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64년 7월 19일, 로마에 대화재 (Great Fire of Rome) 발생
64년 7월 18일에는 로마에서 대화재사건이 있었다. 일명 ‘로마 대화재’(大火災, Great Fire of Rome) 사건은 64년 7월 18일 로마의 기름 창고에서 우연히 일어난 작은 화재가 시내에 번지면서 대화재로 악화되었다.

당시 로마 제국 황제였던 네로는 화재 소식을 듣고는 휴가를 중단하고, 로마에 와서 이재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등 참사 수습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재앙에 시민의 민심은 진정되지 않았고, 심지어 네로 황제의 방화설까지 나돌았다.
그러자 네로 황제와 집권 세력은 이에 대한 민심 수습책으로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에 책임을 덮어씌우고 예수의 12사도를 비롯한 기독교도를 대학살하였다.
대화재 당시 불타는 로마 시내를 보면서 네로가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설이자 영화적 과장이지만, 당시 “사악한 미신”, “로마 제국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공격을 받고 있었던 기독교도들을 사회혼란 해결의 희생양으로 삼아 화형으로 대학살한 것은 이후 네로가 최초의 기독교 박해자이자 폭군 또는 정신이상자로 역사에 낙인찍힌 원인이 되었다.
당대의 역사가 타키투스(55?∼117?)는 “흉한(兇漢)들이 불을 못 끄게 막았고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듯 횃불을 던져댔다. … 황제는 불타는 로마를 보며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기록했다.
네로는 로마에 ‘황금 궁전’을 건설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귀족과 원로원이 반대하자 일을 쉽게 끝내기 위해 아예 다 태워버리는 방안을 선택했다는 그럴싸한 설명이 붙었다. 정작 황제는 화살을 기독교에 돌렸다.
“‘시리우스별이 뜨는 날 거대한 악(惡)의 도시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기독교도가 고의로 불을 질렀다.”

당시 로마는 인구 200만 명의 대도시였다.
기록에 따르면 하루에도 수십 건의 작은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대화재의 원인이 고의적인 방화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네로를 둘러싼 논란은 정치적인 냄새가 풍긴다.
네로를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기록을 남긴 타키투스는 화재 당시 열 살도 채 안됐다.
네로와 맞서던 귀족사회와 원로원의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썼을 가능성이 높다.
대화재 이후 다시 재건된 로마 시내는 도로를 정비하고 화재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수로를 늘렸다.
로마 대화재와 민심 수습을 위한 기독교 탄압을 소재로 한 역사 소설로는 셴키에비치의 ‘쿠오바디스’가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