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걷는 기도

걷는 기도 (19)
여름의 심장은 한때
터질 듯 울고 있었습니다
나무마다 매달린 시간들이
목청을 다해 자신을 증명하던 계절,
빛은 넘쳐흘렀고
생은 그 자체로 과잉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그 뜨거운 소리들은 스러지고
아무도 떠나는 법을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은 떠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옵니다
존재한 적 없던 것처럼 조용하던 자리에서
귀뚜라미 한 마리,
어둠의 가장 얇은 틈을 비집고
가늘고도 맑은 음으로
세상을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질서 안에서
크게 울던 것들은 사라지고
작게 속삭이는 것들만 남는 이 시간,
존재의 무게는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사라진 뒤에도 남는 떨림임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주여,
이 덧없음 속에서
무엇이 진정 머무는 것입니까
불꽃처럼 타오르던 날들도
결국은 한 줌의 침묵으로 돌아가고
이름을 남기려던 모든 몸부림은
바람에 흩어지는 먼지와 같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미세한 울림 하나가
어둠 전체를 적시는 것을 보며
생의 한가운데
당신에게 묻습니다
사라지는 것이 끝입니까,
아니면 더 깊은 시작입니까
공허한 삶이 매미의 절규처럼
허공에 흩어지게 하지 마시고
귀뚜라미의 노래처럼
작고도 오래 남는 떨림이 되게 하소서
크게 존재하기보다
깊이 존재하게 하시고
많이 드러나기보다
진실하게 울리게 하소서
이 밤,
사라짐 위에 얹힌 고요 속에서
미세하지만 순수하고 청아한 노래로
모든 지나감이 헛되지 않기를,
모든 끝남이 또 하나의 숨이 되기를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마디 마디 마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귀에 닿는
한 줄기 맑은 소리로 남게 하소서
*20260401 교회 서재에서
匍越의 [걷는 기도] 중에서





사진 = 전현구 목사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