람
바람 속에 장미가 숨고
바람 속에 불이 깃들다.
바람에 별과 바다가 씻기우고
푸른 묏부리와 나래가 솟다.
바람은 음악의 호수.
바람은 좋은 알리움!
오롯한 사랑과 진리가 바람에 옥좌를 고이고
커다란 하나와 영원이 펴고 날다.
*별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실로 이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듯,
불리울 듯, 맞어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회한에 피어 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위에 손을 여미다.
*이른 봄 아침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어 들어와
참한 은시계로 자근자근 얻어맞은 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라져,
수은방울처럼 동글동글 나동그라져,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는 싫어라.
쥐나 한 마리 움켜 잡을 듯이
미다지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새이로
빠알간 산새 새끼가 물레북 드나들 듯.
새 새끼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 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휘파람이라.
새 새끼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저쪽으로 돌린 푸로우피일–
패랭이꽃 빛으로 볼그레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깍어 세운 대리석 기둥인 듯,
간뎅이 같은 해가 이글거리는
아침하늘을 일심으로 떠받치고 섰다.
봄바람이 허리띠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오노니,
새 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해바라기씨
해바라기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나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시약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짹!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시사철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호수 1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 밖에
*구성동(九城洞)
골짝에는 흔히
유성이 묻힌다.
황혼에
누뤼가 소란히 쌓이기도 하고,
꽃도
귀향 사는 곳,
절터드랬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고
산그림자도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별똥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소.

– 시인 정지용 (鄭芝溶, 1902 ~ 1950)
정지용 (鄭芝溶, 1902년 6월 20일 / 음력 5월 15일 ~ 1950년 9월 25일)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아명은 지룡 (池龍)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납북 여부와 사인이 모호하여 한때 이름이 ‘정X용’으로 표기되고 그의 시가 금기시 되었으나, 1988년 해금되어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시 향수가 수록되었다.
본관은 연일 (延日). 충청북도 옥천 (沃川) 출신. 아명 (兒名)은 태몽에서 유래된 지용 (池龍)이고 세례명은 프란시스코 (方濟角)이다. 가끔 ‘지용’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을 뿐이며, 여타의 아호 (雅號)나 필명은 없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한의사인 정태국과 정미하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1세 때 송재숙 (宋在淑)과 결혼했으며, 1914년 아버지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에 입문하여 ‘방지거 (方濟各,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옥천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서 박종화 · 홍사용 · 정백 등과 사귀었고,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을 펴내기도 했으며, 신석우 등과 문우회 (文友會) 활동에 참가하여 이병기 · 이일 · 이윤주 등의 지도를 받았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선근과 함께 ‘학교를 잘 만드는 운동’으로 반일 (半日)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고, 이로 인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가 박종화 · 홍사용 등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났다.
1923년 4월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으며, 유학시절인 1926년 6월 유학생 잡지인 ‘학조 : 學潮’에 시 ‘카페 프란스’ 등을 발표했다. 192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하여 이후 8·15 해방 때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독립운동가 김도태, 평론가 이헌구, 시조시인 이병기 등과 사귀었다. 1930년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 (李箱)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같은 해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 (九人會)에 가담하여 문학 공개강좌 개최와 기관지 ‘시와 소설’ 간행에 참여했다.
1939년에는 ‘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 · 조지훈 · 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교로 옮겨 교수 및 문과과장이 되었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및 가톨릭계 신문인 ‘경향신문’ 주간이 되어 고정란인 ‘여적’ (餘適)과 사설을 맡아보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던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 강연에 종사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지고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인천 상륙 작전이 끝나고 대한민국 국군이 수복한 서울에서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그는 납북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어 왔으며, 정지용 사이버 문학관에는 계광순의 증언을 바탕으로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구금됨.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평양 감옥으로 이감. 이광수, 계광순 등 33인이 함께 수용 되었다가 그 후 폭사당한 것으로 추정’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 당시 월북하였다가 2000년 남한을 방문한 정지용의 둘째 아들은 북조선에서의 아버지의 행적을 전혀 알지 못하였고, 2003년 문학평론가 박태상은 그가 납북되던 중 1950년 9월 25일 미군의 동두천 폭격에 휘말려 소요산에서 폭사하였다는 내용의 자료를 공개하여 정지용이 실제 납북되어 북조선에서 활동하였는가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단, 박태상이 공개한 자료는 북조선 언론 자료에 기초한 것이어서 남한에서는 신빙성을 크게 인정받지 못하였고, 현재까지 정지용의 정확한 사망 일자나 원인에 대해서는 확실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