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771년 12월 4일, 프랑크 왕국의 카를로만 1세가 사망하면서 카롤루스 대제가 단일 통치자로 즉위
프랑크 왕국의 카를로만 1세 (768년 9월 24일 ~ 771년 12월 4일)가 771년 12월 4일 사망하면서, 카롤루스 대제가 단일 통치자로 즉위했다.
일명 ‘카롤루스 마그누스’(라: Carolus Magnus, 독: Karl der Große, 영: Charlemagne, 프: Charlemagne, 스: Carlomagno, 742년 4월 2일 / 740년 또는 747년 ~ 814년 1월 28일)는 카롤링거 왕조 프랑크 왕국의 2대 국왕이다. “마그누스”는 “위대하다”는 뜻이다. 그 생전 이름은 Karulus이고, 칭호는 Korolus magunus이다. 프랑스어 표기인 샤를마뉴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카롤루스는 서부, 중부유럽 대부분을 차지해 프랑크 왕국을 크게 확장했다. 재임하는 동안 이탈리아를 정복하여 800년 12월 교황 레오 3세에게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와 반대되는 서로마 제국 황제직을 수여 받았으며, 황제가 되고서 교회 통해 예술, 종교, 문화를 크게 발전시켜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국내외적인 카롤루스의 업적은 서유럽과 중세시대를 정의하는 데 이바지했으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신성 로마 제국 등 재임연표에서 샤를 1세 또는 카를 1세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피핀의 뒤를 이어 동생인 카를로만과 함께 왕국을 통치하였으나 후에 사이 나빠지자 전쟁의 위기가 닥쳤으나 카를로만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비를 넘겼다. 프랑크 왕국을 위협하던 사라센과 전쟁을 일으키던 중 무훈시 롤랑의 노래에서 언급되었던 론세스바예스 전투 (779년)에서 끔찍한 패배를 겪기도 하였으나 교황의 보호자가 된다는 아버지의 정책을 계속 시행해 나아갔다. 778년부터 802년까지는 이베리아 반도의 사라센인들을 격퇴하였다. 또한 롬바르드 왕국, 사라센과의 장기전쟁을 끝낸 후 유럽 동쪽에 사는 민족 중 특히 작센족을 778년부터 800년대까지 수시로 원정, 굴복시켜 가톨릭교로 개종시킨 후 자신의 영토로 이주시켜 훗날 오토 왕조 출발에 발판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카롤루스는 프랑스, 독일 군주의 시초 인물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이후 최초로 대부분의 서유럽을 정복하여 정치적, 종교적으로 통일 시켰으며 또한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현재 유럽의 정체성에 발판을 마련하였기 때문에 ‘유럽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사후 그는 ‘대제’로 번역되는 마그누스 (라틴어) 또는 마뉴 (프랑스어)의 칭호를 얻었으며,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카롤루스 대제 또는 샤를마뉴 (라틴어 이름 카롤루스의 프랑스어 발음), 카를 (카롤루스의 영어, 독일 발음)이라고 불린다. 또한, 독일에서는 카를 대제라고 부른다.
오늘 날 여러나라에서 왕을 뜻하는 단어는 카롤루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폴란드의 Król, 리투아니아의 Karalius, 헝가리의 Király, 세르비아의 Kralj, 러시아의 король, 터키의 Kral 등으로 불린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